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94화
“왔냐?”
수혁이 카페로 들어서자 지양호가 손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죄송해요. 조금 늦었습니다.”
“별로 안 늦었구만, 무슨.”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지양호와 신재식이 카페에 들어온 지 고작해야 10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그 양반이 무슨 얘기하디?”
지양호가 궁금한 듯 물었다.
“별거 아니었어요.”
수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표정을 보면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닌 듯한데…….”
신재식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하자,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다음 주에 있는 행사 하나 참석해 달라는 말이더라고요.”
“행사? 다음 주면…….”
“광주에서 열리는 행사인 게로군.”
지양호와 신재식,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거절했죠, 뭐. 비번도 아닌데 그런 행사에 참석하자고 자리를 비우면, 미안해서 동료들 낯을 어떻게 봐요.”
수혁의 대답에 지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수혁이 속한 특수 구조대는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곳으로 말이다.
실제로 수혁과 그의 동료들은 큰 현장에만 출동하는 데도,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행사에 참여한다고 다른 동료들한테 피해를 끼치는 건 좀 그렇지.”
수혁이 일하는 곳이 평범한 서였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바쁜 특수 구조대에서, 별것 아닌 일로 하루를 쉰다?
“그래도 업무의 연장이니 거절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어쨌거나 수혁은 공무원이었다.
위쪽에서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입장인 것이다.
“저도 그게 좀 걸리긴 하는데…….”
성질을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했지만, 걱정이 되긴 했다.
그건 신재식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이 왜 그러세요?”
지양호가 그런 신재식을 쳐다봤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이지.”
“마음에 걸리는 거라뇨?”
신재식은 잠시 생각을 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청장은 겉으로 보는 것처럼 성격이 그리 유하진 않다네.”
강현성은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를 달고 다니지만, 그 안에는 뱀과 같은 교활함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수혁이나 지양호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긴 했지만, 신재식은 더 자세한 것을 아는 듯했다.
하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꺼낼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설명해 주진 않았다.
대신 수혁에게 경고해 주었다.
“만약 자신의 권위가 무시당했다 느껴지면,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이네. 그리고 그건 당하는 입장에선 꽤나 괴로운 일이 될 테지.”
신재식의 걱정스러운 말에 지양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강현성은 소방계의 정점에 서 있는 청장이다.
그런 사람이 마음먹고 묻어버리려고 한다면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물론 수혁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현재 그는 대통령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놓고 무슨 수작을 부릴 순 없을 것이다.
‘해도 상관없긴 하지.’
수혁은 골치 아픈 일은 제쳐두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이야기나 나누기로 했다.
“…그러다 우연히 수상한 밴을 발견해서 쫓아갔죠.”
“그게 테러범이었다?”
“네. 순전히 운이었어요, 운.”
지양호와 신재식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수혁이 미국에서 테러를 막은 일이었다.
수혁은 수십 번이나 반복한 영웅담을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그런데 거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다른 곳에서 폭탄이 터져 버린 거예요.”
말하는 수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네가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는 일이니까.”
수혁은 신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영웅 취급을 받는다고 해서 그런 것에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자만이고 오만이었다.
자만에 빠진 소방관은 실수하게 마련.
지양호는 수혁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뭐,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명심하는 게 좋아.”
“알고 있어요.”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양호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알았으면 됐고. 심각한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요즘 신혼 생활은 어때?”
지양호가 익살맞은 표정으로 묻자, 수혁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요즘은 너무 바빠서 신혼…….”
말을 하려던 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지양호와 신재식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건…….”
세 사람에게 동시에 온 문자.
“테러?”
“독일에서 테러가 일어났다고?”
수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스마트폰 액정에 떠올라 있는 문자를 확인했다.
‘결국 일어나고 말았구나.’
독일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바로 얼마 전,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와 맞물려 전 세계가 테러의 공포에 휩싸였다.
정확한 피해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상자의 수만 4백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그 숫자는 증가하는 중이었다.
‘이것도 막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양호가 말한 것처럼, 수혁은 신이 아니었다.
한국 내에서도 수혁이 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머나먼 독일 땅에서의 참사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운이 좋았던 거지.’
하필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니까.
수혁은 문자를 받고는 두 사람과 헤어졌다.
외국이긴 해도, 수백 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난 마당에 맘 편히 대화나 나누고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승철에게서 잠깐이라도 들러달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고.
“저 왔습니다.”
본부에 도착한 수혁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대원들이 모두 쳐다봤다.
청와대 만찬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틀림없었지만,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리 좋은 경험도 아닌데.’
1계급 특진은 희소식이긴 했지만, 그건 굳이 수혁이 말하지 않아도 조만간 공문이 내려올 것이다.
“불러서 미안하군.”
전승철이 수혁에게 사과했다.
“아뇨, 어차피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전승철과 대원들은 한눈에 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조금 전에 출동을 나갔다가 복귀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독일에서 일어난 테러 소식은 들었겠지?”
“네. 긴급 문자로 받았습니다.”
수혁이 말하는 긴급 문자는 일반 시민들이 받는 긴급 재난 문자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일종의 소방관들끼리의 정보 공유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쪽이 더 정확했다.
“그럼 이야기가 편하겠군. 지금 독일의 피해가 엄청나다고 한다.”
“그것도 기사로 확인했습니다. 사상자가 4백 명이 넘어간다고…….”
“아마 그 두 배는 될 거다.”
전승철은 인터넷 기사와는 다른 정보를 들은 것 같았다.
“……그렇게 많습니까?”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
수혁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독일에서 일어나는 테러로 인해 많은 피해가 일어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피해 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큰 것 같았다.
‘문제는 이번 한 번이 끝이 아니라는 거지.’
첫 번째 테러 이후로 연쇄적인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대체 독일의 경찰들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덕분에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독일에선 비상사태 선포를 할 정도였다.
‘전쟁까지 갈 뻔했다고 했지?’
테러의 배후를 지목해 군사적인 행동을 개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고 했었다.
다행히 거기까진 가지 않았지만, 전쟁이란 단어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독일이 그런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저는 왜 부르신 겁니까?”
독일에서 일어난 사건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수혁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테러범의 정체도 알지 못했고, 언제, 어디서 테러가 일어나는지도 알지 못했으니 조언을 해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더 피해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기도하는 수밖에.
“지원 요청이 왔다.”
“지원이요?”
“그래. 독일의 소방 인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더군.”
수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독일이 타국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이전 생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한국에 지원 요청을 한 일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수혁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독일에서 지원을 요청하며, 지원 인력에 너를 꼭 포함시켜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수혁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독일에서 한국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건, 아무래도 율리안의 입김이 들어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율리안이라면 나를 불렀겠지.’
순간적으로 떠올린 짐작이었지만, 아마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문제입니까?”
“테러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만 천 명이 넘는다더군. 건물이 무너지며 그 안에 깔린 사람들도 많아서 구조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야.”
폭탄은 미국에서처럼 단순히 길가에서 터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대형 마트에서 터졌고,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수많은 사람이 매몰된 듯했다.
“덕분에 지금 독일은 소방 인력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천 명이 넘는 소방관들이 한 현장에 매달려 있으니, 당연히 구멍은 클 것이다.
“어떻게 할까?”
전승철이 수혁을 보며 물었다.
가라, 가지 마라 같은 명령이 아니었다.
수혁의 의향을 듣고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가도 됩니까?”
독일의 테러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커다란 피해가 앞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수혁이 가는 것이 좋았다.
테러를 막진 못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이 수혁에게는 있었으니까.
“네가 동의한다면 보내줘야지.”
전승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가 가면 빈자리가 생길 텐데요.”
그 이유 때문에 강현성이 부탁한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도움이 간절한 이들이 독일에 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러 가는데 우리가 조금 고생한다고 대수일까.”
수혁은 그런 전승철을 가만히 보다 대답했다.
“가겠습니다.”
“좋아.”
전승철은 수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님께는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지.”
“대장님도 허락하신 일입니까?”
“그래.”
그렇다면 더욱 거리낄 게 없었다.
“언제 출발합니까?”
“지금 팀을 꾸리고 있다. 출발은 내일 오후 5시. 민간 항공사에서 지원해 준 항공편을 타고 출발할 예정이다. 정확한 일정은 정해지는 대로 가르쳐 줄 테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준비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수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섰다.
‘은송 씨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최은송이라면 이해해 주겠지만…….
그래도 미안했다.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엉망진창이었는데, 또다시 최은송을 혼자 두고 독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미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지 않을 순 없었다.
그곳에는 수혁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요구조자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