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23화
자신과 조장호가 살아남으려면, 수혁은 스킬을 사용해야만 했다.
분명 비정상적인 모습이 연출될 것이다.
조장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테고, 밖에 있는 이들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자고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지 않은가?
‘가능하면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김갑수의 말을 들어보면 꽤 늦어질 것 같았다.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지대가 버틸 수 있는 한계보다는 오래 걸릴 듯했다.
지금 당장 구조 작업이 시작되어도 버틸 수 있을까, 말까 했으니 말이다.
‘결국은 스킬을 사용해야겠구나.’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 번 짐 머레이에게 신세를 져야할 것 같았다.
“구조되면 밖에서 술이나 한잔 사주세요.”
어떻게 해서든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조장호 역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순수한 웃음이 아닌,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수혁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마음 한편에선 이것이 끝이라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합시다.”
그래도 조장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날 수만 있다면, 술 한잔이 대수일까.
술이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사줄 수 있었다.
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수혁은 어두운 표정의 조장호를 보며 다시 한 번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조장호의 멘탈을 위해 더는 수혁이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초라도 빨리 구조 작업이 시작되는 것 외에는 조장호를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혁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수혁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 전부였다.
가만히 손을 놓고 포기하고 있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요구조자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수혁이 아는 구조대원은 그런 존재였다.
* * *
“개X끼들.”
김갑수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경고했던 5분이 지났다.
거의 다 와간다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최소한 5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1분 1초가 흐를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김갑수는 이 상황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모조리 옷을 벗게 해주지.’
김갑수는 중앙 119 특수 구조대의 팀장이었다.
이 자리는 절대 평범한 대원은 앉을 수가 없는 위치였다.
만약 수혁이 잘못된다면,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책임지게 만들 생각이었다.
단순한 징계 정도로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최소한 강등에서 직위 해제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징계를 먹여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빨리 와라.’
김갑수가 속으로 빌었다.
징계 따위 안 줘도 되니, 제발 지금 당장 장비들이 도착하기를…….
하지만 그런 김갑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장비의 지원은 10분을 훌쩍 넘긴 후에야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중장비의 기관사는 도착하자마자 김갑수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주소를 잘못 전달받은 탓에 기관사 역시 똥줄이 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구조해야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소방관이라는 말에 더욱 그러했다.
소방관들에게 있어 동료의 순직은 짙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특히나 자신이 출동했던 현장에서, 동료가 목숨을 잃은 채 들것에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본다면…….
그 장면은 평생 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중장비 기관사는 특성상 그런 경우를 몇 번이나 봐왔다.
그가 출동하는 현장은 대부분 대형 재난 현장이었으니까.
가능하다면 다시는 그런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 상황실의 실수로 시간을 낭비했으니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김갑수는 화를 내려다, 그런 기관사의 표정을 보고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금은 화풀이를 하는 것보다, 수혁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야기는 나중에. 일단은 구조부터 시작합시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기관사는 자신의 차로 돌아가 곧장 장비를 창고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가 몰고 온 장비는 카고 크레인.
사람의 힘으로는 들 수 없는 잔해들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중장비였다.
구조차에도 크레인이 장착되어 있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잔해들을 치울 수 있는 충분한 힘이 나오질 않았기에 요청한 것이었다.
다행히 화재는 어느 정도 진화가 되어 있는 상태인지라, 장비를 현장 근처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장비가 도착한 것을 본 대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구조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장비가 가동을 시작했고, 크레인의 지브가 길게 뻗어 나와 창고 안쪽으로 진입했다.
“로프 내려!”
김갑수의 외침에 호이스팅 로프가 천천히 잔해 쪽을 향해 내려왔다.
길이가 충분해지자 대원들은 망설이지 않고 가장 골칫거리였던 철골에 갈고리를 걸었다.
단단하게 고정이 된 것을 확인한 김갑수가 엄지를 위로 들며 소리쳤다.
“올려!”
기관사는 김갑수와 신호를 보고는 크레인을 조정했다.
도르래가 회전하며 로프를 감았다.
늘어져 있던 호이스팅 로프가 팽팽해지며 철골이 조금씩 들썩였다.
그리고 수십 명의 사람이 힘을 합쳐도 옮기지 못했던 철골이 천천히 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쌓여 있는 잔해들에 충격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김갑수는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저런 거대한 철골이 움직이는데, 아무런 충격이 가지 않을 순 없었다.
“정지!”
김갑수가 주먹을 쥐며 다급히 소리쳤다.
철골이 움직이며,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잔해들 중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큰일이다!’
* * *
‘도착했구나.’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것도 꽤 많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지대가 아직까지 버텨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오자 조장호가 수혁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구조 작업이 재개된 것 같네요.”
수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군요.”
“그것 보세요. 제가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죠?”
조금, 아니, 많이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몇 분 이내로 구조될 수 있었다.
“나가면 술 사기로 한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수혁이 농담할 때였다.
조금씩 짙어지고 있던 붉은 표시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수혁이 당황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시야에 가득 들어찬 붉은 표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무너진다!’
쿵- 하는 충격과 함께 지지대에 이상이 생겼다.
한 개, 두 개, 세 개…….
방금 전까지 수혁과 조장호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던 지지대들이 순식간에 꺾이고 부러졌다.
‘안 돼!’
수혁이 속으로 외쳤다.
위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수혁이 파악하기도 전에 생긴 일이었다.
조장호 역시 상황을 파악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잔해의 엄청난 무게가 수혁의 등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건 힘들다.’
힘으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잠깐 동안이라면 모를까, 구조가 될 때까지 버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수혁은 결국 미리 대비하고 있던 계획을 실행했다.
‘실드!’
스킬을 쓰는 것.
‘실드’가 발동하자 당장에라도 압살당할 것 같았던, 육중한 무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수혁이 특별히 버티지 않더라도, ‘실드’가 대신 잔해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휴우.”
수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조가 시작됐다는 안도감에 잠시 방심했다.
붕괴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중장비가 투입되는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대형 재난 현장에서 중장비가 투입하는 것은, 구조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예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실제로 매몰 현장에서 중장비를 사용하는 구조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수혁의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조장호가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러곤 주변을 살폈다.
“우, 우리 아직 살아 있는 거 맞습니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수혁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 모두 납작한 쥐포가 되었을 테니까.
“네, 다행히 어디에 걸린 것 같습니다.”
조장호는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분간은 안전할 겁니다.”
‘실드’를 아까 한 번 썼고, 이번이 두 번째이니 최대한 2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그사이에 구조가 돼야 할 텐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변수가 너무도 많았다.
[김수혁! 대답해! 괜찮냐?]
역시나 김갑수가 수혁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무전을 쳤다.
“괜찮습니다. 조금 위험하긴 했는데, 다행히 별일 없습니다.”
수혁의 대답에 김갑수는 십년감수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최대한 조심히 작업하고 있기는 한데, 또다시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손으로 하나씩 옮기지 않는 이상, 김갑수의 말처럼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었다.
“네. 여긴 괜찮으니 서둘러서 작업해 주세요.”
위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 더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면 신중할수록,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안전한 상태이니, 최대한 서둘러 주길 바랐다.
물론 스킬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갑수가 수혁의 말처럼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알겠다. 조금만 더 버텨.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곧장 무전치고.]
“알겠습니다.”
수혁이 무전을 끊자, 조장호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괜찮은 것 맞습니까?”
죽을 뻔한 것이 방금 전이다.
그런데 수혁이 김갑수에게 한 말을 들어보면,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조장호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만 믿으세요. 정말로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한, 20분 정도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다면?
수혁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긴 하겠지만, 조장호가 안전할 수 있다고 장담을 하진 못했다.
아니, 수혁 자신도 위험해질지 모른다.
조장호와 달리 엄청난 신체 능력과 ‘회복’ 스킬을 갖고 있었으니, 조금 낫기야 하겠지만…….
‘회복’ 스킬의 치유 속도를 생각해 보면 이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거기다 눈앞의 요구조자를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자신은 살고, 요구조자는 죽는다?
수혁에게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장호 역시 살려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
수혁의 눈동자에 단호한 결심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