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41화
현장에 도착한 김예슬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이게…….’
사고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재난 영화도 찍어본 적이 있었고, 꽤나 하드한 액션 영화도 찍은 경험이 있었다.
당시 김예슬은 세트의 리얼함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영화 세트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분위기가.’
리얼함?
이곳은 현실, 그 자체였다.
“으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무너진 가벽 밑에 깔린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영화와는 다른 참혹함에 김예슬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였다.
“따라오세요.”
누군가 그런 김예슬의 어깨를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기, 김수혁 씨?”
바로 수혁이었다.
수혁은 두려움에 몸이 굳은 김예슬을 데리고 구조차 뒤로 향했다.
“정신 차리시고, 이거 들어요.”
수혁은 구조차 뒤에서 장비 몇 가지를 챙겨 그녀에게 건넸다.
김예슬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수혁이 준 장비들을 받아 들었다.
“으윽!”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에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조심. 그거 비싼 겁니다.”
수혁이 김예슬에게 경고하고는, 자신도 장비를 챙겨 들었다.
“그럼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수혁은 김예슬을 이끌고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가 가도 괜찮을까요?”
이건 훈련이나 영화 촬영이 아닌 실제상황이다.
그런 곳에서 자신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현장은 괜찮았다.
추가 붕괴의 위험도 없었고, 그저 매몰되어 있는 요구조자들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저 옆에서 수혁을 돕는 정도라면 크게 위험할 일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데리고 다니고 싶진 않지만.’
아무리 위험하지 않은 현장이라 해도, 김예슬은 일반인.
가능하면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촬영 중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좀 더 신경쓰면 돼.’
일단 ‘위기감지Ⅲ’에 잡히는 것도 없었으니, 수혁은 김예슬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현장 근처에 다다르자, 급박한 공기가 느껴졌다.
김예슬은 다시 한 번 발을 멈칫- 했다가,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고는 걸음을 내디뎠다.
현장에는 이미 다른 대원들이 도착해 구조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거 이리 주시고.”
수혁은 김예슬의 품에 있는 장비들을 건네받았다.
“스프레다 가져와.”
그때, 박상태가 수혁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돌아보며 말했다.
수혁은 자신이 챙겨온 장비를 건넸다.
유압 스프레다.
요구조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가벽들을 들어 올려 틈을 만들 수 있는 장비였다.
가벽이 아무리 진짜 돌보다는 가볍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힘만으로 들어 올리기엔 힘들었기 때문에, 이 장비를 사용해야만 했다.
장비를 연결한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동 걸어.”
수혁이 장비를 켜자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예슬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박동석과 VJ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보다 큰 소리에 모두가 놀란 것이다.
하지만 대원들은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구조 작업에만 열중했다.
유압 스프레다가 작동하며 가벽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금 더 천천히.”
요구조자들의 상태가 그리 나쁘진 않았다.
가벽의 잔해에 깔려 자잘한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다행히 모두 의식이 있었고, 출혈 역시 크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서두르다간 2차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더 컸다.
지금은 속도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했다.
박상태의 세심한 조절 덕분에 요구조자가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의 틈이 만들어졌다.
“빼!”
박상태가 신호를 주자, 대기하고 있던 김강식과 이재한이 요구조자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힘에 요구조자는 손쉽게 잔해 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로 구급대에 인계하고, 우린 다음 요구조자에게로 이동한다.”
구조된 요구조자는 박정우의 손에 의해 구급대에게 인계됐다.
“괜찮으실까요?”
구급대에 배치를 받아 첫 출동을 한 시애가 그런 요구조자를 보며 박정우에게 물었다.
“상태가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자세한 건 병원에서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겉으로는 큰 문제 없어 보이네요.”
시애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박정우가 씨익 하고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다행이네요.”
시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박정우는 시애와 구급대원들에게 요구조자를 부탁하고는 다시 구조 현장으로 향했다.
구조는 물이 흐르듯 진행됐다.
수혁과 박상태가 틈을 만들고, 김강식, 이재한이 요구조자를 꺼낸다.
박정우는 구조된 요구조자를 구급대에 넘겼으며, 강효상은 주변 정리를 맡았다.
한 치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
“대단하네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원들을 지켜보고 있던 박동석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가벽에 깔린 요구조자 네 명을 구조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았다.
박동석은 만약 자신이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움직였다면, 얼마나 걸렸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직 한 명도 구하지 못했겠지.’
박동석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김예슬 역시 박동석의 말에 동의했다.
사람을 구하는 속도나 방법도 놀라웠지만, 김예슬은 그것보단 대원들의 침착함이 더욱 놀라웠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걸까요?”
자신은 구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현장의 분위기에 온몸이 굳어졌다.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는 상황이었는지라, 직접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구조 3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예슬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러니까 전문가들이겠죠.”
두 배우는 1초도 눈을 떼지 않고 대원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들의 뒤에 있는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였고.
“수고하셨어요.”
구조가 끝나자 김예슬이 대원들에게 다가가며 물을 건넸다.
화재 현장이 아니었는지라 방화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뙤약볕 아래에서 힘을 썼기에 그들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박상태가 가장 먼저 그것을 받으며 웃었다.
“어으, 살겠네.”
제작진이 미리 준비해 둔 차가운 생수통을 목에 가져다대며 열기를 식혔다.
“수혁 씨도… 응?”
김예슬은 마지막으로 수혁에게 다가가 생수통을 전해 주던 김예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수혁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별로 한 일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자신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데도 말이다.
‘원래 땀이 없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뽀송뽀송해 보였다.
마치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와 몸을 말린 것처럼 말이다.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김예슬의 모습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아니요.”
김예슬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수혁은 싱겁다는 듯 픽- 하고 웃었다.
“첫 현장인데, 어땠습니까?”
촬영을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출동한 현장.
대형 재난도 아니었고, 희생자가 발생한 곳도 아니었건만, 김예슬은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하루에 이런 출동을 몇 번이나 나가나요?”
김예슬의 물음에 수혁이 잠시 계산을 해보았다.
“평균적으론 6, 7번 정도인 것 같네요. 뭐, 많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출동하지만요.”
“7번…….”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하루에 두 번, 많아야 세 번 정도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사고가 많이 나나요?”
“생각보다 많이 납니다. 이 도시가 좀 유별난 것도 있긴 하지만…….”
낙후된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근무하는 소방관들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할 것이다.
수혁의 설명에 김예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단 한 번의 출동.
그마저도 장비 한번 옮긴 것을 제외하면 한 일도 없었음에도, 벌써 지쳤다.
그런 것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과연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 고민되었다.
수혁은 그녀의 표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지만, 별다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고작해야 3일.
사람은 그 정도 고생을 한다고 잘못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일단 복귀 준비 합시다. 빨리 복귀해야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을 테니까.”
“아, 네.”
김예슬이 수혁을 도와 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동석 씨는 이것들 좀 차로 옮겨주세요.”
김예슬이 들기 어려운 장비들은 박동석에게 맡겼다.
“맡겨만 주시죠.”
구조대원들은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 정도는 자신들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박동석은 재빨리 장비들을 옮겼다.
‘확실히 힘은 좋네.’
박동석의 육체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혁이 감탄할 정도로 근력과 체력이 뛰어났다.
둘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현장 정리가 빠르게 끝났다.
“복귀!”
다시 한 번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한 박상태가 복귀를 명령했고, 대원들이 구조차에 탑승했다.
“와, 시원해.”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차에 타자, 김예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 전까진 쪄 죽을 것 같았던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이 없었다는 거 아세요?”
이때다 싶었던 박정우가 김예슬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정말요?”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여름에 구조를 끝내고 차에 탔더니, 찜통 같다면 대체 어떤 느낌일지 상상도 되질 않았다.
“그래서 엄청 힘들었죠. 불 끄고, 사람 구하고 왔더니, 차 안도 불 속 같았으니까.”
김예슬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대원들을 둘러봤다.
그런데 그때였다.
“누가 보면 그때를 경험한 줄 알겠네.”
박상태가 웃으며 박정우를 쳐다봤다.
“저놈 저거 소방관 된 지 3년밖에 안 됐어요. 그리고 그땐 에어컨 빵빵하게 잘 나왔습니다.”
“……네?”
“허풍떠는 거라고요.”
대원들이 킥킥대며 웃었다.
“아, 팀장님!”
“뭐, 인마. 거짓말을 하려면 좀 정도껏 해야지. 뭐? 에어컨이 없어서 힘이 들어?”
박상태의 핀잔에 박정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괜히 허풍 한번 떨어보려다가 괜히 쪽만 팔렸다.
대원들은 그런 박정우를 보며 다시 한 번 폭소했고.
“그래도 여름이 힘든 건 사실이긴 합니다.”
한참을 웃던 박상태가 김예슬과 박동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화재가 발생한 현장의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 글쎄요?”
김예슬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자, 박상태가 뺨을 긁적이며 가르쳐 주었다.
“최소한 400도 이상입니다. 그런 곳에서 방화복을 껴입고 20㎏의 장비를 착용한 다음, 요구조자를 찾으러 돌아다녀야 하죠.”
그뿐인가?
의식을 잃은 요구조자를 발견하면 업거나, 안고서 탈출해야만 한다.
그때의 열기와 체력 소모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버틸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