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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22화 (222/425)

레스큐 시스템 222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수혁은 의도적으로 시계를 확인하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하는 행동은 대원에게 초조하게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무전 역시 최대한 자제했다.

‘언제 도착하는 거지?’

김갑수와 처음 무전 한 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뭔가 진행되는 것 같은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수혁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어야 하는데.’

구조가 시작됐어야 했다.

시간이 더 지체된다면 정말로 위험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수혁은 불안감을 떨치고, 대원을 안심시킬 겸 대화를 시도했다.

그 모습에 대원이 픽- 하고 웃었다.

수혁의 생각을 눈치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구조대원.

평생 동안 이런 상황에서 요구조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수혁과 같은 행동을 했었으니까.

대원이 웃자 수혁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대원을 평범한 요구조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덕분에 대원은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았다.

자신과 비교하자면 한참은 어려 보이는 젊은 수혁.

그런 수혁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조장호라고 합니다. 구리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죠.”

구리 소방서라면 가장 먼저 현장에 지원을 온 곳이다.

남양주와 가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는…….”

수혁 역시 자신을 소개하려고 하자, 조장호가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습니다, 김수혁 씨.”

조금 전 신일역 붕괴 사고를 언급했을 때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 했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유명한 분이니까요. 거기다 이번에 중앙 119 구조 본부에 독일 연수생들과 함께 현장 실습을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요즘은 별다른 일이 없어 많이 잊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수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수혁이 민망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자신을 소개하며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는데, 상대가 이미 알고 있다고 하자 더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살아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때, 갑자기 조장호가 물었다.

수혁이 고개를 내려 조장호의 눈을 쳐다보았다.

혹시 조장호가 다시 패닉에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조장호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차분해 보였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아까 팀장님과의 무전을 들으셔서 알겠지만, 장비들만 도착하면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수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땅속 깊숙이 묻힌 것도 아니고, 그저 잔해 속에 파묻힌 것뿐이다.

그것이 조금 무거워 인력으로는 불가능했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장비가 도착한다면 금방 빠져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장비가 언제 도착하냐는 거지만.’

수혁은 굳이 뒷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혼자라면 포기했겠지만……. 김수혁 씨가 같이 있으니, 믿어도 되겠죠?”

조장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다.

구조대원으로서 수많은 현장을 겪었지만, 자신이 직접 요구조자가 된 적은 극히 드물었던 것이다.

특히나 이런 붕괴에 매몰된 적은 처음이었고.

하지만 수혁은 달랐다.

수혁은 자신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단순히 가십거리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을 구했고, 불가능할 것 같은 업적을 남겼다.

조장호가 알고 있는 것들만 따져도 수혁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구조대원이었다.

반쯤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그는 진심으로 수혁을 믿고 있었다.

“그럼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무조건 여기서 나가게 해드리겠습니다.”

수혁 역시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한 척 해야만 했다.

‘더 늦으면 안 됩니다, 팀장님.’

수혁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 * *

“대체 언제 오냐고!”

김갑수가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지원을 요청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전화 너머에서 뭔가 변명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김갑수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어야지!”

김갑수는 초조함이 극에 달했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언성을 높였다.

“10분, 아니, 5분 내로 도착하게 해! 1초라도 늦으면 너희는 내가 책임지고 죄다 모가지를 쳐 버릴 테니까!”

김갑수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팀장님…….”

대원 중 한 명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런 김갑수에게 다가왔다.

“뭐라고 합니까?”

“하아, X발.”

대원의 질문에 김갑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늦는단다.”

단순히 차가 막힌다거나, 다른 곳에 출동했기 때문에 늦는 것이라면 김갑수도 이렇게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불가항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아니, 지원 요청이 잘못 전달됐다는 게 말이나 되나?”

중장비들은 이미 출발한 상태였다.

하지만 중앙 상황실의 실수로, 중장비들은 엉뚱한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히 현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지금이라도 방향만 틀면 금세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 잠깐 동안 낭비되는 시간이 문제였다.

가뜩이나 1초가 아까운 상황에 몇 분이나 늦어버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몇 분이란 시간 때문에 구조가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화가 날 수밖에.

김갑수의 말을 들은 대원 역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미친놈들.”

이런 경우가 많진 않았지만, 가끔 벌어지곤 했다.

안일한 대처로 인해 지원이 늦고, 그것으로 인해 구조에 실패하는 경우가.

상황실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실수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안에 있는 두 녀석이 잘못되면, 이번엔 진짜 가만히 안 넘어간다.”

아니, 무사히 구조한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소방관 역시 공무원이었고, 그런 공무원의 폐단은 소방관이라고 해서 빗겨 나가지 않았다.

“저희라도 나서서 뭔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원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안에 갇혀 있는 두 명을 혹시 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구조 자체는 힘이 들더라도, 뭔가 해야 하지는 않을까?

여기서 계속 쉬고 있어도 될까?

대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게 문제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저 잔해들을 치울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뭔가를 하려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균형이 어긋나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다면?

밑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수혁과 대원은 그대로 거기에 깔려 버린다.

그러니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중장비가 와서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천천히 걷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렇습니까?”

대원은 대원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지원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더욱더.

김갑수는 한숨을 내쉬고 있는 대원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조금 더 가서 쉬어라.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체력을 회복해야지.”

그래야만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원이 몸을 돌려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대원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김갑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그 누구보다 저 안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김갑수는 무전기를 꺼냈다.

평범한 요구조자였다면 지원이 늦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수혁은 평범한 요구조자가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그에 따른 대처를 할 수 있었다.

“김수혁.”

* * *

[김수혁.]

무전이 울렸다.

수혁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생명감지Ⅲ’로 확인한 결과, 아직 지원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무전을 한다는 것이 왠지 조금 불안했다.

“말씀하세요.”

[지금 상황 어때?]

수혁이 곁눈질로 조장호를 쳐다보았다.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 불안한 표정이긴 했지만, 다행히 안정적이었다.

지지대는 불안하긴 하지만 아직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고, 방수 덕분에 열기도 많이 가셔 있었다.

“내 집 같네요. 뜨끈하니 좋습니다.”

수혁이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그렇게 좋으면 나도 좀 데려가지 그랬냐?]

“팀장님까지 초대하기엔 좀 좁아서요.”

둘은 긴장을 풀기 위해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김갑수의 음성이 심상찮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수혁은 제발 자신이 생각한 게 아니길 빌었다.

하지만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거기서 조금 더 있어야겠다.]

수혁은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릴 뻔했다.

‘젠장. 더 늦으면 안 되는데…….’

수혁은 조장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침을 살짝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여기가 워낙 아늑해서. 몇 분 정도 더 있는 건 상관없습니다.”

수혁이 애써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무전기 너머에서 김갑수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지? 그냥 찜질방에서 땀 좀 뺀다고 생각해라. 우리가 금방 꺼내줄 테니까.]

“공짜로 찜질도 하고 좋네요.”

[그럼 그렇게 알고, 조금 이따 다시 무전하마.]

“알겠습니다.”

수혁은 최대한 태연하게 무전을 끊었다.

별것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수혁의 밑에 있는 요구조자는,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조금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조장호의 표정이 살짝 굳어져 있었다.

“그런가 보네요. 하여간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이게 문제예요.”

수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조장호는 웃지 않았다.

수혁과 김갑수가 최대한 돌려 말하긴 했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역시 소방관이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아니,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조장호는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조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대로 말해주시죠.”

수혁의 대답에 조장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수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도 소방관입니다.”

수혁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역시 이 바닥에서 꽤나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수혁은 그런 조장호를 가만히 지켜보다 시선을 돌려, 바닥에 박아 넣은 지지대를 확인했다.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붉은 표시가 보였다.

아직은 옅었지만,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5분, 길면 10분.”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 후엔 지지대가 부러지며, 지탱하고 있던 잔해들이 덮칠 것이다.

조장호가 눈을 감았다.

“얼마 안 남았군요.”

왠지 체념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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