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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48화 (248/425)

레스큐 시스템 248화

“힘드시죠?”

이기석 PD가 출연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출연자들은 과장된 표정으로 엄살을 떨었다.

“아니, 저희 퇴근 아니었어요?”

“3일 동안 그렇게 고생시켜 놓고, 또 뭘 하려고 퇴근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PD님! 집에 좀 보내주세요, 제발!”

그들은 마치 추가 촬영이란 것을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몸서리까지 쳤다.

‘어떤 면으론 대단하네.’

수혁은 그들을 보며 감탄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녁을 먹고 쉬면서 추가 촬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이미 다 들어놓고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듯 연기를 하다니…….

“퇴근은 잠시 후로 미루고, 여러분께 한 가지 게임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기석 PD 역시 능숙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관찰 예능에 가까운 플롯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버라이어티와 비슷했다.

“제안이요?”

“지금 저희가 미션을 하나 드릴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만약 미션을 성공하시면, 준비된 상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기석 PD를 쳐다봤다.

그것은 다른 출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추가 촬영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상품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미션이 뭡니까?”

상품이라는 말에 박동석이 얼굴에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딘지 모르게 푸근해 보이면서도 살벌하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신일서 구조 3팀분들, 나와주세요!”

이기석 PD의 외침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카메라 앵글 앞으로 걸어나갔다.

수혁은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지만, 다른 대원들은 아니었다.

사무실 안에 설치된 카메라나 VJ 앞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그들의 행동이, 지금은 마치 로봇 같았다.

‘긴장들 하셨구나.’

지금까지의 촬영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에, 몸이 굳은 듯했다.

확실히 수많은 카메라와 제작진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 앞에 서려니 긴장될 만했다.

긴장한 대원들의 모습을 본 출연자들이 살짝 미소 지었다.

거칠게만 보이는 대원들이 의외로 귀엽게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구조대분들과 팀을 이뤄 한 가지 미션을 수행하게 될 겁니다.”

대원들이 모두 등장하자, 이기석 PD는 지체하지 않고 이번 게임의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일서 관할 구역 내에 있는 총 열 곳의 상가 건물에, 저희 제작진들이 미션을 숨겨두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상가 건물을 찾아내 미션을 수행하고, 제한 시간 내에 가장 많은 미션을 수행한 팀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기석 PD의 말에 출연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PD님, 이 근방에 상가 건물이 몇 개나 있는지 알고는 계시죠?”

김예슬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꽤 많지.’

수혁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출연자 여섯 명과 대원 여섯 명.

즉, 여섯 개의 팀으로는 한두 시간이 아니라 며칠은 걸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수혁과 대원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출연자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기석 PD에게 이미 이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션이 있는 위치에 대한 힌트 정도는 드릴 겁니다. 저희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이기석 PD는 웃으며 종이 여섯 개를 꺼냈다.

“각 미션 장소에 관한 힌트가 이 종이에 적혀 있습니다.”

이기석 PD가 종이를 흔들었다.

출연자들의 시선이 종이를 따라 움직였다.

“그럼 5분을 드릴 테니, 두 명씩 짝지어 팀을 만드세요. 먼저 팀을 구성하시는 분들부터 힌트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팀을 만들라는 말에 출연자들이 고개를 홱- 돌려 대원들을 쳐다봤다.

“오빠!”

“수혁 씨!”

그리고 시애와 김예슬이 동시에 수혁을 향해 달려왔다.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수혁이 움찔하며 놀랄 정도였다.

“……언니.”

시애는 자신과 동시에 수혁에게 달려가는 김예슬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언니는 촬영 내내 오빠랑 같이 일했잖아요.”

시애는 수혁과 같은 팀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김예슬 역시 마찬가지.

별다른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게임에서 이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지난 3일간 구조 3팀을 봐온 결과 수혁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다른 대원들도 대단했지만, 수혁은 차원이 달랐다.

무엇이 다른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었지만…….

“계속 손발을 맞춰왔으니까, 내가 끝까지 같이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김예슬은 지지 않고 시애와 눈싸움을 벌였다.

대원들이 부러운 눈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특히 박정우.

그는 수혁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

“아주 복이 터졌구만, 터졌어.”

자신의 옆에 아무도 오질 않았기에 더욱 마음이 상한 박정우였다.

“자, 시간 없습니다!”

이기석 PD가 시계를 보여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고 초조해진 그녀들은 옥신각신하다, 결국은 수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빠가 정해요!”

“수혁 씨가 정해요!”

이렇게 난감할 때가…….

이 미션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미션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소방 설비 점검에 대한 문제 제기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려는 둘을 보곤, 수혁은 살짝 가슴이 찔려왔다.

하지만 다들 피곤한 와중에 더는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일.

수혁은 잠시 생각하다 시애를 선택했다.

“아싸!”

시애는 환호성을 질렀고, 김예슬은 배신당한 여주인공의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시애가 조금 더 편하기도 했고, 김예슬은 박정우에게 양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3일 내내 김예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자신의 선배를 위해서 말이다.

수혁이 슬쩍 박정우를 돌아보며 윙크를 했다.

그러자 10㎝는 나와 있던 박정우의 입이, 함박웃음을 그렸다.

‘잘해보십쇼.’

턱도 없는 일이겠지만.

기다리고 있던 이기석 PD는 가장 먼저 결성된 팀부터 힌트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이기석 PD의 시작 선언과 함께 가장 빨리 힌트를 받은 팀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박상태와 박동석 팀이었다.

둘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뒤따라 달려가는 VJ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그 뒤로 차례대로 이동했고, 꼴찌에서 두 번째로 수혁의 팀이 출발했다.

“여기가 어디일까요?”

힌트 종이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쓰여 있었다.

총 열 가지.

이기석 PD가 말했던 상가 건물 열 곳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암호였다.

“음…….”

수혁은 일단 고민하는 척했다.

사실 대원들은 미션 장소 열 곳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바로 그곳을 향하지는 않는다.

실수인 것처럼 문제가 있는 건물에 들어가 미션을 찾는 척하며 문제점들을 찾아낼 것이다.

수혁 역시 그럴 계획이었다.

“이쪽으로.”

수혁은 자신이 맡은 방향으로 시애와 함께 이동했다.

“암호가 너무 어려워요.”

이동 도중에 암호를 붙잡고 씨름하던 시애가 울상을 지었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그 암호는 이 근방 지리에 빠삭한 대원들이 아니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실행 착오 후, 암호를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실행 착오 도중, 생각지도 않은 문제점들을 밝혀내고 말이다.

“일단 닥치는 대로 들어가 보는 건 어때?”

어차피 암호도 못 풀고 있었으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다 예전에 점검 나갔던 건물 쪽을 가리켰다.

“저기 한번 가보자.”

5층짜리 상가 건물.

예전 박상태와 함께 하나 방재 산업의 사장인 강선우를 만난 곳이었다.

‘한번 X돼 봐라.’

수혁은 보무도 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관리인은……. 없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건물 관리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곳이었으니, 관리인이 상주할 리가 있겠는가?

수혁은 관리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미션 같은 거 있나 한번 찾아봐.”

“저만 믿어요! 저 이런 거 엄청 잘하거든요!”

시애는 열심히 미션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혁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수혁이 찾는 것은 미션이 아니었다.

“음?”

건물 내를 뒤지던 수혁이 갑자기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뭐 찾았어요?”

그런 수혁을 발견한 시애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니, 그건 아닌데…….”

수혁은 말꼬리를 흐리며 VJ를 쳐다봤다.

그러곤 한쪽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이쪽에 혹시 조명 좀 비춰주실 수 있으세요?”

수혁의 요청은 갑작스러웠지만, VJ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수혁의 요구를 자연스럽게 들어주었다.

각 팀 담당 VJ들 역시 이기석 PD에게 이야기를 들은 덕분이었다.

VJ가 카메라의 조명으로 수혁이 가리킨 곳을 비췄다.

“역시…….”

수혁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오빠?”

수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시애가 괜히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여기 봐봐.”

수혁이 가리킨 것은 바로 화재경보기였다.

“이게 왜요?”

시애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혁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수혁이 설명해 주었다.

“이거 고장 났어.”

“네?”

시애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루이틀 된 것도 아니네. 아마 작동 안한 지 오래됐을 거야.”

수혁은 화재경보기를 잠시 살펴보다, 다시 VJ에게 물었다.

“혹시 이 건물 좀 돌아봐도 됩니까?”

“오빠?”

시애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봤다.

화재경보기가 고장이 난 것은 문제겠지만, 솔직히 시애는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화재경보기의 대부분은 고장이 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단 얼른 미션을 끝내고 싶었다.

“잠시만, 시애야.”

수혁이 시애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시애가 멈칫했다.

수혁의 표정이 정말로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미션 같은 타령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시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VJ가 뒤늦게 수혁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럼 잠시만 둘러보겠습니다.”

수혁은 시애와 VJ를 데리고 건물 곳곳을 돌아다녔다.

‘위험감지Ⅲ’로 찾아낸 위험 요소들.

모두 하나같이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거나, 아예 작동 자체를 하지 않는 소방 설비의 모습에 시애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단순히 화재경보기 하나 고장 난 정도가 아니었다.

스프링클러, 방화문, 소화전 등등.

만약 화재가 난다고 해도, 이것들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오빠, 이거…….”

며칠간 소방서에서 일한 덕분에 어깨너머로 듣고 본 것이 있는 시애는, 조금이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네가 봐도 문제 있어 보이지?”

“네.”

시애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엔 VJ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약속된 질문.

수혁이 VJ, 아니, 카메라를 쳐다보며 쐐기를 박았다.

“만약 여기서 불이 나면,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그만큼 엉망입니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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