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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88화 (288/425)

레스큐 시스템 288화

“……뭐라고?”

강병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는 이대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요구조자들을 더 수색할 생각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산악 구조대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강병규는 소리를 질렀다.

“너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봤잖아. 그런데 거길 맨몸으로 내려가겠다고?”

아무리 방화복을 입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거대한 불길 속을 뚫고 내려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설사 버틸 수 있다고 한들, 봄베의 산소가 먼저 바닥이 날 터였다.

수색을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 30분가량 지난 상태.

아무리 중간중간 산소를 아껴 썼다고는 하지만, 이제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분명 불길을 반도 통과하지 못하고 바닥이 나고 말 것이다.

“아, 그래서 말인데, 봄베 좀 빌려주세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수혁의 모습에 강병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수로서 허락 못 해.”

강병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수혁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소방관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배가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은 저 불길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강병규의 계속되는 반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은 알겠지만, 시간이 없었다.

강병규를 설득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무전기를 들었다.

그러곤 전승철을 호출했다.

강병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약 수혁이 방금 한 말을 전승철에게 한다면?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연히 전승철은 불같이 화를 낼 것이고, 수혁의 사수인 자신은 더욱 큰 질책을 받을 게 뻔했다.

강병규는 급히 수혁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조금 늦었다.

[요구조자 발견했나?]

전승철의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제 근방에는 요구조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알았다. 이쪽도 보이지 않는군. 금방 탈출 지점으로 복귀하겠다.]

아직 수색 시간이 30분 정도 남긴 했지만,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체력적으로나 산소나.

“지금부터 저는 혼자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수혁의 말에 강병규가 눈을 질끈 감았다.

뒤이어 터져 나올 호통에 대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강병규가 우려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여기서 이유를 묻는다고? 혼내는 게 아니라?’

놀랍게도 전승철은 수혁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았다.

“이대로 아래쪽으로 가서 요구조자 수색을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잠시 동안 무전기에선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김수혁, 팀장님이 그걸 허락해 줄 리가 없…….”

[산소 잔량은 얼마나 남았지?]

강병규가 수혁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입을 떼는데, 전승철의 음성이 들렸다.

“길면 30분 정도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모자라네요.”

[알았다. 잠시 탈출 지점에서 대기하도록. 금방 가겠다.]

무전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수혁에게 욕을 하지도 않았고, 사수인 강병규를 질책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수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같이 수색하며 신뢰 관계를 쌓아 올린 강병규에게 미안했다.

지금 수혁이 한 행동은, 사수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행동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소방관이었다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

규율이 엄격한 특수 구조대에서는 더욱 그랬다.

“……죄송한 일을 한 건 알고 있네.”

강병규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전승철이 나선 이상, 자신이 수혁을 막을 명분은 없었다.

그저 전승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에서 몇 분이 더 흐르자, 전승철이 대원 한 명과 함께 탈출 지점에 도착했다.

“김수혁.”

전승철은 도착하자마자 곧장 수혁을 불렀다.

그러곤 자신이 매고 있던 봄베를 벗었다.

강병규의 눈이 커졌다.

지금 저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김수혁의 행동을 허락해 준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봄베를 넘겨줄 리가 없지 않은가?

강병규의 생각은 옳았다.

“두 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나?”

봄베의 무게는 10㎏이 넘는다.

이미 20㎏가량의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수혁이었으니, 저렇게 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수혁은 괜찮다며 대답했고, 전승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봄베를 넘겼다.

“더 필요한 건?”

“저기 대원님한테 화재 우선 진압 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넘겼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아래쪽에 그걸 좀 전해주십쇼.”

“알았다.”

전승철은 수혁을 말리기는커녕 그가 요구하는 것은 모두 들어줄 기세였다.

“티, 팀장님?”

본래부터도 팀워크를 중시하던 전승철이다.

백준하가 순직한 이후로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져, 단독 행동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갓 특수 구조대에 배치받은 수혁이 혼자 행동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강병규는 이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승철이 고개를 돌리며 불안한 표정의 강병규를 보곤 입을 열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전승철은 수혁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일서 구조 3팀처럼 완전한 신뢰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평범한 소방관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았다.

그리고 수혁이 저렇게 나서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나?”

“물론입니다.”

전승철이 묻자, 수혁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산불이 크게 일어나긴 했지만, 사실 수혁에게 해를 끼칠 정도의 현장은 아니었다.

산소가 문제였지만, 그것마저도 해결이 되었으니 이제 거리낄 게 없었다.

“네가 부탁한 건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감사합니다.”

요구조자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재를 진압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수혁은 전승철에게 그것을 맡기고는 그가 준 봄베를 어깨에 들쳐 멨다.

“그럼 밑에서 뵙겠습니다.”

“수시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수혁이 몸을 돌려 아래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30㎏이 넘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강병규가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맨몸으로 산불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겠다는 수혁이나, 그것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허락하는 전승철이나.

강병규가 보기엔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괜찮아야지.”

전승철의 얼굴에,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걱정이 내비쳤다.

그라고 수혁이 걱정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보내주는 것은, 그 걱정보다 신뢰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괜찮을 거다.”

둘의 시선은, 수혁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어디 보자…….’

몇 번이나 확인한 것이었지만, 이 근방에는 요구조자가 없었다.

하지만 불길이 넓게 퍼진 곳의 아래쪽에는, 요구조자로 의심되는 이들이 감지되었다.

‘세 군데인가?’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화재 진압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요구조자들일 확률이 커.’

위치는 총 세 곳, 사람은 열일곱 명이었다.

확실한 건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미니 맵’을 실행해 최단 경로를 설정한 뒤, 그것을 따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확실히 위쪽과는 느껴지는 열기가 차원이 달랐다.

도자기를 굽는 불가마 속에 들어오면 이런 느낌일까?

여름 내내 무성해진 나무들이 불에 타오르며, 주변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불길이 내뿜는 붉은 빛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주륵-

웬만해선 땀을 흘리지 않는 수혁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하필이면 눈 쪽으로 흘러 따끔거렸지만, 면체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지라 닦아낼 수도 없었다.

일반 화재 현장과는 달리 유독성을 띤 연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셔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움직이자.’

땀을 닦아내는 것을 포기한 수혁은 고개를 흔들며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그렇게 조금 더 이동하자, 마침내 거대한 불길이 수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서부턴 그냥 뚫고 가야 돼.’

‘미니 맵’으로 확인한 결과, 더는 우회할 수 있는 경로도 없었다.

여기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 가장 최단 경로였고,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단은 그냥 가자.’

‘실드’를 사용할지 말지 고민하던 수혁은 일단 맨몸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하루에 다섯 번밖에 쓰지 못하는 스킬이었으니,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만큼 아껴볼 생각이었다.

화르르륵-!

수혁이 들어가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불길이 덮쳐 오기 시작했다.

‘으윽!’

방화복 안에서 살이 익어가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화상에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화상을 입었다는 건, 그만큼 이 안의 열기가 살인적이라는 뜻이었다.

‘안 되겠다.’

조금 더 앞으로 이동하던 수혁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맨몸으로는 여기를 뚫고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실드.’

결국 수혁은 ‘실드’를 사용했다.

투명한 막이 수혁을 감싸는 것과 동시에 온몸이 타들어갈 것만 같았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것을 느낀 수혁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실드’의 효과는 무한정 이어지지 않는다.

고작해야 5분,

‘실드’가 사라지기 전에 여기만이라도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수혁은 한참 동안이나 나는 듯이 이동하며 수시로 ‘미니 맵’을 확인했다.

‘거의 다 왔다.’

불길을 끝나는 지점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150m 정도.

평지였다면 몇 초 만에 도달할 거리였지만, 산속인 데다 불길마저 진로를 방해하고 있어 시간이 꽤 걸렸다.

수혁의 시야에는 온통 붉은 불길만이 가득했다.

만약 ‘미니 맵’이 아니었다면, 길은커녕 여기가 어딘지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혁은 온통 불밖에 보이지 않는 산속을 계속해서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화악-!

거대한 불의 계곡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후우!”

밖으로 나온 수혁이 크게 숨을 내뱉었다.

미처 빠져나오기 전에 ‘실드’의 효과가 끝나 버리며, 30초가 넘는 시간 동안 불길에 그대로 노출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몰려오는 통증 때문에 바로 요구조자들을 향해 이동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회복Ⅱ’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따끔거리던 피부가 순식간에 진정이 되며 통증이 사라졌다.

“좋아.”

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상태를 확인한 수혁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큰 장애였던 불길을 뚫었으니, 이제부턴 요구조자를 수색해 구조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수혁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수혁입니다. 지금부터 요구조자 수색에 들어가겠습니다.”

수혁은 전승철이 당부한 대로 무전기를 들어 보고했다.

그러곤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다시 움직였다.

목표는 전방 50m 앞.

요구조자로 보이는 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금방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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