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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01화 (201/425)

레스큐 시스템 201화

훈련의 강도는 교육생들이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우웨엑!”

다니엘은 치솟아 오르는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결국 어제저녁에 먹었던 것을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물론 다른 교육생들도 함께.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구역질 소리를 들은 지양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지양호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미소를 지은 이유는 교육생들의 눈빛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첫날 아침, 피곤과 귀찮음으로 물들어 있던 교육생들의 눈빛은, 어느새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일어나라.”

지양호는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내리며 차갑게 명령했다.

그러자 교육생들은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정렬.”

교육생들이 3열 횡대로 정렬을 시작했다.

땅바닥에는 몇몇 교육생들이 게워낸 내용물들이 흥건했지만, 그것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엔 정신과 체력이 너무도 지친 상태였으니까.

교육생들의 정렬이 끝나자 지양호가 시계를 확인했다.

7시.

교육생들은 한 시간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운동장을 돌았다.

그래도 처음 며칠은 버텼지만, 그것도 일주일이 한계였다.

슬슬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하며, 한계에 다다른 교육생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아침 체력 단련만으로도 정신 차리지 못할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각자 돌아가서 씻고, 아침 식사를 하도록 해라.”

지양호의 말에 교육생들이 드디어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니엘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괜찮아?”

옆에서 함께 걷던 슈미츠가 물었다.

슈미츠는 다니엘보단 상태가 좋아 보이긴 했지만, 그 역시 엉망진창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죽을 것 같아.”

다니엘의 음성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통과하지 못할 소방관 체력 능력 시험을 통과할 정도였으니,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었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일주일 만에 통째로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리 멀쩡한 거지?”

다니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쪽을 쳐다봤다.

그곳에선 수혁이 다른 교관들과 함께 웃으며 대화하고 모습이 보였다.

“인간이 아니잖아.”

슈미츠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교육생들이 가혹하기까지 한 체력 훈련에 아무런 불만도 내비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수혁 역시 자신들과 같이 훈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훈련한 수혁이 저토록 멀쩡한 모습이니, 불만을 토로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은 곧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으니까.

그러니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제 한계였지만…….

“오늘 아침은 먹을 수 있을까?”

억지로라도 먹어야만 했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그만큼 남은 훈련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에서는 아침은커녕, 물조차 마시기도 힘들었다.

목을 넘기는 순간 곧바로 나올 게 분명했다.

“그래도 먹어야지.”

슈미츠는 힘들어하는 다니엘을 부축해 숙소로 올라갔다.

교육생들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지친 표정으로 식당에 모였다.

아침 식사는 그들을 배려해서인지, 독일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다니엘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식은 맛이 있었지만, 사실 체력 훈련을 마친 직후에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간단히 빵 위에 잼과 버터를 발라먹는 독일식 아침 식사가 익숙했다.

물론 안 먹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교육생들은 자꾸만 올라오려는 음식들을 억지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겨우 배만 채울 정도로 식사를 마친 교육생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인 훈련 일정에 들어갔다.

“이번 주 훈련은 너희가 기대했던 산악 구조 훈련이다.”

수혁은 처음 존댓말을 했던 것과 다르게 이젠 하대를 하고 있었다.

이젠 교관으로서 저들을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사실 통역을 통해 말을 전달하고 있었으니 어찌 되었든 상관없긴 했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하대냐 존대냐가 아닌, 수혁이 그들을 작정하고 굴리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산악 구조라니…….”

교육생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떠올랐다.

매일 반복되는 고강도 훈련에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 산악 구조?

“죽으라는 건가?”

국토의 70퍼센트에 달하는 면적이 산인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독일에도 산이 많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산악 구조 출동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소방 학교에서도 산악 구조에 대한 훈련을 많이 하긴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고!’

다니엘이 속으로 절규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덜덜 떨려오는 상황에서 산을 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교육생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들이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지치고,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여야 하는 것이 소방관이었으니까.

“뒤로 돌면 산이 보일 거다.”

수혁이 그렇게 말을 했지만, 교육생들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그곳에 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소방 학교 자체가 산에 둘러싸여 있는 구조였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교육생들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의 설마는 사람을 잡았다.

“지금부터 산을 오른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한 시간 주지.”

소방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일반인들도 조금 무리를 한다면 한 시간 만에 충분히 정상에 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교육생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한 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을 줘도 제때 오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불가능합니다!”

교육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소리를 쳤다.

슈미츠였다.

수혁은 슈미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하지만 슈미츠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훈련이 아니라, 학대야!’

나름대로 엄청난 훈련을 해왔다는 자신들이 일주일 만에 이렇게 녹초가 되었다는 것부터가 비정상이었다.

하지만 슈미츠는 뒤이어진 수혁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같이 오른다. 너희는 내 뒤를 따라오도록.”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자신들과 함께 모든 훈련을 소화한 수혁이 앞장서서 오른다는데.

슈미츠가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훈련에 참가해야만 했다.

슈미츠가 입을 다물자, 수혁의 시선이 다시 교육생들을 향했다.

“산악 구조에 대한 훈련은 일단 정상에 오른 후에 시작한다. 그러니 늦지 않도록 해.”

수혁은 교육생들과 함께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푼 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면서도 수혁은 마치 아침 산책을 나온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헉, 헉, 헉!”

뒤쪽에서 교육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이 뒤를 돌아보자, 교육생들은 이제 산 초입에 진입했음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속도를 조금 늦출까?’

수혁이 생각하기에도 이번 연수 훈련 일정은 빡셌다.

만약 레벨 업을 통해 신체 능력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수혁 역시 저들처럼 녹초가 되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연민의 눈빛으로 교육생들을 바라본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걸음을 늦추면, 그만큼 교육생들의 체력 소모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하며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이 얼마 전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테러.’

올해 독일에서는 테러가 일어난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연쇄 테러가.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하고, 구조를 위해 투입되었던 소방관들 중에서도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았다.

이들도 그 테러 현장에 투입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도저히 설렁설렁 훈련을 시킬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수혁과 교관들을 원망하고, 속으로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조금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출수록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괜찮으세요?”

수혁은 훈련에 덩달아 참가하게 된 통역사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통역사는 그야말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훈련된 소방관도 아니었고, 평소에 운동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라, 더욱 힘들어했다.

“괘, 괜찮습니다.”

통역사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면 얘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수혁은 차라리 독일어가 가능한 소방관을 교관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으면 훈련을 진행하는 게 훨씬 원활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지금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건의를 해봐야,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만약 승인이 난다고 해도, 공무원들의 일 처리 속도를 생각해 보면 연수가 끝날 무렵에나 새 교관이 올 확률이 높았고.

고생스럽더라도, 한 번 맡은 일이었으니 끝까지 맡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통역사를 살피며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그렇게 정확히 한 시간 후.

수혁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세 명이라…….”

하지만 교육생들은 고작 세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니엘과 슈미츠, 그리고 루카스.

이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는 수혁과 다르게,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수혁은 일단 다른 교육생들이 도착할 때까지 그들을 쉬게 해주었다.

지금 바로 훈련을 시작한다고 해도 진행이 되지 않을 정도의 상태라 판단한 것이다.

“이러다간 정말로 죽고 말 거야.”

땅에 등을 대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다니엘이 그렇게 말했다.

슈미츠도 다니엘의 말에 동의하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은 완전히 방전됐고, 근육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해.”

그 어떤 때보다 휴식이 절실했다.

이대로 일주일, 아니, 며칠만 더 지나면 더는 움직이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어떤 운동이든 무리하기만 해선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훈련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 굴리기만 한다고 해서 피지컬이 좋아지고, 능력이 상승하는 건 아니었다.

구를 만큼 굴렀으면, 몸을 쉬게 해주는 것 역시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다니엘은 그것을 모르는 교관들이 무식하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수혁이나 교관들이 그것을 모르진 않았다.

최대한 담금질을 한 뒤, 최적의 타이밍에 휴식을 줄 생각이었다.

그때가 지금은 아니었을 뿐이다.

반면 슈미츠는 다니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대신 곁눈질로 수혁의 모습을 관찰했다.

대체 어떻게 저토록 멀쩡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설렁설렁 요령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옆에서 수혁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지켜본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니 더욱 미칠 것 같았다.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고, 경력도 고작해야 1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혁은 자신이 본 그 어떤 소방관보다도 뛰어났다.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수혁과 같은 괴물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일어나라.”

다니엘과 슈미츠가 서로의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교육생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마지막 30명째가 도착했을 때, 수혁이 쓰러져 있는 교육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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