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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87화 (287/425)

레스큐 시스템 287화

고작 한 시간.

총 41명의 요구자를 구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중 32명을 수혁과 강병규 조가 찾아 구조했다.

만약 헬기가 왕복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한 시간보다 훨씬 더 빨랐을 것이다.

‘미친…….’

대원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눈동자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오직 전승철만이 그나마 담담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그가 수혁에게 특수 구조대로 오라는 부탁한 것은, 바로 이런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물론 아예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단하군.’

수혁의 능력이 평범한 소방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놀랄 정도였으니, 수혁이 얼마나 뛰어난 모습을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근방에선 이들이 마지막 요구조자입니다.”

수혁이 말했다.

더는 ‘미니 맵’에 감지되는 요구조자가 없었다.

이쯤에서 수색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도 무방했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수색 범위를 넓힌다.”

수혁을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수혁이 이제 요구조자는 없다고 말해봐야 그것을 납득할 리가 만무했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수혁은 전승철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였다.

산불 속에서 수색해야 하는 대원들이 지치기는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수색하는 척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는 저희한테 맡기십쇼.”

요구조자들을 헬기에 안전하게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산악 구조대원들이 전승철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전승철이 그들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자신의 부하들을 쳐다봤다.

“수색 범위가 넓어졌으니 수시로 보고해라.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으면 일단 빠진 뒤 지시를 기다리고.”

“알겠습니다.”

대원들은 전승철의 명령에 대답하고는 다시 주변으로 흩어졌다.

“팀장님.”

수혁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고 전승철을 불렀다.

“수색 한계 시간은 어느 정도입니까?”

구조대원들의 체력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이런 열기로 가득 찬 산속을 주구장창 돌아다닐 순 없었다.

수색을 종료할 시간을 명확하게 정해줘야만 했다.

전승철은 수혁의 말에 시계를 확인했다.

수색이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각.

잠시 고민하던 전승철이 대답했다.

“앞으로 한 시간 후. 그때까지 요구조자를 찾지 못하면 다시 이곳으로 집결한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적당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요구조자 수색을 너무 길게 해봐야 대원들만 더 지칠 뿐이었으니까.

“가죠.”

수혁이 강병규와 함께 몸을 돌리자, 전승철이 무전기를 들고 집결 시간을 전파했다.

“…이쪽은 아까 수색하지 않았어?”

수혁의 뒤를 따라 이동하던 강병규가 물었다.

주변의 지형이 익숙했던 것이다.

“맞아요.”

“그런데 또 수색하려고? 여기보단 다른 곳을 가는 게 더 낫지 않겠어?”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수혁은 의미 없는 요구조자 수색이 아닌, 다른 것을 확인하러 가고 있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강병규는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확인할 거라면……?”

“아까 위쪽에서 보니까 화재 진압이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수혁의 말에 강병규가 주위를 살펴봤다.

확실히 산불이 진압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작 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화재 진압은 몰라도, 아래쪽에서부터 수색을 시작한 구조대원들이 모습을 보일 때도 되었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선, 불길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때문에 구조대원들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화재가 더 심한 건가?”

“네. 쉽게 꺼질 불이 아니네요.”

수혁의 능력은 구조에 특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재 진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관련 스킬이나 능력은 없다 하더라도, 수혁에겐 이전 생에서의 10년이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쪽에서 현장을 확인하고 집중 진화해야 할 곳을 찾는다면 진압이 훨씬 수월해질 거예요.”

“그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지금도 소방 헬기가 날아다니며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중이었다.

굳이 수혁이 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그들이 훨씬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럴 시간에 요구조자를 수색하는 것이 훨씬 좋은 판단이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하지만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요구조자는 없어요.”

“……뭐?”

“이제 이 산에 요구조자는 없다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 근방에는 없었다.

아래쪽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있어서, 소방관과 요구조자를 나누어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

말을 하던 강병규가 입을 다물었다.

왠지 수혁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저 막연한 믿음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 수혁이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다.

마치 요구조자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찾아내는 모습.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요구조자가 있는 위치로 이동한 것을 생각하면,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강병규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찝찝하긴 해도 수혁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이쪽으로 가죠.”

수혁이 한쪽을 가리켰다.

산 정상 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허억, 허억-!”

강병규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수혁의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는데도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강병규는 앞서서 걷는 수혁의 등을 쳐다봤다.

자신과는 달리 호흡이 거칠어지기는커녕, 전혀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동네 뒷산 마실을 나온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강병규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아차린 수혁이 독려했다.

생각 같아선 혼자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조금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분가량 더 올라가자 나무들이 조금씩 사라지며, 가로막혀 있던 시야가 넓게 트이기 시작했다.

“다 왔어요.”

수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후우우.”

강병규는 일단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냥 맨몸으로 올라도 힘든 거리를, 20㎏이 넘는 장비를 매고 올라가려니 당연히 체력이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곳에 오르기 전, 한 시간 동안 산속을 헤집고 다녔으니 더욱 그러했다.

“잠깐만 쉬고 계세요.”

수혁은 얼굴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는 주변을 살폈다.

매캐한 냄새가 났지만,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음.”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수혁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짐작했던 것처럼 화재 진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었다.

처음 수혁이 헬기 위에서 봤던 것보다 화재 범위가 넓어졌다.

산 아래쪽에는 수많은 불빛이 보였다.

인근 소방서에서 지원 나온 펌프차들인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눈으로 확인 가능한 펌프차의 수만 무려 열 대였다.

시야에 가려진 것들과 다른 방향에 있는 것들까지 생각해 보면 최소한 20대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웬만한 산불은 쉽게 진화가 되어야 하는데.’

“많이 심각해?”

수혁의 표정을 본 강병규가 마스크를 벗으며 수혁에게 물었다.

“쉽게 꺼질 것 같지는 않네요.”

날이 저물었으니 소방 헬기도 쉽게 투입되지 못할 것이다.

수혁은 ‘생명감지Ⅲ’를 사용해 아래쪽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이 감지됐다.

‘어림잡아 백 명 이상.’

화재 진압대뿐만 아니라 의용 소방대도 투입된 것 같았다.

그들은 등짐 펌프를 매고 산속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있었다.

‘이런 방식이면 피해가 너무 크다.’

어느 화재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산불은 시간 싸움이었다.

화재를 진압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대로라면 내일 아침이 되어도 진화가 어려울지도 몰랐다.

“휘유.”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쪽을 살피던 강병규가 혀를 내둘렀다.

“이거 너무 심하잖아?”

강병규의 말 대로였다.

아래쪽 산등성이는 마치 불의 바다가 펼쳐진 것만 같았다.

어디가 가장 심하다고 콕 짚을 수도 없을 정도로 불길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래도 찾아봐야지.’

수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쪽을 자세히 관찰했다.

10년이 넘는 경험을 토대로 가장 우선되어야 할 진압 지점을 찾았다.

‘저기, 그리고 저기.’

정확하지는 않다.

이미 불길은 한두 군데 진압한다고 사그라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혁은 빠르게 화점을 찾아 ‘미니 맵’에 체크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이만큼의 정보라도 전해준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빠르게 진압이 가능해질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찾은 지점이 일곱 곳.

저 일곱 곳만 진압해도 어느 정도 진압이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려가죠.”

“벌써?”

“네. 어느 정도 확인했어요.”

“너 지도도 안 봤잖아.”

처음 강병규는 수혁이 아무런 말도 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화점을 찾고, 우선 진압 지점을 찾는 건 재능이나 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오로지 축적된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수혁은 임용된 지 고작해야 2년.

그런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같이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올라온 지 몇 분이나 되었다고 확인했다는 말인가?

강병규는 수혁이 허풍을 치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게 아니고선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때, 수혁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여기에 다 기억했어요. 그러니까 내려가면 돼요.”

그러곤 다시 마스크를 썼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죠.”

수혁은 강병규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잠깐!”

강병규가 허둥지둥 마스크를 쓰고는 그런 수혁의 뒤를 따랐다.

몇 분 쉬지도 못해 아직 힘이 들었지만, 그나마 내리막길이라 조금은 수월했다.

‘머릿속에 기억했다는 건 뭐야? 그걸 다 외웠다고?’

말도 안 된다.

화재로 인한 빛 덕분에 주변이 밝다고는 하지만, 그저 눈으로 몇 번 훑어본 것만으로 정확한 지형을 확인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고.

강병규는 내려가며 몇 번이나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탈출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했다.

“지도 좀 주세요!”

수혁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산악 구조대원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나타난 수혁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대원이 어리둥절해 하며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그것을 받아 든 수혁은 바닥에 펼쳐 놓은 뒤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겁니까?”

산악 구조대원이 강병규에게 물었다.

“글쎄요.”

그는 수혁이 표시하는 곳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저게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니 맵’을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곱 군데의 지점을 표시한 수혁이 지도를 산악 구조대원에게 넘겼다.

그러곤 말했다.

“여기서 철수하면 그 지도를 아래쪽 화재 진압대장에게 넘겨주세요. 우선 진압 지점이니까 꼭 전해주셔야 해요.”

“아, 알겠습니다.”

대원은 수혁의 단호한 음성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직접 전해주면 되지 않아?”

강병규가 말하자, 수혁이 그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저는 여기서 바로 아래로 내려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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