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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33화 (233/425)

레스큐 시스템 233화

“뭐? 관례?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질 치는 게 관례냐, 이 새끼야?”

박상태가 강선우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만약 이곳이 길 한복판이 아니었다면 주먹도 퍼부었을 분위기였다.

“뭐, 뭐?”

박상태의 느닷없는 욕설에 강선우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후배.

그것도 까마득한 후배에게 욕을 먹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상부상조 같은 소리하네.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너 같은 인간 말종들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간 줄 알아?”

근래 소방 설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화재 현장 중, 하나 방재 산업이 담당하고 있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나 방재 산업은 그저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니까.

강선우나, 다른 업체들이나, 개 같은 짓거리들을 하고 있다는 건 똑같았다.

박상태는 화를 참지 못했다.

손에 들고 있던 점검 일지를 강선우에게 집어 던졌다.

“눈깔이 제대로 달려 있으면 한번 봐라. 정상? 이 건물 안에 거기 적힌 대로 제대로 정상 작동하는 게 있긴 하냐?”

바닥에 떨어지며 펼쳐진 점검 일지에는 건물의 모든 설비가 정상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강선우가 고개를 내려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지금 이게 웃겨?”

박상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안 웃기겠냐?”

강선우는 혼자 낄낄거리다 진정하고는 고개를 들어 박상태를 노려봤다.

“박상태, 이 멍청한 놈아. 너는 지금 네 말이 다 맞는 것 같지? 나는 세상에 다시없을 쓰레기로 보이고?”

박상태와 강선우의 시선이 얽혔다.

“과연 그럴 거 같냐?”

무슨 말일까?

수혁은 강선우의 표정을 살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위에서 직접 점검을 지시한 상황에 전 소방관이 세운 회사가 소방 시설 점검을 허위로 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분명 위에서는 이 사실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강선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

‘표정이 너무 평온해.’

죄를 지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가, 아니면 믿는 바가 있는 게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수혁의 생각은 맞았다.

“이런 일을 과연 나 혼자 저지를 수 있었을 것 같아?”

‘쯧.’

수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윗선에서도 강선우의 행동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서로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뜻이었고.

“누구냐?”

박상태가 물었다.

그 역시 강선우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X신아.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냐?”

강선우가 낄낄거리며 몸을 돌렸다.

“어디 한번 잘 해봐라. 시정 명령이든, 고소장이든, 보내려면 보내고.”

그는 박상태를 향해 손을 흔들며 그대로 사라져갔다.

박상태를 구워삶으려다 실패했으니 마음이 조급해야 할 텐데도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박상태가 무슨 짓을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을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미친놈.”

박상태가 그런 강선우의 등을 향해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었다.

“어떻게 할까요?”

수혁이 박상태의 옆에 서서 물었다.

“어떻게 하긴, 조져야지.”

“하는 행동을 보면 뭔가 믿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위에 보고하는 것 외에 박상태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저렇게 당당한 걸 보면 뒷돈 받아 처먹은 새끼가 한두 놈이 아닌 것 같다. 그것도 꽤나 고위에 앉아 있는 것 같고.”

그렇지 않고서야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저런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제가 한번 알아볼까요?”

수혁에게는 꽤나 좋은 인맥들이 있었다.

수혁이 부탁을 한다면 강선우의 뒤에 누가 있는지 밝혀내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상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일단은 규정대로 처리해.”

“그러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것 같은데요?”

박상태의 말대로 규정대로 처리해 봐야 과태료 조금 나오고 끝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시정 명령을 내려도 하는 척만 하고, 다시 허위로 점검할 테고.

이런 점검 지시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수혁의 말대로 흐지부지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고.”

박상태도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규정대로 처리하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써도 된다.

‘X새끼.’

박상태는 강선우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어떻게 전직 소방관이라는 작자가 이딴 식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하던 일 계속하자.”

점검해야 할 곳은 아직도 많았다.

수혁과 박상태는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청나구만.”

일주일간 이어진 소방 시설 점검이 끝났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은 놀랍다 못해 경악할 지경이었다.

“하나 방재 산업뿐만이 아니었어.”

강선우의 하나 방재 산업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그와 같은 짓을 저지르는 업체가 최소한 다섯 군데는 되었던 것이다.

“도시가 미쳐 돌아가고 있었네.”

김강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전에 화재가 났던 병원은 어디서 맡고 있었죠?”

“여기다.”

유진 방재.

“혹시 여기도……?”

“그래. 예전에 조연서에서 근무하던 놈이 세운 회사란다.”

“이거 진짜 미친놈들이네요.”

수혁은 병원 화재를 떠올렸다.

신재식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일어났던 대형 화재.

다행히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수혁은 다른 것으로 충격을 받았었다.

소방 시설은 물론이고, 병원 건물 자체가 너무도 부실했던 것이다.

가스 폭발 한 번에 병원 건물이 붕괴할 정도였으니…….

“그럼 다른 곳들도?”

“그래. 다들 은퇴한 소방관들이 세운 회사들이야.”

오히려 그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이 세운 회사가 훨씬 깨끗했다.

점검도 확실했고, 그에 따른 유지보수도 완벽했던 것이다.

그런데 은퇴한 소방관들이 세운 회사는 그와 반대였다.

“돈에 눈이 먼 건지…….”

“그걸로 벌면 얼마나 번다고요?”

박정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엔 그리 큰돈이 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적게 벌지는 않을걸?”

건물 하나로 따지면 당연히 적겠지만, 그런 건물이 수십 개가 넘는다.

당연히 적지 않은 돈이 굴러들어올 것이다.

거기다 꼼수를 써서 비용을 아끼고, 뒷돈도 받아 챙길 테니…….

“선배가 생각하는 것보단 많이 벌 거예요.”

수혁이 말하자 박정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다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았다.

“위에 보고는 잘 됐어요?”

“팀장님이 정리 후에 보고한다고 하셨는데. 아마 지금쯤이면 서장님한테 보고하고 계시지 않을까?”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서장은 이 보고를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자신들처럼 분개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넘어가라며 눈을 감을 것인지.

평소 서장의 모습을 생각하면 전자일 확률이 컸다.

느긋하고 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런 것을 혐오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서장은 분명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지만, 변수가 있었다.

서장은 출세욕이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

만약 강선우를 비롯한 전직 소방관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배후가, 서장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서장은 자신의 출세와 안위를 위해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그럴 확률이 크지.’

무사안일주의.

수혁이 뺨을 긁적였다.

왠지 서장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일을 덮으려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왠지 어울렸다.

수혁은 픽- 하고 웃으며 잡생각을 떨쳐냈다.

“그런데 이거 진짜 심각한 거 아닙니까?”

“심각하지.”

박정우의 말에 김강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작은 화재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었다.

스프링클러만 작동하면 몇 분 내로 꺼질 불이 건물 전체를 태워버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뿐인가?

불을 끄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들도 위험하다.

옥내 소화전에서 물이 안 나오고, 방화문이 닫혀 열리지 않고, 갑자기 바닥이 무너져 내린다면?

아예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났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그런 일이 발생하다간, 정말로 소방관들이 순직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상황이 그 정도로 안 좋으면 위에서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요?”

박정우는 당연히 그래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강식은 회의적이었다.

업체 사장들이라고 해서 그런 사실을 모를까?

그럼에도 당당하다는 것은 방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얘기들 하고 있어?”

때마침 서장실에 다녀온 박상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보고는 잘하셨습니까?”

박정우가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물었다.

“하기는 했다만…….”

하지만 박상태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질 않았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뭔가 잘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서장님은 뭐라고 하세요?”

수혁이 묻자 박상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장님도 대충은 눈치채고 계셨던 것 같다.”

하긴, 자신의 밑에 있던 소방관이 하는 일이었으니 서장이 모르는 것도 이상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건……. 그놈들 위에 꽤나 대단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야.”

그것 역시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고.

“위에 보고는 하겠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 하시더라.”

박상태는 얼굴을 구기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요?”

김강식이 눈을 부릅떴다.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사항이었다.

“서장님도 힘을 써본다고는 하시는데. 잘 모르겠군.”

사실 서장은 큰 힘이 없었다.

출세욕도 있고, 나름대로의 욕심도 있었지만, 그만큼의 능력이 뒷받침되어주질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수혁 덕분에 일이 조금 잘 풀리는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서장은 힘이 약했다.

“만약 이대로 아무런 처벌 없이 그냥 넘어가게 되면…….”

박상태가 말을 하며 수혁을 쳐다보았다.

수혁은 박상태의 눈빛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번 부탁해 볼게요.”

짐 머레이까진 나설 필요도 없었다.

수혁과 인연이 있는 특수 구조대가 두 곳이나 되었고, 독일의 훈장을 받으며 수혁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 정부 인사들도 많았다.

게다가 수혁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방관이다.

그런 수혁이 나선다면?

아무리 큰 힘을 가진 놈들이라 해도 지금처럼 버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부탁한다.”

박상태는 수혁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박살을 내놓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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