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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49화 (249/425)

레스큐 시스템 249화

수혁의 상황과 비슷한 장면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대원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똑같은 장면을 연출한다면, 너무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비리 폭로에 참여한 대원은 박상태, 김강식, 그리고 수혁뿐이었다.

다른 대원들은 최소한의 재미를 주기 위해 출연자들과 함께 열심히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고.

“심각하네요.”

김강식이 혀를 찼다.

그가 간 건물은 예전에 김강식이 점검을 나갔던 건물이었다.

유진 방재라는 곳에서 시설 점검을 하고 있는 상가.

김강식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엉망인 소방 시설들을 낱낱이 파헤쳤다.

그와 같은 팀인 개그우먼은 놀라서 말도 잇지 못했다.

“이, 이거 방송에 나가도 되는 거예요?”

개그우먼이 VJ를 향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건 PD님이 판단하시겠죠.”

VJ는 어깨를 으쓱하며 촬영을 지속했다.

“이거 왠지 큰 문제가 될 것 같은데…….”

그녀는 왠지 디뎌선 안 될 곳에 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강식은 그런 개그우먼을 슬쩍 쳐다봤다.

‘쯧.’

그녀가 3일간 배치를 받았던 곳은, 시애와 같은 구급대였다.

그리고 같이 일한 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판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모습의 시애와는 달리, 뺀질거림의 극치를 보여줬다고 했던가?

힘든 일은 은근슬쩍 시애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방송 분량만 챙기며 얌생이처럼 일했다고 들었다.

자신과는 사는 세계가 달랐으니, 그런 행동에 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김강식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문제가 되면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김강식이 약간은 퉁명하게 말을 뱉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뭐…….”

그녀는 손을 들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말리지는 않겠지만, 관여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실히 밝힌 것이다.

김강식은 그러거나 말거나, VJ와 함께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며 엉망진창인 소방 시설들을 모두 촬영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어느 정도 촬영한 뒤, 김강식이 VJ를 쳐다봤다.

그러자 VJ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만 나가죠.”

김강식의 말에 개그우먼이 반색했다.

“소방관이시니 이런 거에 민감하신 건 알겠는데요, 지금은 그거보다 미션을 빨리 끝내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퇴근하죠.”

자기 딴에는 호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김강식이 보기에는 밉상일 뿐이었다.

“그거참 죄송하네요.”

김강식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뒤를 따라 건물을 나갔다.

“최종 우승은 김예슬 씨, 박정우 씨!”

촬영이 끝났다.

가장 많은 미션을 성공한 팀은 바로 박정우와 김예슬 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션을 하기로 한 이재한, 강효상이 귀찮아서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박정우만이 김예슬과 한 팀이 된 것에 들떠 열성적으로 미션에 임했다.

박정우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김예슬을 껴안았다.

‘얼씨구?’

수혁은 이건 나중에 박정우가 형수님을 만나면 썰을 풀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상품은 바로, 한우 세트입니다!”

“와아!”

박정우와 김예슬의 얼굴이 밝아졌다.

수혁도 조금은 부러운 눈빛으로 박정우를 쳐다보았다.

‘소고기가 상품인 걸 알았으면 조금 열심히 해볼 걸 그랬나?’

비리 폭로를 위한 촬영을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솔직히 마음만 먹는다면 1등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혁과 박정우 사이에는 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격차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저 다른 선배들처럼 조금 귀찮았기에 설렁설렁했건만…….

수혁이 입맛을 다셨다.

“우승자 팀은 상품 받아 가시고.”

마지막으로 클로징 촬영을 했다.

시간도 늦었고, 모두가 지친 상태였는지라 금세 촬영을 마칠 수가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3일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출연자들과 제작진들이 구조 3팀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 저희야 매일 하던 일을 했을 뿐인데요. 고생은 여러분이 하셨죠.”

김강식이 마주 인사하며 손을 내저었다.

“저희 같은 초짜들을 데리고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거든요.”

김예슬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김강식은 여전히 괜찮다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그리 힘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조금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출연자들도 지시에 잘 따랐고, 어떤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런 촬영이라면 언젠가 또 찍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기 사거리 앞 삼겹살집에서 회식 있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필히 참석해 주셔야 합니다!”

이기석 PD가 회식 선언을 했고, 그것을 들은 모두가 환호했다.

“다른 팀들은요?”

이번 촬영은 구조 3팀만 참가를 한 것이 아니었다.

화재 진압대와 구급대에서도 같이 고생을 했는데, 구조 3팀만 회식에 참가할 순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에 맞춰서 모두 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수혁의 물음에 조연출 한 명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 그거 다행이네요.”

방송국 사람들이 일을 그리 허술하게 처리하진 않았다.

“30분 뒤 회식 시작이니, 늦지 않게 오세요! 아, 그리고 오늘은 술도 허락해 드립니다!”

다시 한 번 환호가 터져 나왔다.

공짜 술만큼 맛있는 술도 없었으니.

제작진들은 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구조 3팀 역시 옷을 갈아입으러 서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기석 PD가 그런 구조 3팀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일단 보고는 받았습니다. 편집만 잘하면, 괜찮은 장면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는 VJ들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소방 설비들이 얼마나 엉망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내일부터 따로 취재해서 추가 정보도 방송할 생각입니다.”

예능국에서 너무 깊게 파고들 일은 아니었는지라, 보도국에 자료를 넘기고, 심도 있는 폭로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거 좋네요.”

예능으로 이슈를 만들고, 뉴스로 진지하게 다룬다.

모르긴 몰라도, 위쪽에서는 상당히 당황할 게 틀림없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 일에 연루된 회사들과 고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고발까지 갈 생각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수혁이 바라는 바였다.

“고생 좀 해주세요.”

“고생이랄 것 있나요. 저희에게도 득이 돼서 하는 일인데요.”

이기석 PD가 씨익- 웃었다.

소방관들에겐 썩은 곳을 도려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자신들은 시청률을 잡을 수 있고.

덤으로 공익을 위한 방송사라는 이미지까지.

이게 윈-윈 아니겠는가?

“최대한 자극적으로 편집해 보겠습니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테니까요.”

“부탁드립니다.”

수혁은 방송 쪽으론 아는 게 전무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리라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럼 방송은 언제쯤 되는 겁니까?”

최대한 빠르게 방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물었다.

“방송 예정일은 3주 후부터입니다. 다만, 그 내용은 조금 더 걸릴 테고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하긴, 생방송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편집에 걸리는 시간도 무시 못 한다고 들었다.

“알겠습니다. 방송되기 전에 연락 한번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기석 PD는 자신만 믿으라며 웃어 보였다.

“그럼 씻고 나오시죠. 저는 회식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기석 PD가 밖으로 나가자, 박상태가 다가왔다.

“잘 됐다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수혁의 대답에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함과 귀찮음을 감수하고 촬영에 참가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랐다.

“일단은 씻죠. 사람들 기다릴 텐데.”

그날 밤, 수혁과 구조 3팀은 꽤나 술을 거하게 마셨다.

내일은 비번이었으니까.

* * *

콰아앙-!

건물이 뒤흔들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전승철은 벽에 손을 짚으며 간신히 균형을 잃지 않았다.

“백준하!”

전승철이 자신과 함께 수색하던 대원을 불렀다.

“괜찮습니다!”

다행히 백준하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전승철은 이번엔 무전기를 들었다.

“보고해!”

폭발이 일어난 것은 건물의 지하.

전승철은 그곳으로 향한 대원들이 걱정된 것이다.

[플래시 오버가 일어났습니다!]

“부상자는?”

[경식이가 조금 충격받긴 했는데, 부상은 없습니다.]

이만한 폭발에서도 가벼운 충격을 제외한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에, 전승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구조자 위치 빨리 파악해서 탈출해. 10분 간격으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전승철은 무전기를 집어넣고 백준하를 돌아보았다.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벌써 두 시간째 이어지는 수색 작업.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망할.’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며 물을 뿌리고 있었지만, 불길은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물에 젖은 인화 물질들이 타오르며 연기를 심각하게 피우고 있었다.

‘시야 확보가 안 된다.’

전승철이 난색을 표했다.

몸을 숙여 연기가 적은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욱, 후욱.”

전승철은 기다시피 하며 복도를 이동했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이 건물 안에 남아 있는 요구조자의 숫자는 자그마치 50명이 넘는다.

그에 반해 구조대의 숫자는 고작 열두 명.

거기다 20층이 넘는 고층 건물이었는지라, 인명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럴 때 그놈이 있었더라면…….’

전승철이 수혁을 떠올렸다.

수혁이라면 이런 현장에서도 요구조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요구조자들이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생각하며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전승철은 천근 같은 몸을 이끌고 수색을 이어갔다.

“……려요!”

그때, 전승철의 귓가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았다.

백준하가 낸 소리인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사람?’

정확하지가 않았다.

단순히 화재로 인한 소음인지, 사람의 소리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전승철이 움직임을 멈추고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소리가 들려왔다.

“사, 사람 살려요! 누구 없어요?”

‘사람이다!’

분명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였다.

“요구조자 발견!”

전승철은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런 전승철의 뒤를 백준하가 급히 따랐다.

전승철이 도착한 곳에는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불길을 피해 작은 창고 안에 피신해 있는 상태였다.

요구조자를 확인한 전승철은 곧바로 보조 마스크를 꺼내 그녀에게 씌우고는, 뒤를 향해 소리쳤다.

“무전 쳐!”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백준하! 지금 뭐 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안 차……!”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 전승철이 멈칫했다.

그의 뒤에 있어야 할 백준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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