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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11화 (211/425)

레스큐 시스템 211화

소방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언제쯤이었을까?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계기는 단순했던 것 같았다.

TV에 나오는 다큐멘터리 하나를 본 뒤부터였을 것이다.

두툼한 방화복을 입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 가 한 명의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빠져나오는 소방관의 모습.

어린 나이에는 그런 소방관이 슈퍼 히어로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나도 소방관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단순하고도 일차원적인 이유이긴 했지만, 슈미츠는 어릴 때의 그 생각을 결국 현실로 이뤄내고 말았다.

소방관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필기시험을 위한 이론 공부가 조금 힘들긴 했지만, 합격했고, 그 뒤 체력 시험은 쉬웠다.

같이 시험을 본 그 누구도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었다.

슈미츠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시험에 최종합격을 해 소방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소방 학교 내에서도 슈미츠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성적을 자랑했다.

전국에서 모인 인재들이 가득했지만, 그중에서도 슈미츠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 누구도 슈미츠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때부터 슈미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만’이라는 감정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뛰어났으니, 어찌 보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간혹 누군가 그런 슈미츠에게 충고와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질투라고 생각해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슈미츠는 조금씩 동료들 사이에서 고립이 되어갔다.

자신만 몰랐을 뿐.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해외 연수 참가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실력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그 목적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듣고는 들떴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그가 아는 한국은, 동양의 작은 나라.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그 덕분에 게임을 잘하는 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건 슈미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수 없이 연수에 참가했다.

그러다 설명회에서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인이 독일의 명예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란 슈미츠는 수혁에 대해 조금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에 김수혁이라는 이름만 쳐도 기사들이 주르륵 나왔기 때문이었다.

[푸켓의 영웅.]

[백 명을 구한 한국의 소방관.]

[김수혁, 최강 소방관 경기의 우승!]

[세계신기록 수립.] /글/

등등.

직접 기사를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믿기 어려웠지만. 그중 제일은 최강 소방관 경기에서 율리안을 누르고 우승했다는 것이었다.

슈미츠가 가장 존경하고, 목표로 하고 있는 율리안이 아시아인 소방관에게 패배했다니?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슈미츠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수혁에 대한 적의를 그때부터 벌써 불태우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내가 똑똑히 확인해 주마.’

슈미츠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연수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겁이 날 정도로 커다란 불길 속에서, 가장 앞장서서 길을 뚫는 사람을 대단하지 않다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자신은 혼자선 제대로 들고 있을 수도 없는 호스를 한 손으로 컨트롤 하면서 말이다.

자신과 수혁 사이에는 지금으로선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가 변하지는 않았다.

수혁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건 수혁이 특별한 것일 뿐.

자신 역시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수혁에 대한 질투가 더욱 커져만 갔다.

주변에서 타오르는 이 불길처럼, 조금씩 제 몸집을 불려가고만 있었다.

슈미츠를 짓누르고 있던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수혁을 향한 질투와 시기가 가득 채웠다.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던 소년의 순수한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음…….’

수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문제 없이 이동했지만, 지금부터는 그리 쉽게 풀리지가 않았다.

‘호스가 짧다.’

아직 화재 현장을 벗어나려면 한 10m 정도는 더 가야만 했다.

그런데 소화전의 호스는 여기까지였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수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남몰래 노려보고 있던 슈미츠가 흠칫 놀라는 모습이 보였지만, 수혁은 신경쓰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호스가 짧습니다.”

수혁의 말에 대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직 한참은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엄호 방수를 할 수 없다면 전진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일단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

아쉽긴 했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엄호 방수가 되지 않으면 위험해.”

대원은 처음 반대했던 이유를 다시 들었다.

“하겠습니다, 엄호 방수.”

“……뭐?”

대원은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호스도 짧고, 앞으로 남은 거리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엄호방수를 한 단 말인가?

“선배님은 저 녀석 데리고 앞으로 달리기만 하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대원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수혁에게 물었다.

아니, 사실 알아들었다.

하지만 수혁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자신이 생각한 것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기에, 대원은 계속해서 물은 것이다.

“제가 여기서 방수를 하겠습니다.”

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그가 생각한 것이 맞았다.

“인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네가 방수해 주면 우리 둘이야 안전하겠지. 그런데 너는? 불에 타죽을 생각이야?”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30초 이상은 달려야 할 것 같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불길 속에서 견디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불길 약한 곳을 골라 이동한다면 그래도 버틸 만할 것이다.

하지만 불길 사이에 가만히 서서 방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아무리 방화복을 입고 있다 한들, 그 열기를 버티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하면 수혁은 자신들이 빠져나가고 난 뒤, 홀로 그곳을 지나와야 했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혁은 대원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너…….”

“믿어주세요. 정말 괜찮으니까.”

대원은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처음 수혁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신일역 붕괴사고.

그 처참한 현장 속에서도,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던 모습.

결국 모든 체력을 다 쓴 채 탈진한 상태로 구조가 되긴 했지만, 수혁이 아니었다면 요구조자들은 절대로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힘겹게 노력했던 사람이 수혁이었다.

그런 수혁이 허튼소리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수혁이 오기 전에 팀장인 김갑수가 했던 말도 떠올렸다.

‘웬만하면 김수혁이 하라는 대로 따르라고 했던가?’

그때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긴 했다.

하지만 팀장의 명령이기도 했고, 그만큼 수혁이 뛰어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기에 받아들였다.

‘지금이 그때인가?’

대원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은 수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신호 주면 너도 지체하지 말고 바로 따라와라.”

“알겠습니다.”

“힘들다 싶으면 그냥 돌아가도 좋고.”

대원은 수혁을 배려해 그렇게 말했다.

김갑수가 지원을 요청하긴 했지만, 그것은 자신과 슈미츠 두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혁은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미츠.”

그러곤 슈미츠를 불렀다.

슈미츠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았다.

호스가 더는 이어지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 더 어려웠다.

슈미츠는 과연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돌아갈까? 아무래도 그렇게 하겠지?’

아무리 수혁이라 한들, 이런 상황에 마땅한 대책이 있을 리가 없었다.

슈미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이어지는 대원의 말에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지금부터 앞으로 달린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저 불 속을 뛰어들어 간다고?

아무런 엄호 방수도 없이?

슈미츠의 눈이 커졌다.

“엄호 방수는 계속될 거다. 그러니까 1초도 멈추지 말고 앞으로 달리기만 해.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슈미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달려!”

대원이 소리치며 슈미츠의 몸을 밀었다.

덕분에 슈미츠는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 어어?’

불길을 가로막고 있던 물의 장막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대로 몇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면, 불길을 그대로 뒤집어 써버릴 것만 같았다.

“멈추지 마!”

대원의 외침이,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굳어져 가던 슈미츠의 귀를 때렸다.

그리고 그 찰나, 슈미츠가 물의 장막을 벗어났다.

“으아아!”

슈미츠가 두려움이 가득한 비명을 질렀다.

당장에라도 불길에 휩싸일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때,

촤아아악-!

안개처럼 퍼져 있던 물줄기가 굵어지더니, 슈미츠를 덮쳐 오던 불길을 밀어냈다.

‘어?’

슈미츠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호스가 짧아 더는 엄호 방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물이 뿜어져 나올 리가 없었으니까.

슈미츠는 반사적으로 뒤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친…….’

수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수혁이 쥐고 있는 호스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자신과 대원의 길을 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수혁은 불길에 집어 삼켜지고 있었다.

슈미츠는 그 모든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왜 이렇게까지?’

다른 방법도 많았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야 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이곳을 건너갈 방법 따위야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자신을 희생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대체 왜?’

슈미츠는 앞을 향해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이며, 수혁의 행동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지를 곱씹었다.

구조?

물론 중요했다.

자신들의 소명이자, 존재 의미니까.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희생해 가며까지 해야 할 일인가?

슈미츠로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슈미츠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수혁에게서 시선을 뗐을 때.

그는 불길 밖을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수혁의 모습은 불길에 가로막혀 더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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