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21화
수혁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지지대로 인해 버티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가 없었고, 주변의 환경 역시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덥다.’
잔해들은 단순히 건물이 무너져서 생긴 것들이 아니었다.
무너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불길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불에 뜨겁게 달궈져 있어, 엄청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떨어지며 줄어들었던 불길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큰일인데.’
수혁이라면 어떻게든 버틸 순 있겠지만, 문제는 대원이었다.
그는 벌써부터 힘에 겨워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수혁이 잠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치 수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위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
수혁이 반색했다.
아무래도 불길을 잡기 위한 방수가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대원 역시 얼굴 위로 물이 떨어지자 웃음을 지었다.
열기가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혁이 ‘생명감지Ⅲ’를 사용했다.
현재 밖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음.’
위쪽에 있는 대원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수혁을 덮고 있는 잔해들을 치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 무거워.’
사람의 힘만으로 잔해들을 치우기에는 무리였다.
이곳은 단순한 창고가 아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물류 창고였는지라, 그것을 이루고 있는 구조물과 자재들 역시 평범한 크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밑에 깔린 수혁이 살아 있는 것 자체를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역시 수혁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자신들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현장에서 물러났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이 무전기를 들었다.
“팀장님.”
[무슨 일 생겼어?]
갑자기 수혁이 무전을 하자, 김갑수가 황급히 물었다.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니요. 저흰 아직 괜찮습니다. 선배님도 정신을 차리셨고.”
[그건 다행이군.]
무전기 너머로 김갑수가 안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구조에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정확한 시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예상 시간 정도만 알아도 충분했다.
그것을 알아야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해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도 알다시피, 중장비는 이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네, 알고 있습니다.”
[출발은 아까 했지만, 거리도 있어서……. 최대한 빨리 오겠다고 했으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김갑수의 말을 들은 대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세도 너무 불편했고, 지지대만 믿고 있기에도 불안했다.
1초라도 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수혁은 그런 대원의 기색을 눈치챘다.
‘야단났군.’
조금씩 패닉에 빠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사방이 꽉 막혀 있는 곳에서, 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불안 요소들도 넘쳐나고 있었으니, 언제든지 잘못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상황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힘들었다.
수혁은 대원이 그런 상태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만약 패닉에 빠져 돌발 행동을 한다면, 자신은 몰라도 그는 확실하게 위험해지니 말이다.
‘지켜보다 정 안될 것 같으면 기절을 시켜야겠다.’
차라리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조금만 서둘러 주세요. 이쪽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마.]
김갑수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수혁은 무전을 끊고 대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는 구조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흥분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쪽도 얘기 듣지 않았어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물론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며칠씩 걸리진 않을 겁니다.”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
그사이 문제가 생긴다면 큰일이었지만, 수혁은 굳이 그런 이야기까진 꺼내지 않았다.
“저는 예전에 지하철역 붕괴 현장에서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갇혀 있던 적도 있습니다.”
수혁의 말에 대원이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수혁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물과 음식은 부족했고, 바깥과의 소통도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제 손에 맡겨진 생명이 한두 명이 아니었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옆에서 계속 자신을 돕던 박수진이나, 박상태, 전승철이 아니었다면, 수혁은 그곳에서 뼈를 묻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는 살아 나왔습니다. 그곳에 있던 요구조자들과 함께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 이 상황? 정말 별것 아닙니다.”
사실 별것 아닌 상황은 아니었지만, 수혁은 최대한 안심을 시키기 위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대원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수많은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이었지만, 수혁과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한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나온 사람이었으니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수혁은 소방관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더욱 믿음이 갔다.
“알겠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수혁은 그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을 조금 놓았다.
저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긴 할 테니.
‘진짜로 서둘러 주셔야 합니다.’
수혁은 밖에 있는 김갑수에게 속으로 빌었다.
너무 늦는다면?
수혁조차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스킬의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버티는 것 외에는.
* * *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슈미츠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당장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죄책감이 몰려왔다.
“어쩔 수 없잖아. 방법이 없는데.”
그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다니엘이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그래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슈미츠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없는 방법이 갑자기 생각날 리가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다니엘의 말은 다소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틀리진 않았다.
슈미츠 역시 그것을 알았기에 더욱 괴로웠다.
“하아.”
슈미츠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수혁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깥으로 밀고난 뒤, 넘어진 대원을 감싸 안던 모습.
아마도 그 모습은 죽을 때까지 평생 각인될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슈미츠는 다시 한 번 그 의문을 꺼냈다.
“소방관이니까.”
다니엘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슈미츠는 고개를 저었다.
“너라면 그 상황에서 다리를 멈출 수 있겠어?”
멈추는 순간 죽는다.
그것이 너무도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말로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언제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지만, 막상 그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하자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다니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니.
“나는 자신이 없다. 분명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수혁의 매몰되는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말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이건 풍부한 경험이나 뛰어난 신체 능력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희생정신.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도 망설임 없이 요구조자를 위해 몸을 던지는 것.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미츠는 수혁의 모습에서 그런 희생정신을 볼 수가 있었다.
질투?
그런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사람을 어찌 질투할 수 있단 말인가?
대신 수혁을 향한 동경과 존경이 더욱 커졌다.
“구할 수 있겠지?”
슈미츠가 물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닌, 자신의 바람을 담은 말이었다.
“글쎄…….”
하지만 다니엘은 그리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수혁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다행히 무사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운이 언제까지고 계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돌멩이 하나, 철근 하나만 삐끗해도 끝장이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공간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수혁을 덮칠 테니 말이다.
김갑수와 대원들은 아마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 테고.
다니엘이 슈미츠를 쳐다보았다.
계속해서 그답지 않은 말을 꺼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 수가 있었다.
슈미츠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것을 말이다.
“……슈미츠?”
다니엘이 당황한 음성으로 슈미츠를 불렀다.
하지만 슈미츠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혁이 매몰되어 있는 장소만 계속해서 바라볼 뿐이었다.
슈퍼 히어로.
수혁은 자신이 어릴 적 보았던 그 선망의 대상이 실체화된 것 같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빨랐고, 누구보다 강했으며,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런 수혁을 잠시 질투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수혁이라는 사람 한 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지를 생각하면, 수혁은 이런 곳에서 죽어선 안 되었다.
‘내가 멈췄어야 하는데.’
차라리 수혁이 아닌 자신이 그곳에 갇혀 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수혁이 슈미츠의 생각을 알았다면 뒤통수를 후려쳤겠지만 말이다.
슈미츠는 자리에 앉은 채로 하염없이 창고 쪽만 쳐다봤다.
그곳은 아직도 불길에 뒤덮인 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화재 진압대는 쉴 새 없이 방수하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수혁이 매몰된 곳에 불길이 옮겨붙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었다.
연기는 매캐하게 피어올랐고, 불길은 뜨거웠으며, 붕괴의 흔적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저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실제로 수혁은 죽었고, 조금 전 들었던 무전은 환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기에, 슈미츠는 시선을 돌렸다.
더는 저곳을 쳐다보고 있다간, 죄책감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린 슈미츠가 눈을 감았다.
그러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살아계십시오.’
수혁이 무사하길.
슈미츠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