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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06화 (206/425)

레스큐 시스템 206화

율리안의 표정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헤인델의 부상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연락을 받고 소방 학교로 한달음에 달려온 율리안은 가장 먼저 수혁을 찾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수혁은 자신을 찾아온 율리안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율리안의 얼굴이 그의 기분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 그게…….”

수혁은 다니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만히 앉아서 수혁의 이야기를 듣던 율리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러곤 수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네?”

갑작스런 율리안의 사과에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과를 해야 할 입장은 이쪽이었다.

자신들이 진행하던 훈련 도중 교육생이 부상을 입었으니 관리 소홀로 질책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사과를 받았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수혁은 율리안의 사과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애들이 아직 나이가 어려 생각이 짧다.”

‘아니, 일단 나이는 저랑 비슷합니다만…….’

내용물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또래였다.

그럼에도 율리안은 수혁을 그들과 비슷한 나이로 보지 않았다.

최소한 수혁의 경험과 능력만 보자면, 자신과 비슷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아니요. 좀 더 신경쓰지 못한 저희 잘못도 있습니다.”

수혁 역시 율리안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자 율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몇몇 녀석들이 한국에 오기 전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무리한 행동을 할 줄 몰랐군.”

“더 잘해보려고 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수혁은 나름대로 그 셋을 옹호했다.

솔직히 마음에야 들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율리안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의 결과에만 연연하는 녀석들이다. 이 연수의 목적이 뭔지, 그 녀석들은 이해를 못 하고 있어.”

기술, 지식, 경험.

연수 기간 동안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이 연수를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겨루는 테스트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혁과 율리안의 눈에 띄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

이번 사고는 그 철없는 생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어도 율리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헤인델은 어떻다던가?”

연락을 받자마자 소방 학교로 온 탓에 헤인델의 정확한 상태를 듣지 못한 율리안이 물었다.

“아직 자세한 건 검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다행히 머리 쪽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하네요. 대신 땅에 떨어질 때 충격이 심했는지, 내부 장기 몇 군데가 파열되며 출혈이 생겼고요.”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출혈이 가벼운 부상인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다친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뇌 손상은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다행히 그리 심하진 않아서, 수술 후 휴식을 취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다.”

율리안은 수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수혁이 독일로 연수 왔을 땐, 훈장 받을 정도로 활약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독일에서 온 녀석들은 사고만 치고 있었으니…….

도저히 수혁을 제대로 쳐다볼 면목이 없었다.

“아직 어리잖아요.”

수혁은 그 말을 하고는 속으로 ‘아차!’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율리안은 수혁의 말이 맞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수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돌렸다.

“어쨌든 오늘은 훈련을 중단하고, 교육생한테 휴식 시간을 줄 생각입니다.”

그간 너무 굴리긴 했다.

물론 훈련 계획을 짠 지양호가 아무런 계산도 없이, 교육생들을 괴롭히기 위해 이렇게 가혹한 일정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소방관이라면, 힘들긴 하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낙오 없이 견뎌낼 정도의 강도였다.

이번 사고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내일은 휴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헤인델이 다치며 다른 교육생들도 마음이 심란할 테니, 그냥 오늘부터 휴식을 주기로 했다.

‘휴식 시간이 길어진 만큼 훈련 강도가 더 빡세지겠지만.’

어차피 힘든 것은 그들이었으니, 수혁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 독일에는 내가 알아서 잘 설명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이번 일은 전적으로 그 녀석들 잘못이니, 한국 쪽에서 책임질 일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수혁이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율리안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일 때문에 괜히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다른 두 명은 어디 있지?”

율리안이 다니엘과 슈미츠의 행방을 물었다.

“지금 양호 선배와 진위 조사를 하고 있을 겁니다. 거의 끝날 때가 된 것 같은데…….”

수혁이 그렇게 말을 하며 시간을 확인하려 할 때였다.

양반은 못 되는지, 문이 열리며 지양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젠장, 이게 뭔 일인지.”

투덜거리며 들어오던 지양호는 수혁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율리안을 보고 멈칫했다.

“오셨습니까?”

율리안이 웃으며 지양호를 반겼고, 지양호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이거 미안하게 됐네.”

지양호가 율리안에게 사과하자, 조금 전 수혁과 했던 대화가 다시 오갔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율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고뭉치 녀석들을 좀 보러 다녀와야겠군요.”

“숙소로 갔을 거야. 일단 오늘은 자숙하고 있으라고 했으니, 어디 나다니진 않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다시 뵙죠. 한국 구경 좀 시켜주세요.”

“그건 맡겨만 두라고. 내가 아주 싹 다 구경시켜 줄 테니까.”

독일에서는 율리안이 직접 자신들을 데리고 다니며 관광도 시켜주었고, 식사도 대접했었다.

특히 수혁은 내기의 대가로 거의 매일 술을 얻어먹었고.

그러니 이번에는 자신들이 율리안을 대접하는 것이 맞았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율리안이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어이구, 죽겠네.”

지양호는 율리안의 기척이 사라지자,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피곤하세요?”

“그럼 안 피곤하겠냐? 아침부터 훈련 준비에, 들것 들고 네 속도에 맞춰서 산속을 달린 데다, 망할 놈들 헛소리를 들었으니.”

“헛소리요?”

수혁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물었다.

“그래, 헛소리. 슈미츠인지 뭔지 하는 놈. 그거 아주 꼴통이던데?”

“무슨 얘길 했기에 그래요?”

“자신은 잘못 없다고. 모든 건 다 훈련 계획을 이따위로 짠 우리랑 다친 놈이 잘못한 거란다.”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 한 자신들의 잘못도 있었고, 헤인델 역시 분명 잘못을 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은 틀렸다.

“……그렇게 말해요?”

“그래, 그래도 다니엘이란 놈은 그래도 죄송하다면서 자기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데, 그놈은 아니야. 어찌나 자존심이 강한지,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지양호가 질렸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두 명을 데리고 지양호가 대화한 이유는 추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그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슈미츠는 대체 뭐가 마음에 안든 것인지, 계속해서 적대적으로 나왔다.

다니엘은 그런 슈미츠를 말리기 바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다.

그러니 지양호가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놈 참…….’

수혁은 슈미츠를 떠올렸다.

첫날부터 수혁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던 슈미츠.

수혁의 능력을 보고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았지만, 오늘 마주하고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슈미츠는 수혁을 싫어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혁이 예상하기론 자신이 많이 겪어본 질투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소방관이 소방관을 질투해서 무엇 한단 말인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제가 한번 얘기해 볼까요?”

“아서라. 그놈이랑 대화하다간 화병난다.”

“그래도요.”

지양호가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수혁을 쳐다보았다.

“그놈이 너 싫어하는 거 알고 있지?”

“모를 수가 없죠.”

“그럼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지양호는 수혁이 슈미츠와 사이가 더욱 나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교육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어본 슈미츠라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잘 얘기해 볼게요. 뭐, 안 통하면 율리안한테 얘기하면 될 테고요.”

슈미츠는 수혁을 싫어했지만, 율리안은 존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정 안 되면 율리안에게 부탁하는 방법이 있었다.

최소한 그의 말은 들을 테니까.

“그럼 오늘 저녁 먹고, 시간 내서 그놈이랑 면담 한번 해라. 이렇게 계속 교육하는 것도 불편하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사실 수혁도 슈미츠에게 딱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양호의 말대로 이렇게 불편한 관계로 남은 채 계속 교육을 진행할 수는 없었기에, 대화를 한번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난 이만 좀 쉬자.”

많이 피곤했는지, 지양호는 소파에 누운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할까?’

수혁은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통역사에게 부탁해 슈미츠를 저녁 식사 후, 8시쯤 만나자고 이야기를 전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수혁은 슈미츠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압박을 줄까? 아니면 반대로?’

어떤 태도로 대화를 시작해도 슈미츠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부딪쳐 보지 뭐.”

고민하던 수혁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휘저으며 면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일찍 와계셨네요?”

면담실 안에는 슈미츠 대신 통역사가 앉아 있었다.

말이 통하질 않으니, 개인적인 면담이라 하더라도 통역사가 있어야만 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통역사가 웃으며 수혁에게 인사를 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먹은 다른 교관들과 달리, 젊은 수혁은 왠지 자신의 동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좀 편했다.

“슈미츠는 아직 안 왔죠?”

수혁이 시계를 확인했다.

7시 55분.

아직 약속 시간까진 5분이 남아 있었다.

“예. 그래도 알겠다고 대답을 했으니, 늦지는 않을 겁니다.”

수혁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커피를 타서 통역사에게 건네주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요.”

통역사가 허허- 하고 웃었다.

둘은 수혁이 타온 커피를 마시며 잠시 잡담을 했다.

질문은 대부분 통역사가 했고, 수혁은 대답하는 쪽이었다.

그렇게 5분이 흘렀다.

똑똑-

8시가 되자,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수혁의 말에 문이 열리며, 기다리고 있던 슈미츠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그리고 왠지 불쾌해 보이는 듯한 눈빛.

수혁은 슈미츠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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