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63화
짐 머레이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테러 신고였다.
수혁은 당연히 그가 뉴욕 경찰서의 서장에게로 연락할 줄 알았다.
방금 전에 만나기도 했고, 그는 짐 머레이에게 고개도 제대로 못 들 정도로 위축이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라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짐 머레이의 말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짐 머레이가 전화한 곳은 뉴욕 경찰서가 아니었다.
“오랜만일세.”
짐 머레이의 태도는 수혁이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조심스러움이 엿보였다.
‘대체 누구기에?’
수혁이 궁금해하는 사이, 짐 머레이는 수수께끼의 인물과 통화를 계속했다.
“급한 일이네.”
하지만 상대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통화를 잠시 뒤에 하자고 미루었고, 짐 머레이는 그런 그를 붙잡았다.
“믿을 만한 정보가 들어와 알리기 위해 연락했네.”
짐 머레이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내일 뉴욕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할 것이란 정보라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짐 머레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너머에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갑자기 고함과도 같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수혁은 무슨 말인지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이던가? 바쁜 사람 붙잡고 농담할 정도로?”
짐 머레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방금 전까지 조심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불쾌하다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마치 대우는 해주지만, 그것이 당신의 아래는 아니라는 뜻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짐 머레이의 목소리가 조금 딱딱해지자, 상대 쪽에서도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고는 몇 마디가 오간 뒤 통화가 끝났다.
“……누구예요?”
“제이 존슨이라는 늙은이지.”
짐 머레이가 대답해 주었지만, 수혁은 눈을 끔뻑였다.
그게 누군데?
수혁의 표정을 본 짐 머레이가 슬쩍 웃었다.
“국토안보부 장관이지.”
국토안보부.
911테러가 발생한 뒤, 미국 전역은 테러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
그러자 그 이듬해.
미 정부에서는 국토안보부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한 모든 분야다.
즉, 테러나 중대 범죄뿐만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 상황 전반을 다루는 기관이기에 연방 재난 관리청까지 산하에 두고 있는 거대 기관이었다.
짐 머레이는 뉴욕 경찰서의 서장 같은 피라미가 아니라, 그런 거물에게 직통으로 신고를 넣은 것이다.
물론 수혁은 국토안보부가 뭔지도 모르기에 그냥 높은 데다 신고했나 보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그는 내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니, 아마 조만간 뉴욕주의 국토 안전 보장국에 연락이 갈 걸세.”
그렇게 되면 이번 테러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와 대책이 세워질 것이다.
아예 마라톤 대회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고.
미국의 정보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의 절반만 되어도, 충분히 테러범을 잡고도 남을 것이다.
‘문제는 사전에 체포하느냐, 터진 후에 체포하느냐인데.’
방금 전 통화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국토안보부에서는 테러에 대한 정보를 일체 알지 못하는 듯했다.
만약 알았다면 이전 생에서도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범인을 잡는 것에도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었다.
‘어쩌면 테러를 막지 못할지도 모르지.’
수혁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
막으면 좋겠지만, 막지 못할 때를 대비해야만 한다.
“톰에게도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뉴욕 소방관들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소방관들은 사람을 구하는 데 전문가다.
뉴욕 전체의 지리를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으니, 경찰과 국토안보부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 더 가능성이 올라갈 터.
“그렇게 하지.”
짐 머레이가 밖에 있는 수행원에게 연락해 톰을 안으로 들어오라 시켰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톰이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톰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무슨 일 있습니까?”
수혁이 물었다.
그러자 톰은 잠시 머뭇하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실 큰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근무시간에 몇 시간 동안이나 자신의 자리를 비운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일단 부하인 로이스에게 전화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말을 해두긴 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톰이 걱정하던 문제는, 잠시 후 짐 머레이의 말을 들은 이후로 흔적도 없어졌다.
근무 태만과 테러 중 어느 것이 더 큰 문제인지는 굳이 비교해 보지 않아도 확실하니까.
게다가 톰은 테러에 대한 지독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톰의 얼굴이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렇다네. 그래서 이 친구에게 오늘 그 주변을 좀 살펴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지. 덕분에 자네와 일이 좀 생긴 것 같지만 말이야.”
톰이 수혁을 슬쩍 쳐다봤다.
‘그래서였군.’
자신이 오해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수혁은 마라톤 코스를 따라 돌아다니며 주변을 훑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의도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톰이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수혁이 손사래를 쳤다.
자신이 수상해 보이는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톰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테러 말입니다.”
어느 정도 수혁과의 관계를 풀자, 톰이 짐 머레이를 쳐다봤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입니까?”
공손하게 묻고는 있지만, 속뜻은 ‘내가 그 얘기를 어떻게 믿나?’였다.
솔직히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내일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톰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짐 머레이 역시 이런 톰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웃음을 지었다.
“국토안보부에서도 알고 있는 일이네. 조만간 뉴욕 전체에 비상이 걸리겠지.”
국토안보부라는 말에 톰의 눈이 커졌다.
“자네들에게도 곧 연락이 갈 걸세.”
만약 짐 머레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뉴욕 소방서에도 지침이 내려올 것이다.
“그렇군요.”
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말을 할 정도면, 정말로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자네가 도와줄 일이 있네.”
“……그게 뭡니까?”
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짐 머레이가 수혁을 쳐다봤다.
“내일 저와 함께 코스 주변을 수색해 주셨으면 합니다.”
“수색?”
이건 굳이 부탁이라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국토안보부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혁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수색하는데 도움을 좀 주셔야겠습니다.”
수색의 주가 되는 것은 수혁이다.
수혁에게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위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으니까.
수혁이 원하는 것은, 폭탄이 있을 만한 곳을 알려줄 사람이었다.
그리고 뉴욕의 소방관들은 그 누구보다도 그 역할을 잘해줄 수 있었고.
“오늘의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시죠.”
지침이 내려오면 소방관들은 매뉴얼에 따라 각자 맡은 구역을 수색할 것이다.
수혁을 따라다니며 같이 수색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건 좀 곤란…….”
“그렇게 하게.”
톰이 난색을 표하자, 짐 머레이가 나섰다.
“그건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테러라는 중대한 사항이니 더욱더.”
톰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수혁이 대단한 소방관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절차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톰이 다시 한 번 사과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여전히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우려하는 건 내가 해결해 줄 테니.”
“……예?”
“FDNY(뉴욕 소방국)의 국장이 나와 잘 아는 사이거든.”
짐 머레이가 웃었다.
9월 11일 이른 아침.
뉴욕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면에선 그 어떤 때보다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괜찮겠나?”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짐 머레이가 수혁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해봐야죠.”
결국 마라톤 대회는 취소되지 않았다.
내심 취소되길 바라고 있었지만, 911테러 추모를 위한 대회를 테러 때문에 취소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듯했다.
대신 어마어마한 인력들이 뉴욕으로 몰려왔다.
단 하루 만에 국토안보부에서 파견한 요원 수백 명이 뉴욕에 도착해 수사를 시작했다.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테러범을 체포하고 말겠다는 의지였다.
짐 머레이에게 듣기로는 일단 용의자를 특정하긴 한 모양이다.
아직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발견하지 못한 듯했지만.
뉴욕 경찰과 소방관, 연방 요원들까지 힘을 합치면 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테러 자체는 막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냥 다른 이들에게 맡겨둬도 되네만.”
미국의 정보력은 세계 최강이다.
굳이 수혁까지 나서지 않더라도, 짐 머레이는 반드시 테러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물론 수혁도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이 스킬을 사용한다면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직접 나서서 수색하는 것이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좋았다.
“제가 이런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성격이라서요.”
짐 머레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잘 안다.
만약 수혁이 몸을 사리고 이런 상황을 모른 척했더라면, 짐 머레이는 푸켓에서 생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니 강하게 수혁을 말리지 못했다.
“부디 몸 조심하게.”
“걱정 마세요.”
아무리 수혁이라 하더라도 폭탄이 지근에서 터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혁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일 자체를 만들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스킬을 사용해 폭탄을 발견하면 곧장 신고하면 된다.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기술도 없는 마당에, 굳이 위험한 폭탄 근처에 접근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은송 씨 좀 잘 챙겨주세요.”
본의 아니게 신혼여행을 와서 계속 혼자 있게 만들고 있었다.
3일 중 2일을 떨어져 지내고 있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절대로 센트럴 파크 근처에는 가지 않게 하겠네.”
“감사합니다.”
수혁이 고개를 숙이자 짐 머레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누가 누구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진짜로 고마운 것은 수혁이 아닌 자신이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을 위해, 폭탄 테러라는 위험천만한 일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수혁이었으니까.
“나야말로 고맙네.”
짐 머레이가 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