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50화
[어제 오후 4시경. XX시 천희동에 위치한 20층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로 구조대원 백 모 씨를 포함한 여섯 명이 사망하였으며…….]
순직.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절망.
수혁은 출근하다 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고는 차를 멈춰 세웠다.
‘어제 일어난 화재다.’
수혁도 그 화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일서의 관할 구역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곳인 데다, 어제는 비번이었기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에는 특수 구조대가 출동했다는 것을 들었기에, 더욱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가 아는 특수 구조대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백준하 선배.’
라디오에서는 백이라는 성밖에 밝히지 않았지만, 특수 구조대에서 백 씨 성을 가진 대원은 한 명밖에 없었다.
팀장인 전승철과 지원 나왔던 오지환, 이희도를 제외한 두 명의 대원 중 한 명.
별다른 인연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달간 서로 부대끼며 사람을 구했던 사이다.
모르는 사람의 순직 소식을 들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판에, 자신이 알고 있는 구조대원이 순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혁이 눈을 감고 핸들에 머리를 기댔다.
너무도 큰 충격과 슬픔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분명 수혁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제 일어난 화재는 수혁이 출동하지도 않은 데다, 미리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수혁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백준하가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마나 한 가정이었다.
수혁은 그 현장에 출동할 수 있을 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만약 했다고 해도 백준하가 죽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수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료 소방관이 순직하면, 살아남은 소방관들은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수혁은 머리를 박은 채, 소리 죽여 울었다.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일이었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똑똑-
그때였다.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혁이 고개를 들어 옆을 쳐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교통 경찰이었다.
그는 갓길에 주차한 수혁의 차를 발견하고 다가온 것으로 보였다.
“창문 좀 내려주시죠.”
수혁은 재빨리 눈가를 닦아내고는 경찰의 지시대로 창문을 내렸다.
경찰은 갓길 주차로 생각하고 딱지를 끊으려다, 수혁의 얼굴을 보고는 멈칫했다.
그리고 동시에 수혁의 옷을 확인했다.
‘소방관.’
경찰은 수혁이 근처에 있는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임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수혁은 누가 봐도 전혀 괜찮은 모습이 아니었다.
“음…….”
경찰은 잠시 고민했다.
딱지를 끊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운전하기 힘드신 상태입니까?”
경찰은 수혁이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고는 그렇게 물었다.
수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괜한 오해를 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아닙니다. 운전 중에 별로 좋지 못한 소식을 들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수혁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라디오에서 백준하 순직에 관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어제저녁. 화재 현장에서 구조하다 목숨을 잃은 소방관이 있습니다. 백준하 소방장. 어린 딸 두 명의 아버지인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경찰의 시선이 라디오를 향했다.
그러곤 뭔가를 짐작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그 말에 수혁이 움찔했다.
“사람을 구하다 돌아가신 건데,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응당 그래야죠.”
수혁의 입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네, 그러실 겁니다.”
“딱지는 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갓길에 정차하시면 안 됩니다. 위험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운전하십쇼.”
경찰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갔다.
“하아.”
수혁 역시 남아 있던 눈물을 모두 닦아내고는 다시 차를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에 도착한 수혁은 마음을 추스르고 차에서 내렸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느꼈던 상쾌한 기분은 사라진 지 오래.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상을 하며 출근할 수도 없었다.
수혁은 룸미러를 통해 얼굴을 한번 확인하고는, 숨을 고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차마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는 나오질 않았다.
“……왔냐?”
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저들 역시 어젯밤 소식을 들은 듯했다.
‘못 들었을 리가 없지.’
수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김수혁.”
박상태가 그런 수혁을 불렀다.
“어제 순직한 백준하라는 구조대원. 아는 사람이냐?”
박상태는 백준하가 수혁이 한 달간 지원을 나갔던 특수 구조대의 대원이라는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네, 아는 분이에요.”
수혁의 대답에 박상태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 젠장.”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소방관은 평범한 직장 생활과는 다르다.
옆에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선,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있을 정도의 유대감.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 해도, 동료들 간에는 그만큼의 끈끈함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동료가 죽은 것이고.
일면식도 없는 자신 역시 이렇게 슬픈데, 수혁의 심정이 어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박상태 역시 몇 번이나 동료를 잃어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작년에 순직한 구조 1팀장을 비롯해서…….
“괜찮습니다.”
수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
하지만 박상태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상태 형, 내일 잠깐 반차 좀 써도 될까요?”
평소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다녀와.”
그런데 박상태는 허락해 주었다.
수혁이 반차를 내고 어디를 갈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았으니까.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대화가 끝이 났다.
숨 막히게 무거운 공기만이 사무실을 내리눌렀다.
다음 날.
수혁은 제복이 아닌, 정복을 입고 어딘가로 향했다.
백준하의 빈소.
특수 구조대의 대원인 만큼, 시청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이었다.
빈소에는 이미 수많은 소방관이 정복을 입은 채 입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수혁에게도 낯이 익은 이들이 많았다.
“왔군.”
“……오랜만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승철이었다.
그는 수혁과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수혁이 특수 구조대에 입단할 때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장례식장이 아닌.
한숨을 내쉬는 전승철은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눈 밑이 퀭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뉴스에서는 단순히 순직했다고만 나왔지, 어떻게 순직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승철은 고개를 저을 뿐,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도 백준하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뒤를 따라오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수혁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당시의 이야기만 꺼내도 전승철에겐 고통일 것이다.
잠시 후, 장례식이 시작됐다.
순직한 백준하에 대한 애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유족이나 소방관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백준하를 추모했다.
수혁 역시 마찬가지.
국화 한 송이를 빈소에 올려둔 수혁은, 백준하의 사진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경찰의 말이 생각났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수혁은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그리고 만약 백준하가 자신과 같은 기회를 얻는다면…….
‘그때는 소방관 하지 마세요.’
평범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길.
수혁은 백준하의 영정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 나왔다.
“김수혁.”
그런 수혁을 전승철이 불러 세웠다.
전승철은 그 잠깐 사이에 더욱 초췌해진 것 같았다.
“잠시 이쪽으로 가지.”
수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전승철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전승철이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뒤에 서지 마라.”
수혁의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무거운 음성.
전승철은 백준하의 죽음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수혁과 전승철은 사람들이 많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갑자기 전승철이 이런 곳까지 자신을 불러낼 만한 이유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전승철은 수혁을 보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때에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싫다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전승철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뭐지?’
전승철은 왠지 이 말을 하는 것을 꺼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꼭 해야만 한다는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특수 구조대에 결원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네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수혁의 표정이 단번에 구겨졌다.
특수 구조대의 빈자리.
그 자리의 본래 주인은 지금 저기서 싸늘하게 누워 있는 백준하의 것이었다.
이게 지금 백준하의 장례식에서 꺼낼 이야기인가?
“제정신입니까?”
물론 수혁은 특수 구조대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언젠간 꼭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특수 구조대에서 대원 모집 공지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달간 한솥밥을 먹으며 생사고락을 같이한 백준하의 빈자리에 들어오라니.
수혁은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제정신인 게 이상하지.”
전승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동료를 잃어본 경험이 처음이었다.
이전에 병원 화재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때도 부하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니까.
그 충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눈을 감기만 해도 백준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등 뒤에 누가 서 있으면, 그것이 꼭 백준하인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렇게 전승철의 정신은 조금씩 피폐해져만 갔다.
“하지만 이 자리에 네가 들어왔으면 하는 건 진심이다.”
“뭡니까, 대체?”
수혁은 전승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승철은 수혁을 가만히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
기다림에 지친 수혁이 눈살을 찌푸릴 때쯤.
굳게 닫혀 있던 전승철의 입이 열렸다.
“네가 아니면 안 된다.”
이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나는 더 이상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내 부하든, 요구조자든, 단 한 사람도 내 앞에서 목숨을 잃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단 말이다.”
전승철의 음성이 조금씩 격해졌다.
눈빛에서 광기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소방관이라면 그 누구라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나 혼자로는 안 돼.”
전승철이 수혁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네가 필요하다, 김수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