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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85화 (285/425)

레스큐 시스템 285화

‘짜증나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수혁은 연신 짜증을 냈다.

강현성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이전 생에서도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던가?

하지만 그때는 기회조차 없었다.

수혁에게 소방청장을 만날 기회 따위는 주어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가능했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쏟아내고 나자,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강현성의 태도.

만약 수혁이 조건을 걸지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 이 일을 덮을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게 너무도 화가 났다.

“썩을 대로 썩은 거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한 번 확인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소방관들의 명예로운 이름에, 그런 놈들이 먹칠하는 꼴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수혁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속으로 삭이며 차를 몰다 안 되겠는지 휴게소로 들어갔다.

이런 기분으로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에서 내려 화장실을 잠시 들른 뒤,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다가 쭉 들이켰다.

시원한 커피가 들어가자 정신이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후우.”

이왕 휴게소에 들어온 것 좀 쉬다 가기로 결정한 수혁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 앉았다.

“사람 많네.”

평일 오후였음에도, 여행을 가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슬슬 가을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날 시즌인가?”

조금씩 산이 옷을 바꿔 입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이르긴 해도 여행을 가기엔 좋은 날씨였다.

수혁은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올해는 산불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수혁은 생각하다 픽- 하고 웃었다.

누가 소방관 아니랄까 봐, 가을 하니 떠오르는 게 산불이었다.

가을, 겨울 시즌에는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

그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매년 일어나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수혁이 이번 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에도 조연산에서 커다란 산불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에 출동을 하지 못했지만, 작년에도 산불이 발생하기는 했었다.

다행히 그리 크지 않아 금방 진압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뭐, 올해엔 그리 큰 산불이 일어난 기억이 없으니 괜찮겠지.’

수혁은 기억을 더듬다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현장인들 힘들지 않겠냐마는, 산불은 특히나 힘든 현장이었다. 장비를 매고 산을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하니 당연했다.

수혁이야 괜찮겠지만, 다른 대원들은 산불 현장에 한 번 출동하면 몸무게가 몇 ㎏씩 줄어들 정도였다.

다행히 올해는 그런 산불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안심해도 좋을 것 같았다.

수혁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 커피를 쪽쪽 빨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액정에는 ‘전 팀장’이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여보세요.”

[김수혁, 볼일은 끝났나?]

“네, 조금 전에 끝나서 지금 올라가고 있는데, 왜요?”

[얼마나 걸리지?]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부터 말해.]

잠시 계산을 해봤다.

“차가 안 막히면 30분 안에 도착할 것 같은데…….”

[좋아. 그럼 올라와서 집에 가지 말고 바로 본부로 오도록 해.]

“아니, 이렇게 갑자기요? 퇴근 안 하시고?”

[지원 요청이 왔다. 그런데 네가 필요해.]

수혁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전승철이 이렇게 요청할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무슨 일입니까?”

[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수혁의 눈이 커졌다.

올해는 그리 큰 산불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안심한 것이 방금이다.

그런데 대형 산불이라니?

“조연산에서 산불이 일어났다고요?”

수혁이 다급하게 물었다.

또 미래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전승철의 대답은 수혁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안양 수리산이다.]

“저 왔습니다!”

수혁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특수 구조대 본부에 도착했다.

산불이란 말에 미친 듯이 밟아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카메라에 몇 번 찍혀 딱지가 날아오겠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마침 대원들이 준비를 마치고 출동하려 하고 있었다.

“네 장비는 내가 실어놨으니까, 일단 타라.”

전승철은 지체하지 않고 수혁을 구조차에 태웠다.

‘나는 바본가?’

구조차에 탑승한 수혁은 방화복을 착용하고 장비 점검을 하며 속으로 자책했다.

올해 조연산을 비롯한 근처의 산에선 산불이 일어나질 않는다.

그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산은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수혁은 신일서 소속이 아닌 특수 구조대 소속.

이 도시뿐만 아니라, 경기도 일대가 전부 관할 지역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다른 지역들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특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걸 생각 못 했다니.’

한심했다.

“안양 일대의 소방서들에서 전부 지원 나올 정도로 산불의 규모가 크다. 요구조자의 수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산불에선 요구조자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등산객의 수를 일일이 셀 수 없었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화재의 진압 자체도 펌프차의 한계로 인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조는 더욱 힘들다.

불길을 뚫고 어디에,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요구조자들을 구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래서부터 훑습니까?”

대원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니, 우리는 위쪽에서 내려온다.”

‘위쪽?’

수혁은 전승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위에서부터 내려온단 말인가?

헬기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아!”

헬기가 있었다.

“김수혁, 할 말 있나?”

“아, 아닙니다.”

자신의 탄식에 전승철이 쳐다보자, 수혁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헬기를 타고 정상에서 내린다.”

수혁의 예상대로였다.

‘헬기라니…….’

이전 생에서는 구조용 헬기의 근처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저 멀리서 날아다니는 것을 구경만 몇 번 해봤을 뿐이었다.

그러니 곧장 헬기를 떠올리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혁이 속으로 허허, 웃었다.

“행동은 2인 1조. 무전기는 항시 대기시켜놓고, 뭔가를 발견하면 곧장 연락을 취하도록.”

전승철은 두 명씩 세 개조를 만들었다.

수혁과 같은 조가 된 대원은 사수인 강병규였다.

대원들을 실은 구조차는 쏜살같이 달려, 헬기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타타타타-!

헬기 로터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빨리 움직여!”

전승철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야만 음성이 전달되었다.

대원들은 일반 헬기보다 훨씬 커다란 구조 헬기에 빠르게 장비들을 옮겨 싣고는 올라탔다.

귀를 덮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나서야 조금 편해졌다.

“준비됐으면 바로 출발해 주시면 됩니다.”

대원들이 모두 탑승해 안전벨트까지 채우는 것을 본 전승철이 헤드셋의 마이크를 통해 말하자, 조종사는 수혁이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내뱉더니 그대로 이륙했다.

비행기와는 다른 부유감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잡이를 붙잡았다.

‘이거 좀 무섭네.’

하지만 다른 대원들은 익숙한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괜히 머쓱해진 수혁이 슬그머니 손잡이를 놓았다.

확실히 헬기는 차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했다.

이륙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저 멀리서 붉게 타오르는 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단풍일 리가 없지.’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기에 산을 뒤덮고 있는 불길이 눈에 확 띄었다.

“난리 났네.”

누군가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산불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시간이 꽤 흘렀는지 너무 광범위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 정도의 화재라면 조연산 화재 때보다도 훨씬 큰 것 같았다.

‘애초에 산 크기부터 차이가 나니까.’

조연산이 그쪽 근방에선 가장 큰 산이긴 했지만, 수리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산의 크기가 컸으니, 화재의 규모도 달랐다.

“힘들겠는데요.”

강병규가 전승철을 향해 말했다.

화재 진압도 힘들겠지만, 구조는 더욱 힘들 것 같았다.

불길이 아래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목을 모조리 뒤덮고 있었다.

힘들게 요구조자들을 찾아낸다고 해도, 탈출하기가 힘들었다.

“헬기로 이송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재가 진압되기 전에는 걸어서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화재 진압 자체가 단시간에 힘들었으니, 결국은 헬기를 이용해 탈출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산악 구조대와 연계하기로 했다. 우리는 수색하고, 탈출은 산악 구조대가 헬기를 이용해 진행한다.”

전승철은 이미 계획을 모두 세워둔 것 같았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승철은 뛰어난 능력의 소방관이었다. 특수 구조대 팀장의 이름에 어울렸다.

대원들도 납득했는지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질문이 없는 듯하자 전승철이 지도를 꺼내 각자가 맡을 구역을 지정해 주었다.

수혁과 강병규가 맡은 지역은 남동쪽.

화재가 가장 심각해 보이는 방향이었다.

전승철은 수혁의 능력을 믿고 그곳을 맡긴 것이다.

다른 대원들이 맡는 것보단 자신이 맡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수혁은 전승철의 계획에 동의했다.

이곳에선 수혁이 신입이라고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혁의 명성보다는, 전승철이 믿으니 자신들도 믿는다는 분위기였다.

“도착 2분 전.”

기장의 말에 전승철이 지도를 집어넣고는 입을 열었다.

“레펠 준비.”

강병규가 그 말에 로프를 들어 지지대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헬기가 착륙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목적지에는 그럴 만한 장소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만 했다.

헬기의 문이 열리자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밀어닥쳤다. 어찌나 뜨거운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순서대로 뛰어!”

전승철의 말에 미리 지정한 순서대로 로프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뜨거운 공기 때문일까?

헬기가 계속해서 휘청거렸다.

하지만 대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로프를 타고 지상에 내려섰다.

수혁과 전승철이 마지막으로 땅에 내려서자, 헬기는 일단 돌아갔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 복귀했다가, 후에 요구조자를 탈출시킬 때 다시 출동할 것이다.

“후욱, 후욱.”

마스크 사이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수혁은 타오르는 듯한 열기를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해가 졌음에도 불길로 인해 대낮처럼 밝았다.

불길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살갗을 익힐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전승철 역시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대원들을 쳐다봤다.

“수색 개시해.”

수혁이 달렸다.

그 뒤를 강병규가 곧장 따라붙었다.

수혁은 자신이 맡은 지역으로 향하며 ‘생명감지Ⅲ’를 사용했다.

‘요구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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