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43화
“오늘 어땠어?”
수혁이 시애를 향해 물었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며, 조금의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죽을 것 같아요.”
시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 그녀가 출동한 횟수는 무려 열여섯 번.
구급대의 특성상 구조대보다 출동이 잦긴 했지만, 오늘은 특히 더 바빴던 것이다.
오죽하면 자리에 앉아 쉬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시애의 모습에 수혁이 피식 웃었다.
“아침에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사실 시애는 구급대에 배치를 받았을 때 함박웃음을 지었다.
수혁과 같이 촬영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구조대보다는 구급대가 훨씬 편하고 쉬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구급대의 일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단순히 환자를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만 이송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피가 낭자한 현장도 봐야 했고, 환자의 가족들과 드잡이질도 해야만 했다.
그뿐인가?
무슨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건지, 주취자들의 냄새와 언어폭력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것은 버틸 만했다.
어린 나이부터 연예계 생활을 하며 볼꼴, 못 볼꼴 다 봐온 그녀였으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생사가 오가는 환자의 옆에서, 가슴을 졸이며 자리를 지켜야 하는 건 정말 너무도 힘들었다.
환자가 병원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덕분에 한 번 출동하면 온몸에서 진이 다 빠졌다.
“이럴 줄은 몰랐죠.”
시애는 울상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하루 종일 긴장한 채로 있었더니,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사람들은 구급대 일이 별로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진짜 잘못 생각하는 거야.”
수혁은 구급대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구조대가 구급대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구조대는 한 번 출동 나가면 엄청난 체력과 심력을 소모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급대가 쉽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다.
구급대원들 역시 구조대원 못지않게 체력적으로 힘이 들고, 그 이상으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는다.
특히 뉴스에 보도되는 소방관에 대한 폭언과 폭행은 대부분 구급대원이 당하는 일이었다.
“반성하고 있어요.”
시애 역시 수혁의 말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구급대에 배치를 받았다고 좋아했던 아침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나저나, 세상엔 참 몰상식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시애는 오늘 하루를 떠올려 봤다.
생명이 경각에 달한 사람을 늦지 않게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에 성공하면, 그 뿌듯함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생명을 지켜냈다는 생각에서 오는 희열은 그 어떤 때보다 짜릿했다.
하지만 모든 출동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않은 출동이 훨씬 많았다.
“무슨 일 있었어?”
수혁은 시애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눈치를 챘지만, 모른 척 물었다.
시애의 표정이 고자질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의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글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시애는 이때다 싶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애의 말은 수혁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세상에. 구급차를 택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그뿐이 아니었다.
구급대원들을 무슨 자신의 종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애는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뭐, 아직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이 좀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
물론 지극히 상식적이고 예의가 바른 분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백 명의 사람들이 칭찬해 줘도, 한 명의 욕하는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었다.
“뉴스에서 가끔 보긴 했는데, 진짜 아주 소수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하루만 해도 세 번이나 경험했다.
그 말은 곧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술에 취해서 구급대원을 때리는 사람도 많아.”
실제로 얼굴을 맞아 광대뼈 골절을 일으킨 구급대원도 있었다.
다행히 신일서에서는 그 정도의 사건은 벌어진 적이 없긴 했지만, 자잘한 폭언 정도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심지어 신체가 건장한 구조대에게도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진짜 앞으로 소방관분들께 잘해야겠어요.”
시애의 말에 수혁이 웃었다.
뭘 어떻게 잘한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런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리고…….’
수혁이 곁눈질로 시애의 옆쪽에 있는 카메라를 쳐다봤다.
‘이 방송을 본 사람들도 조금은 더 관심을 가져주겠지.’
단순히 뉴스에서 기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눈으로 보길 바랐다.
그래서 단 몇 명이라도 시애와 같은 마음을 갖기를.
“아, 근데 오빠. 촬영 끝나고 뭐하실 거예요?”
시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퇴근해야지.”
“아까 PD님이 저녁 식사 같이했으면 하시던데.”
“PD님이?”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오늘 출동은 크게 힘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굳이 쉴 필요가 없긴 했다.
“잠시만. 은송 씨한테 한번 물어볼게.”
“아, 네.”
시애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결혼 전부터 저러는 걸 보면, 분명 잡혀 살 게 틀림없어.’
시애는 수혁의 모습에서 애처가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시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수혁은 최은송과의 통화를 끝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같이해도 될 것 같다.”
“그래요? 그럼 제가 PD님한테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나만 가?”
“아니요. 각 팀장님들하고 시간 되시는 분들도 같이 가실 거예요.”
팀장들은 모르겠지만, 다른 대원들은 과연 휴식을 포기하고 저녁을 먹으러 갈까 싶었다.
“그래, 알았다. 조금 이따 퇴근하고 보자.”
“네, 오빠. 수고하세요.”
시애는 다리를 두드리며 구급대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고생이 많구만.’
어린 나이의 아이돌이 하기에는 구급대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원들이 편의를 많이 봐주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힘이 들 것이다.
수혁은 기특한 눈빛으로 시애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깜짝이야!”
뒤를 본 수혁이 화들짝 놀라며 움찔했다.
“아니, 언제 오셨어요?”
수혁의 뒤쪽 벤치에 음울한 표정의 김예슬이 앉아 있었다.
카메라도 없이 혼자서.
“……제가 먼저 와 있었는데요.”
김예슬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그래요?”
수혁은 자신이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보단, 그녀의 표정이 더 신경 쓰였다.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으십니까?”
김예슬의 표정은 어둡다 못해 그늘이 진 것 같았다.
“힘들어서요.”
“하, 하하.”
확실히 김예슬도 오늘 수고가 많았다.
별다른 일을 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수혁을 따라다니며 자잘한 일을 도왔던 것이다.
그중에는 그녀가 들기엔 꽤나 무거운 장비들도 있었으니, 지금 온몸에 알이 배겨 있을 것이다.
“수혁 씨는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지치기는커녕, 아침과 똑같이 쌩쌩한 수혁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저는 이게 생활인데요, 뭘.”
“다른 분들은 다 힘들어 하시던데?”
“……제가 그분들보다 체력이 조금 더 좋긴 합니다.”
수혁의 대답에 김예슬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존경스럽네요, 여러분 모두.”
그녀는 세상에서 자신의 일이 제일 힘든 줄 알았다.
남들은 쉽게 돈을 번다고 하지만, 배우도 배우 나름대로의 고충과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김예슬은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폄하하는 이들을 가장 싫어했다.
“사실 소방관 일이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었다.
고작 하루.
그것도 수박 겉핥기식의 체험이었지만, 소방관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군대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내가 나온 부대가 가장 빡센 부대다.’
그것은 사회에서도 통용된다.
남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든,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힘든 법이었다.
“그렇긴 하죠.”
김예슬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시애랑은 꽤나 친해 보이시네요?”
“인연이 조금 있어서.”
“그때 그 일 말이죠?”
라오스에서 수혁이 시애를 구조한 일은 꽤나 유명한 일이었다.
특히 연예계에 있는 김예슬로선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고.
“그렇죠. 그 후로도 몇 번 인연이 있었고요.”
수혁의 말에 김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럽네요.”
김예슬은 진심으로 시애가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뭐가요?”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부러워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가 수혁을 부러워한다면 모를까.
“그냥……. 그렇게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김예슬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런 김예슬의 모습을 보며 수혁이 뺨을 긁적였다.
‘저게 그 연예인들의 우울증 같은 건가?’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사며, 평범한 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삶을 사는 연예인들.
하지만 그들에게도 그림자는 있었다.
수혁은 왠지 그 어두운 일면을 살짝 본 것 같았다.
“아마 그 자리에 시애가 아니라 김예슬 씨가 있었어도 저는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수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박동석 씨가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연예인이 아닌 그 어떤 사람이 있었어도 마찬가지였겠죠.”
김예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진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까.”
김예슬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픽- 하고 웃어버렸다.
“고마워요.”
“뭘요.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건데요.”
재난 현장에서만 사람을 구하는 것만이 구조가 아니었다.
힘든 사람.
외로운 사람.
삶에 지친 사람.
그런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 역시 구조였다.
그리고 수혁은 구조대원이었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이것 참…….”
퇴근한 수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기석 PD와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퇴근 안 하세요?”
수혁이 이재한에게 물었다.
“저녁 먹고 가려고.”
“원래 이런 자리 참석 잘 안 하잖아요.”
박상태가 직접 남으라고 하지 않는 이상, 대원들은 대부분 곧장 집으로 돌아간다.
꿀 같은 휴식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 3팀은 물론이고 구급대와 화재진압대까지.
단 한 명의 열외도 없이 모든 대원이 참석하기로 했다.
“야, 연예인이랑 밥 먹을 수 있는데 누가 집에 가겠냐?”
그 이유는 하나였다.
출연자들도 함께한다는 것.
그중에는 아이돌도 있었고, 여배우도 있었으니, 도저히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형수님한테 혼날걸요.”
“걱정 마라. 이미 다 얘기해 놨으니까.”
이재한은 꽃미남 배우로 유명한 송진수의 사인을 받아가기로 아내와 딜을 끝마친 상태였다.
수혁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만 출발합시다.”
이기석 PD는 이럴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는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사람들을 인솔했다.
신일서의 대원들, 출연자, 제작진까지.
5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저녁을 먹으러 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그냥 회식 아닌가?’
수혁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람들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