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74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신혼여행의 남은 일주일은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짐 머레이의 전용기를 타고 미 서부 지역도 가보고, 제임스가 소개해 주는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도 즐겼다.
확실히 돈이 뒷받침되니 여행의 질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놓고 즐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어디를 가든 수혁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둘이 여행을 하는 동안 뉴스에서는 연신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케인 로저스가 작정이라도 한 것인지, 그야말로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수혁은 케인 로저스가 말한 것처럼 미국의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만들어진 영웅이지만.’
자신이 아무리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토록 열광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언론의 힘은 수혁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절반의 성공이긴 했지만, 테러를 막은 사람이 예전에 푸켓의 영웅이라 불린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영웅이 소방관이라는 것.
미국은 소방관에 대한 존중이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나라다.
그런데 수혁이 소방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과 다름없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슈를 넘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였다.
수혁은 최대한 사람들을 피해 돌아다니긴 했지만, 완벽하게 숨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미스터 김! 10분만, 아니, 1분만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면 됩니다, 한마디면!”
대체 어떻게 안 것인지, 수십 명의 기자가 수혁을 향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었다.
‘하아.’
수혁은 10m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초만 빠르게 움직였다면 기자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을 수 있었는데, 마지막 날이라고 조금 방심을 한 모양이었다.
“물러서시오.”
다행히 이런 사태를 예상한 짐 머레이가 수혁과 최은송의 경호 인력을 늘린 덕분에, 기자들에게 깔리는 상황까진 오지 않았다.
2m에 달하는 거구의 경호원들이 기자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길을 뚫었다.
몰려든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 호텔 직원들까지 나서야 할 정도였다.
“들어가시죠.”
제임스가 진땀을 빼며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이끌었다.
“휴우, 설마하니 호텔 안까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임스가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요.”
수혁 역시 지친 표정이었다.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라오스에서 시애를 구하고 귀국했을 때도 공항에서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새삼스레 케인 로저스가 말한 영웅이란 것이 뭔지 실감이 났다.
“아직 비행기 출발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평소라면 지금 출발해서 출국 수속을 마쳐야 하겠지만, 미국의 배려로 인해 수속에 소모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니 굳이 일찍 나설 필요가 없었다.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최은송을 쳐다봤다.
“조금 쉬다 갈까요? 아니면 여유 있게 지금 출발할까요?”
“지금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 괜히 여유 부리다 또 둘러싸이면 늦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제임스가 나가자 수혁은 최은송과 함께 짐 정리를 시작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보다 짐이 몇 배는 불어나 있었다.
짐 머레이가 챙겨준 선물들 덕분이었다.
공항 면세점에서 쇼핑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는, 대신 지인들의 선물을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선물들이 뭔지는 모두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충 보이는 로고만 봐도 값비싼 것들이란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물건들이었지만, 이렇게 된 상황에 거절하는 것도 우스웠기에 수혁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두 받았다.
“빼놓은 거 없죠?”
최은송이 수혁에게 물으며 꼼꼼하게 호텔 방안을 살폈다.
워낙 넓었기에 한 번 살펴보는 것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빠트린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둘은, 제임스와 함께 방을 나섰다.
“로비는 비워두었습니다.”
두 사람이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제임스는 경호원과 호텔 직원들을 이용해 기자들을 모두 호텔 밖으로 몰아냈다.
덕분에 수혁은 편하게 로비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호텔 밖에는 로비에서 쫓겨난 기자들은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테러 소식과 함께 미국 최대의 이슈로 떠오른 수혁을 취재하기 위해,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기자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네요.”
수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도 있었다.
수혁에게 크게 질문하며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마이크를 들이미는 것은 같았지만, 저들의 태도에는 존중이 엿보였다.
목소리가 크긴 했지만 예의가 없진 않았다.
정말로 ‘영웅’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순수한 열망이 느껴졌다.
수혁은 그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웬만해서는 저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기에 인터뷰는 정중히 사양했다.
아직도 수혁은 자신에게 붙은 영웅이란 칭호가 마뜩잖았기 때문이었다.
“타시죠.”
수혁은 기자들에게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고는, 제임스가 연 문을 통해 리무진에 올라탔다.
“한국에 돌아가서가 걱정이네요.”
최은송이 창문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서는 그래도 경호원들 덕분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기자들을 막아줄 경호원들도 없었고, 저렇게 정중하게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인천 공항에 도착한 뒤가 걱정스러웠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런데 제임스는 웃으며 둘의 걱정을 불식시켜 주었다.
“이미 한국의 인천 공항 측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두 분은 귀국하신 후에 VIP 전용 통로를 통해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VIP 통로?”
“그곳을 통하신다면 기자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밖에는 짐이 준비해 둔 차량이 대기하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돌아가시면 되고요.”
“아…….”
짐 머레이는 두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의 일도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저희 차는?”
짐 머레이가 차를 준비해 두었다면, 수혁의 차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수행원에게 키를 넘겨주시면 댁까지 안전하게 몰고 갈 예정입니다.”
빈틈이 없었다.
짐 머레이의 준비에 수혁은 안심하고 뉴욕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수혁의 출국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공항에도 모여 있었다.
다행히 제임스와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별다른 문제 없이 탑승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2주 동안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 수혁 씨 같은 분을 모시게 돼서 제가 더 영광이었습니다.”
수혁은 제임스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에 또 미국에 올 일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그때는 제가 더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은 제임스와 악수를 하고는 작별을 고했다.
“신혼여행도 벌써 끝이네요.”
최은송이 아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미안해요.”
수혁은 그런 최은송에게 사과했다.
“수혁 씨가 왜 사과를 해요?”
“괜히 저 때문에 즐기지도 못하고…….”
수혁의 말에 최은송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말 하지 마요. 저는 충분히 즐겁게 보냈으니까. 그리고 그런 말 하면 저 완전 나쁜 사람 되는 거 알죠?”
최은송이 새침하게 말하자 수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수혁 씨가 자랑스러워요. 저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다 똑같은 생각을 할 걸요?”
한국인이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에서 영웅이라는 칭호로 불린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지금 미 정부에선 수혁에게 명예시민 수여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단 여덟 명밖에 받지 못한 명예시민.
그러니 한국에서는 현재 국뽕을 치사량까지 들이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울 수밖에.
“이 정도면 아빠도 수혁 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걸요?”
최문식은 결혼식을 올리는 당일까지 수혁을 탐탁지 않아 했다.
쌀이 익어 밥이 되었으니 반대를 하진 못했지만, 여전히 꿍한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수혁이 미국의 영웅이 되고, 명예시민까지 된다면 최문식으로서도 사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을 반겨주는 최문식을 상상한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왠지 적응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깨 펴요. 수혁 씨는 당당할 자격이 있으니까.”
“그렇게 할게요.”
수혁은 최은송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탑승 시간이 되었다.
수혁은 최은송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퍼스트 클래스 고객이었는지라 가장 먼저 탑승할 수 있었다.
“환영합니다, 김수혁 고객님.”
수혁을 알아본 승무원들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감사합니다.”
설마 승무원들까지 알아볼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는지라, 수혁은 살짝 당황했다.
대한민국 국적기였기에, 승무원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수혁을 보며 괜히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국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승무원들은 극진하게 수혁과 최은송을 맞아주었다.
이런 것을 은근히 즐기는 최은송마저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퍼스트 클래스 전담 승무원들이었기에 본래 서비스가 좋긴 했지만, 올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이긴 했지만, 덕분에 두 사람은 한국까지 편하게 올 수가 있었다.
그렇게 2주일간의 신혼여행이 끝이 났다.
-영웅 김수혁, 한국으로 귀국.
-김수혁 소방관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인천 공항 마비.
수혁이 집에 도착한 뒤 확인한 인터넷 기사들이었다.
역시나 미국에서의 일이 한국에서도 연일 화제였다.
실시간 검색어 10위권 중 무려 세 개가 수혁과 관련된 것들일 정도로 말이다.
“짐이 아니었다면 정말 공항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기사들을 보며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기사에 댓글도 엄청 달려 있어요.”
최은송 역시 기분 좋은 표정으로 기사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칭찬이에요. 가끔 이상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최은송은 은근슬쩍 악성 댓글에 ‘싫어요’를 눌렀다.
“당분간은 계속 이렇겠죠?”
언론과 방송계에서는 수혁이란 떡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접촉을 시도할 것이다.
인터뷰든 방송 섭외든.
다행히 아직까진 집에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수혁이 출근을 시작한다면 신일서로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만큼 수혁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걱정이네요.”
수혁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짐이랑 선물들부터 정리할까요?”
거실에는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두 사람은 걱정은 뒤로 미루고 일단은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복귀했습니다.”
수혁이 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