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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79화 (279/425)

레스큐 시스템 279화

“제가 말입니까?”

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렇다네.”

“아니, 잠시만.”

태연자약하게 말을 하는 짐 머레이의 태도에 톰은 당황했다.

방금 전에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제대로 들은 게 맞은 것 같았다.

“그 일을 왜 제가……?”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 가는 것보단, 그래도 안면이 있는 자네가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짐 머레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제가 그날 수혁 씨와 같이 다니긴 했습니다만, 그 정도로 한국까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

톰은 짐 머레이에게 한국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이번에 미국에서 한국에 소방관 장비들을 지원해 주는 사안에 대한 책임자 중 한 명으로써.

“다른 이유도 많다네. 자네는 뉴욕 소방관의 구조대장이니 장비들에 대해 그만큼 많이 알 테고.”

이번엔 반론을 내세우지 못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수혁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톰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사실 톰은 그날 이후로 수혁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 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감사를 표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날은 사람들을 구하느라 그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정신없이 사람들을 구하고 현장을 정리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따로 찾아가 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수혁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그의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어 몰려든 인파들로 인산인해였다.

호텔에서도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기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이 흐르다, 수혁은 귀국을 해버렸고.

그래서 결국 톰은 테러를 막아주어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아니, 이건 다 핑계지.’

사실 만나고자 했으면 어떻게 해서든 만났을 것이다.

기자나 사람들이 많든, 호텔이 막든.

짐 머레이에게 부탁 한번 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뉴욕 소방서를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부탁하면, 짐 머레이가 들어주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만나지 못한 것은 톰이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테러범을 붙잡고 폭발을 막긴 했지만, 완벽하게 막아낸 것은 아니었다.

수십 명이 죽었고, 수백 명이 다쳤다.

톰은 수혁이 자신과 같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봤으니까.

그날의 자신처럼 말이다.

그래서 수혁을 보기가 두려웠다.

상처받은 수혁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국으로 가라니?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톰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을 만나서 감사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두렵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회를 마다하고 싶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짐 머레이가 미소 지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네.”

톰은 자리에서 일어나 짐 머레이에게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흐음.”

혼자 남은 짐 머레이가 턱을 쓰다듬었다.

“이제 두 명을 모았군.”

무슨 말일까?

짐 머레이는 만족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제 몇 명만 더 모으면 되겠어.”

***

“제수씨!”

김강식이 수혁과 최은송을 발견하곤 손을 들며 반갑게 소리쳤다.

“저는 안 보이세요?”

왜 같이 왔는데 최은송에게만 인사한단 말인가?

“넌 매일 보잖냐.”

김강식이 흐흐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럴 날도 얼마 안 남았거든요? 아니, 애초에 이 자리 주인공은 저 아닙니까?”

오늘은 수혁의 송별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특구 가면 이제 앞으로 안 보겠다, 이 말이냐?”

김강식이 짐짓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나 제수씨랑 인사 좀 하게 빠져 있어.”

수혁은 결국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어요?”

“신경써 주신 덕분에요.”

최은송이 김강식을 보며 풋- 웃었다.

“거기서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김강식은 괜히 수혁을 흘깃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시간 보내고 왔어요.”

“쯧, 다음부턴 저놈이랑 같이 여행 다니지 마요. 어딜 가기만 하면 사고가 터지니.”

“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 말이 틀렸냐?”

이번에도 수혁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분들은요?”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다른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 안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잠깐 담배 피러 나왔던 거라.”

김강식이 하하 웃으며 수혁과 최은송을 식당 안으로 안내했다.

꽤나 고급스러운 소고깃집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고깃집답지 않게 꽤나 조용했다.

“분위기 좋네요. 근데 여기 비싸지 않아요?”

수혁이 묻자, 김강식이 웃었다.

“우리에겐 서장님 카드가 있잖냐.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우리가 비싼 소고기를 먹겠어.”

수혁이 픽- 하고 웃었다.

서장이 쏜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 왔냐? 제수씨 왔어요?”

한쪽에 있는 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 있던 대원들이 아는 척을 했다.

“아직 안 드시고 계셨어요?”

밑반찬만 세팅되어 있을 뿐, 고기는 불판 위에도 안 올라간 상태였다.

“주인공이 아직 안 왔는데, 우리끼리 시작할 순 없지.”

박정우가 일어나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했다.

“자자, 주인공도 왔으니까 이제 먹자.”

박상태가 종업원을 부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기들이 입장을 시작했다.

“오늘 마음껏 먹어라.”

“먹고 죽어도 됩니까?”

“그렇다고 뒈질 정도로 먹진 말고. 서장님이 불쌍하니까.”

박상태의 말에 와하하- 하고 웃음이 터졌다.

확실히 서장이 자신들보단 많은 돈을 벌긴 했지만, 그래 봐야 공무원이었다.

뒷돈을 챙길 깜냥이 있는 양반도 아니었으니, 너무 많이 먹었다간 서장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를 것이다.

“1차는 적당히 먹고, 2차는 내가 돼지 쏠 테니까 그때 많이 먹어라.”

박상태는 팀장의 위대함을 과시했다.

물론 오늘 집에 가면 호기의 대가로 형수님에게 꽤나 바가지를 긁힐 게 뻔했지만 말이다.

“저놈 처음 들어왔을 땐, 웬 또라이가 왔나 싶었지.”

송별회가 시작되자 수혁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첫날이요?”

“그래, 첫날. 쇼핑몰 화재였지.”

박상태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것인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매뉴얼이고 뭐고, 미친놈처럼 널뛰는 걸 보자니 똥 밟았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수혁이 쓰게 웃었다.

“그런데 웃긴 건, 저놈 덕분에 요구조자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거야.”

그때부터 수혁은 박상태에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다음 날도 가관이었잖아요.”

박정우가 소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렇지! 그게 더 대박이었어.”

이재한이 박정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뭐였지?”

김강식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고, 박정우가 입을 열었다.

“저놈 비번 날 스파이더맨 흉내 냈잖아요.”

“음…….”

수혁이 침음성을 흘렸다.

“아, 그거!”

김강식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 그 자체.”

대원들이 폭소했다.

수혁은 괜히 최은송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저씨들 진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사자와 와이프를 앞에 두고 미친놈이니 또라이니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지만 대원들은 수혁의 생각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옛 추억을 꺼내 들었다.

조연산 산불에서 김강식과 함께 매몰되었던 일.

신일역 붕괴 사고로 며칠 만에 간신히 구조되었던 일.

그리고 전통 시장 화재…….

그날의 현장을 떠올리자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졌다.

그때 수혁은 정말로 죽을 뻔했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술과 고기를 먹고 마시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었다.

“저 처음 만난 날도 비슷했어요.”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최은송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입을 열었다.

“맞아. 그날 궁금했어.”

“무슨 일 있었다고 했죠?”

대원들의 폭풍 같은 질문에 최은송은 웃으며 그날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첫 만남에 맨몸으로 폭주하는 트럭에 뛰어들었다는 말에 대원들이 수혁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동자에서 ‘역시 미친놈이 맞구나’ 하는 자막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푸켓에 놀러 갔을 때도 그랬어요.”

최은송은 신나게 수혁이 한 일을 떠들어댔다.

고자질이라기보단, 마치 자신의 남편을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혁은 항상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에, 대원들은 최은송의 말에 집중했다.

물론 최은송도 그날의 일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수혁은 홀로 나와 사람들을 구하러 다녔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살을 붙여 이야기하자 대원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괴물 같은 놈이야.”

박상태가 소주 한 잔을 들이켜며 말했다.

괴물.

그것 말고는 수혁을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아, 코난도 있었지.’

박상태는 속으로 웃으며 다시 잔에 소주를 채웠다.

“그렇게 사고만 치던 놈이 특구에 간다니.”

“그러게요.”

생각해 보면 수혁이 출동에 나서서 요구조자를 구하지 못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희생자가 발생한 것도 산불이나 신일역 붕괴 같은, 광범위한 재난 현장이 전부였다.

수혁이 직접 나서서 구조한 현장에선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닌 소방관이라 한들, 저 정도의 구조율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수혁은 해냈다.

경이롭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다시 상기한 대원들이 수혁을 새삼스레 쳐다봤다.

수혁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 3팀의 대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욱 수혁과 헤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이제 특구로 가니, 그쪽 놈들만 노났네요.”

“아니지. 그 반대지. 이제 그놈들도 골치깨나 썩을 걸?”

이재한과 김강식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농담하는 그들의 음성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농담으로 가리려 했지만, 그게 잘되진 않는 듯했다.

“잔 들어.”

박상태가 소주잔을 들었다.

그러자 대원들이 따라서 잔을 들었다.

수혁과 최은송도 마찬가지.

“그동안 수고 많았다.”

박상태는 그 한마디로 수혁을 송별했다.

“거기 가서도 잘해라.”

“여기서처럼만 해.”

“넌 거기서도 잘할 거다.”

“여행 다니는 건 좀 줄이는 게 좋을 거 같고.”

박정우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수혁을 위하여!”

“위하여!”

박상태의 선창과 함께 다 같이 술을 들이켰다.

알싸한 알코올 향과 함께 수혁은 다시금 깨달았다.

이제 저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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