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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82화 (282/425)

레스큐 시스템 282화

‘생각보다 얼마 안 걸렸네.’

수혁은 내비게이션의 남은 거리를 보며 생각했다.

처음 와보는 세종시.

길이 익숙지도 않았고 왠지 굉장히 멀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길이 잘 뚫려서인지 한 시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두 시간은 넘게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지.”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에 수혁은 기분이 좋았다.

“저긴가?”

저 멀리 정부세종2청사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소방 방재청이 있는 건물이었다.

수혁이 그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주차장을 들어가려고 하자 검문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수혁은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보자, 어디지.”

수혁이 1층 로비에서 두리번거리며 소방청의 위치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김수혁 씨?”

“응?”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자, 공무원처럼 보이는 이십대 청년이 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수혁 씨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혁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 것 같은…….

‘에이, 설마.’

분명 수혁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무려 미국의 영웅이었으니까.

시간이 조금 흐르긴 했지만, 수혁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얼마 전 미국에서 한국 소방관들에게 어마어마한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수혁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혁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에서 흘러나올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이 연예인인 것은 아니다.

공무원이, 그것도 남자 공무원이 자신을 저렇게 쳐다볼 이유가 없었다.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수혁이 예상은 틀렸다.

정말로 그는 수혁의 팬이라도 된 것처럼 격하게 반겨주었다.

“아, 가, 감사합니다.”

수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수혁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저…….”

수혁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궁금한 게 있으세요?”

“누가 기다리고 계신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공문에는 수혁을 부른 이유도, 누가 불렀는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오늘 9시까지 오라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소방청으로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다.

“아, 못 들으셨습니까?”

“네. 그저 오라고만 들어서…….”

수혁의 대답에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조그맣게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하며 속삭이는 것이 들렸지만, 수혁은 못 들은 척했다.

“음.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인 몇 분 계신데. 일단 김수혁 씨를 부른 분은 소방청장님이십니다.”

“……네?”

수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누구라고?

“소방청장님이요.”

수혁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소방청장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소방청장은 단순한 공무원이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며, 계급은 소방공무원의 최상위 계급인 소방총감이다.

그리고 무려 장, 차관급의 대우를 받는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왜 부른단 말인가?

수혁의 얼굴에 공무원이 살짝 웃었다.

“놀라셨나 보네요.”

“아, 네. 조금 놀랍네요.”

“올라가시면 더 놀랄 일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더 놀랄 게 뭐가 있다고.’

수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될 일이었으니,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둘은 5층으로 향했다.

“음? 소방청은…….”

“따로 회의실로 모시라고 해서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수혁은 공무원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 혼자서요?”

“제가 지시받은 건 여기까지라서요. 그럼 이만.”

그는 공손하게 수혁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자리를 피했다.

악수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지만, 수혁은 애써 그것을 못 본 척하며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수혁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안쪽에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바글바글했던 것이다.

많아 봐야 다섯 명 안팎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열 명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외국인?’

회의실 안에는 생각지도 못한 외국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수혁에게도 낯이 익은 사람도 앉아 있었다.

“톰?”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급히 다물었다.

높으신 양반들이 모여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앉아 있는 톰은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수혁을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수혁 씨!”

그 소리를 들은 수혁이 속으로 ‘끄응’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반가운 얼굴인 톰을 모른 척할 순 없었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그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체 톰이 여기엔 왜 있는 거지?’

수혁이 의아해하는데, 누군가 손짓을 했다.

“어서 오게. 나는 강현성이라고 하네.”

‘청장!’

그의 정체는 바로 소방청장 강현성이었다.

수혁은 순간적으로 거수경례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복을 입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 거수경례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 김수혁입니다.”

수혁이 살짝 긴장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알고 있다네.”

강현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 와서 앉지.”

수혁이 쭈뼛거리며 강현성 옆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주인공이 왔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군요.”

강현성이 영어로 운을 떼자, 톰이 앉아 있는 외국인들도 동의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번 지원 품목에 대해…….”

대화를 듣고 있던 수혁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미국의 지원에 대한 실무회의.

왜 자신이 여기에 불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했다.

회의가 지속되는 동안 수혁은 멍하니 앉아 듣기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늘긴 했지만, 이런 회의에 참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말로 해도 태반은 못 알아들을 단어들이 오가는 중이었는데, 영어 회의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회의실 분위기는 훈훈했다.

한국 쪽에선 대가도 없이 엄청난 지원을 해준다는데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에서도 한국에 호의적인 태도였다.

덕분에 회의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웃지 않는 사람은 수혁이 유일했다.

미국식 조크를 알아들을 정도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무슨 자막 없이 영화 보는 것 같네.’

그래도 수혁은 열심히 알아듣는 척을 하며 사람들을 살폈다.

톰을 제외한 모두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쪽은 대충 정부 관계자들과 소방청의 고위 공무원들이라는 건 알겠지만, 미국 쪽은 짐작도 가질 않았다.

그 와중에도 톰은 수혁을 보며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조금 쉬었다 하실까요?”

회의가 길어지자 강현성이 회의를 잠시 중지했다.

“그렇게 하죠.”

미국 쪽 실무대표도 마침 쉬고 싶었는데 잘됐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수혁 소방교.”

수혁도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강현성이 불렀다.

“예.”

“잠시 나와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나?”

“아, 물론입니다.”

상대는 소방청장이다.

수혁이 소방관으로 있는 이상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톰이 수혁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아, 톰.”

“죄송합니다, 청장님. 혹시 가능하다면 제가 먼저 수혁 씨와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수혁 씨에게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톰은 강현성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가 뉴욕 소방서의 구조대장이긴 하지만, 강현성은 대한민국 소방 조직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현성은 톰의 정중한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미국에서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먼저 이야기를 나누시죠.”

강현성은 괜찮다는 듯 수혁을 보내주었다.

괜히 수혁만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 들어 안절부절못했다.

“밖으로 나갑시다.”

톰은 그런 수혁을 데리고 회의실 밖을 나갔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복도 한구석에 마련된 벤치로 가서 앉은 톰이 물었다.

“안부를 물을 정도로 오래되진 않은 것 같은데요?”

테러가 일어난 지 기껏해야 한 달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다.

체감상으로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질 않아 이제야 하는군요. 그날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톰은 수혁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아, 아니요. 그러실 필요는…….”

수혁이 당황하며 톰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톰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테러로 인한 피해는 컸다.

하지만 만약 수혁이 알다바위의 밴을 막지 못했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가 일어났을 것이다.

수혁은 겸손을 떨고 있었지만, 톰은 그가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믿고 있었다.

언론에서 떠드는 영웅이란 칭호가 절대로 과하지 않았다.

수혁은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하아, 일어나세요.”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톰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 해도 조금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수혁의 기분을 알아차린 톰이 허리를 펴며 미소를 지었다.

짐 머레이의 부탁을 받아들여 한국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수혁과 만나 직접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수혁이 물었다.

실무회의라는 것은 알지만, 이건 고작 뉴욕 소방서의 구조대장이 나설 만한 일이 아니었다.

“짐 머레이가 부탁하더군요.”

“짐이?”

수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저에게 미국 측 실무자가 되어 수혁 씨가 원하는 것을 직접 듣고, 지원해 주라는 뜻이었습니다.”

“지원은 충분하지 않던가요?”

대충 듣기만 했는데도 미국에서 준비한 지원 품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 이상 어떤 것을 바란단 말인가?

“부담은 가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에선 수혁 씨가 원하는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톰은 미국의 영웅, 수혁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설사 수혁이 비행기를 달라고 해도 두말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 같은 기세였다.

그것을 본 수혁이 하하,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생각나는 것이 없네요, 지금도 충분해서.”

“한번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아직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수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회의는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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