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89화
“미쳐 버리겠군.”
김남훈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산불이 뿜어대는 열기에 마치 찜통의 만두처럼 그대로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쯤 되면 이제 없는 것 아닐까요?”
김남훈과 같이 수색을 진행하던 대원 한 명이 말했다.
그들이 구조한 요구조자만 벌써 다섯 명.
다른 쪽을 수색하고 있는 이들이 구조한 요구조자까지 합치면 20명을 훌쩍 넘어간다.
몇 명이나 더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젠 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더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 복귀 명령 안 떨어졌어. 그때까진 죽겠어도 수색하는 수밖에 없다고.”
김남훈은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 지경에도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정말로 아직까지 피하지 못한 채 산불 속에 갇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요구조자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위에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까진 돌아갈 수 없었다.
“산소 잔량은?”
“30% 정도 남았습니다.”
대원의 대답을 들은 김남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조금 더 수색할 수 있었다.
그나마 열기가 덜한 곳을 찾아 이동한 그들은 지도를 꺼내 들었다.
“여기까지만 수색한다. 그때까진 복귀 명령이 떨어지겠지.”
지도는 붉은색과 검은색 표시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붉은색은 불길이 심해 이동할 수 없는 곳.
검은색은 이미 수색을 진행한 곳을 표시한 것이었다.
김남훈은 그중 아무런 표시도 없는 곳을 짚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다.
“가자.”
지도를 다시 품에 넣은 김남훈이 대원들과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제발 아무도 없었으면…….’
그곳뿐만 아니라, 이 수리산 내에 더는 요구조자가 없길 바랐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힘……?”
지쳐 있는 대원들을 독려하던 김남훈이 말끝을 흐렸다.
저 앞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잘못 봤나?’
김남훈은 자신의 눈을 살짝 의심했지만, 그의 눈은 정확했다.
전방에서 사람의 형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요구조자!’
김남훈은 그들이 요구조자일 것이라 판단했다.
정확히 수색 구역을 나눈 탓에 다른 구조대원들과 마주칠 가능성은 적었던 것이다.
게다가 구조대원들이라고 보기엔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최소한 열 명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구조대입니다!”
김남훈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곤 대원들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 열기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에겐 힘들기 짝이 없는 온도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구조를 해야만 했다.
“보조 마스크 꺼내고! 바로 본부에 요구조자 발견했다고 보고를…….”
“저기 저 사람들 마스크 썼는데요?”
대원들에게 지시하던 김남훈이 한 대원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이쪽으로 다가오는 요구조자들을 자세히 살폈다.
대원의 말대로 모두 마스크를 쓴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옷을 보면 소방관이 아닌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신일… 이 아니라, 특수 구조대 1팀 김수혁입니다.”
수혁이 방화복을 입은 채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특구!”
김남훈과 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아니, 대체 어떻게?’
그들도 특수 구조대가 지원 나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특수 구조대를 태운 헬기가 움직이는 것도 보았다.
그럼에도 특수 구조대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특수 구조대는 여기가 아니라, 수리산 정상 쪽을 수색하고 있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맡은 구역과 이곳 사이에는 거대한 불길이 가로막고 있었으니…….
‘설마 거기를 뚫고 내려온 것은 아니겠지?’
***
“이쪽으로 저를 따라오세요.”
이번이 네 번째 요구조자들이었다.
‘열세 명.’
지금까지 수혁이 발견한 요구조자의 수였다.
절대로 적지 않은 수였다.
‘이젠 나 혼자선 힘들겠는데…….’
요구조자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통제가 어려워진다.
거기다 예기치 못한 일에서 보호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에, 수혁은 혼자 수색하는 게 힘들다고 판단했다.
‘어디 보자.’
‘미니 맵’을 확인했다.
그러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구조대원들을 찾았다.
‘이 사람들인가?’
화재 진압대라고 보기엔 불길과 동떨어진 곳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안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것으로 봐선 수색하는 구조대원들이 분명해 보였다.
‘저들한테 인계를 해야겠군.’
그렇게 결정한 수혁은, 구조대원들의 이동 경로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시.’
수혁의 앞에 나타난 것은 구조대원들이었다.
상당한 시간동안 수색을 진행했는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음에도, 자신들을 발견하곤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소방관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맡겨도 되겠다.’
단순히 요구조자들이라고 생각했다가 마스크를 쓴 것을 확인한 구조대원들이 멈칫하는 것을 본 수혁이 앞으로 나섰다.
“신일… 이 아니라, 특수 구조대 1팀 김수혁입니다.”
버릇처럼 신일서 소속이라고 밝힐 뻔했지만, 재빨리 말을 바꿔 제대로 소개를 했다.
“특구!”
꽤나 놀란 듯 보였다.
수혁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설명해 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지금은 그보다 구조한 요구조자들을 1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니 말이다.
“혹시 팀장님 계십니까?”
수혁이 묻자, 한 명이 걸어나왔다.
“산본 119센터 구조 2팀장 김남훈입니다.”
사람의 수가 여섯 명이라 혹시나 했는데, 한 개 팀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맞았다.
“수고 많으십니다.”
수혁은 일단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혹시 이분들을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김남훈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봤다.
“보시다시피 저는 혼자라서 말입니다.”
수혁의 말에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보니 그가 구한 요구조자의 수가 무려 열세 명이었다.
수혁이 이곳에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혼자서 열세 명이나 되는 요구조자를 발견하고, 구조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 법.
수혁의 부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김남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맡아서 안전하게 탈출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김남훈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요구조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턴 저분들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요구조자들은 수혁을 향해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따라가라니, 그럼 당신은……?”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김남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수혁에게 물었다.
마치 자신은 가지 않겠다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저는 이 주변을 조금 더 수색하다 내려갈 생각입니다.”
김남훈과 대원들이 동시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가만히 서 있는 지금도 죽을 맛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빠르게 소모되는 체력.
무거운 장비까지 매고 있었으니 가만있어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특수 구조대라고는 하지만, 혼자서 계속 헤매겠다니.
만약 수혁이 자신의 부하였다면 뒤통수를 후려쳐 기절시킨 후, 강제로 끌고 내려갔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이런 건 익숙해서요.”
김남훈의 생각을 눈치챈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김남훈은 잠시 망설였지만, 자신이 특수 구조대의 행동을 막을 힘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수혁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김남훈은 부디 수혁이 조심하길 바라며 요구조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자신들이야 한 팀이 같이 움직였기에 구조에 필요한 장비와 용품들이 많았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분명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보조 마스크와 봄베를 좀 교체했으면 좋겠는데요.”
수혁이 가지고 온 보조 마스크는 요구조자들에게 나누어주며 모두 쓴 상태였고, 봄베의 산소 잔량도 간당간당했다.
김남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원 한 명을 불렀다.
“애들 보조 마스크 싹 다 걷어오고, 너 봄베 벗어.”
“예?”
“이분이랑 교체해.”
대원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팀장의 명령을 거부할 순 없었기에 순순히 봄베를 벗었다.
“감사합니다. 꼭 돌려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바꿔 든 봄베를 등에 매고는 산소 잔량을 확인했다.
‘충분해.’
아껴 쓴다면 한 시간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동 준비 끝났습니다.”
보조 마스크를 걷어온 대원이 수혁에게 그것을 건네며 김남훈에게 보고했다.
“좋아. 바로 이곳을 빠져나간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자신을 쳐다보는 김남훈과 시선을 마주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탈출시킬 테니.”
김남훈은 수혁을 안심시키고는 대원들과 함께 요구조자들을 보호하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기는 됐고.’
열세 명이나 되는 요구조자를 구조했지만, 수혁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수리산은 넓었고, 아직 곳곳에 퍼져 있는 요구조자들의 수는 많을 것이다.
혼자서 그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구해야만 했다.
“가자.”
‘미니 맵’을 확인한 수혁이 요구조자로 짐작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린 뒤, 달리기 시작했다.
52명.
그날 하루 수혁이 구조한 요구조자들의 숫자였다.
수혁 혼자 산속을 헤매며 구조한 요구조자가 전체 요구조자의 40%를 넘어간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과.
당연히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인 수혁이, 또다시 많은 사람을 구해낸 것이다.
거기다 타이밍 좋게 미국에서 수혁에게 명예시민을 수여한다는 발표까지 하며, 수혁의 이름은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아, 지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휴게실에서 드러누운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많이 힘드냐?”
강병규가 물었다.
“어제 좀 무리했나 보네요.”
수리산을 제집처럼 누볐으니, 지칠 만도 했다.
아무리 수혁이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녁에 출동해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1초도 쉬지 않고 산속을 뛰어다녔으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곧장 다시 출근했으니…….
“너 또 난리 났더라.”
“이젠 별로 신경쓰고 싶지도 않네요.”
한두 번도 아니고.
“유명인 다 됐는데, 안 좋냐?”
“좋긴요, 피곤하기만 하지. 저는 그냥 사람 구하는 게 좋습니다.”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귀찮은 음성으로 대꾸하는 수혁의 모습에 강병규가 픽- 하고 웃었다.
저 모습만 보면, 전날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던 수혁의 모습은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면 기분이 좋…….”
“김수혁.”
강병규가 부럽다는 듯 말을 하는데, 누군가 휴게실로 들어오며 수혁을 불렀다.
슬쩍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자, 전승철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전승철의 재량으로 오늘 오전은 수혁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웬만한 출동이 아닌 이상은, 수혁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배려를 해준 전승철이 직접 와서 불렀으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수혁이 일어나 앉으며 묻자, 전승철이 대답했다.
“너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누가요?”
전승철이 이렇게 직접 와서 얘기할 정도면 쉽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