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27화
“나처럼은 되지 마라.”
수혁은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 모습에 다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진 않군요.”
슈미츠 역시 농담으로 화답했다.
하긴, 누가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있고 싶겠는가?
“언제 다시 보게 될 줄은 모르겠다만, 그때까지 몸조심하고.”
“알겠습니다.”
다니엘과 슈미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서울로 출발할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퇴소식과 송별회를 한 뒤, 내일 출국할 예정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수혁과 함께 복귀해야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김갑수가 대신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그 힘든 훈련 속에서도 다들 생각보다 잘 버텨주었다.
중간에 불행한 일도 있었고, 충돌도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훌륭했다.
특히나 염려되었던 슈미츠의 성격이 많이 바뀐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예전과 달리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승부욕도 불태우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진지하고 무겁게 변했다.
본래부터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앞으로 어떤 소방관이 될지 기대가 되었다.
직접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슈미츠는 독일의 소방관이었다.
‘율리안에게 양보하는 수밖에.’
수혁은 율리안이 살짝 부러워졌다.
슈미츠와 같은 재능있는 후배를 옆에 두고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애 한 명 키우고 싶은데.’
하지만 수혁에게는 머나먼 일이었다.
지금 수혁은 고작 2년차에 접어든 애송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이번에야 독일 측에서 요청했기에 특별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론 요원했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더욱.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자신의 밑에 후배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수혁의 부사수가 될 확률은 적었지만 말이다.
“독일에 가서도 지금처럼만 해라.”
“알겠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둘은 수혁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김갑수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독일에서 일어날 테러.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수의 희생자를 낸, 역사상 최악의 테러다.
소방관들도 백 명이 넘게 죽었다.
폭발 현장에서 구조하던 도중, 또 다른 폭탄이 터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나중에는 결국 배후를 밝혀내고 응징하긴 하지만, 그때까지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테러는 수혁이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에서 테러가 일어나는지 정확한 기억도 나질 않아 미리 막을 수도 없었고, 테러범들을 수혁이 잡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결국 수혁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최대한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 않길 바랄 뿐.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파견 갔었지?”
연쇄적으로 터진 테러에 독일 소방 인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세계에서는 수많은 구조대원을 지원해 주었다.
한국 역시 지원한 국가 중 하나였다.
당시 수혁은 파견을 가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지원 간 구조대원들이 많은 활약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번엔 나도 가야겠군.”
이전 생에서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신일서에서 일을 배우는 것만으로 벅찬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고작 임용 2년차가 가기엔 너무 힘든 현장이었다.
수혁은 이번엔 독일로 파견 지원을 하리라 결심했다.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수혁이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최은송도 일을 하느라 저녁에 올 테고, 다른 사람들 역시 남양주까지 문병을 오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북적북적 지내다, 혼자 남으니 괜히 외로워졌다.
“원래대로라면 내일부터 다시 신일서로 돌아가는 건데…….”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신일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했다.
박상태야 며칠 전에 문병을 와서 봤지만, 다른 대원들은 아니었다.
“왠지 그립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수혁은 동료들이 보고 싶었다.
‘그냥 퇴원할까?’
놀랍게도 수혁의 뼈는 이미 거의 아문 상태였다.
완전히 부러진 뼈들은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웬만한 곳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나은 것이다.
등의 상처도 대부분 회복되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 당장 퇴원해도 사실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아직 일은 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외딴곳의 병원이 아닌 집에서 최은송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면 동료들도 보기 편해질 텐데.
수혁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퇴원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은송 씨가 허락해 줄까?’
최은송은 수혁의 경이로운 회복 능력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8개월 동안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는 것을 직접 옆에서 봤으니까.
그러니 수혁이 퇴원할 정도로 나았다는 것을 믿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퇴원을 허락해 줄지는 알 수 없었다.
아직 수혁이 완벽하게 나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은송은 수혁의 뼈가 모두 붙을 때까지는 퇴원을 허락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수혁을 걱정했다.
‘그래도 너무 오래 있는 건 힘들어.’
병원에 그렇게 자주 입원을 했음에도,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입원하는 것이 적응될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느냐만…….
어쨌든 수혁은 이 답답한 곳에서 몇 주 동안이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오늘 은송 씨가 오면 얘기 좀 해봐야겠다.”
설득만 잘하면 최은송이 허락해 줄지도 몰랐다.
같이 시간을 보낸 것도 오래되었으니.
수혁은 어서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안 돼요.”
최은송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
이렇게 단박에 거절할 줄은 몰랐기에 수혁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은송 씨, 저 몸도 많이 좋아졌고, 혼자 있기엔 너무 심심하기도 하고…….”
“그 팔, 움직일 수 있어요?”
최은송이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수혁의 양팔은 모두 부러진 상태였다.
그것도 단순 골절이 아닌, 복합 골절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팔을 치료하는 것만 해도 몇 달이 걸릴 정도로 중한 부상이었다.
깁스를 풀더라도 재활이 필요할지 몰랐다.
그러니 수혁이 아무리 ‘회복Ⅱ’ 스킬을 썼다고 해도, 단 며칠 만에 완쾌할 순 없었다.
수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최은송은 그 얘기는 여기서 끝이라는 듯 몸을 돌렸다.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팔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입원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해요.”
수혁의 한숨 소리를 들은 최은송이 사과했다.
“수혁 씨가 남들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회복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전 수혁 씨가 걱정돼요.”
최은송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수혁 혼자 병실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보다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녀라고 해서 수혁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서보다 집에 있는 편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입원한 이상, 최대한 치료를 한 뒤 퇴원했으면 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조금 심심하다고 최은송에게 걱정을 끼칠 순 없었다.
“알았어요. 퇴원한다는 얘긴 그만할게요.”
수혁은 자신이 조금 참기로 했다.
“고마워요.”
최은송이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반대하긴 했지만, 수혁이 강력하게 원했다면 어쩔 수 없이 퇴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수혁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자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과일 먹을래요?”
최은송이 냉장고에서 참외 하나를 꺼내며 물었다.
“좋죠.”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최은송이 참외를 깎기 시작했다.
“나 없는 동안 뭐 하고 지냈어요?”
“그냥, 일하고 집에서 쉬고, 그것만 반복했죠.”
“심심하진 않았어요?”
수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은송과 함께 소방 학교로 갈 때.
수혁은 연수가 끝나면 최대한 많은 시간을 그녀와 함께하기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그 다짐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아니에요. 오랜만에 친구들도 불러서 같이 놀고, 괜찮았어요.”
최은송은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같이 몇 번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던 최은송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달아올랐다.
“응? 어디 아파요?”
그것을 본 수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최은송이 얼굴이 붉어진 것은 아파서가 아니라, 그날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다.”
“언제 해?”
수혁과 함께 사는 집을 본 친구들이 저녁을 먹으며 물어본 것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슬슬 결혼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하지만 수혁이 너무 바빠 결혼은 나중으로 미뤄둘 생각이었는데, 친구들이 그렇게 물어보자 다시 결혼 생각이 났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 수혁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소방관 2년차.
지금은 결혼보다는 자리를 잡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니 최은송은 조금 더 참기로 했다.
‘그래도…….’
같이 산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수혁에게 조금 섭섭하긴 했다.
물론 그것을 내색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은송 씨.”
그런 최은송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수혁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를 불렀다.
“왜요?”
최은송은 다 깎은 참외를 먹기 좋게 잘라 수혁의 입에 넣어주며 대답했다.
“퇴원하면 어디 놀러 갈까요?”
“여행을요?”
“여행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가까운 곳에 하루 정도 다녀오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출근해야 하는 최은송이었지만, 그 정도라면 부담이 없었다.
“저야 좋죠.”
최은송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오랫동안 수혁과 같이 지내지 못해 외로웠던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놀러 가는 것이 싫을 리가 없었다.
“그러려면 빨리 퇴원해야겠네요.”
빨리 퇴원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최은송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리고 그날, 박상태와 이야기했던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프러포즈에 대한 생각을 하자, 수혁은 살짝 긴장했다.
일생일대의 이벤트였으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나는 이생일대인가?’
수혁은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고대했다.
최은송이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은송 씨보다는 아버님이지.’
수혁은 최은송의 아버지인 최문식을 떠올렸다.
탐탁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던 완고한 그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