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65화
센트럴 파크에 도착했다.
아직 대회가 열릴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 한산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것을 본 수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사람이 이렇게…….’
둘러보니 대충 대회 준비를 하는 인원들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뭔가를 팔러 나온 이들인 듯했다.
‘벌써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면 대회 때는 대체 얼마나 모인다는 거야?’
수혁은 스마트폰을 들어 작년도 대회를 검색했다.
그러곤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액정에 떠올라 있는 사진은 수혁을 당혹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42.195㎞의 기나긴 코스를 따라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서 있었다.
선수들을 응원하며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
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감도 오질 않았다.
‘만약 이런 곳에서 폭탄이 터지면…….’
물론 폭탄의 폭발 반경은 한정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넓게 분산되어 있으니 피해가 가는 지역은 일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퀘스트에 나왔다시피 최소한 수백 명은 폭발에 휘말릴 것이다.
그중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제 뭘 하면 됩니까?”
톰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혁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일단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주변의 수색을 명령했다.
그들도 대충 이야기는 들었기에 수상한 것을 발견하면, 다가가지 않고 곧장 보고하기로 했다.
하지만 톰은 수혁이 같이 움직이자고 부탁했기에 그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아, 저와 같이 수색하면 됩니다.”
수혁은 뉴욕의 지리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아는 것이라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관광지 몇 곳이 전부였다.
그와 반대로 톰은 그 누구보다도 이곳의 지리를 잘 알았다.
그러니 톰을 데리고 폭탄이 있을 만한 곳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톰은 조금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두 명이서 한 구역을 맡아 수색하는 것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차라리 다른 팀과 합류해 같이 수색하는 편이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할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지면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은 맞았다.
각자가 수색해야 할 영역이 줄어드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였다.
스킬을 사용해서 수색할 수 있는 수혁에게는 오히려 방해였다.
수혁은 그저 길을 안내하고 조언해 줄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에 톰이 선택된 것이었고.
“그럼 이제 시작하죠.”
수혁은 스킬 ‘위기감지Ⅲ’를 발동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가 할 일은 뭡니까?”
“폭탄이 있을 만한 곳. 폭발이 일어나면 피해가 많이 일어날 것 같은 곳. 그런 곳을 위주로 안내해 주시면 됩니다.”
톰이 묻자 수혁은 주변을 살펴보며 대꾸했다.
그리고 덤으로 수상한 사람을 찾는 것까지.
수혁이 마라톤 코스를 확인하는 것을 보고 의심을 품을 정도의 눈썰미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요구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수혁이 그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이었다.
다만 사람이 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못 미더울 뿐이었다.
수혁과 톰이 그렇게 수색을 시작한 지 한 시간여.
‘흠…….’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눈매를 좁혔다.
아직까지 폭탄은 발견하지 못했다.
나사가 풀어져 덜렁거리는 간판 하나를 제외하면 특별한 위험 요소도 없었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도착한 경찰과 요원들 역시 수색을 시작했지만, 그들에게도 별다른 보고가 없었다.
아직 폭탄이 설치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많은 사람이 수색하고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곳에 설치가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흘러간다면 폭탄은 예정대로 터질 것이다.
“이쪽입니다.”
고민하는 수혁의 귓가로 톰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이 뒤를 돌아보자 톰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한쪽을 가리켰다.
“아, 네.”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가리킨 카페 쪽으로 향했다.
‘왜 저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
톰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
하지만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기에 속으로 의문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톰은 수혁의 뒤통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둘만 수색에 나선다기에 그는 수혁에게 무슨 다른 정보가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방법으로 수색하지 않을 테니까.
때문에 미심쩍기는 해도 수혁의 요구대로 수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수색을 시작하고 보니,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 수혁의 모습은 수색은커녕 관광을 나와 주변을 구경하는 관광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였다.
자신이 안내하는 곳을 그저 눈으로 한 번 슥- 보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수색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성의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상이 없다고 확신하니, 톰으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기껏 테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수색하고 있는데,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가이드 역할이나 하고 있으니…….
하지만 톰은 수혁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테러 위험을 처음 알아차리고 경고한 짐 머레이가 수혁을 잘 도와달라고 부탁한데다, 톰은 수혁에게 어제의 일로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계속 가이드 행세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만이라도 조금 더 꼼꼼하게 주변을 확인해야만 했다.
‘일단 카페 주변에는 없고.’
슬쩍 쓰레기통 안까지 확인했다.
“응?”
혹시나 하고 쳐다봤던 쓰레기통 안에 웬 검은색 가방이 하나 들어가 있었다.
“수혁 씨!”
톰이 다급하게 수혁을 불렀다.
카페 문을 열고 안쪽을 훑어보고 있던 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
수상한 게 있다고 말을 하려던 톰이 주변을 한번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폭탄 수색에 대한 것은 일체 기밀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모인 사람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들과 연방 요원들 역시, 단순히 대회 전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는 것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고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인력이 투입된 것 같았지만, 워낙 범위가 넓었기에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들은 없었다.
어쨌든 톰은 소란을 피워선 안 된다는 것을 떠올리곤 수혁에게 눈짓했다.
수혁이 그런 톰을 가만히 쳐다보다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쓰레기통 안에 검은 가방이 있습니다.”
테러 신고가 들어온 상황에, 쓰레기통 안에 숨겨져 있는 검은 가방이라니.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최소한 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톰이 가리킨 쓰레기통 안을 슬쩍 본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위기감지Ⅲ’ 스킬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붉게 물들어 있지도 않았고, 이명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누가 버린 가방에 불과했다.
“이건 아니군요.”
수혁이 한번 흘깃하고는 아니라며 고개를 젓자, 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걸 겉으로 본다고 알 수 있습니까? 일단 테러 전문가들에게 보고해야…….”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 시에는 접근하지 말고 곧장 보고해야 한다.
괜히 건드렸다가 의도하지 않게 폭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톰 역시 눈으로만 확인하고는 건드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건 폭탄 아니라니까요.”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통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무전기를 들고 보고하려던 톰이 경기를 일으켰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만약 폭탄이라면 어떻게 하려고!
화들짝 놀란 톰이 말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수혁이 한발 빨랐다.
가방을 쓰레기통에서 쑥 하고 꺼내 든 것이다.
“흐읍!”
톰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톰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우수수하며 낡은 옷가지들이 가방 안에서 쏟아져 내렸다.
“봤죠?”
수혁은 굳어 있는 톰을 보곤 쏟아진 옷들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수혁은 톰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상한 물건을 발견하면 바로 폭탄 전문가들을 불러야 했다.
하지만 수혁에겐 필요 없는 절차였다.
수혁은 그것이 이미 폭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절차대로 했다간 시간이 늦어진다.
그리고 테러범들을 괜히 자극할 가능성도 있었다.
때문에 수혁은 필요도 없는 절차를 과감하게 생략했다.
톰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톰이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곤 참았던 숨을 뱉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긴장한 탓에 숨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뭡니까, 대체?”
톰은 수혁을 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분명 수혁은 수상하기 짝이 없는 검은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어젖혔다.
폭탄이 아니라는 것을 100% 확신하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톰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정말로 그것이 폭탄이었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수혁 역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어떻게 저리도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
하지만 수혁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스킬에 대한 것을 말해줄 수도 없었고, 지금은 일일이 변명하며 낭비할 시간도 없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톰은 수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수색은 제가, 안내는 당신이. 그거면 됩니다.”
그런 톰을 향해 수혁이 경고하듯 말했다.
더는 시간을 빼앗지 말라는 뜻이었다.
톰은 그런 수혁을 보며 이를 악다물었다.
***
알다바위는 주흐르(정오) 예배를 위해 우두를 실행했다.
손, 팔, 입속, 머리, 목, 발의 순서로 세 번씩 닦아낸 알다바위는 시간이 되자 끼블라를 향해 엎드렸다.
경건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기도를 끝마친 알다바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조금 전까지 편안해 보이던 그의 표정은, 기도가 끝나자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차올랐다.
띠리리-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흠칫 놀란 알다바위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준비는 되었나, 형제여?]
“물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에 알다바위는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미국의 개들이 냄새를 맡은 것 같다.]
그 말에 알다바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대체 어떻게?”
미국의 정보망이 두텁다고는 하지만, 이 일은 아무리 미국이라 할지라도 절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진행이 되었다.
실제로 어제까진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걱정 마라, 형제. 그들도 자세한 건 모르는 듯하니.]
사실 눈치채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계획한 것은, 아무리 수색하고 주변을 경계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돼지들은 오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전화가 끊기고, 알다바위는 결연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외로운 늑대의 마지막 외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