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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55화 (255/425)

레스큐 시스템 255화

여름의 끝자락.

수혁은 그야말로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바빴다.

대형 태풍의 발생과 특수 구조대로의 전출 준비로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버틸 만했다.

조금 바쁘긴 했어도 수혁의 체력과 능력이라면 그리 힘든 건 아니었으니까.

수혁이 정말로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이걸로 할까요?”

바로 결혼 준비.

최은송과의 결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수혁은 일이 끝나면 항상 최은송과 결혼 준비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수혁은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전에 본 것과 지금 최은송이 고른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 참, 대충 보지 마고요. 정말 이게 더 나아요?”

최은송이 청첩장 샘플을 양손에 들고 수혁에게 보여주었다.

수혁은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아내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최은송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두 개 다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수혁이 고른 것으로 결정했다.

더 고민해 봐야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수혁을 괴롭히는 일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걸로 할게요.”

장장 두 시간에 걸친 청첩장 선택이 끝났다.

수혁은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결국 그날도 수혁은 진이 다 빠진 채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힘들어요?”

집으로 가는 차 안.

최은송이 조심스럽게 수혁에게 물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을 모두 숨기지는 못한 듯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애써 표정을 관리한다고 했는데, 최은송이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정말 괜찮아요.”

수혁은 혹시나 최은송의 기분이 상할까 봐 재빨리 부정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괜찮아요.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결혼을 앞둔 많은 커플이, 결혼 준비하며 엄청나게 싸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경험자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최은송 역시 주변에 먼저 결혼한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최은송은 자신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두 사람은 항상 서로를 배려하고, 상대를 끔찍이도 아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그들이 왜 싸움을 시작했는지 이해가 갔다.

최은송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수혁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랐다.

지금은 너무도 수동적인 데다, 어떻게 보면 관심조차 없어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물론 이해는 간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구하느라 뛰어다니고, 퇴근 후에도 쉬지 못한 채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남자들은 본래 이런 쪽에 관심이 별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해는 해도,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수혁은 운전하다 최은송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슬쩍 곁눈질로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한다?’

수혁도 결혼 준비를 잘하고 싶었다.

최은송 혼자 준비하는 것이 아닌, 같이 서로 의견을 맞추며 최대한 즐겁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수혁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로 수혁은 어느 게 더 좋고, 어느 게 더 예쁘고, 어느 게 더 나은지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수혁이 보기엔 모두가 예쁘고,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최은송과 평생을 함께하기 위한 준비다.

그런 마당에 수혁의 눈에 뭔들 안 좋아 보일까?

길거리의 쓰레기를 가져다줘도 수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본래부터 낯부끄러운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최은송의 기분이 조금 상한 것 같았다.

수혁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어렵다, 어려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재한의 충고가 생각났다.

‘결혼 준비하면서 최대한 열정적으로 맞장구를 쳐 줘야 한다고 했었지.’

그렇지 않으면 꽤나 고생할 거라고.

다른 선배들도 마찬가지의 충고해 줬었다.

그땐 무슨 말인가 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확 와닿았다.

수혁은 옷을 갈아입고 아무런 말도 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켠 최은송의 옆에 앉았다.

“미안해요.”

그러곤 사과했다.

갑작스런 사과에 최은송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가요?”

“내가 너무 무심했죠? 결혼 준비는 혼자 하는 게 아닌데…….”

수혁이 미안함 가득 담긴 음성으로 말하자 최은송은 그를 잠시 쳐다보다 풋- 하고 웃었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최은송은 아하하- 웃으며 수혁의 손을 잡았다.

“화 안 났어요?”

집으로 오는 내내 차에서 별다른 말도 없기에 화가 많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웃는 것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화가 왜 나요. 제가 그렇게 속 좁은 여자인 줄 알았어요?”

아니다.

최은송은 배려심이 많다 못해 차고 넘칠 정도였다.

“물론 조금 서운했던 건 사실이에요. 저는 조금 더 수혁 씨랑 재미있게 준비하고 싶었는데…….”

수혁이 다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최은송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전부예요.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같이 다녀주는 게 어디에요?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최은송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수혁이 자신에게 이런 사과를 하는 것 자체가 그녀는 미안했다.

너무 자신의 생각만 한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수혁 씨는 잘해주고 있어요.”

수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최은송을 바라봤다.

힘든 것으로 따지면 그녀가 훨씬 더 힘들 것이다.

최은송 역시 고된 일을 끝마친 후 돌아다니는 것은 똑같았으니까.

그녀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배려해 주는 것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내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나 보네요.”

좋은 일을 많이 하긴 했다.

결국 사람을 구하다 죽음까지 맞이했으니까.

최은송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은송 씨 같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수혁이 최은송의 이마에 키스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식.

수혁과 최은송은 어서 그날이 되길 바랐다.

“요즘 힘들지 않냐?”

출근한 수혁에게 이재한이 다가오며 은근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 왜요?”

수혁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반문했다.

“결혼 준비 말이야. 이제 슬슬 대판 싸우고 스트레스받고 할 때가 됐는데?”

누가 보면 그러길 바라는 사람 같았다.

수혁이 피식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힘들 게 뭐가 있어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준비할 게 훨씬 적잖아요.”

식장은 소방서.

많은 사람을 초대할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집이나 혼수 같은 문제도 이미 모두 마련되어 있었기에 딱히 신경쓸 것이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준비할 것도 남들보단 적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 제수씨가 화 안 내?”

이재한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혼 준비하며 싸우는 것은 통과의례였다.

평생을 남으로 살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

그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결혼 전의 예비 신부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지니, 서로 삐끗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안 싸운다고?

이재한은 수혁의 말을 믿지 못했다.

천사 같던 자신의 아내도 결혼 준비 때는 악마가 따로 없을 정도였으니까.

“뭐, 조금 서운하긴 한 것 같더라고요.”

수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이해해 주던데요. 화도 안 내고, 심지어 너무 힘들면 혼자 알아봐도 괜찮다고 하고.”

물론 수혁은 그것을 거절하고 같이 다니기로 했지만.

“……진짜 천사는 제수씨였구만.”

이재한이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얘기 중이야?”

때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던 박상태가 물었다.

그러자 이재한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수혁의 말을 고대로 전했다.

그런데 박상태의 반응은 이재한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제수씨라면 그럴 수 있지.”

박상태는 최은송이라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박상태가 겪은 최은송은 이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성격 자체가 선하고, 상대를 향한 배려심도 깊었다.

애초에 수혁과 결혼을 결심한 것만 봐도 최은송은 성자(聖者)나 다름없었다.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수혁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심하면 다치고,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날뛰는 것을 보고 어떻게 결혼을 결심한단 말인가?

하지만 최은송은 수혁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수혁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음에도 말이다.

최은송은 수혁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입원한 것을 모르지 않았다.

신일역 붕괴 사고나 전통 시장 화재 때는, 수혁의 곁에서 병간호까지 했다.

그러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결심했으니, 최은송이 수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그런데 고작 결혼 준비를 하며 다툰다?

박상태는 싸운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았다.

그 말에 이재한이 허허- 웃었다.

괜히 자신만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주 잘나신 커플이구만.”

이재한이 질투와 부러움이 담긴 눈빛으로 수혁을 쏘아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수혁은 그런 이재한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저렇게 유치한지…….

“저놈은 결혼해도 철이 안 드네.”

박상태 역시 혀를 ‘쯧쯧’ 차고는 수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준비는 잘되어가냐?”

“이제 대충은 끝난 것 같아요.”

“벌써 다음 주네.”

“그러게요. 시간 엄청 빨리 가네요.”

결혼식까지 이제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쏜살같은 시간이었다.

“초대할 사람들은 정했고?”

소방서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식이었는지라, 많은 사람은 초대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가족과 친척, 가까운 친구 몇 명 정도뿐.

가족과 친척이 없는 수혁은 친구와 지인 몇 명만을 부르기로 했다.

“저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은데, 은송 씨는 좀 골치가 아픈가 봐요.”

인맥이 너무 넓다 보니 하객을 고르는 것도 문제였다.

최은송이 고민하는 것을 본 수혁은, 차라리 그냥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최은송이 거절하는 바람에 예정대로 신일서에서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옆에서 많이 도와줘. 괜히 멋대가리 없이 굴지 말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결혼까지 10일.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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