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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59화 (259/425)

레스큐 시스템 259화

이전 생에서 올해 가장 큰 이슈가 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테러였으니까.

유럽.

그중에 특히 독일에서 몇 차례나 테러가 일어나며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유럽 전체가 비상체제에 돌입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테러는 비단 유럽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바로 미국.

그것도 이 센트럴 파크에서 씻을 수 없는 테러가 다시 한 번 일어났다.

그것도 911테러의 추모를 위해 마라톤 대회가 열리던 바로 그날.

수혁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최은송에게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둘러대고는 호텔로 돌아온 뒤,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먼 미국 땅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이때의 수혁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테러가 일어났고, 최소한 수십 명이 죽는다.

그리고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뒤늦게 터진 폭탄 때문에 구조 작업하던 소방관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이 정도 사실밖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어디서 폭발이 일어났는지 정도만 알아도…….’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텐데.

십수 년 전 뉴스로 잠깐 본 것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였다.

“수혁 씨, 괜찮아요? 병원 안 가도 되겠어요?”

최은송이 그런 수혁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산책을 잘하고 있다 갑자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머리가 아프다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잠깐 두통이 생긴 것뿐이니까. 지금은 멀쩡해졌어요.”

수혁은 최은송이 걱정하지 않도록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별로 소용은 없는 것 같았다.

수혁은 웃는다고 웃었지만, 최은송이 보기엔 여전히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어요. 아무래도 제임스한테 얘기해서 병원을 가봐야…….”

최은송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수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만류했다.

정말로 머리가 아픈 게 아니었으니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괜히 시간과 돈만 버릴 뿐이었다.

쉬고 있을 제임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기도 했고.

“나 정말 괜찮아요.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

마라톤 대회에서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수혁이 그렇게 말을 해도 최은송은 믿어줄 것이다.

수혁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화상을 입고 죽을 뻔했을 때 충분히 느꼈을 테니까.

하지만 말할 순 없었다.

죽었다가 눈을 떠보니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미안하긴 했지만, 말을 해줄 순 없었다.

최은송은 그런 수혁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해줄 수 있는 말이었으면, 수혁이 먼저 해줬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알았어요.”

최은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내가 된 자신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 있다는 것이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사람이라면 그런 비밀 한두 개쯤은 갖고 있게 마련이었다.

최은송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누워서 쉬어요. 제가 걱정돼서 그래요.”

최은송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는 걱정 끼칠 순 없었다.

일단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신혼여행 첫날밤이었으니까.

새벽에 홀로 침대에서 일어난 수혁은 맥주 한 캔을 땄다.

최은송은 피곤했는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수혁은 거실로 나와 맥주를 마시며 창밖을 쳐다봤다.

“어떻게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마라톤 대회에서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며 경고해 주면, 경찰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공중전화를 통해 익명으로 신고한다?

그것 역시 불안했다.

영화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가?

공중전화로 통화해도 CCTV나 최첨단 기술을 통해 순식간에 범인을 찾아내는 장면 말이다.

과장이 있기야 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걸리면 난감해진다.

물론 정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자신이 조금 고초를 겪는 것이 수십 명의 사람이 죽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그래도 다른 방법을 한번 찾아보긴 해야지.”

수혁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직접 테러범들을 잡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수혁은 소방관이었지, 경찰이 아니었다.

누가 테러범인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수혁이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총을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곳은 미국이었다.

“테러범 말고 폭탄을 찾…….”

그때 수혁이 눈을 반짝였다.

폭탄을 찾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마라톤 대회 당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 것이고, 그런 곳에서 작은 폭탄을 찾는 것은 해변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수혁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위기감지Ⅲ’ 스킬.

그것이라면 폭탄을 당연히 위험 요소로 판단할 것이다.

수혁은 그 주변을 돌아다니다 붉게 빛나는 것만 찾으면 된다.

‘이거다.’

물론 이 방법만 사용할 순 없었다.

폭탄을 발견한다고 해도 수혁에게는 그것을 처리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찾지 못할 확률도 있었으니까.

수혁은 곧장 다른 방법도 떠올릴 수 있었다.

맥주 한 캔을 마시자 두뇌 회전이 조금 빨라진 것 같았다.

“짐.”

자신이 직접 경찰에 신고하는 것보단, 짐 머레이가 하는 건 어떨까?

둘의 사회적 위치가 달랐으니, 무게감 역시 다를 것이다.

그리고 짐 머레이의 수완이라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변명 정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

“몇 시지?”

수혁이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4시 30분.

지금 연락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아침에 바로 연락해야겠어.’

짐 머레이라면 수혁이 생각하지 못한 수를 짜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혁은 일단 내일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손에 들고 있는 맥주 캔은 어느새 비어 있었다.

***

톰은 무기력한 얼굴로 출근했다.

먼저 출근해 있던 부하들이 인사를 건넸지만, 톰은 대충 손을 휘저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후우.”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를 괴롭히는 환청은 이맘때쯤 더욱 심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었으니까.

톰은 지끈지끈한 두통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그의 부하 중 하나인 로이스가 들어왔다.

“대장, NYPD에서 요청이 들어왔어.”

로이스의 말에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쳐다봤다.

“내일 마라톤 대회.”

“아아.”

뉴욕 소방관들은 매년 열리는 추모 마라톤 대회를 지원한다.

혹여나 생길지 모르는 환자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해오던 일이었는데 정신이 없어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누가 나가기로 했지?”

“각 대의 1팀이 나가기로 결정 났어.”

구조대와 구급대, 그리고 화재 진압대까지.

마라톤 대회에 화재 진압대가 왜 필요할까 싶지만, 그들은 펌프차를 이용해 지열을 식히고 마라토너들의 체온을 낮추는 역할을 해준다.

날이 많이 선선해지긴 했어도 마라톤을 뛰다 보면 꽤나 더워지기 때문이었다.

“지원에 차질 없게 해.”

“그건 걱정하지 말고.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로이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런 것보단 대장인 톰이 훨씬 걱정되었다.

로이스 역시 그날, 그 현장에 있었다.

새파란 신참이었기에 위험한 현장에는 접근조차 못했지만, 그날 톰이 대부분의 동료를 잃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시기가 되면 저렇게 괴로워한다는 것도.

“내일 일 끝나면 한잔할까?”

우울함을 술로 푸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우울함을 잊을 수 있었다.

다음 날이 되면 더욱 힘들어지겠지만,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그거 좋지.”

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같은 날 집에 가서 혼자 있는 것보단, 로이스와 같이 진탕 마시고 뻗는 쪽이 훨씬 나았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로이스는 씨익 웃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톰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렇게 축 처져 있을 순 없었다.

마라톤 대회의 지원 나가는 것은 내일이었지만, 오늘부터 준비해야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톰은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십니까?”

부하 중 한 명이 갑자기 밖으로 나온 톰을 보며 의아해했다.

“센트럴 파크. 주변 좀 둘러보고 오겠다.”

톰의 말에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구조대장인 톰은 현장에 출동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지간한 대형 재난이 아니라면 굳이 출동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가 자리를 비워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솔직히 말단 대원인 그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톰은 소방서를 나와 걸었다.

거리는 활발했다.

수많은 뉴요커와 관광객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옛날의 그 지옥 같았던 일이 언제 일어났냐는 듯.

‘나만 과거에 갇혀 있는 것 같군.’

톰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그날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센트럴 파크에 도착한 톰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라톤 코스를 따라 이동하며, 혹시나 문제가 될 사항이 있는지 확인했다.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이는군.’

내일도 대회가 열리기 전에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지만, 지금 보기엔 괜찮았다.

톰은 한참 동안이나 꼼꼼하게 주변을 체크했다.

그러다 조금 이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동양인.

처음에는 단순한 관광객인 줄 알았다.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동양인은 고개만 돌려도 수십 명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계속해서 동선이 겹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톰의 눈에 의심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동양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를 쫓아오는 건 아니군.’

동양인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 의심스러웠다.

그는 마라톤 코스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톰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내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선수 같진 않았다.

선수였다면 코스의 상태와 동선을 생각하지, 코스 주변의 건물이나 쓰레기통 등을 확인하지는 않을 테니까.

한참 동안이나 그를 지켜보던 톰은 결국 앞으로 나섰다.

“실례합니다.”

“……네?”

톰이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걸자, 동양인은 당황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지금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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