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66화
‘없다.’
수색을 시작한 지 벌써 다섯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폭탄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활을 걸고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폭탄은 찾지 못했다.
연방 요원들과 대테러 전문가들은 쉴 새 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회의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별다른 소득은 없는 듯했다.
‘아니면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던가.’
테러에 대한 정보는 기밀 중 기밀이다.
그런 정보를 소방관들에게까지 전파할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정말로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고.
수혁은 조금씩 조급해졌다.
벌써 마라톤 코스와 그 주변에 대한 수색은 몇 차례나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단서조차 발견되지 않았으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대회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한 시간.
그 안에 발견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다시 한 번 돌아보시겠습니까?”
톰이 그런 수혁을 향해 물었다.
두 사람은 마라톤 코스를 두 번이나 돌아봤다.
원래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 전체를 확인한 것이다.
물론 그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고.
‘이상해.’
지금쯤이면 테러범이 움직여야 했다.
폭탄 설치는 하지 않았더라도, 상황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근처를 서성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수혁이 톰을 돌아봤다.
“수색할 만한 곳은 다 한 거죠?”
“그렇습니다.”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수색을 못 미더워하던 기색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섯 시간 가까이 수색을 하며 톰이 발견한 수상한 물건은 총 일곱 개.
누가 봐도 ‘폭탄이다!’라고 소리칠 정도로 수상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그중 세 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장소에 꼭꼭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들을 보며 항상 고개를 저었다.
폭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내용물을 확인했다.
진짜 폭탄이 들어 있었다면, 둘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안에는 수혁이 장담한 대로 폭탄이 들어 있지 않았다.
톰은 그 이후로 수혁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일곱 번이나 같은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수혁은 폭탄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대용 감지기 같은 거라도 들고 있는 건가?’
톰은 대충 그렇게 넘어가기로 했다.
감지기처럼 보이는 물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서 터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 수색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대회 시간이 가까워지자, 은밀하게 수색하던 이들이 대놓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러 위험이 있다는 것은 밝히지 않았지만,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것 정도는 사람들이 확실히 알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테러범이 부담을 느끼고 허튼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에 더해 테러범이 당황해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고.
이런 상황이었으니, 테러범, 혹은 테러범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수백 명의 인원이 마라톤 코스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으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대원들과 합류라도?”
톰의 제안에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좀 높은 건물로 올라가야겠어요.”
“높은 건물?”
톰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혁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혹시 위에서 내려다볼 생각인가?’
톰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돌아다녀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위로 올라가서 본다고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의 말에 토를 달지 않기로 한 톰은 반대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 있겠지, 라면서.
“망원경이라도 준비합니까?”
위에서 아래쪽을 확인하려면 그나마 망원경이라도 있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에 물어봤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단 빨리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수혁이 조급해하는 것을 본 톰은 알았다며 근처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빌딩으로 안내했다.
그보다 높은 빌딩은 많았지만, 주변을 확인하기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수혁과 톰은 사정을 설명하고는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때였다.
수혁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날세.]
전화를 건 사람은 짐 머레이였다.
“은송 씨는 잘 있어요?”
짐 머레이는 현재 최은송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피한 상태였다.
최은송에게는 자세한 상황은 설명하지 않고, 수혁을 대신해 오늘 하루를 책임져 주겠다면서 말이다.
[걱정할 것 없네. 아주 잘 모시고 있으니. 그보다 뭐라도 발견한 것 있나?]
짐 머레이는 걱정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직은 없네요.”
[음…….]
수혁의 대답에 짐 머레이가 신음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쪽에선 무슨 정보 없었습니까?”
소방관들은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구조대장인 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수혁은 짐 머레이에게 혹시나 하며 물었다.
[하나 듣기는 했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다행히 짐 머레이는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뭡니까?”
[NSA에서 밝혀낸 정보일세. 그곳에서 테러범으로 지목한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예맨 출신의 알다바위라는 남자일세.]
“알다바위?”
미국 국가 안전 보장국인 NSA에서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면 신빙성이 높았다.
하지만 수혁에겐 그리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었기에, 실망했다.
짐 머레이는 그런 수혁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알다바위는 아무래도 외로운 늑대 테러를 저지를 것 같다더군.]
“…외로운 늑대?”
수혁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알카에다나 헤즈볼라 같은 전문 테러단체 조직원이 아니라,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이르는 말이라더군.]
외로운 늑대 테러는 특정 조직의 명령이나 이념 때문이 아닌, 개인적 반감 때문에 스스로 저지르는 테러를 일컫는 말이었다.
배후 세력 없이 자발적으로 그들과 동조해 테러를 자행하는 탓에, 테러 감행 시점이나 방식에 대한 정보 수집이 거의 불가능했다.
때문에 예방이 거의 불가능하고, 추적이 힘들어 조직에 의한 테러보다 훨씬 큰 위협으로 여겨진다.
알다바위는 그런 외로운 늑대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짐 머레이의 설명을 들은 수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 이전 생에서 못 막았지.’
911 이후, 테러에 극도로 민감해진 미국의 정보력으로도 막지 못한 테러.
그 이후 여러 일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쪽에 관심을 둘 상황이 아니었던 수혁은, 안타깝게도 아무런 기억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띵-!
수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엘리베이터가 옥상에 도착했다.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그렇게 하지. 부디 조심하게.]
수혁은 짐 머레이와의 통화를 끝내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외로운 늑대 테러라고 합니까?”
수혁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톰이 물었다.
“그렇다고 하네요.”
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외로운 늑대 테러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막기 힘든 것인지도.
“힘들겠군요.”
톰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또다시 지옥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번엔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외로운 늑대 테러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아무런 조짐도 없다가 갑작스럽게 테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에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수혁 덕분에 테러 위협을 사전에 입수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으니까.
“그랬으면 좋겠군요.”
톰은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수혁의 말대로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옥상에 오른 수혁은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살펴보았다.
‘위기감지Ⅲ’의 범위는 수혁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었다.
100m든, 1㎞든.
수혁의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수혁은 조금 더 광범위한 장소를 한 번에 확인하기로 했다.
이동할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렇게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보자…….”
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아래쪽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분.
수혁의 눈에 붉게 빛나는 뭔가가 들어왔다.
***
알다바위는 베이지색의 평범한 백팩 두 개를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
괜히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걸음이 빨라졌다.
‘계획을 바꿔야겠어.’
형제의 말에 따르면 지금 대회장 주변은 경찰과 연방 요원들로 발 디딜 틈도 없다고 했다.
그런 곳에 자신이 백팩 두 개를 들고 돌아다닌다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폭탄이 담겨 있는 백팩을 내려놓기도 전에 체포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알다바위는 포기할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더욱 굳게 잡았다.
‘반드시 신의 벌을 내릴 테다.’
알다바위는 잠시 고민하다, 뭔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푸른색으로 ‘Home Cleaning Service’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흰색 밴.
청소업체 차량이었다.
알다바위는 밴 쪽으로 다가가 운전석 안쪽을 쳐다보았다.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차 문을 딴 알다바위는 안으로 들어가 썬바이저를 내렸다.
그러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자동차 키가 떨어졌다.
‘다행이군.’
만약 키가 없었더라면 키박스를 뜯어 시동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알다바위는 배낭을 조수석 아래쪽에 숨긴 뒤,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한참을 달린 알다바위는 센트럴 파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에 차를 주차시켰다.
“후우.”
심호흡을 했다.
처음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깔려 있다고 한들, 차를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몇 시지?’
알다바위는 시간을 확인했다.
1시 55분.
대회 시작이 코앞이었다.
‘5분 후면…….’
그때가 되면 미국의 돼지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911테러와 비교하자면 미약하기 짝이 없겠지만,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알다바위는 재킷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기다란 쇳덩이가 만져졌다.
기폭 장치.
여기에 달려 있는 단추만 누르면, 미국은 다시 한 번 끔찍한 악몽을 꾸게 될 것이다.
다시는 잊지 못할 참혹한 죽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