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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62화 (262/425)

레스큐 시스템 262화

“회, 회장님!”

서장이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지금까지 서장이 보여준 모습이 짐 머레이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정체가 뭘까?’

한국에서도 웬만한 기업 회장들이라면 작은 경찰서의 서장 정도는 벌벌 떨게 만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돈의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었다.

뉴욕 경찰서도 작은 경찰서가 아니다.

인구수만 천만이 넘는 이 거대한 대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곳이었으니 작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서장에게 주어진 권력 역시 클 터였고.

그런데도 서장은 짐 머레이를 무슨 저승사자 보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끝장내러 온 저승사자 말이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서장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분명 이야기했을 텐데.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상황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짐 머레이의 음성은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였다.

그의 저런 모습을 처음 본 수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혁이 아는 짐 머레이라는 사람은 항상 웃으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멋진 노신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냉혹한 기업의 회장.

‘저게 진짜 모습인가?’

지금까지 봐왔던 짐 머레이의 모습은 수혁 자신에게만 국한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 지금, 방금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을 방면하고 사과까지 하려던…….”

“방금 내가 봤던 그 개똥같은 사과 말인가?”

리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서장이 저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상대는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자신의 태도를 걸고 넘어졌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던 리오는 수혁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크게 소리쳤다.

평소 해오던 동작이 아니었는지라 어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다급함만은 여실히 느껴졌다.

“하!”

수혁이 웃었다.

그토록 거들먹거리며 자신을 비하하고 괴롭히던 이가, 짐 머레이의 모습을 보고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우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 돈 노래를 부르는 건가.’

괜히 씁쓸해졌다.

더는 저딴 인간하고는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 이만 가도 되죠?”

수혁이 서장을 보고 물었다.

“무, 물론입니다!”

“그럼 가죠. 여긴 별로 있고 싶지가 않으니.”

수혁이 몸을 돌리자, 최은송과 제임스는 리오를 한 번 노려보곤 그 뒤를 따랐다.

“짐.”

“미안하네.”

수혁이 짐 머레이의 앞에 서자, 그가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짐이 미안할 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이번 일의 전적으로 리오라는 경찰의 잘못이었다.

짐 머레이는 그것을 바로잡아 줬을 뿐이고.

미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자신의 손님이 이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는 용납하기 힘든 것 같았다.

더불어 수혁이 자신의 나라에 안 좋은 감정을 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고.

“자넨 도대체 뭘 한 건가?”

짐 머레이가 제임스를 보며 꾸짖었다.

“죄송합니다.”

제임스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설마하니 잠시 떨어져 있는 사이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제임스한테도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제가 부탁한 거니까.”

경호원이라도 붙여주겠다는 것을 극구 사양한 것은 수혁이었다.

혼자 마음 편히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짐 머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즐거운 추억만이 가득해야 할 신혼여행에 좋지 않은 기억이 끼어든 것 같아 너무도 미안했다.

“일단 나가요. 드릴 말씀도 있고.”

수혁의 말에 짐 머레이의 눈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수혁이 자신을 급하게 부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소한 일은 아닐 게 분명했다.

수혁은 자신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세.”

짐 머레이가 수혁과 일행을 데리고 경찰서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짐 머레이의 경호원들과 수행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일은 잘 마무리되셨습니까?”

“그래.”

하지만 대답하는 짐 머레이의 표정은 별로 탐탁지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이후에 다른 조치를 취할 게 확실했다.

“자리를 옮겨야겠군.”

“근처에 조용한 곳이 있을까요?”

“물론이네.”

짐 머레이가 그렇다고 하자, 수혁이 최은송을 쳐다봤다.

“잠시 제임스와 함께 있을래요? 짐이랑 이야기 좀 하고 돌아갈게요.”

“같이 가면 안 돼요?”

조금 전에도 큰일이 날 뻔했다.

그래서 다시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요.”

수혁이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젓자, 최은송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다며 제임스와 함께 리무진에 올라탔다.

“당신은…….”

수혁이 톰을 돌아봤다.

이 일의 발단이 되었던 소방관.

수혁은 잠시 그를 쳐다보며 고민했다.

‘소방관이라면 내일 도움이 될 거 같기도 한데.’

분명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에게 얘기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기로 했다.

“자네가 톰 브래디군.”

수혁이 그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짐 머레이가 톰을 아는 척했다.

“아는 분이에요?”

수혁이 놀랐고, 톰 역시 눈을 크게 떴다.

“저를 아십니까?”

톰은 짐 머레이 같은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을 아는 것 같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곳으로 오며 알아봤네. 뉴욕 소방서의 구조대장이라더군.”

“……그래요?”

수혁의 표정에 놀람이 서렸다.

소방관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구조대장이라니?

한국과 비슷한 시스템인 미국 소방 체계라면, 톰은 상당히 높은 직책에 있는 소방관이었다.

“ENGIEN 316의 구조대장 톰 브래디입니다.”

톰은 정식으로 수혁에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구조대장 정도면 엄청 도움이 될 텐데.’

일단 부릴 수 있는 직속 부하의 숫자가 거의 20명에 육박한다.

‘더 많을지도 모르고.’

만약 톰이 도와준다면,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생길지도 몰랐다.

‘에라, 모르겠다.’

수혁은 눈을 질끈 감고 톰에게 말했다.

“같이 가죠.”

일단 자세한 설명은 짐 머레이에게만 한 뒤, 톰과 경찰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짐 머레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수혁은 톰과 함께 짐 머레이의 차에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차 안에서 짐 머레이가 운을 뗐다.

하지만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 안에는 톰과 그의 수행 인원들이 함께 탑승해 있기 때문이었다.

“도착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더 급한 것은 수혁이었다.

당장에라도 내일 마라톤 대회에서 테러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조급함과 답답함 덕분에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멈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카페였다.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카페는 조용한 곳과 거리가 멀었다.

“걱정 말게, 이미 비워놨으니.”

수혁이 조용한 곳을 찾는다는 말을 들은 짐 머레이의 수행원들이 이미 장소를 마련해 둔 상태였다.

이곳은 짐 머레이가 뉴욕에 오면 자주 들르는 카페로, 오너와 막역한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들어가지.”

짐 머레이는 톰에게 잠시 차에서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는, 수혁과 함께 카페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카페의 오너로 보이는 중년인이 공손하게 짐 머레이를 맞이했다.

“오랜만일세.”

“너무 오랫동안 안 오셔서 무슨 일이라도 나신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좀 바빴지.”

짐 머레이와 오너는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적당한 것 하나씩 내다 주고, 자리를 피해주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오너가 커피 두 잔을 만들어 내왔다.

그러고는 짐 머레이의 부탁대로 자리를 비워주었다.

둘만 남게 되자 수혁은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이제 한번 들어보지.”

“내일 센트럴 파크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것, 알고 계시죠?”

수혁의 질문에 짐 머레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나 역시 대회 후원자들 중 한 명이니.”

그것까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테러였으니까.

“내일 그곳에서 테러가 일어날 겁니다.”

담담하게 앉아 수혁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짐 머레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다시 말해보게. 뭐가 일어난다고?”

“폭탄 테러.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말아주십쇼.”

테러라니!

미국인들에게 있어 테러는 공포의 대명사이자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어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것이 911테러 희생자 추모를 위한 마라톤 대회에서 일어난다고?

“그걸 대체 어떻게…….”

짐 머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수혁을 향해 물어보다 입을 다물었다.

수혁이 묻지 말아달라고 했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궁금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수백 가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짐 머레이는 그중 하나를 입에 올렸다.

“확실한가?”

이게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질문이었다.

“네. 확실합니다.”

“맙소사…….”

짐 머레이가 신음했다.

수혁이 농담 따먹기를 하기 위해 자신을 뉴욕까지 불렀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알아낸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기에 이렇게 급하게 자신을 찾았을 것이다.

“어디서? 언제 일어나지?”

짐 머레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것까진 저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마라톤 대회 도중 두 차례의 폭탄이 터지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거라는 겁니다.”

짐 머레이가 머리를 감싸 안으며 신음했다.

수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혁이 왜 이렇게 자신을 다급하게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짐 머레이는 수혁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선한 마음을 믿었고,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능력도 믿었다.

그는 수혁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짐 머레이는 수혁을 신뢰했다.

“일단은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겠죠.”

자신은 할 수 없었지만, 짐 머레이라면 가능했다.

심지어 조금 전의 일 덕분에, 뉴욕 경찰서의 서장은 짐 머레이의 말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그리고?”

“밖에 있는 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 소방서의 도움이 필요했다.

만전을 기하긴 하겠지만, 테러를 100% 막을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때를 대비해 구조대원들이 필요했다.

물론 그전에 폭탄 수색에도 필요할 테고.

“그것 역시 내가 알아서 하지.”

“저는 생각이 짧아서 이 정도 방법밖에는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혹시 다른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수혁의 질문에 짐 머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앞서 말한 두 가지 먼저 하지. 다른 방법은 그 이후에 생각해 보고.”

짐 머레이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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