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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31화 (231/425)

레스큐 시스템 231화

“점검을 언제 하셨다고 했죠?”

수혁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게…….”

관리인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수혁의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은 김강식이 인상을 쓰며 관리인에게 다가갔다.

“점검 일지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수혁보다 훨씬 연륜이 있어 보이는 김강식이 나서자 관리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관리실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사라지자 김강식이 수혁을 향해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엉망진창이에요.”

수혁의 대답에 김강식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깔끔해 보였다.

관리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았고.

그런데 수혁의 눈에는 아닌 듯했다.

“제대로 정상 작동하는 설비가 하나도 없어요. 스프링클러도 그렇고, 저기 있는 화재 경보기도 그렇고, 그나마 소화전은 괜찮은 것 같네요.”

대체 눈으로 훑어본 것만으로 어떻게 그것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김강식은 수혁의 말을 믿었다.

김강식 역시 덩달아 심각해져 갈 때, 관리인이 점검 일지를 가지고 나왔다.

“잠깐 보겠습니다.”

김강식이 점검 일지를 받아들고는 펼쳤다.

“흠…….”

점검 일지에는 모든 설비가 정상이라고 되어 있었다.

“잠시만요.”

옆에서 같이 점검 일지를 보던 수혁이 페이지를 넘기려던 김강식의 손을 붙잡았다.

“이 업체, 아시는 곳이에요?”

이 상가 건물의 소방 시설 점검을 맡은 업체는 ‘하나 방재 산업’이라는 곳이었다.

“아, 여기. 들어본 적 있다.”

김강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기론 우리 서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은퇴하고 세운 곳이라고 하던데. 나는 잘 모르겠고 팀장님이라면 잘 알걸?”

수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니까 우리 선배가 세운 업체라 이 말이죠?”

“그렇지.”

왠지 냄새가 났다.

일지에는 정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된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이 점검 일지는 허위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점검부터 하죠.”

수혁은 일지를 들고 김강식과 함께 설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강식은 수혁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정말로 소화전을 빼고는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단 한 개도 없었다.

“이거 심각하네.”

“관리 전혀 안 하시죠?”

수혁이 묻자, 관리인은 식은땀을 흘리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소방 시설 등 자체 점검 미 실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고, 자체 점검 허위 보고는 2백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알고 계세요?”

“그게…….”

물론 책임을 지는 이는 관리인이 아닌, 건물주였다.

하지만 건물주가 처벌을 받으면 관리인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잘리던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말이다.

“한 번만 봐주십쇼.”

관리인은 울상을 지으며 수혁에게 사정했다.

하지만 수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타협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 설비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조만간 서에서 관련 경고장과 함께 시정 명령이 발송될 겁니다.”

관리인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수혁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지한 뒤,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곤 곧장 옆 건물로 향했다.

그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점검 일지는 모두 정상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처음 점검한 상가 건물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다음 건물도, 또 그다음 건물도.

수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건물 열 곳을 돌아다녔지만, 규정을 지키고 있는 건물은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난리도 아니네요.”

“이거 너무 심각한데…….”

심각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김강식은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건물이 규정을 지키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꼼수를 쓰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었고,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저지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 슬슬 퇴근 시간이니까.”

관할 지역의 소방 시설 점검은 하루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주 단위는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하죠.”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하나 방재 산업’이라는 곳 말이에요.”

이 근방의 소방 시설 점검을 맡고 있는 업체.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김강식은 수혁의 말에 동의했다.

한두 곳이라면 모를까, 그 업체가 맡은 건물 모두가 이렇게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된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건 팀장님하고 얘기를 한번 해보자.”

둘은 무거워진 기색으로 신일서를 향해 복귀했다.

“하나 방재 산업? 알지.”

수혁보다 먼저 서로 복귀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박상태가 그건 왜 묻느냐는 듯 쳐다봤다.

“저희가 맡은 구역이요. 거기 점검을 맡은 업체가 거기였는데…….”

“제대로 된 점검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김강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수혁이 본론부터 들어가 버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박상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저희가 점검을 한 건물이 열 곳인데, 그중 아홉 곳이 규정 위반이었어요.”

수혁의 설명에 박상태가 혀를 찼다.

“그렇게나 많이?”

박상태가 맡은 구역에선 규정 위반을 저지른 곳이 두 곳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화재 경보기 정도만 불량이었을 뿐, 나머지는 정상 작동했고.

“그런데 그곳들 점검을 맡은 업체가 방금 말한 하나 방재 산업이에요.”

수혁의 말을 들은 박상태는 뭐가 문제인지 곧바로 눈치를 챘다.

“그러니까 뒷거래가 있는 것 같다 이 말이지?”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요.”

소방 설비 하나를 유지 보수하는 데 드는 돈은 생각보다 크다.

만약 시정 보완 명령을 받는다면, 문제가 더욱 커진다.

명령 기일까지 보완해야 할 부분을 공사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많은 건물주들은 시설 점검 업체와의 거래를 통해 점검을 조작한 것이다.

만약 신일서에서 소방 점검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1년이고 2년이고 계속해서 걸리지 않았을 확률이 컸다.

만약 걸린다고 해도, 그동안 아낀 돈에 비해 벌금이 훨씬 쌌기에 이런 짓이 끊이질 않는 것이었고.

“하나 방재 산업이라…….”

박상태가 아직 팀장을 달기 전의 일이었다.

당시의 팀장을 맡고 있던 선배 중 한 명이 은퇴했다.

딱히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수완이 좋았기에 남들에게 그럭저럭 인정을 받던 선배.

그는 은퇴하자마자 자신의 경력을 살려 회사를 하나 세웠다.

그것이 바로 하나 방재 산업.

그 선배는 특유의 수완을 이용해 근방의 소방 시설 점검 업체를 밀어내고는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이 벌써 4년 전.

소방관 출신이 세운 업체였는지라, 당연히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혁의 말을 들어보면 아닌 듯싶었다.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하지만 아직까진 의심에 불과했다.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만 했다.

“내일은 나랑 수혁이가 그쪽 구역으로 갈 테니까, 강식이는 정우랑 내가 맡았던 곳으로 가.”

“알겠습니다.”

수혁과 김강식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박상태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만약 정말로 비리가 있다면?

박상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것이 아무리 선배라 할지라도 말이다.

“오늘은 여기부터?”

수혁과 박상태는 5층짜리 빌라 건물 앞에 서서 지도를 확인했다.

“네. 주인에게는 연락해놨으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수혁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빌라 안에서 오십대의 남자 한 명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고생 많으십니다.”

건물주로 보이는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 빌라 주인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건물주는 박상태를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박상태는 웃으며 그의 손을 마주 잡고는 입을 열었다.

“마지막 점검을 받은 게 언제인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한……. 두 달 정도 된 것 같군요.”

얼마 되지 않았다.

“여기도 점검을 하나 방재 산업에 맡기고 계시죠?”

“제가 그런 세세한 건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그럴 겁니다.”

건물주의 말에 수혁과 박상태가 눈을 마주쳤다.

“혹시 점검 일지를 볼 수 있을까요?”

이번엔 수혁이 나서서 물었다.

하지만 건물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급하게 나오느라 일지를 미처 챙겨 오질 못했네요.”

건물주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은근슬쩍 빠져나가려는 생각 같았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른 때였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점검도 중요했지만, 혹시 모를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이것 참.”

건물주는 두 사람이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난처해했다.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는데, 막무가내로 버틸 수도 없는 일이었고.

결국 건물주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어디론가 향했다.

“냄새나죠?”

“그래, 아주 고약하다.”

어제 점검한 탓에 업체 쪽에게서 미리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만약 진짜로 무슨 비리 같은 게 있다면…….”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위에서도 아마 그런 이유로 점검을 명령한 것 같으니까.”

박상태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람 구하는 것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딴 더러운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혁과 박상태는 그렇게 빌라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건물주는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고 있었다.

“전화해 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대로 꽁무니를 말고 도망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면서 피하면 그들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른 날 약속을 잡고 다시 오는 수밖에.

수혁이 스마트폰을 꺼내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때마침 건물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점검 일지는커녕 아무것도 들려있질 않았다.

대신…….

“이야, 박상태. 이게 얼마 만이냐?”

수혁은 처음 보는 사람이 그의 옆에 있었다.

그는 박상태를 향해 손을 들며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박상태가 낯선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3년, 아니, 4년 만이지? 잘 지냈냐? 서장님도 잘 지내시고?”

그는 박상태의 선배이자, 하나 방재 산업의 사장인 강선우였다.

“네, 잘 지내고 계십니다.”

박상태의 표정은 똥을 씹은 듯했다.

수혁은 박상태의 표정만 봐도 강선우가 대충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래그래. 언제 한번 찾아뵌다는 게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말이지.”

강선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박상태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소방 점검을 나왔다고?”

그의 음성은 표정과 다르게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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