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05화
“그러다 떨어졌다?”
다니엘의 말을 모두 들은 수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머저리들.’
셋 중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멍청한 짓을 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나이가 적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도 구분하지 못했고, 오직 눈앞의 결과에만 연연해 결국 사달이 일어나고 말았다.
헤인델이 직접 나서서 행동했다는 건 의외이긴 했다.
그리고 긍정적인 모습이기도 했고.
항상 수동적으로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보단, 스스로 판단해 나섰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성장을 했다는 뜻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된 판단이긴 했지만 말이다.
슈미츠?
이번 사고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한 것은 바로 슈미츠였다.
다니엘은 한 잘못은 사실 별것 없었다.
그저 처음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후 경험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뿐.
아직은 배우는 입장이었으니, 수혁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책망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슈미츠는 아니었다.
슈미츠는 자신의 조원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힌 조원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성적과 자존심에 눈이 멀어 위험한 행동을 부추겼다.
결론적으론 헤인델이 직접 나선 것이긴 했지만, 그 원인제공은 슈미츠가 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기엔 그렇지만…….’
슈미츠는 소방관에게 가장 중요한 팀워크를 저버렸다.
그것은 문제였다.
슈미츠에게는 수혁과 같은 능력이 없었으니까.
“넌 잠시 후에 보자.”
수혁이 슈미츠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
무전기를 통한 통역이 없었기에, 슈미츠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만은 알 것 같았다.
얼굴이 굳어지며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로 봐선 말이다.
수혁은 일단 이들의 잘못에 대한 것은 나중에 처리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헤인델의 상태였다.
‘저기에서 떨어졌다.’
수혁이 다니엘이 가리킨 나무를 쳐다봤다.
자세한 높이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 10여 미터 정도.
거의 끝까지 올라가서 떨어졌다고 했으니, 그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다.
‘다리만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정신을 잃은 것이야 추락 시 충격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딱딱한 콘크리트가 아닌 흙바닥에 떨어진 덕분에 충격이 좀 줄어들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흙바닥이 젤리는 아니지.’
수혁은 조심스럽게 헤인델의 뒤통수로 손을 가져다댔다.
출혈은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머리를 부딪쳤는지, 심하게 부어 있었다.
‘뇌진탕은 확정이고.’
가벼운 부상은 아니었지만, 사실 뇌진탕 정도로 끝난다면 다행이었다.
만약 두개골 안쪽에서 출혈이 일어났다거나 했다면 큰일이었다.
“선배님, 급히 이송해야겠습니다. 얼마나 걸리십니까?”
[지금 가고 있다. 5분.]
지양호의 말에 수혁이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운이 나쁘면 머리쪽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다. 조금만 더 기다려. 최대한 빠르게 달려가고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혼자 업고 달리고 싶었다.
그편이 훨씬 빨랐으니까.
하지만 함부로 움직여 헤인델에게 더는 불필요한 충격을 줄 순 없었다.
남은 방법은 들것을 이용해 옮기는 것이었는데, 다니엘과 슈미츠는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상태였다.
괜히 저 둘과 헤인델을 옮기다가는 더 큰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가다가 들것을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결국은 지양호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구급대에게 연락해서 산 밑에 대기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
수혁은 이번엔 통역사에게 그렇게 부탁을 했다.
최대한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상황이 뭔가 심각해 보이자 통역사는 빠르게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소방 학교 내에 있는 구급대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수혁은 지양호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헤인델의 바이탈을 체크했다.
옆에서는 다니엘과 슈미츠가 멍하니 서서 그런 수혁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평소였다면 앉아서 기다리라고 얘기라도 해주었겠지만, 수혁은 그 둘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음?”
헤인델의 호흡을 체크하던 수혁의 눈매가 좁아졌다.
조금 전 체크했을 때와 달랐던 것이다.
‘약해졌어.’
약해진 것은 호흡뿐만이 아니었다.
맥박 역시 조금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약해져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기긴 한 모양이군.’
고작 다리가 부러졌다고 해서 바이탈이 이렇게까지 흔들릴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일단 가장 먼저 짐작되는 쪽은 머리였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장기손상.
‘아니, 어쩌면 그 두 곳 모두 손상을 입었을 수도 있어.’
추락 시 충격으로 인해 내부 장기와 머리 쪽 모두 다쳤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수혁이 다급히 헤인델의 상의를 풀어헤치고는 배를 살짝 눌러보았다.
“딱딱해.”
복부가 딱딱해지는 현상은, 내상을 입었을 경우에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였다.
“젠장.”
좋지 않았다.
어느 한 군데의 문제가 아닌, 복합적인 문제였다.
지금 당장에라도 병원으로 이송해서 정밀 검사를 해야만 했다.
“선배님!”
수혁이 무전기를 들고 지양호를 불렀다.
그런데 지양호의 대답이 무전기가 아닌, 바로 뒤쪽에서 들려왔다.
“왔다, 인마! 그만 좀 찾아!”
수혁이 고개를 돌리자, 얼마나 다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숨을 헐떡이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지양호가 보였다.
수혁이 그런 그에게 다가가 부축을 하려 했지만, 지양호는 손을 내저으며 헤인델에게로 향했다.
“일단 이놈 상태부터. 어때?”
“호흡, 맥박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의심되는 부상은 다리 골절, 그리고 뇌출혈이나 장기손상,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고요.”
지양호의 눈이 커졌다.
그는 그저 다리 골절에 의식이 없는 정도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바로 옮겨야겠군.”
지양호는 헤인델이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수혁이 이미 들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단 지금은 그딴 것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들 것 잡아.”
지양호의 말에 수혁이 헤인델의 머리 쪽으로 가서 들것의 손잡이를 동시에 들어 올렸다.
“길은 알지?”
“네!”
모를 리가 없었다.
수혁에게는 ‘미니 맵’이 있었으니까.
“너희도 따라와!”
지양호가 우두커니 서있는 다니엘과 슈미츠를 향해 영어로 소리를 쳤다.
그리고 동시에 수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하지만 최대한 안정적으로.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수혁은 전신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디뎠다.
‘위기감지Ⅲ’ 스킬이 있었으니 웬만해선 발을 잘못 디딜 위험이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지양호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현장에 도착 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이동을 한 탓에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조금 쉴까?’
헤인델의 상태가 위중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 이동을 하다, 잘못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바에야, 5분 정도만이라도 쉰 후 다시 출발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런데 지양호는 그런 수혁의 생각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냥 계속 가. 속도만 조금 줄이면 쉴 필요 없다.”
“……괜찮으시겠어요?”
“죽어도 도착하고 나서 죽을 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절대로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대로 계속 이동하겠습니다.”
수혁은 속도를 조금 늦추며 옆을 돌아봤다.
다니엘과 슈미츠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둘은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몸은 비틀거렸으며, 폐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슈미츠는 문득 수혁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슈미츠를 쳐다보는 수혁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냥 어떤 상황인가 확인하기 위해 쳐다본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슈미츠는 그것이 마치 자신을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슈미츠가 이를 악다물었다.
조금 전, 다니엘에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들은 수혁이 자신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떠올랐다.
‘한심하다? 어이없다?’
독심술사가 아니었으니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그런 표정이었던 것 같았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저 최선을 다한 죄밖에 없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그래서 수혁과 율리안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그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에게 이런 시선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사고가 일어난 것은 헤인델의 실수였고,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나선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수혁은 너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슈미츠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의심, 그 후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지금은 분노.
수혁을 향한 슈미츠의 감정이었다.
‘기껏해야 나랑 두 살 정도밖에 차이도 나지 않으면서…….’
고작해야 두 살 차.
그럼에도 두 사람의 위치는 천양지차였다.
한 명은 교관이었고, 한 명은 교육생이었으니 말이다.
그것 외에도 능력의 차이 역시 심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자신은 이렇게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인데, 수혁은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자신들과 매일 같은 훈련을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산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수혁에 대한 슈미츠의 악의는 점점 더 그 크기를 더해갔다.
“다행이네요.”
무사히 산 밑으로 내려와 헤인델을 구급대에 인계한 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이탈이 불안정하긴 했지만, 어쨌든 더 늦기 전에 헤인델을 병원으로 이송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산악 구조 훈련은 여기서 중단해야겠군요.”
사고가 한 차례 일어났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훈련은 여기까지만 하고, 사고가 벌어진 경위 조사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지.”
지양호는 혀를 차며 무전기를 들었다.
그러곤 교관들에게 훈련 중단을 알렸다.
수혁과 지양호의 무전을 통해 이미 그간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교관들은 모두 납득하며 훈련 종료에 찬성했다.
“같이 들어갈까?”
책임 교관인 지양호는 지금부터 다니엘과 슈미츠에게 사고 경위를 들어야만 했다.
이런 사고가 대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예방하기 위해서.
“저는 율리안을 만나러 가볼게요.”
아직 독일 측에선 자국의 교육생이 훈련 도중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혁은 그 역할을 자신이 맡기로 한 것이다.
“그래. 상황설명 잘하고.”
“네.”
사실 수혁은 다시 한 번 다니엘과 슈미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똑똑히 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슈미츠의 눈빛을 보아하니, 그는 자신에게 그리 좋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 나서봐야 반발만 살 것이 뻔했기에 지양호에게 양보한 것이었다.
‘뭐, 그런 쪽은 선배님이 더 잘할 것 같기도 하고.’
그간 지양호가 보여주었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둘은 선배님한테 맡기고…….’
수혁이 어두운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