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202화 (202/425)

레스큐 시스템 202화

후들거리는 다리.

비 오듯 쏟아지는 땀.

목구멍이 따가울 정도로 거친 호흡.

교육생들의 상태는 차마 눈 뜨고 보기가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나마 상태가 나아 보이는 슈미츠마저도 입가에 흘러내리고 있는 침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있었으니…….

그런데도 교육생들은 수혁의 명령에 자리에서 일어나 정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일주일간 체력 훈련했다고 획기적으로 체력이 늘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체력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독기와 정신력을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날 겪은 경험이 훗날 현장에서 분명히 도움이 될 날이 올 테니까.

물론, 수혁은 이 정도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힘겹게 서 있는 교육생들을 잠시 지켜보던 수혁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수분 보충을 위한 물도 함께.

“지금부터 10분간 저곳에서 휴식한다. 그리고 휴식하는 동안 세 명씩 짝을 지어 조를 만들어라.”

휴식이라는 달콤한 단어에 그들은 수혁의 뒷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공터로 이동했다.

몇몇은 그대로 땅 위에 드러누웠고, 다른 몇몇은 물을 마셨다.

10분이라는 짧은 휴식 시간이었지만, 교육생들은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뻐했다.

수혁은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 교육생들을 쳐다보다 몸을 돌려 무전기를 들었다.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다. 낙오자는?]

“한 명도 없어요.”

수혁의 대답에 무전기 너머에서 지양호가 의외라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전원 도착했다고?]

“네. 거의 죽어가는 상태이긴 하지만요.”

혼자였다면 절대로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옆의 동료들과 함께 서로 도우며 힘을 북돋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두 명 정도는 낙오할 줄 알았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긴 하네. 뭐, 어쨌든 훈련은 언제부터 시작할 거냐? ]

“일단 지금은 휴식을 좀 취해야 할 것 같아서, 쉬는 시간 중이에요. 훈련은 30분 후부터 시작할 예정이고요.”

[알겠다. 그럼 그 때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으마.]

“네, 수고하세요.”

수혁이 무전을 끊고 손목에 찬 시계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교육생들이 흠칫했다.

벌써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쉬는 시간은 아직 8분이나 남아 있었다.

수혁은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주변의 작은 돌 위에 걸터앉았다.

교육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마트폰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교육생들과는 달리, 수혁에게 10분이란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땀을 식힐 일도, 거친 호흡을 진정시킬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최은송과 연락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훈련 중엔 필요 없을 것이라 생각해 가져오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같은 시간이었지만, 체감은 확연히 달랐던 10분이 지났다.

시간을 확인한 수혁이 돌에서 엉덩이를 떼며 일어났다.

“휴식 끝. 정렬해.”

수혁의 말에 교육생들이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정렬했다.

몸은 여전히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그래도 조금 쉰 덕분인지, 조금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조는 다 나눴나?”

“예!”

“조별로 모여.”

교육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혁은 세 명씩 총 열 개의 조가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미리 준비해 둔 배낭을 한 조에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 안에는 지금부터 너희가 구조해야 할 요구조자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와 무전기가 들어있다.”

그 외에도 생수와 로프, 손전등과 같은 것들도 구비되어 있었다.

교육생들이 일단 지도를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수혁의 말대로 지도에는 붉은 점으로 표시가 된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 점이 찍혀 있는 지점은 각 조가 모두 달랐다.

“점의 위치에는 훈련용 더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미들은 모두 다른 부상을 입고 있는 상태이지. 너희는 지금부터 그것들을 찾고, 올바른 응급 처치한 뒤 구조해서 데리고 내려오면 된다.”

생각보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훈련에 교육생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제한 시간은 언제까지입니까?”

다니엘이 손을 들고 물었다.

“없다. 구조해서 소방 학교로 돌아오는 순간, 오늘 훈련은 그것으로 끝이다.”

“와아!”

교육생들이 환호했다.

이제 막 아침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구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평소보다는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그럴까?’

들뜬 교육생들을 보며 수혁이 슬쩍 미소 지었다.

저들은 지금 산악 구조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산에서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체력을 소모하게 만들고, 길을 찾는 것 역시 쉽지가 않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저들로선 절대 쉽지 않은 훈련이었다.

‘조금만 헤매도 금방 저녁이 되겠지.’

그럼 구조는 더욱 어려워진다.

끝내 구조에 성공하지 못하는 조가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뭐,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기는 게 좋겠지.’

잠시 후면 저들은 웃고 떠들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수혁은 그것이 안쓰러우면서도, 과연 몇 조나 구조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각 조는 요구조자를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 조원들과 상의하고, 이쪽에 준비된 구조 장비들을 챙긴 뒤, 정확히 10분 뒤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교육생들은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서로 상의를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

슈미츠가 다니엘을 보며 물었다.

피지컬 자체는 다니엘보다 슈미츠가 낫긴 했지만, 이런 분야에선 반대였다.

다니엘은 이론, 수색 성적이 뛰어난 예비 소방관이었다.

“여기 적혀 있는 것으로 봐선…….”

지도에는 요구조자의 위치뿐만 아니라, 어떤 부상을 입고 있는지도 적혀 있었다.

신고가 접수되어 출동했다는 설정이었던 것이다.

“일단 다리 골절이 의심되고,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심하다는 걸로 봐선 척추 쪽에도 문제가 있을 수가 있어.”

“들것이 필요하겠군.”

“그냥 헬기를 요청하면 되는 일 아니야?”

다니엘, 슈미츠와 한 조가 된 헤인델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산악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였다.

그리고 그 속도를 빠르게 낼 수 있는 것은 헬기가 출동하는 것이었고.

“헬기를 쓰면 산악 구조 훈련이 되겠냐?”

슈미츠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헤인델에게 핀잔을 주었다.

“거기다 지도를 봐. 헬기가 접근할 수도 없는 장소야.”

그들의 조가 구조를 해야 하는 요구조자는 협곡과 같은 장소 안에 있었다.

헬기가 출동하더라도 제대로 접근하기 힘든 장소임이 분명했다.

둘의 말에 괜히 머쓱해진 헤인델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냥 해본 말이라고.”

“그런 말 할 시간에 생각을 좀 더 해라.”

슈미츠는 헤인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잔소리 했다.

“그만, 지금은 싸울 시간 없어.”

다니엘이 슈미츠를 말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시간이 부족했다.

상의할 시간이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들 것, 그리고 부목이 필요해.”

“담요도 챙겨야지, 날씨가 따뜻하긴 하지만, 산속에서 조난당한 상태니 체온이 많이 떨어졌을 거야.”

다니엘과 슈미츠는 빠르게 필요한 것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헤인델은 그저 그런 둘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고.

슈미츠는 간혹 한 번씩 그런 헤인델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굳이 말을 걸진 않았다.

10분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이제 출발해!”

수혁이 시간 종료를 알리고, 출발을 지시했다.

교육생들은 그 시간 동안 논의하며 생각해 둔 장비들을 챙겨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조에 뒤처지고 싶은 생각 따위는 전혀 없던 둘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움직였음에도, 가장 먼저 출발하진 못했다.

“헤인델! 가만있지 말고 좀 도와!”

바로 헤인델 때문이었다.

헤인델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고 있었다.

다니엘과 슈미츠가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 한들, 한 명이 어리바리하고 있었으니 남들보다 빠를 리가 없었다.

결국 다니엘 조는 열 개의 조 중 여덟 번째로 출발했다.

많이 늦은 것이다.

슈미츠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다니엘의 만류에 이번에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괜한 갈등을 빚었다간 훈련도 제대로 마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쪽이야.”

지도를 살피던 다니엘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당연하게도 길이 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쪽으로 가로지르면 최단 거리로 갈 수 있어.”

“하지만…….”

슈미츠는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익숙하지 않은 산속에서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갔다가 조난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맬 확률은 높지 않았다.

그리 큰 산도 아니었고, 지도와 나침반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슈미츠가 염려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다른 조보다 늦을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수혁에게 자신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싶었던 슈미츠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게 더 빨라.”

하지만 다니엘은 확고한 표정이었다.

헤인델로 인해 이미 늦었다.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면 이 방법이 가장 좋았다.

슈미츠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의 말대로 어차피 늦었다.

길을 따라간다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다른 조보다 앞설 수 없었다.

그럴 바에야 위험을 감수하고 조금 더 빠른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좋아. 대신 길 안내는 확실히 해야 돼.”

“걱정하지 마.”

다니엘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별다른 의사 표현도 하지 않고, 그저 수동적으로인 헤인델은 그냥 둘이 결정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다니엘 조는 우거져 있는 수풀 쪽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갔다.

한여름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계절.

나무와 수풀은 각자 전성기를 맞이해 더할 나위 없이 우거져 있었다.

“벌레가 생각보다 많은데?”

슈미츠가 자꾸만 들러붙는 날벌레들을 털어내며 인상을 구겼다.

“여기가 아마존이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벌레가 많다고는 하지만, 정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고작해야 동네 뒷산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슈미츠와 헤인델은 찝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의외로 다니엘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로 지도를 보며 길을 안내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체감상으론 한 시간 가까이 이동한 것 같았다.

슈미츠가 시계를 확인했다.

‘30분?’

자신이 생각한 것의 절반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것은 슈미츠뿐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아?”

가만히 뒤따르기만 하고 있던 헤인델이 물었다.

“맞아.”

다니엘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실제로도 다니엘은 정확히 자신들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헤인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지 않아?”

“……뭐?”

다니엘고 슈미츠가 그런 헤인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헤인델은 불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