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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35화 (235/425)

레스큐 시스템 235화

“어떻게 됐냐?”

수혁이 출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박상태와 김강식이 달려들었다.

“음…….”

수혁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박상태가 당황했다.

당연히 허락받고 실실 쪼개면서 출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왜, 왜 이리 죽상이야? 잘 안 됐어? 허락 안 해주신대?”

김강식이 그런 수혁의 어깨를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둘은 더욱 똥줄이 타는 듯 허둥댔다.

“진짜로 같이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했었나? 안 늦었지? 지금이라도 같이 갈까?”

김강식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큽!”

수혁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응?”

그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이 멈칫할 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수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참아보려고 했지만, 당혹스러워하는 둘의 모습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야?”

박상태와 김강식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였다.

“허락받았어요, 받았어!”

수혁이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박상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속았다는 생각에 결혼이고 나발이고, 분노부터 치밀어 올랐다.

“이 새끼가!”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수혁이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

그럼에도 웃음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하하. 다행히 허락해주셨어요.”

침울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행복한 미소만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본 박상태와 김강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선 죽도록 패버리고 싶었다.

감히 하늘과도 같은 선배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대가로 말이다.

하지만 수혁의 표정을 보니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축하한다, 이 망할 놈의 새끼야.”

박상태가 이를 갈며 축하를 건넸다.

“간 떨어질 뻔했네.”

김강식은 숨을 가다듬으며 수혁의 어깨를 두들겼다.

둘은 지금 수혁이 얼마나 기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 경험해 본 일이었으니까.

‘아니지, 우리보다 더…….’

수혁에게 결혼이란 자신들보다 더 큰 의미가 될지도 몰랐다.

평생을 홀로 살아온 수혁에게,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생기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박상태는 피식하면서 수혁의 머리를 헝클었다.

“다행이다, 허락해주셔서.”

“그러게요, 걱정했는데.”

두 사람도 잘 알고 있었다.

소방관, 특히 구조대원들이 결혼 때문에 얼마나 맘고생 하는지.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헤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수혁은 그런 경험을 겪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다행이었다.

“오늘 퇴근 후에 집 가지 말고 다 모여.”

박상태가 말했다.

“뭐 하시려고요?”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박상태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쏜다. 소고기 먹으러 가자.”

수혁의 결혼 허가 기념 회식이었다.

“그냥 내가 쏴도 되는데…….”

박상태가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턱 쏘겠다고 큰소리를 쳐놨는데 결국은 최은송의 요리를 먹게 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최은송이 집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

“전에도 이런 적 있지 않냐?”

김강식이 박정우에게 속삭였다.

“아마 그럴 걸요? 그때도 팀장님이 쏘신다고 했다가…….”

“다 들린다, 이 새끼들아.”

제 딴에는 조용하게 얘기한 것이겠지만, 박상태의 귀에는 천둥보다 더 크게 들렸다.

괜히 민망해진 박상태는 둘을 노려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상태 형은 다음에 쏘시면 되죠. 오늘은 은송 씨가 꼭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 좀 해주세요.”

“뭐, 제수씨가 그렇게 바라는데 어쩔 수 없지.”

박상태가 민망한 표정을 감추고는 최은송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늘도 잘 얻어먹겠습니다.”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할게요.”

최은송 역시 밝은 미소로 화답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 집은 언제 와도 좋단 말이지.”

좋을 수밖에.

애초에 고급스럽게 지어진 타운하우스에다, 최은송의 인테리어 감각이 만나 훨씬 업그레이드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몇 번 와본 집임에도, 다시 집 안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수혁은 그들을 보며 잠시 웃다, 최은송에게로 다가갔다.

“뭐 도와줄 거 없어요?”

“수혁 씨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뭐든지 잘하는 수혁이었지만, 요리만은 영 소질이 없었다.

나름 혼자 사는 동안 여러 음식을 해 먹어 봤기에 자신이 있었는데, 최은송이 보기에는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수혁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저보다는 손님들 신경 써 줘요. 초대해 놓고 방치해 두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그럴게요.”

결국 수혁은 주방에서 쫓겨나 대원들에게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

“음, 글쎄요.”

최은송의 부모님도 허락했으니, 이제는 날만 잡으면 되었다.

하지만 수혁과 최은송 모두가 바빠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날짜도 정하고 식장도 예약하고, 청첩장과 스드메 등등.

할 일이 산더미였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쯧쯧, 내 이럴 줄 알았지.”

이재한이 그런 수혁을 보며 혀를 찼다.

“내가 좀 도와줄까?”

그러고 보니 이재한은 결혼한 지 이제 1년밖에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신혼이었다.

결혼 준비에 관한 건 아주 빠삭할 테고.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아무런 도움도 없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하는 것 보다, 이재한이 도와주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결혼식은 어디서 올릴 거냐?”

“그것도 아직 못 정했어요. 은송 씨 부모님은 서울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서울이 여러모로 편하긴 했다.

문제는 가격이었지만 말이다.

수혁은 최은송에게 잊지 못할 특별한 결혼식을 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수혁의 월급으로는 서울에서 그만한 식장을 예약할 수가 없었다.

최은송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만, 남자의 자존심상 그것을 보고만 있고 싶지 않았다.

“특별한 결혼식이라.”

수혁의 말을 들은 대원들이 생각에 잠겼다.

각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질 리가 없었다.

끙끙대며 고민하던 대원들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전형적인 결혼식밖에는 떠오르질 않았다.

기껏 해봐야 야외 결혼식 정도가 가장 참신한 생각이었다.

“저…….”

그때, 구조 3팀의 유일한 솔로 박정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박정우를 향해 집중됐다.

하지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였다.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네가 무슨 좋은 생각을 하겠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것을 본 박정우가 발끈했다.

“아, 왜 그렇게 봐요?”

“우리가 어떻게 봤는데?”

“모쏠 쳐다보듯이 봤잖아요!”

“너 모쏠 아니었냐?”

김강식과 이재한은 지금이 기회라는 듯 박정우를 놀리기 시작했고, 거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한참 동안이나 놀림을 받은 박정우는 씩씩-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삐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대원들이 미소를 지었다.

삐진 박정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구조 3팀의 막내는 수혁이었지만, 사실 수혁은 막내라고 보기엔 무리였다.

덕분에 계속해서 박정우가 막내 취급을 받고 있었다.

대원들의 눈엔 박정우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놀리는 것이었고.

“말 안 해요.”

단단히 삐진 것 같자, 그제야 박상태가 나섰다.

“그만들 좀 해. 애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재밌냐?”

방금 전까지 자신도 동참했으면서 은근슬쩍 발을 빼는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우, 방금 무슨 얘기 하려고 했어? 말해 봐.”

박정우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박상태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결혼식 말이에요. 꼭 예식장에서만 하란 법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교회나 성당에서도 하고, 요즘엔 펜션 같은 곳에서도 결혼식을 올리고 그런다더라.”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파티를 즐기다 돌아온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상상도 못 할 풍경이었지만, 요즘에는 그리 드물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도 그런 거 하자고?”

평범한 결혼식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당기지도 않았다.

“그런 건 아니고요.”

박정우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 결정을 했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서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건 어떨까… 싶어서.”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야, 인마. 아무리 소방관이라지만 결혼식을 소방서에서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박상태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객들 자리는 어떻게 만들 것이며, 피로연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잠깐만요.”

하지만 수혁은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소방서에서 결혼식?’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최소한 수혁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아이디어였다.

프러포즈를 그렇게 했는데, 결혼이라고 소방서에서 올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문제는 은송 씨가 과연 동의하냐는 것인데…….’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

특별하다면 특별한 결혼식이었지만, 과연 최은송의 마음에 들진 알 수가 없었다.

‘이건 한번 의논해 봐야겠다.’

수혁이 박정우를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선배. 좋은 생각이에요.”

수혁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너 미쳤냐? 진짜 소방서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김강식이 기겁을 했고.

“잘 생각해 봐. 제수씨가 좋아하겠냐? 제수씨 부모님들은 어떻고?”

박상태는 그런 수혁을 만류했다.

“확실하게 결정한 건 아니고요. 은송 씨랑 한 번 의논해 보려고요. 소방서에서의 결혼, 괜찮지 않아요?”

수혁은 그게 어떠냐는 듯 사람들을 쳐다봤지만, 대부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정우만 제외하고 말이다.

“저녁 준비 다 됐… 어머? 무슨 일 있어요?”

마침 주방에서 나온 최은송이 거실의 분위기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적막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수씨,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십쇼. 수혁이 이놈이 글쎄…….”

“소방서에서 결혼을 올리고 싶다는데, 이거 제정신 아니죠?”

김강식과 이재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자질을 했다.

둘의 말을 들은 최은송이 그게 정말이냐는 듯 수혁을 쳐다봤다.

수혁은 살짝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괘, 괜찮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수혁은 괜찮은 방법 같았다.

최은송은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다, 배시시 웃었다.

“그거 괜찮네요. 특별하기도 하고,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결혼식은 아니잖아요.”

최은송의 말에 다들 뜨악!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최은송마저 저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는 찬성이요.”

그렇게 수혁과 최은송의 예식장이 결정되었다.

물론 그 전에 먼저 서장에게 허가를 받아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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