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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95화 (295/425)

레스큐 시스템 295화

“……독일이요?”

최은송의 음성은 무거웠다.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티가 났지만, 그럼에도 수혁이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독일 측에서 부탁했다네요.”

“…율리안인가 하는 분인가요?”

“아마도요.”

수혁은 독일과의 인연이 깊었다.

단순히 독일 연수를 다녀온 것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한 행동의 대가로 훈장까지 받았으니까.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온 연수생들의 교관으로 교육까지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인연으로만 따지자면 한국을 제외하곤 가장 사이가 깊은 국가가 바로 독일이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그 위치를 뺏어가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꼭 가야 해요?”

최은송은 영 내키지 않는 듯했다.

사실 수혁이 그녀의 입장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느 누가 꿀 같은 신혼에 서로 떨어져서 지내길 바라겠는가?

최은송이 아무리 배려심이 깊다 하더라도 이런 일이 계속되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수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라고 해서 최은송과 같이 지내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도무지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에휴.”

최은송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하지 마요. 저 화 안 났으니까.”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혁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수혁 씨가 필요하다니까 가는 게 맞아요. 저도 같이 가고 싶지만…….”

“그건 안 돼요.”

수혁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지금 독일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앞으론 더 큰 지옥으로 변할 테고.

그런 곳에 최은송을 데리고 갈 순 없었다.

“그러니까요. 그게 아쉽다고요.”

최은송이 픽- 웃었다.

당황하는 수혁의 모습이 조금 귀엽게 느껴진 것이다.

비장하기까지 보이던 방금 전의 모습이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제가 가봐야 수혁 씨나 다른 분들에게 방해나 되겠죠. 저는 그냥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게 좋겠어요. 독일은 지금 위험하니…….”

“대신!”

최은송이 안심하는 수혁의 입을 막았다.

그러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줘요.”

걱정이 가득한 부탁이었다.

“저는 아직 혼자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수혁 씨랑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아이도 낳고 싶고, 여행도 또 가고 싶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서 영화도 보고 싶고…….”

최은송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이 하는 말을 상상하는 듯했다.

“그러니 절대로 다치지 말고 지금 모습 그대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줘요.”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 중 자신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장담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무리 작은 현장이라 할지라도 예상치 못한 위험 요소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하물며 앞으로 미친 듯이 테러가 일어나는 독일에서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다는 약속은 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약속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 최은송이 안심하고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약속할게요.”

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이죠? 또 엉망진창으로 다쳐서 오는 거 아니죠? 그러면 이번엔 정말 용서 안 할 거예요.”

“정말로요. 절대 다치지 않을게요.”

수혁이 작게 웃으며 말하자, 최은송이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좋은 소식도 있어요.”

수혁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을 돌렸다.

“좋은 소식이요?”

“네, 저 진급해요.”

최은송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갑자기요?”

어제까진 아무런 말도 없었다.

공무원의 진급이란 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최은송은 깜짝 놀랐다.

“오늘 청와대 만찬 다녀왔잖아요.”

“아, 맞아요. 그랬었죠?”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엄청난 소리를 들어서 깜빡 잊고 있었다.

본래 오늘 대화의 최대 이슈는 청와대 만찬이 되었어야 했다.

“거기서 대통령이 표창하고 특진을 시켜 준다고 하더라고요.”

수혁이 담담하게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수혁 씨, 소방관 된 지 얼마나 됐죠?”

“이제 3년 차죠.”

“그런데 벌써 계급이…….”

현재 수혁의 계급은 소방교다.

이번에 진급하게 된다면 소방장이 되는 것이고.

‘소방장이면 관리자인 소방위 바로 전 계급이지.’

고작 3년 만에 7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소방장이 된다.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진급 속도였다.

“축하해요!”

최은송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수혁을 안았다.

그러곤 기쁨 가득한 음성으로 수혁을 축하해 주었다.

“고마워요.”

수혁 역시 최은송을 안으며 웃었다.

확실히 대통령 표창 같은 것보단 진급이 훨씬 더 좋았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축하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최은송은 당장에라도 일어나서 사람들을 불러모을 기세였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내일…….”

“아!”

최은송이 혓바닥을 내밀었다.

너무 기뻐서 이번엔 수혁이 독일로 가야 한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오늘 자꾸 깜빡깜빡 하네요.”

수혁은 배시시- 웃는 최은송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파티는 다녀와서 해요. 어차피 진급도 그 후에나 하게 될 테니까.”

“사람들 많이 초대해도 되죠?”

“그럼요. 아는 사람 싹 다 부를까요?”

어차피 집은 넓다.

수혁의 지인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으니 모두 불러도 충분했다.

“준비할 게 많겠네요.”

최은송은 벌써부터 들뜬 표정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초대 명단이 좌르륵 떠올라 있을 것이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 나 짐 싸는 것 좀 도와줘요.”

“아, 그래요. 얼마나 머문다고 했죠?”

“그건 아직……. 최대한 많이 싸가야 할 거예요.”

최소한 한 달.

길면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짐을 가지고 가는 수밖에.

최은송은 수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렇게 오래 걸려요?”

“아마도요.”

수혁이 다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캐리어도 큰 걸 가져가야겠네요.”

하지만 최은송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이미 허락한 마당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수혁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약속 안 잊었죠?”

“그럼요. 물론이죠.”

수혁은 최은송에게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갈 순 없었기에, 택시를 탄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막상 독일로 가려니 헤어지고 싶지가 않았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목적지는 인천 공항.

장비들은 소방청에서 준비해, 한 번에 싣고 가기로 했다.

고작 하루 만에 지원을 결정하고 인원을 뽑았음에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공무원답지 않은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독일에서 직접 한국만을 콕 집어 지원 요청을 한 것이다 보니, 위쪽에서도 서두른 것 같았다.

국위 선양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고작 하루 만에 이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참을 달려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는 수혁을 알아보곤 말을 걸고 싶어 했지만, 무거운 표정에 운전에만 집중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배려해 준 택시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택시에서 내려 게이트로 향했다.

사람들이 즐비했다.

여행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기자나 소방관으로 보이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몇 번 게이트라고 했었지?’

분명 들었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걸어가며 고민하던 수혁이 결국 혀를 차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전승철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야, 김수혁!”

누군가 뒤에서 수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들은 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

“상태 형?”

바로 박상태의 목소리였다.

“이 새끼, 놀러 온다면서 한 번을 안 와?”

타다닷-! 하는 소리와 함께 박상태가 달려오며 수혁의 목을 팔에 걸었다.

“윽, 힘들어요!”

“그럼 연락이라도 했어야지, 이 새끼야!”

“아, 바빴다니까요?”

정말이었다.

시간이 나면 신일서로 한 번 놀러 가고 싶었는데,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변명은.”

박상태는 헤드록을 건 팔에 힘을 한 번 꽉 주고 난 후 수혁을 풀어주었다.

“아이고, 하여간 힘만 세서는…….”

수혁은 목이 뻐근한지 주물렀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리곤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형이 여기 왜 있어요?”

수혁의 물음에 박상태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왜 있을 거 같냐?”

“어디 여행 가요?”

수혁의 얼빠진 대답에 박상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돌대가리냐? 여행 가는데 제복 입고 가는 놈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아…….”

수혁은 그제야 박상태가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오렌지색의 구조대 제복.

그것을 본 수혁은 박상태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래. 나도 간다, 독일.”

이번 독일 파견은 지원자들을 뽑아 팀을 꾸린 것이 아니었다.

지원을 받고 일일이 뽑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소방청에서 차출 형식으로 대원들을 뽑았다.

꽤 많은 수당을 약속했기에 차출을 거절하는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박상태는 그 차출 인원에 뽑혔기에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박상태의 말에 수혁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가 같이 간다면 큰 도움이 된다.

박상태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무엇보다 수혁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수혁과 처음 구조를 하는 사람들은 항상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그런데 박상태가 지원팀의 팀장이라면?

수혁이 움직이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웃기는.”

박상태는 환한 표정의 수혁을 보며 괜히 헛기침했다.

“노가리 그만 까고 가자. 시간 다 되어간다.”

“몇 번 게이트에서 모이는 건지 알아요?”

“넌 그것도 모르고 왔냐?”

박상태가 한심하다는 듯 수혁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14번 게이트다.”

가장 끝쪽에 있는 게이트였다.

수혁은 박상태의 뒤를 따라 14번 게이트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대체 몇 명이나 가는 거지?’

대충 눈에 보이는 숫자만 해도 50명을 훌쩍 넘어간다.

팀으로 따지면 거의 열 팀에 육박하는 숫자였다.

“김수혁 씨! 이쪽입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 한 명이 수혁과 박상태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당연히 그 소리에 좌중의 이목이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김수혁?”

“김수혁이다.”

수혁의 얼굴을 알아본 소방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인기 많아서 좋겠다, 야.”

박상태가 옆에서 수혁을 놀렸다.

수혁이 이런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긴요. 불편하기만 한데.”

수혁이 속으로 혀를 차는데, 처음 수혁을 부른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어?”

수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여기서 또 뵙네요.”

남자가 수혁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남자는 바로 얼마 전, 소방청에서 수혁의 팬을 자처했던 공무원이었다.

“저는 이번 해외파견 팀의 인솔을 맡게 된 이홍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공무원, 이홍관이 환한 미소와 함께 수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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