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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38화 (238/425)

레스큐 시스템 238화

“예능이요?”

박정우의 눈이 커졌다.

출근하자마자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번에 우리 서에서 예능 한 편 촬영하기로 했다.”

그 말에 박정우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전에 그 사람들은 아니죠?”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을 떠올린 박정우가 몸서리쳤다.

“아니야. 그리고 이번엔 절대 그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시킨 뒤에 진행할 예정이다.”

박상태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언제부터 찍는 겁니까?”

“다음 주 월요일.”

“그렇게 빨리요?”

오늘이 목요일이었으니, 다음 주 월요일이면 며칠 남지도 않았다.

그런 중요한 일정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잡혔다는 것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그런 걸 이제야 알려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박정우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박상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런 박정우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인마, 내가 너한테 보고해야 하는 짬밥이냐?”

그건 그랬다.

박정우는 구조 3팀 내에서 수혁을 제외하면 막내였으니 말이다.

팀장인 박상태가 그와 상의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먼저 말씀해 주실 순 있었잖아요…….”

박정우는 박상태에게 얻어맞은 자리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가르쳐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실제로 처음 수혁에게 연락이 온 뒤, 이틀 만에 모든 절차가 통과되고 촬영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박상태마저도 오늘 아침에 서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였으니 대원들에게 미리 알리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애들 오면 한 번에 할 테니까, 일단 근무 준비부터 해.”

박정우는 여전히 섭섭한지, 혼자 궁시렁거리며 치즈를 안고는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대원들이 한두 명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김수혁, 이리 와봐라.”

수혁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부르는 박상태의 음성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어요?”

“전에 말한 예능. 허가가 났다.”

“아, 연락받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출근하는 와중에 이기석 PD와 통화를 한 참이었다.

“월요일부터 촬영 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일정에 대해선 들은 거 있냐?”

“음…….”

수혁은 조금 전 통화를 떠올렸다.

“촬영은 2박 3일로 계획 중이고, 출연진은 총 여섯 명. 우리 팀에 두 명, 진압대에 두 명, 구급대에 두 명. 이렇게 배치해서 체험할 예정이랍니다.”

수혁의 말에 박정우가 관심을 보였다.

“누가 온다디?”

조금 전까지 섭섭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잔뜩 들뜬 표정이었다.

“저도 그건 잘 모르겠네요. 일단 시애만 알고 있어요.”

“시애? 그 버블걸스?”

“네.”

박정우의 눈이 커졌다.

소방서에서 찍는 예능이라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설마하니 걸그룹이 출연할 줄이야!

박정우는 예전의 안 좋았던 기억을 통째로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시애면 걔지? 전에 네가 구조했던?”

얘기를 듣고 있던 김강식 역시 흥미가 생겼는지 은근히 끼어들며 물었다.

“맞아요. 전에 보신 적 있으실 텐데.”

“그래, 기억난다. 너희 집 집들이 때 봤었지.”

“……저만 빼고 봤어요?”

당시 박정우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에 홀로 보지 못했었다.

자신만 왕따를 당한 것 같은 배신감에 박정우가 치를 떨었다.

“그러게 누가 다쳐서 입원하래?”

박상태가 혀를 차며 그런 박정우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럼 우리 팀에 오는 것도 누구인지 몰라?”

“네. 그건 아마 촬영 날 추첨 같은 걸 해서 결정하는 것 같더라고요.”

직업 체험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플롯은 예능이었다.

당연히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주기 위해 다양한 게임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일서의 대원들은 출연자들과 함께 여러 미션과 게임을 같이 진행하기도 할 것이다.

수혁이 이기석 PD에게 들은 것이었다.

“힘들겠구만.”

수혁의 설명을 들은 김강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일하는 것만으로도 지치는데, 출연자들 신경쓰랴, 게임하랴.

생각만 해도 벌써 지치는 것 같았다.

“좀 참아. 이유가 있어서 받아들인 거니까.”

박상태가 김강식을 다독였다.

“이유요?”

수혁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직 박상태와 서장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대원들이 모두 출근했으니, 슬슬 밝힐 때가 되었다.

“며칠 전에 저희가 물 먹은 거 있잖아요.”

수혁이 말을 하자 김강식이 눈매가 좁아졌다.

“점검일 말하는 거지?”

“네. 없는 시간 쪼개서 불법 행위들 잡아냈더니, 위에서 신경 끄라고 한 거요.”

당시의 일은 구조 3팀뿐만이 아니라, 신일서의 모든 소방관이 분노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수고가 헛되이 날아간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안전을 담보로 장난질 치고 있는 놈들을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개 소방관에 불과한 그들로선 해결할 방법이 없어 속으로 삭일뿐이었다.

“이번 예능 촬영하면서 그 일 좀 제대로 터트려 보려고요.”

설명은 이 한마디로 충분했다.

수혁이 세운 계획을 알아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강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위에서 아주 난리가 나겠네.”

“쉽게 덮지도 못할 걸요?”

“그렇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줄 테니까. 우리가 멘트 몇 마디 보태면 더 금상첨화고.”

단순히 뉴스와 기사로 보도하는 것과 연예인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파급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은 갑자기 예능 촬영을 하게 된 이유를 납득했다.

그들도 이렇게 쉽게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 꺼려졌던 촬영이 이제는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빨리 다음 주가 됐으면 좋겠네요.”

시간은 쏜살과 같이 흘러갔다.

순식간에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된 것이다.

수혁은 약간의 긴장과 기대를 함께 느끼며 집 밖으로 나섰다.

“잠깐만요.”

뒤에서 최은송이 그런 수혁을 불러 세웠다.

“오늘부터 촬영이라면서요. 옷 좀 제대로 정리하고 가야죠.”

최은송은 구겨진 수혁의 근무복을 손바닥으로 펴주었다.

“괜찮겠어요?”

수혁의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그녀로선 이번 촬영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별로 힘들진 않을 테니까.”

위험한 현장에는 데리고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딱 예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선까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도 신경쓸 게 많아서 힘들 텐데.”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요.”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출연진들을 데리고 다닌다면 조금 힘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조 3팀에 수혁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최은송이 걱정하는 것만큼 힘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조심해요.”

“알겠어요. 그럼 다녀올게요.”

수혁은 최은송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는 다시 출근길에 나섰다.

“날씨 좋네.”

이제 완연한 여름이 찾아왔다.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공기가 후끈했다.

“다들 고생 좀 하겠네.”

이 더위에 방화복을 입고 뛰어다닐 출연진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불쌍해졌다.

한여름의 방화복은 소방관들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고역이니까.

“뭐, 나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수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촬영인데 자신의 차를 끌고 갔다가 카메라에 잡히기라도 한다면, 괜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수혁의 차는 소방관의 봉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비쌌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한참을 달리자, 신일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복작복작했다.

“벌써 준비하고 있네.”

수혁도 나름 빠르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제작진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것도 도착한 지 한참 되었는지, 어느 정도 준비도 다 되어가는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수혁이 그들 사이로 들어가며 인사했다.

“아, 수혁 씨!”

그런 수혁을 발견한 이기석 PD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찍 나오셨네요?”

수혁이 그와 악수하며 물었다.

“준비할 게 많으니까요.”

제작진이 신일서에 온 것이 벌써 두 시간 전이었다.

그사이 카메라 설치와 모니터실까지 마련했다.

“출연자들은 조만간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누구누구 오는지 알 수 있습니까?”

수혁은 아직도 출연자들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했기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일단 시애 씨는 알 테고…….”

이기석 PD는 출연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말해주었다.

“다들 유명한 분들이네요.”

전부 수혁이 이름을 알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이들이었다.

이기석 PD가 이번 기획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단은 화제성이 중요하니까요.”

아마 이번 편의 출연자들만으로도 꽤나 이슈가 될 것이 분명했다.

수혁은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 될수록 좋았기에, 내심 기뻐했다.

“그럼 수혁 씨 먼저 준비하실까요?”

이기석 PD가 한쪽에 신호를 주자, 제작진 중 한 명이 마이크를 들고 와 수혁의 몸에 장착했다.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네요.”

수혁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지만, 별다른 지장은 없었다.

이 정도면 마이크를 착용하고 일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최대한 신경을 쓰긴 했지만, 혹시나 일하다 불편한 점이 생기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바로 조치를 취해 드릴 테니.”

지금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방화복을 입으면 다를 수도 있었기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구, 빨리들도 오셨네.”

그때 출근한 박상태가 혀를 내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어요?”

수혁이 인사했지만, 박상태는 너무 많은 제작진의 숫자에 대꾸할 정신도 없는 것 같았다.

“전에 다큐 찍을 때보다 훨씬 많네.”

최소한 두 배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교육시켰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이기석 PD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박상태를 안심시켰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요.”

이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방해가 되긴 했다.

하지만 박상태는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강선우와 같은 X새끼에게 엿을 먹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이쪽 팀장님도 준비시켜 드려!”

이기석 PD의 외침에 제작진들이 박상태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이고…….”

박상태는 제작진 사이에 파묻혀 어색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섰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이 픽- 하고 웃었다.

민망해하는 그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출연자 도착합니다.”

그런 박상태를 구경하고 있는데, 이기석 PD의 무전기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누구지?”

조금 더 느긋하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약속된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신일서 앞에 차량 한 대가 멈춰 서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왔어요!”

시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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