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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75화 (275/425)

레스큐 시스템 275화

총 20일간의 휴가.

보통 공무원의 결혼 휴가는 5일이 주어진다.

그것에 자신의 연가를 사용해,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의 두 배가 넘는 배나 되는 휴가를 다녀왔다.

예전에 서장이 포상으로 주었던 휴가를 지금 사용한 것이다.

지나치게 긴 시간을 휴가로 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서장과 경기청에선 허가를 해주었다.

수혁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많은 이의 배려로 긴 시간 동안 휴가를 다녀온 수혁이 마침내 복귀했다.

“어서 와.”

서장은 복귀 신고하는 수혁을 웃으며 반겼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서장 역시 수혁의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수혁의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테러가 발생하고 수혁의 이야기가 CNN에 방영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테러와 수혁에 대한 뉴스는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이거…….”

수혁은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서장에게 건넸다.

“응? 이게 뭐야?”

“그냥 작은 거 하나 사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짐 머레이가 산 것이긴 했지만, 굳이 그것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선물이야?”

서장이 밝게 웃으며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나중에 확인해 볼게.”

선물은 받은 자리에서 확인하는 것이 예의였지만, 서장은 할 말이 있는지 그것을 뒤로 미루었다.

“일단 앉아봐.”

서장이 수혁에게 자리를 권했다.

“차 마실래?”

“아뇨, 괜찮습니다.”

수혁이 사양하자 서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 한번 얘기해 볼래?”

서장은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이번에 수혁이 유명해지고 난 뒤, 온갖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방송국이나 언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한 번은 청와대에서도 치하하기 위해 전화했을 정도였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전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니 서장으로선 엉덩이가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그런 서장의 모습에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줄 순 없었으니, 적당히 각색해서 이야기했다.

짐 머레이에게 테러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우연히 길을 가다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해 잡은 것이라고.

적당히 꾸며낸 이야기이긴 했지만, 서장은 신이 난 표정이었다.

자신의 부하가 신혼여행을 보내놨더니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으니 신이 안 날 수가 있나?

수혁 덕분에 잘하면 진급과 출세를 할 수도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너는 참…….”

서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필요한 거 있어?”

서장은 수혁이 말만 하면 뭐든지 해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수혁은 딱히 바라는 것이 없었다.

휴가는 20일이나 쉬고 왔으니 더는 받을 수도 없었고, 그 외에는 이제 시간이 없었다.

이제 한 달 후에는 특수 구조대로 이동해야 하니, 서장으로서도 해줄 만한 일이 없을 것이다.

수혁이 고개를 젓자 서장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혹시 필요한 거 생각나면 바로 얘기해. 내가 최대한 들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수혁은 감사 인사를 하고는 서장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은 수혁이 픽- 하고 웃었다.

애처럼 좋아하는 서장의 모습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웃겨?”

박상태였다.

그는 수혁의 웃음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

“방금 왔다. 너 돌아왔다는 얘기 듣고 한번 와봤지.”

박상태는 묘한 표정으로 수혁을 훑어봤다.

그러다 수혁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유심히 살쳤다.

“……왜요?”

“혹시 그 시계에서 마취 침 같은 거 발사되냐?”

“그건 또 무슨 말이래.”

수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다.”

박상태는 민망한지 흠흠, 하며 몸을 돌렸다.

“내려가자. 얘기는 사무실 가서 하고.”

수혁은 박상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에는 출근한 대원들이, 수혁이 가져온 쇼핑백 주변에 모여 있었다.

“어, 왔냐?”

“이야! 미국의 슈퍼 히어로가 왔네.”

“슈퍼 히어로는, 뭐가 슈퍼 히어로예요.”

수혁이 혀를 차며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이거나 하나씩 가져가요.”

“거봐요. 이거 선물 맞댔죠?”

박정우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며 크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쇼핑백의 정체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큰 건 아니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빈손으로 올 순 없어서요.”

서장의 선물과는 달리 이것들은 수혁이 직접 산 것들이었다.

짐 머레이가 선물들을 준비하긴 했어도, 모든 사람에게 나눠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줄 선물은 직접 사고 싶기도 했고.

“뭔데?”

“그냥 이것저것 몇 개 샀어요.”

커피나 머그잔 같은 것들이었다.

좀 더 좋은 것들을 사고 싶었지만, 솔직히 수혁은 그리 많은 돈이 없었기에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가격은 그들에게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명품 시계나 신발 같은 것들보단, 이런 게 훨씬 마음에 들었다.

“잘 쓸게.”

“영웅한테 선물도 받고, 인생 성공했네.”

대원들은 각자 선물을 꺼내 보며 기뻐했다.

괜히 뿌듯해진 수혁은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대원들은 순순히 수혁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에헤이, 어딜 가려고.”

“썰 좀 풀어봐라.”

“뉴스로 보긴 했는데, 당사자한테 직접 듣는 것보단 못하지.”

대원들의 성화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끝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장인, 장모를 포함한 처갓집 식구들에게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수혁은 지겹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그날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서장에게 해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들이었다.

대원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수혁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박상태가 물었다.

“너 명예시민 된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런 것도 뉴스에 나왔어요?”

수혁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케인 로저스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긴 했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명예시민이 수여된 사람은 고작 여덟 명에 불과했다.

그중 아시아인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때문에 수혁은 크게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뉴스에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미국 쪽에서 흘러나온 얘기야. 논의 중이라고 하던데?”

설마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냥 하는 얘기겠죠.”

수혁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대원들 역시 수혁의 말에 동의했다.

미국 명예시민이라는 게 궁금해졌던 대원들은 검색을 했고, 그게 얼마나 받기 어려운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암튼 선물은 고맙다.”

박상태는 자신의 선물인 머그잔을 들고 탕비실로 향했다.

첫 개시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아, 그건 그렇고.”

수혁은 대원들을 보며 웃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방송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타인의 삶.’

벌써 3주나 방송이 되었다.

이제 소방관 편 에피소드는 한 편, 혹은 두 편 정도면 끝이었다.

수혁은 그것이 방송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바쁜 나머지 제대로 된 확인도 하지 못했다.

“대박이라더라.”

신일서의 소식통 박정우가 대답했다.

“대박이요?”

“그래. 안 그래도 어제 이기석 PD한테 연락 왔었다. 시청률 대박 났다고. 자기가 했던 프로그램들 중에 압도적인 최고 시청률이라나?”

“그래요?”

수혁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시청률이 잘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이번 일 덕분에 수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테고, 그것은 방송 시청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런데 그 정도로 대박이라니, 생각보다 더욱 잘됐다.

“그럼 꽤 시끄러워지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영웅이 나서서 비리를 폭로했는데, 난리가 안 나면 이상하지.”

“그놈의 영웅 소리 좀 그만…….”

수혁이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안았다.

“싫어? 그럼 코난은 어때?”

이재한이 낄낄거리며 수혁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상태가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수혁을 돌아봤다.

“너 이제 여행 다니지 마라.”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여행 다니지 말라니.”

“너 해외에 나간 게 몇 번이지?”

“아마 네 번일걸요.”

푸켓, 라오스, 독일, 그리고 이번에 미국.

“해외에서 사고에 휘말린 적은?”

“……전부죠.”

박상태가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저게 코난이 아니면 뭐냐.”

“저 정도면 차라리 해외여행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국내 여행을 다니는 것보단.”

“그게 할 소리냐?”

대원들의 숙덕거리는 소리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특구로 가던가 해야지, 원.’

수혁이 복귀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수혁과 구조 3팀 대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타인의 삶’ 마지막 편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수혁은 최은송과 함께 소파에 앉아 그것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시애한테 연락 왔었어요, 신혼여행 잘 다녀왔냐면서.”

구급대원으로 일을 하게 된 시애가 열심히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본 최은송이 문득 말했다.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시애한테 선물도 줘야 하는데.”

시애의 선물은 최은송이 직접 챙겼다.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신경을 쓴 듯했다.

“조만간 한번 놀러 오기로 했어요.”

“그럼 그때 주면 되겠네요.”

둘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방송은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군.’

방송에서는 팀을 나눠 상품을 건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 고장 났어.]

[네?]

[하루이틀 된 것도 아니네. 작동 안 한 지 오래됐을 거야.]

수혁이 심각한 표정으로 화재경보기를 확인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무슨 문제 있었어요?”

그것을 본 최은송이 수혁에게 물었다.

“네. 꽤 큰 문제가 있더라고요.”

수혁의 말에 최은송의 표정 역시 덩달아 진지해졌다.

지금 방송에서 나오는 장면이 왠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은송뿐만이 아니었다.

수혁이 나온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가지고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재경보기와 같은 소방 시설은, 자신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시설이었다.

그것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심각합니까?]

VJ의 질문.

화면 속의 수혁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여기서 불이 나면,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율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그만큼 엉망입니다, 여기.]

수혁이 폭탄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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