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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51화 (251/425)

레스큐 시스템 251화

전승철은 생각했다.

만약 그날, 그 자리에, 자신이 아닌 수혁이 있었다면 어땠을지.

백준하를 포함한 여섯 명의 희생자.

만약 수혁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들도 희생되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만큼 수혁이란 구조대원은 특별했으니까.

그래서 필요했다.

언제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몰랐으니까.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특수 구조대엔 수혁이 꼭 필요했다.

이 자리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엔 좋지 않은 곳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해야만 했다.

수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런 전승철을 바라봤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와 거칠기 이를 데 없는 피부.

초췌한 그의 얼굴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했는지 잘 보여주었다.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혹여나 수혁이 백준하의 자리에 지원하지 않을까 봐 두려운 듯했다.

실제로 수혁은 지원할 생각이 없었으니, 전승철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의 대답이 수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전승철이 고개를 숙였다.

이 부탁은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수혁의 입장이라면 절대 지원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부탁한다.”

전승철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수혁 역시 몸을 돌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수혁이 특수 구조대에 지원해서 들어간다 해서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내키질 않았다.

백준하의 빈자리를 자신이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전승철이 저렇게 부탁하는데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가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충분히 짐작했으니까.

‘모르겠다.’

수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상의해야 할 것 같았다.

“…어제는 잘 다녀왔냐.”

“네.”

박상태의 물음에 수혁이 힘없이 대답했다.

동료 소방관의 장례식에 참여한 것이, 이번 생에서만 벌써 두 번째였다.

이전 생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았지만,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이게 익숙해지면 미친놈이지.’

수혁은 곧장 박상태에게 다가갔다.

“상태 형.”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박상태가 고개를 들었다.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심각해 보이는 수혁의 얼굴에 박상태가 일어났다.

“커피?”

“그게 좋겠네요.”

둘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 자판기 쪽으로 향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커피를 뽑은 박상태가 수혁에게 한 잔 건네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안 좋은 일이냐?”

“안 좋은 일은 아닌데…….”

수혁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어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제 특수 구조대의 전 팀장을 만났어요.”

“많이 힘들 텐데, 위로 좀 잘해주고 오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부하가 함께 수색하던 도중 순직을 했다.

전승철이 받았을 충격은 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터였다.

“그럴 정신이 없었어요.”

수혁 역시 큰 충격을 받았으니까.

수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전 팀장님이 이번에 특구에 자리가 났으니까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종이컵을 입에 가져다 대던 박상태가 멈칫했다.

수혁의 표정이 심각한 이유를 이제야 안 것이다.

“…뭐라고 대답했냐?”

“확답은 안 했어요.”

박상태는 수혁의 마음을 짐작했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수 구조대에 들어가자니 백준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거절하자니 전승철이 마음에 걸릴 것이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수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흠…….”

박상태가 면도를 하지 않아 까끌까끌한 턱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조언을 구하러 온 수혁이었다.

아니, 처음이었던가?

박상태는 이 막내 같지도 않은 막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툭- 내뱉었다.

“들어가라.”

“네?”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박상태의 모습에 살짝 멍해졌다.

“들어가라고.”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마음먹을 수 있었으면 박상태에게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박상태가 수혁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너 소방관 왜 됐냐?”

박상태의 물음에 수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무도 당연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그저 공무원 철밥통을 차기 위해 지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혁은 정말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이 됐다.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

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소방관의 길을 택했다.

“사람 구하려고 하는 거지?”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고민할 게 뭐 있냐? 순직한 대원의 자리에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려? 그럼 더 열심히 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기게 노력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박상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특수 구조대에 들어가라 했다.

이유는 하나다.

‘사람 구하는 소방관이니까.’

마음은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딴 이유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자리를 외면한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거면 된다.”

박상태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실제로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불편한 만큼,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더 많은 사람을 구하면 된다.’

수혁은 박상태의 말을 곱씹었다.

머릿속이 완전히 정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안개가 가신 듯, 방향은 잡을 수가 있었다.

“생각해 볼게요.”

수혁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결정하는 건 너지.”

박상태의 입장에선 수혁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신일서에 남아주는 쪽이 더 좋았다.

전승철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수혁이 특수 구조대로 간다 하여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수혁을 담기엔 신일서 구조 3팀은 너무도 작았다.

수혁은 조금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이를 구해야 할 사람이었다.

“머리 빠질 때까지 고민하고 결정해라. 어떤 결정을 해도 난 네 편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그럴게요.”

박상태에게 상담하길 잘했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들어가자.”

어느새 텅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놈의 새끼들은 아직도 출근을 안 했네…….”

사무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슬슬 인수인계를 받고 일할 준비를 할 시간이 되어가는데, 수혁과 박상태를 제외하면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것이다.

박상태는 눈살을 찌푸리며 수혁을 돌아봤다.

“아까 했던 말 취소. 너 그냥 남아 있어라. 믿을 놈이 하나도 없네.”

며칠이 지났다.

너무도 바쁜 일상에, 수혁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백준하의 죽음도 조금씩 희석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식이 들려왔다.

“김수혁!”

박상태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수혁을 불렀다.

대원들의 시선이 모두 박상태에게 집중됐다.

“이거 가져가.”

박상태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게 뭡니까?”

김강식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박상태가 아닌, 박정우에게서 흘러나왔다.

“아마 특수 구조대 채용 공고일걸요?”

박상태의 고개가 박정우를 향해 돌아갔다.

“넌 대체 모르는 게 뭐냐?”

자신도 서장에게 방금 받은 것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까지는 까마득히 모르는 일이었고.

그런데 박정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놈이었다.

“그냥 들었습니다.”

박정우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거참. 귀가 좋은 건지, 발이 넓은 건지. 인마, 소식 듣는 거 절반만큼만 일을 좀 해봐라.”

박상태가 핀잔을 주자 박정우의 입술이 또 튀어나왔다.

“오리 새끼도 아니고, 무슨 말만 하면… 쯧.”

혀를 찬 박상태는 종이를 수혁에게 건넸다.

수혁은 그것을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채용 인원은 한 명.

별도의 지원 자격은 없었고, 1차 서류심사와 2차 체력 테스트로 진행된다고 쓰여 있었다.

“지원 자격이 없네요?”

“이번엔 그렇더라. 뭐, 왜 그런지 예상은 간다만…….”

보통은 몇 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특수 구조대에 지원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도의 경력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수혁을 염두에 두었기에 그런 듯싶었다.

전승철이 수혁을 곧장 특수 구조대로 집어넣을 수는 없겠지만, 지원 자격을 변경할 능력은 충분히 되었으니까.

“결정은 했냐?”

며칠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수혁이었다.

박상태는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결국은 본인이 결정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박상태는 수혁이 최선의 결정을 할 것이라 믿었다.

“결정했어요.”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정말 수많은 고민을 했다.

결혼을 약속한 최은송과도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양호나 김갑수, 심지어 신재식에게도 상담했다.

그리고 결국은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지원할게요, 특수 구조대.”

수혁의 말을 들은 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오직 박상태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뭐? 특구를 간다고?”

“이렇게 갑자기?”

김강식과 이재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뭘 그렇게 호들갑들이야? 저놈 특구 간다고 이전부터 얘기했었잖아.”

본래라면 처음 만들어질 때 창립 멤버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때 부상 당해 입원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퇴원한 이후에도 기회가 되면 특수 구조대로 간다고 이야기를 해왔고.

“아니, 그래도…….”

어제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가 갑자기 말을 들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평생을 자신들과 같이 일하진 못할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헤어지는 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직 시간은 있잖아요, 떨어질 수도 있고.”

수혁이 웃으며 말을 했다.

서류 심사나 테스트에서 떨어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특수 구조대 모집에는 전국에서 온갖 괴물들이 모두 모이니까.

대원들은 그런 수혁을 보며 생각했다.

‘퍽이나 떨어지겠다.’

서류 심사는 웬만한 결격 사유가 있지 않는 이상 거의 통과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수혁은 결격 사유는커녕, 가산점을 받을 일만 가득했다.

행안부 장관 표창도 받았고, 1계급 특진도 했으며, 무엇보다 독일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이런 놈을 어느 누가 서류 심사에서 떨어뜨리겠는가?

그리고 그다음에 있을 체력 테스트.

이건 더욱 확정적이었다.

수혁의 능력은 사람이라기보단, 괴물에 가까우니까.

최강 소방관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놈.

그런 수혁이 테스트에서 떨어진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수혁은, 이미 특수 구조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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