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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12화 (212/425)

레스큐 시스템 212화

수혁은 관창을 조절했다.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며 앞을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갔다.

덕분에 앞으로 달려나가던 대원과 슈미츠를 막고 있던 불길이 사그라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길이 열렸고, 두 사람은 무사히 불길 밖으로 빠져나갔다.

‘됐다.’

불길이 수혁을 덮쳐 오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음에도, 수혁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수혁에게는 스킬이 있었으니까.

‘실드.’

예의 투명한 막이 수혁을 감싸 안았다.

빠르게 다가오던 불길은 막에 가로막혀 더는 수혁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5분간은 그 어떤 것도 해를 끼칠 수 없는 상황.

수혁은 여유 있게 관창을 돌려 물을 껐다.

거세게 흘러나오던 물줄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멈추었다.

‘흐음.’

수혁은 호스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주변을 살폈다.

분명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화재였다.

불길에 가로막혀 요구조자들이 빠져나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화재 진압이 어렵지도 않았으니, 김갑수가 요구조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사이 불을 끄고 데리고만 나오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길이 커졌다.

김갑수의 말로는 화재가 일어난 곳에 인화 물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불길이 그곳에 옮겨붙으며 화재가 커진 것이고.

수혁은 일단 그곳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화재 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위치를 특정해 두면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혁은 불길 사이를 빠르게 누볐다.

그러다 한쪽에서 다른 곳과 비교해 확연히 불길이 거센 곳을 찾을 수가 있었다.

‘저긴가?’

수혁이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불길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지만, ‘실드’에 가로막혀 여전히 다가오지 못했다.

‘음…….’

확실했다.

원래는 창고로 이용했던 곳이었는지,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모조리 불에 타버린 상태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난로의 모양처럼 보이는 물체 하나와 거의 다 녹은 플라스틱 재질의 통 하나가 보였다.

등유나 휘발유 따위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불이 번지며 이곳에 불이 옮겨붙었고, 그로 인해 폭발적으로 커진 듯했다.

‘내가 껐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수혁에게는 진화할 수 있는 장비가 없었다.

소화기라도 있었으면 시도를 해봤겠지만, 스프링클러도 작동이 안 되는 건물에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여러모로 소방법에 위반하는 것이 많은 곳이었다.

수혁은 일단 창고의 위치를 기억하고는 빠르게 되돌아갔다.

이제 ‘실드’의 유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질 않았던 것이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수혁이 마침내 일행이 빠져나간 곳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김수혁!”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소리치는 대원과 김갑수의 모습이 보였다.

“괘, 괜찮냐?”

“무사한 거 맞아?”

두 사람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금방 따라 나온다고 했던 수혁이 거의 5분 가까이 빠져나오질 못했으니,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 괜찮습니다.”

수혁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너무도 멀쩡한 수혁의 음성에 두 사람은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바로 따라온다며!”

대원이 수혁을 향해 소리쳤다.

정말로 수혁이 잘못된 것일까 싶어 심장이 벌렁거렸다.

수혁의 말을 따른 것이 후회가 될 정도로 말이다.

“뭐 좀 확인할 게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아무렇지 않아요.”

수혁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괜히 일을 좀 더 쉽게 한답시고,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다친 곳은 없고? 화상은?”

“정말 괜찮아요. 호스 들고 이동을 했으니까.”

수혁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맨몸이었다면 모를까, 방수를 하며 몸을 보호했다면 수혁이 무사한 게 이해가 되었다.

“뭘 확인한 건데?”

그러다 수혁이 뭔가를 확인하고 왔다는 말을 떠올린 김갑수가 물었다.

“발화 지점이요.”

“아!”

확실히 그 장소를 안다면 불을 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지!”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일서에서 하던 행동에 적응이 되어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에서 수혁은 선 행동 후 보고를 해도 용납이 되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어쨌든, 무사하니 다행이야.”

김갑수가 정말로 수혁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수혁이 슈미츠를 쳐다봤다.

슈미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가만히 서서 수혁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나?”

수혁이 물었다.

하지만 슈미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슈미츠는 지금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져 있었다.

질투와 시기는 여전했지만, 슈미츠는 수혁의 모습에서 어릴 적 본 다큐멘터리의 영웅을 떠올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가는 슈퍼 히어로.

상반되는 두 감정에 슈미츠는 혼란스러웠다.

“정신 안 차려!”

수혁은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슈미츠의 헬멧을 때렸다.

따악-!

둔탁한 충격에 슈미츠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예, 예?”

당황해하는 슈미츠를 보며 수혁이 혀를 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저렇게 멍하게 있다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간다.”

수혁은 짧게 말을 하고는 슈미츠를 스쳐지나, 김갑수의 뒤를 따랐다.

요구조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슈미츠는 그런 수혁의 뒤를 헐레벌떡 따라갔고.

도착한 장소에 있던 세 명의 요구조자는 생각보다 평온한 기색이었다.

김갑수를 비롯한 구조대원들이 왔으니, 이제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수혁과 김갑수의 표정은 그들과는 반대였다.

지금 상황에선 그들을 구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김갑수가 예상외의 상황에 긴급히 지원요청을 하긴 했지만, 사실 화재가 어느 정도 잡히지 않는 이상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다리차는요?”

“지금 다른 현장에 가 있단다.”

“한 대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나머지는 모두 7층 이하의 저층용뿐이야. 여기까지 오를 수 있는 건 한 대밖에 없고.”

“쯧.”

확실히 경기도 외곽 쪽의 작은 도시이다 보니, 구조 장비가 부족했다.

다른 도시에서 지원을 요청할 순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늦는다.

“화재 진압대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나?”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화재 진압대가 길을 열 때까지 버티다가, 그 후에 탈출하는 것.

수혁이 화점까지 알아왔으니, 생각보다 진화가 빠를 테니 더욱 그랬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특수 구조대가 도착하고 몇 분 후에 근처 소방서의 펌프차들이 도착했다.

지금쯤이면 거의 준비를 끝내고 진입하고 있을 것이다.

“빠르면 5분, 늦어도 10분?”

완전 진압이 아닌, 탈출이 가능할 정도만이라면 그쯤 걸릴 듯했다.

‘5분에서 10분이라…….’

수혁은 잠시 계산을 해보았다.

불이 퍼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분명 처음에는 별것 아니었던 화재가 지금은 건물 한 층을 거의 집어삼킬 정도였으니까.

아직 여기까지는 번지지 못했지만, 그리 여유가 많지는 않을 듯싶었다.

‘길게 잡아도 5분은 못 버텨.’

불이 번지는 속도를 확인한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깁갑수 역시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표정이 어두운 것일 테고.

“여기 완강기 없습니까?”

사다리차도 없고, 여기서 버틸 수도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다.

바로 완강기.

고층 건물 화재 시 몸에 밧줄을 매고 땅으로 천천히 내려올 수 있게 만든 비상용 탈출 기구였다.

이런 건물이라면 완강기는 설치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김갑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라면 모를까, 요구조자들은 가기 힘든 곳이야.”

가로막고 있는 불길을 뚫어야만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거리는요?”

“멀진 않아.”

수혁인 김갑수에게 완강기가 있는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뛰어간다면 10초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염려한 대로, 불 한복판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그곳으로 가야겠어요.”

“우리야 방화복이 있다지만…….”

“제걸 입고 보내면 됩니다.”

김갑수가 픽- 하고 웃었다.

조금 전까지는 혼자밖에 없어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조대원이 세 명.

한 명이 옷을 벗어 요구조자에게 입히고, 다른 두 명이 데리고 간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

“서둘러야 합니다.”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수혁은 재빨리 장비와 방화복을 벗어 던졌다.

“제대로 입을 시간은 없어요. 대충 불길을 막을 정도로만 감싸 안고 달려야 합니다.”

김갑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요구조자 중 한 명에게 수혁의 방화복을 입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던 요구조자들은 김갑수의 설명을 듣고는 거부했다.

제아무리 방화복을 입었다고 하지만,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훈련을 받은 슈미츠조차도 조금 전 두려움에 떨지 않았던가?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이런 방법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수혁의 면체 마스크까지 씌운 김갑수는 벌벌 떨고 있는 요구조자에게 말했다.

“지금 피하지 않으면 더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음성.

하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협박에 가까운 말에 요구조자는 주춤주춤 움직이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절대로 안전하게 보호할 테니.”

김갑수는 믿음직한 말투로 조금이나마 그들의 불안감을 씻어내 주었다.

“갑시다.”

김갑수는 대원과 함께 요구조자를 데리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고작해야 10초.

뜨겁고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살기 위해선 그 정도는 버텨야만 했다.

수혁이 돌아올 김갑수를 기다리는 사이, 슈미츠는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 몸이었다.

자신 역시 꾸준한 운동의 결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육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혁의 몸은 그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다 슈미츠가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처가 하나도 없어?’

소방관이라면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한 게 정상이었다.

특히나 그가 알기론 수혁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지는 충분히 예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상처나 흉터가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화상 자국조차도 말이다.

‘저게 말이 되나?’

소방 학교에서 훈련만 했던 자신도 화상 자국 몇 군데는 몸에 달고 있었는데…….

“뭘 봐, 변태야?”

슈미츠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수혁이 웃으며 물었다.

물론 슈미츠는 그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괜히 민망해져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수혁은 그런 슈미츠를 살펴보았다.

조금 전의 일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긴 한 것 같은데, 정확히 그게 어떤 방향으로 흘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제발 좋은 쪽이었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란 게 언제나 바라는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 법이었으니…….

수혁은 가라앉은 눈으로 슈미츠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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