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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77화 (277/425)

레스큐 시스템 277화

“아이고, 힘들다.”

이재한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얼른 들어가서 좀 씻어야겠네요. 찝찝해 죽겠네.”

구조 3팀은 강아지 몇 마리가 하천에 빠졌다는 신고에 출동을 나갔다 복귀하는 중이었다.

그리 깨끗한 물은 아니었는지라, 강아지들을 구하러 물속에 들어간 이재한과 박정우는 몸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에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할까요?”

수혁이 박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안에는 방금 구조된 강아지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 그거 처음 신고하신 분이 데리고 가신다더라. 일단 서에 데리고 가서 보호하고 있으면 퇴근하고 오신대.”

“그래요?”

동물 구조 출동은 생각보다 잦은 편이었다.

고양이 구조가 가장 많았고, 강아지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그렇게 구조된 동물들을 모두 대원들이 데리고 가서 키울 순 없었다.

치즈 한 마리를 키우는 것 정도가 한계였던 것이다.

“키운다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유기견 보호 센터에 넘겨야 했을 테니까.”

그곳의 시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직접 입양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휴, 이놈들. 꼬질꼬질한 거 봐라.”

강아지들은 털이 흠뻑 젖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수혁은 그 녀석들을 위해 한쪽 구석에 있는 담요를 꺼내 덮어주었다.

“뉴스 떴다.”

박스 안에서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던 수혁은, 갑작스런 박상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뉴스요?”

“여기. 이거 한번 봐라.”

박상태가 자신이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수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어? 시작됐나 보네요.”

박상태가 말한 뉴스는 바로 경찰에서 소방 점검 부실사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하나 방재 산업이 거기죠?”

왠지 익숙한 이름의 회사였다.

“그래. 전에 본 강선우 새끼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지.”

박상태가 이를 갈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직 소방관이 사람들의 안전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다는 사실에 화가 잔뜩 났다.

“그 사람 잡혔네요.”

“잡혀도 싸지. 그동안 해먹은 돈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김강식이 혀를 찼다.

“아무튼 그 사람이 잡혔으면, 다른 회사들도 조만간 모두 해결되겠네요.”

강선우와 같은 짓거리를 한 회사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신일서의 관할 구역 내에서만 세 곳.

다른 서들의 관할 구역을 맡고 있는 회사들까지 합친다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물론 그 모든 회사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놈들 뒤를 봐주고 있던 새끼들도 다 잡혀야 할 텐데 말이지.”

그건 아직 장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죠.”

수혁이 씁쓸하게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구조차가 신일서에 도착했다.

“장비들 정리하고, 재한이랑 정우는 일단 먼저 씻어라.”

“알겠습니다.”

“아, 씻는 김에 이 녀석들도 좀 씻기고.”

박상태가 박스에 있는 강아지들을 가리켰다.

“물론이죠.”

동물을 좋아하는 박정우가 우쭈쭈 하며 강아지들을 안아 들었다.

그러곤 이재한과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오늘도 끝나가는구나.”

정리를 대충 끝낸 김강식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수혁도 슬쩍 미소를 지었다.

“너 송별회가 언제라고 했지?”

“내일모레요.”

“시간 겁나게 빠르네.”

어느새 수혁이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 가면 허전해서 어떡하냐.”

김강식의 얼굴에 섭섭함이 떠올랐다.

특히나 수혁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특수 구조대로 이동하는 것을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가끔 보면 되죠.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퍽이나. 그게 되겠냐?”

특수 구조대의 업무량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관할 구역을 가리지 않고 조금 큰 현장에는 무조건 출동하는 데다, 경기청 소속이라 지원 요청이 오면 도내 어디든 출동한다.

신일서도 바쁘긴 했지만, 일의 강도와 양으로 따지자면 특수 구조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서로 시간을 내서 만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 자주 낼게요. 체력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너무 자주는 말고. 가끔 한 번씩 놀러와.”

“그럴게요.”

수혁은 웃으며 김강식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자신의 책상에 앉은 수혁이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여기서 일할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10일 후면 특수 구조대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이런저런 절차도 있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일서에 출근하는 날은 8일에 불과했다.

‘2년…….’

이전 생까지 합치면 거의 13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함께해 온 공간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물론 중간중간 신일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원 형식이었다.

지금은 아예 떠나는 것이었으니, 마음이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하냐?”

일지를 쓰고 있던 박상태가 고개를 들다 수혁의 표정을 보곤 물었다.

“그냥요. 이제 여기 올 날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요.”

“누가 보면 한 10년은 일한 줄 알겠네.”

“그러게요.”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쿡쿡 웃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아련한 표정 짓지 말고, 가서 커피나 몇 잔 뽑아와. 달달한 걸로.”

“돈은요?”

“인마, 너도 한 번은 사야 되지 않겠냐? 무슨 맨날 얻어먹기만 하려고 해?”

박상태가 핀잔을 주자, 수혁이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사무실 문을 여는데,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수혁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김수혁 씨?”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누구세요?”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을 아는 척하자 수혁은 남자의 정체를 물었다.

“‘그것도 알고 싶다’ 취재팀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그러니까, 이전에 소방 점검을 나갔을 때도 같은 걸 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알’ 취재팀에서 나왔다는 남자는 조연출로, 자신을 김주현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왜 시정이 안 된 겁니까?”

김주현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물었다.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일 것이다.

애초에 소방 점검은 그런 것을 고치기 위해 하는 것이었으니까.

수혁이 슬쩍 시선을 돌려 박상태를 쳐다봤다.

어디까지 얘기를 해도 되겠냐는 뜻이었다.

박상태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다 말해.’

입 모양을 벙긋거리며 하는 대답을 본 수혁이 다시 김주현을 쳐다봤다.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박상태에게 허락까지 떨어졌으니, 속 시원히 모든 것을 까발릴 생각이었다.

“문제라면……?”

“위에서 압력이 들어왔거든요.”

“압력 말입니까?”

수혁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김주현은 그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사항을 모두 눈치챘다.

하지만 짐작만으로 촬영할 순 없었기에, 조금 더 디테일한 대답을 원했다.

그리고 수혁은 그의 뜻대로 해주었다.

10분가량의 설명이 이어지고, 그것을 모두 들은 김주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알’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소속 취재팀에는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들이 많았다.

김주현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이…….”

얼마나 분노한 것인지 그의 음성은 살짝 떨려오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 수를 쓰신 거였군요.”

“그런 수라뇨?”

수혁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자, 김주현이 살짝 미소 지었다.

“기석 선배한테 들었습니다.”

‘타인의 삶’을 제작했던 이기석 PD를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 촬영을 하게 된 건 ‘익명의 제보’ 때문이었으니까.

“제보자의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하다고 하더군요.”

김주현은 말을 하며 박상태를 쳐다봤다.

그러자 박상태가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집실에 앉아서 편집하다 보면, 같은 사람 목소리를 수십, 수백 번씩 듣다 보니……. 그런 쪽에 눈치는 빠르거든요.”

수혁이 이마를 짚었다.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공익을 위해 노력해 주셨으니까요.”

김주현은 웃으며 말을 했다.

“발뺌을 해도 소용은 없을 것 같네요.”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이해했습니다. 단순히 몇몇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김주현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몇 번 두들겼다.

그러곤 살짝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경찰 쪽에서 이상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했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수혁이 물었다.

“오늘부터 그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건 아시죠?”

“좀 전에 들었습니다.”

“오늘 소환된 회사의 사장들 중 한 명이 고위 공직자들 몇 명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받아 챙긴 뒷돈의 일부를 상납하면서 도움을 받았다는데, 문제는 경찰에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역시 수혁이 생각했던 대로 위쪽 선까지 처벌하기엔 무리였던 것 같았다.

“일단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었는데, 수혁 씨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입니까?”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 이제 파야죠. 경찰이 수사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알아내는 수밖에요.”

‘그알’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건을 파헤치며, 온갖 비리와 사회 문제를 고발한 경험이 있었다.

만약 이번에도 그렇게 알아낸다면, 경찰에서도 마냥 무시할 순 없을 게 분명했다.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상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람들의 안전을 개똥처럼 생각하는 놈들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선, 뭐든지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김주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실 텐데 괜히 귀찮게 해드릴 필요는 없죠. 이런 쪽은 저희가 전문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래도 혹시 도울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십쇼.”

“물론입니다.”

김주현은 그 후로도 수혁과 박상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여러분께는 절대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수혁과 박상태는 내부 고발자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공무원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로 한번 찍히면 생활이 고달파질 수도 있었다.

김주현은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혁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몰라도 박상태에겐 꽤나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을 미연에 방지해 주겠다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끔 연락드리겠습니다. 진행 사항도 알려 드리고, 궁금한 것들도 물어볼 겸.”

“그렇게 하시죠.”

김주현은 다시 한 번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제대로 엿 먹일 수 있겠네요.”

“쌤통이다.”

수혁과 박상태가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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