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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90화 (290/425)

레스큐 시스템 290화

“……네?”

수혁이 멍하니 강병규를 쳐다봤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강병규 역시 같은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거 아니다. 청와대에서 너를 만찬에 초청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왜요?”

수혁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근래 들어 수혁의 명성이 높아지긴 했다.

미국에서는 영웅 취급을 받고 있었고, 덕분에 소방계에 어마어마한 지원도 약속받았다.

뿐만 아니라 바로 얼마 전에 역사상 아홉 번째 미국 명예시민이 되는 명예까지 얻었으니…….

지금 수혁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가 초청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너 혼자 가는 건 아니니까.”

전승철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럼요?”

“다가오는 소방의 날에 소방관들을 초청할 예정이었다더라. 그 명단에 네가 포함된 것뿐이다.”

“아…….”

소방의 날이라면 11월 9일.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런 거면, 뭐.”

수혁은 괜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은 못 하는 거죠?”

“해도 상관은 없지만,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랬다간 위쪽에 찍힐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단단히 찍혀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수혁이 긍정의 의미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자 전승철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렸다.

“아, 그리고.”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멈칫하고는 고개만 돌려 수혁을 쳐다봤다.

“안양서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더군.”

한마디를 덧붙인 전승철은 그대로 휴게실을 나갔다.

“…저건 또 무슨 말이냐?”

강병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마 어제 그 일 때문인 거 같은데요.”

“어제? 아, 지도!”

수혁은 어제 수리산 화재 현장에서 우선 화재 진압 지점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받은 전승철이 화재 진압대에게 전해주었고.

“확실히……. 그 지도 덕분에 화재 진압에 시간이 꽤 단축되었다는 얘길 들었지.”

그렇다고 해서 극적으로 한 번에 불이 모두 꺼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열 시간은 걸릴 일이 여덟 시간 정도로 줄어든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시간이 줄어든 만큼 소방관들의 체력도 보존이 되었고, 피해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승철을 통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올 정도면 꽤나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에구구. 청와대고, 안양서고, 저는 일단 좀 쉬어야겠네요.”

수혁은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소파에 몸을 뉘였다.

그 모습을 본 강병규가 픽- 하고 웃었다.

“그래, 좀 더 쉬어라.”

어제 그렇게 고생했으니, 오전 정도는 푹 쉬게 해주어야만 했다.

몇 초 지나지도 않아 수혁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하자, 강병규는 조심스럽게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대단한 놈.’

그러면서 감탄했다.

만약 자신이 수혁이었다면, 오늘 출근은커녕 병원으로 가서 영양제를 맞으며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수혁은 집에 가지도 않고 곧장 본부로 복귀했다.

다들 고생했는데 자신만 쉴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만약 전승철이 배려해 주지 않았더라면, 수혁은 지금도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팀장님이 왜 이렇게 저 녀석을 원했는지 알 것 같네.’

어제부터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지만, 수혁은 그야말로 구조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앞으로 수혁과 함께 현장에 나갈 일이 기대가 되었다.

“아, 진짜. 귀찮아 죽겠네.”

수혁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투덜거렸다.

“오늘도 시달렸냐?”

그 모습을 본 강병규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쫓아다닐 건지……. 진짜 고소라도 할까 싶네요.”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늘은 몇 명이나 왔디?”

“모르겠어요. 그냥 보자마자 후다닥 도망쳐서.”

“그게 그 사람들 일이니까.”

근래 들어 수혁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수혁의 뒤를 따라붙으며 사진을 찍었고, 인터뷰 요청을 해댔다.

오늘도 출근하는 동안, 집 앞부터 본부까지 열 명이 넘는 기자들이 따라붙으며 귀찮게 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놈들은 싹 다 고소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불편해도 좀 참아라. 그놈들 괜히 건드렸다가 안 좋은 기사라도 쏟아내면 너만 손해야.”

그래서 수혁도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기자들이 슬슬 최은송에게까지 접근하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 같았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민원을 제기해야 하나?’

수혁이 기자들을 막아낼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전승철이 들어오며 수혁을 불렀다.

“김수혁.”

“네?”

갑작스러운 부름에 놀란 수혁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

설마 기자가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수혁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것을 본 전승철이 고개를 저었다.

“기자였으면 내가 이렇게 너를 부르지도 않았을 거다.”

“그건 그러네요.”

자신의 부하를 끔찍이도 아끼는 전승철이 수혁에게 귀찮은 일을 만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럼 누가 왔습니까?”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묻자, 전승철이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응?”

전승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사람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수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가 아는 사람들 중, 저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톰?”

손님의 정체는 바로 톰이었다.

수혁이 반가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여긴 어쩐 일입니까?”

그러자 톰은 웃으며 대답했다.

“회의가 끝나고 한번 들르겠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소방청에서 그런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지.’

수혁은 톰이 찾아오자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톰과의 인연이 그렇게 각별하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수혁이 가까이 오자 그 거대한 팔을 벌리며 포옹을 한 것이다.

“아, 하하.”

수혁은 살짝 놀랐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톰을 가볍게 한번 안아주었다.

“잠깐 나갔다 와. 멀리서 손님이 오셨는데 커피라도 한잔하고 올 시간은 줘야겠지.”

“감사합니다.”

전승철의 말에 수혁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톰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수혁은 톰을 데리고 본부 옆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정말로 오실 줄은 몰랐네요.”

“약속했으니까요. 그리고 꼭 다시 만나서 이야기도 좀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저랑요?”

둘이 할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둘의 공통점이라고는 뉴욕 테러밖에 없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날의 테러 덕분에 영웅이 되긴 했지만, 그건 수혁이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날의 일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떠올리고 싶지가 않았다.

“그날 일은 저도 별로 상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톰은 수혁의 표정을 보고는 생각을 짐작했는지,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전에도 하셨는데요, 톰.”

소방청에서도 톰은 수혁에게 허리를 숙여가며 감사 인사를 전했었다.

톰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온 관료들도 전부.

“그건 미국과 뉴욕 소방관 중 한 명으로서 한 인사였고, 오늘은 저라는 사람이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어리둥절해 하자 톰이 웃었다.

“저는 예전 911테러에 출동했었습니다.”

그러곤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그 현장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일들.

동료들의 죽음과 구하지 못한 요구조자들의 비명.

그로 인해 기나긴 세월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다는 이야기까지.

수혁은 톰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들어본 적 있다.’

911테러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심지어 그에 관한 드라마까지 제작되었을 정도이니, 꽤 심각한 일이었을 것이다.

소방관들 중에는 톰과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승철만 해도 톰과 비슷한 증상을 겪지 않았던가?

지금이야 티를 내지 않고 있다지만, 수혁은 그가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방관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것이 무엇일까?

현장에서의 사고로 인한 순직?

오랜 현장 근무로 인한 질병?

그것들도 소방관이 사망하는 이유 중 하나였지만, 가장 많은 사례는 아니었다.

소방관이 목숨을 잃는 가장 많은 사례는 바로 자살이었다.

그것도 현장 순직과 비교해 무려 세 배가 넘는 숫자가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

한계를 넘어서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 과정에서 동료나 요구조자를 잃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일이지.’

수혁은 톰이 그동안 인내해 온 세월이 측은해졌다.

팀원 중 오직 자신만이 살아남았으니 그 죄책감과 후회가 얼마나 깊었을까?

수혁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당신에게 고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톰이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

수혁이 손을 내저었다.

‘갑자기? 이야기의 맥락을 파악 못 하겠는데?’

자신이 그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수혁에게 감사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당신 덕분에 그 길고 길었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당황했던 수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날의 일은 실패였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수혁에게는 실패나 다름없었다.

테러를 막지 못하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으니까.

그런데 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날, 현장에서 과거를 봤습니다.”

자욱한 연기.

매캐한 화약 냄새.

사람들의 비명과 타오르는 불꽃.

톰은 그 사이에서 사람들을 구하며, 그동안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짐을 하나둘씩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10년 전에 구하지 못한 동료와 요구조자들을 구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한 명, 한 명을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톰은 수혁과 반대로 생각했다.

절반의 성공?

그 말은 곧 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뜻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수혁을 쳐다보는 톰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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