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70화
사망 52명.
부상 107명.
어제 일어난 폭탄 테러로 인해 발생된 희생자들의 숫자였다.
이전 생에 비하면 훨씬 줄어든 숫자였다.
본래라면 두 개가 터졌을 폭탄이 한 개만 터졌기 때문이었다.
절반의 성공.
하지만 구조에 있어서 절반의 성공은 실패와 같은 말이었다.
희생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수혁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죄책감이 커져만 갔다.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조금 더 계획을 잘 세웠더라면.
조금 더 열심히 움직였더라면.
그랬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수혁을 괴롭혔다.
[이번 테러를 일으킨 테러범들의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예맨 출신의 이민자들로 25세의 알다바위 마흐무드 하림, 27세의 우마르 카림 나씨르라는…….]
뉴스에서는 테러에 대한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당장에라도 보복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이 보복보다는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데 집중했다.
수혁이 머리를 감싸 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수혁이 구급대원에게 인계해 준 아이.
그 아이는 결국 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최대한 빠르게 구조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버티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도 부상자의 숫자는 줄고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만큼 심각한 중상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 마요.”
최은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혁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수혁의 표정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분명 사람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자책.
그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더 커졌을 피해를 막아냈으니까.
실제로 수혁이 테러범 한 명을 붙잡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표할 정도였다.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상을 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경찰 쪽에서는 테러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수혁을 전면에 부각시키길 원했다.
푸켓에서처럼 수혁을 테러를 막은 영웅으로 내세워, 조금이나마 미국인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거절했다.
테러를 모두 막아냈다면 모를까, 지금의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혁의 거절에 경찰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고 물러났다.
“자책 안 해요.”
수혁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수혁의 미소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미안해요, 신혼여행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수혁은 말을 돌리며 최은송에게 사과했다.
평생에 단 한 번 있는 신혼여행.
그것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엉망이 되어버렸다.
결혼식에 이어 신혼여행까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수혁으로선 최은송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신경쓰지 마요. 신혼여행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단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백 배, 천 배는 더 중요한 일이니까. 그런 걸로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최은송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저 수혁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고마워요.”
수혁이 최은송을 살짝 안았다.
너무도 미안하고, 고마웠다.
똑똑-
그때 누군가 호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이런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본 수혁은 픽- 하고 웃었다.
수혁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뻔했으니까.
“짐.”
수혁이 문을 열자 예상했던 대로 짐 머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시간에 미안하네.”
짐 머레이는 일단 너무 이른 방문에 사과부터 했다.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짐 머레이라면 새벽에 찾아와 문을 두드려도 환영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 멋진 호텔 방을 잡아준 것이 짐 머레이 아니던가?
“들어오시죠.”
수혁은 짐 머레이를 안으로 안내했다.
“어, 오셨어요?”
최은송 역시 웃으며 짐 머레이를 반겼다.
“내가 눈치 없이 신혼여행을 이렇게 방해해도 되나 모르겠군.”
짐 머레이는 웃으며 농담했다.
사실 그는 웃을 기분이 아닐 것이다.
바로 어제 수십 명의 사람이 죽은 테러가 일어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짐 머레이는 그것을 상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일부러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혁과 최은송이 신경쓰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최은송이 물었다.
“물론이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침은 꼭 챙겨 먹게 되더군.”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먹었다고 하니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아침 일찍?”
짐 머레이는 바쁜 사람이었다.
특히나 어제의 일로 더욱 바쁠 터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온 것은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안부나 전하려던 것이었다면, 전화하거나 제임스를 보내도 충분했을 테니까.
“음, 잠시 앉지.”
할 이야기가 조금 긴지, 짐 머레이는 소파에 앉았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왠지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무슨 일 있습니까?”
단순히 테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그것에 관해선 수혁이 더는 나설 일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자네의 모습을 찍은 영상들이 인터넷에 업로드 되었다네.”
그리고 짐 머레이가 꺼낸 이야기는 꽤나 심각한 이야기였다.
“제 모습이라면……?”
“맨손으로 밴을 멈춰 세우던 모습 말이네.”
수혁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수혁 역시 그것을 걱정하기는 했었다.
당시엔 상황이 다급해 아무런 생각 없이 ‘각성’ 스킬을 쓰고 밴을 막았지만,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중에는 분명 동영상을 찍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그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놨네.”
짐 머레이는 수혁의 비범한 능력을 일각이나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만약 수혁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면, 분명 적지 않은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실제로 수혁을 붙잡아 연구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곳은 강대국들뿐이지.’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국가.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는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수혁을 납치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수혁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한들, 그들의 손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짐 머레이는 그것을 걱정해 수혁의 능력을 은폐하는데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짐 머레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만약 짐 머레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짐 머레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를 찾아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네.”
“그게 뭔가요?”
“그 동영상을 본 사람 중 한 명이 자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네.”
짐 머레이가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했음에도 꽤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긴 했다.
다행히 동영상을 삭제하고, 그것이 CG로 만든 것이라 둘러대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완벽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짐 머레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평범한 민간인은 아닌 듯했다.
“…그게 누구입니까?”
“NSA의 국장인 케인 로저스일세.”
***
케인 로저스는 잠깐 눈을 붙일 새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국가 안전 보장국의 국장인 그에게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질책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덕분에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회의가 1초도 쉬지 않고 매시간 이어졌다.
그 와중에 한 동영상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테러가 일어났을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CCTV와 블랙박스, 그리고 사람들의 스마트폰 영상들을 조사하던 부하가 한 영상을 발견했다.
“여기 이상한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하는 이것을 보고해야 마나 고민하다,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모두 보고하라는 국장의 지시를 떠올리곤 영상을 가져왔다.
“뭔가?”
케인 로저스는 뻐근해진 눈을 풀기 위해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물었다.
“한번 보시죠.”
부하는 자신이 발견한 영상을 틀었다.
“흠.”
처음에는 영화인 줄 알았다.
사람이 차를 따라잡고, 맨손으로 차 문을 뜯어서 던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것이 영화가 아니라, 어제 테러범 중 한 명인 알다바위가 탑승해 있던 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영상은 뭐지?”
“어제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이 찍은 영상입니다. 지금은 모든 영상이 내려간 상태이고, CG를 이용해 편집한 것이라는 글만 올라와 있습니다.”
“CG라…….”
그런 것치고는 너무도 리얼했다.
아니, 그전에 이 일이 일어난 건 바로 어제다.
단 하루 만에 이런 고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영상이 내려간 이유는?”
“누군가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부하는 갑작스럽게 영상이 내려간 것에 의문을 품고 조사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권한으로는 정확히 누가 그런 압력을 행사했는지까진 알 수가 없었다.
케인 로저스는 왠지 이 영상에 관심이 갔다.
정말로 CG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해 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알아보지.”
케인 로저스는 부하를 내보내고는 영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테러 시 주어지는 그의 막강한 권한은, 평범한 사람은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두 시간이 흐른 뒤.
그리고 케인 로저스는 영상의 주인에게 압력을 가해 내리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짐 머레이?”
놀랍게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케인 로저스는 짐 머레이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이 영상이 CG가 아니라 진짜임을 확신했다.
그가 아는 짐 머레이라면 이런 일을 아무런 이유 없이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케인 로저스는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짐 머레이에게 연락해, 잠깐 만나자고.”
그는 보좌관에게 짐 머레이와의 약속을 잡으라 지시하고는 다시 한 번 영상을 돌려보았다.
‘누구냐, 넌?’
뉴욕 소방서의 제복을 입고 있는 동양인 청년.
그가 알기로 ENGINE 316에는 동양인 소방관이 없었으니, 그곳 소속의 대원은 아닐 것이다.
케인 로저스는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스피드와 힘을 보여준 이 동양인 청년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짐 머레이라는 거물이 직접 나서 흔적을 지울 정도였으니, 둘이 아는 사이가 분명했다.
“히어로라…….”
지금 미국에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
테러의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 줄 존재.
케인 로저스는 동양인 청년, 수혁의 얼굴이 나오는 장면에서 정지를 눌렀다.
그러곤 반짝이는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