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204화
“이상하지 않아?”
슈미츠가 다니엘에게 물었다.
“음…….”
그것은 다니엘 역시 느끼고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그리고 다니엘이 계획한 대로라면, 지금쯤 눈앞에 작은 냇가가 나타나야만 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냇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길을 잘못 찾은 건가?’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인델에게도 확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
다니엘의 눈동자에 혼란이 가득했다.
그것을 눈치챈 슈미츠가 얼굴을 굳히며 다니엘의 어깨를 붙잡아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르겠다니?”
설마 자신들이 길을 잃었다는 뜻이란 말인가?
분주하게 움직이던 다리를 멈춘 다니엘은, 슈미츠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거렸다.
그 모습을 본 슈미츠는 자신의 우려가 사실임을 알 수가 있었다.
“지도 줘봐.”
하지만 슈미츠는 다니엘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이 조에서 지도를 가장 잘 보는 사람은 다니엘이었고, 자신 역시 다니엘이 길잡이를 맡는 것에 찬성했으니 말이다.
슈미츠는 일단 다니엘이 건네 준 지도를 펼쳐 확인했다.
‘으음.’
지도와 자신이 지금까지 지나왔던 길들을 떠올리며 대조해 보자, 확실히 조금 전까지는 제대로 된 길을 따르고 있었던 게 확실했다.
‘그런데 중간에 잘못 들었단 말이지.’
문제는 그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의기소침해 있지 마. 다행히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으니까.”
기억이 맞다면 길을 잃은 시점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분 안팎이다.
그 정도면 되돌아가기엔 충분했다.
“일단은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부터 확인하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든, 아니면 제대로 된 방향을 찾든.
자신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슈미츠는 그러면서 아직도 풀이 죽어 있는 다니엘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필요해.”
지금은 실수하긴 했지만, 길을 찾는 능력은 다니엘이 훨씬 뛰어났다.
그러니 후회와 반성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길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만 했다.
“알았어.”
슈미츠의 위로에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미소지었다.
“지표가 될 만한 것을 찾아봐.”
다니엘은 슈미츠와 여전히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헤인델에게 부탁했다.
뭔가 위치를 특정할 만한 것을 발견해야만,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셋은 한참이 지나도 길을 찾지 못했다.
너무도 우거진 수풀 덕분에 주변의 지형을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젠장, 이렇게 가다간 끝도 없겠네.”
슈미츠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면서 시야가 확보되면 그때 다시 지표를 찾기로 한 것이다.
“나침반으로 방향 좀 확인해 줘.”
길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나침반으로 방향만 제대로 찾아 움직인다면, 처음 목표로 했던 냇가가 있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가뜩이나 체력도 바닥을 치고 있는 마당에 숲속에서 길을 잃었으니 이번 훈련의 성적은 형편없을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슈미츠는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쪽이야.”
나침반을 통해 방향을 확인한 다니엘이 한쪽을 가리키자, 슈미츠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조급함 때문일까?
슈미츠는 뒤에 있는 조원들의 체력을 고려하지 못했다.
“조, 조금만 천천히…….”
숨을 헐떡이며 따라 걷던 헤인델이 슈미츠에게 속도를 늦추자고 부탁해 왔다.
“조금만 견뎌봐, 사내가 돼서 그것도 못 참아?”
하지만 슈미츠는 그런 헤인델의 말을 묵살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헤인델이었는지라, 슈미츠의 태도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헤인델은 입술을 깨물었고, 다니엘은 침묵했다.
다니엘 역시 힘들기는 헤인델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 길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둘보다 체력이 조금 더 좋았던 슈미츠는 그들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리하게 이동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걸었을 때였다.
꾹 참고 슈미츠의 뒤를 따라 걷던 다니엘마저 더는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참다못한 헤인델이 결국 폭발했다.
“슈미츠!”
헤인델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거칠 손길로 슈미츠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곤 홱- 하고 슈미츠의 몸을 돌렸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슈미츠가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헤인델을 노려보았다.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조원.
저런 능력을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소방관 시험에 합격했는지, 의문이 드는 조원.
그런 헤인델이 자신을 멈춰 세웠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애초에 저놈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아도 될 일이었잖아.’
헤인델이 제 몫만 해줬어도, 시간에 쫓겨 숲을 가로지르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길을 잃을 이유도 없었다.
이 모든 건 바로 헤인델 때문이다.
슈미츠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조금 쉬었다 가자. 다니엘도, 나도 지쳐서 더는 못 움직여.”
헤인델은 슈미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일단은 쉬기를 권유했다.
“하!”
슈미츠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찍소리도 하지 않고 따라와도 모자랄 판에 감히 쉬자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본래부터 다혈질이었던 슈미츠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오를 때였다.
“슈미츠.”
다니엘의 지친 음성이 그런 슈미츠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슈미츠는 그제야 다니엘의 모습을 확인했다.
너무도 지쳐 있는 표정.
더는 흘릴 땀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다니엘의 얼굴에는 땀 한 방울조차 맺혀 있지 않았다.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 있는 다니엘의 얼굴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슈미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물 마셔.”
슈미츠가 배낭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다니엘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다니엘은 급격한 체력 저하로 탈수증세가 온 것 같았다.
헤인델의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인 다니엘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니, 쉬어야만 했다.
다니엘에게 생수를 마시게 한 슈미츠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금 쉬자.”
슈미츠의 말에 다니엘과 헤인델은 살았다는 표정으로 땅에 철푸덕 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어.”
이미 망쳐 버린 훈련 같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성적을 얻으려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잠시 고민하던 슈미츠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다니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뭔가 지표가 될 만한 것을 찾으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지?”
“맞아.”
다니엘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뭔가를 찾기가 힘들어.”
울창한 나무들로 시야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슈미츠는 뭔가 방법을 생각한 것 같았다.
“저 위로 올라가서 확인하면?”
“……뭐?”
다니엘은 슈미츠가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자고?”
“그래, 저 위라면 주변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슈미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 밑에 있는 것보다, 나무 위에 올라가면 시야를 넓게 확보할 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위험해.”
평소였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에서 어찌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간단 말인가.
그러다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너무도 위험한 방법이었다.
“할 수 있어.”
물론 슈미츠는 다니엘의 생각과 달랐다.
이런 곳에서 계속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고 빠르게 길을 찾고 싶었다.
슈미츠는 여전히 성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안 돼, 슈미츠. 만약 그러다 잘못되면…….”
“내가 이깟 나무도 못 탈 것 같아?”
다니엘이 슈미츠를 만류하려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 모습에 다니엘은 자신이 슈미츠를 말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슈미츠는 언제나 한 번 마음먹은 것은 어떻게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으니까.
불안한 마음이 든 다니엘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헤인델을 쳐다봤다.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지만, 혼자 말리는 것보단 둘이서 말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헤인델은 갑자기 다니엘이 자신을 쳐다보자 움찔- 했다.
다니엘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모르진 않았다.
헤인델은 다른 소방관들보다 조금 능력이 부족할 뿐이었지,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헤인델의 표정에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고민은 다니엘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다니엘은 그저 같이 슈미츠를 말려주길 바라던 것이었는데…….
“내가 할게.”
“뭐라고?”
다니엘과 슈미츠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한다고.”
“너 미쳤냐?”
슈미츠가 얼굴을 찌푸리며 헤인델을 쏘아붙였다.
걷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무슨 나무를 탄단 말인지.
아니,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떠나, 헤인델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정한 헤인델은 자신이 있는 표정이었다.
“나무 타는 건 자신 있어. 어릴 때부터 수백, 수천 번은 올랐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슈미츠, 최소한 너보다는 잘 탈 거다.”
슈미츠는 헤인델의 말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이 나이 먹고도 이런 유치한 감정이 드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헤인델 따위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슈미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헤인델에게로 다가갔다.
“웃기지 마라, 헤인델.”
위협적인 태도로 말을 하는 슈미츠의 모습에 헤인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고민 끝에 나서긴 했지만, 소심한 성격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헤인델은 용기를 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 나는 너와 경쟁하려는 생각 따윈 없어. 내가 부족하다는 건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떨리는 음성.
헤인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잔뜩 쫄아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무 위로 올라가서 살피는 건 내가 하겠어. 그건 내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야.”
헤인델의 말에 슈미츠가 멈칫했다.
다니엘 역시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헤인델을 쳐다보았다.
헤인델을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리고 우리 중에 다쳐도 가장 상관없는 사람이 나이기도 하고…….”
다니엘이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헤인델은 지금까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민폐를 끼쳤다.
그래도 저런 생각 따윈 해본 적도 없었다.
자신을 저렇게 비하하는 헤인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한심하기도 했다.
“……좋아, 네가 해라.”
“슈미츠!”
다니엘이 슈미츠를 향해 소리쳤다.
슈미츠가 헤인델을 조금이나마 인정을 하며 싸움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다니엘이 바라는 상황은 아니었다.
슈미츠든, 헤인델이든.
지금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하지만 2:1이 된 상황에서 다니엘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헤인델이 나무 위로 오르기 시작했고, 다니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