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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200화 (200/425)

레스큐 시스템 200화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침대에서 일어난 수혁은 곧바로 샤워를 시작했다.

“후우.”

연수 둘째 날.

아니,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수혁은 주황색 교관복을 입은 뒤 거울 앞에 섰다.

‘잘할 수 있으려나.’

사실 가르쳐 줄 것은 많았다.

수혁이 구조대원으로서 쌓은 경력이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막 소방관이 된 이들에게 전해줄 것은 쌓이고 쌓여 있었다.

경험과 지식, 그리고 현장에서의 노하우까지.

굳이 스킬과 레벨 업이 없더라도 교육하기엔 충분했다.

그럼에도 수혁은 걱정스러웠다.

과연 자신이 잘해낼 수 있을지…….

현장 경험은 풍부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가르쳐 본 적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신입 대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가르치는 것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처럼 30명에 달하는 대인원을 가르쳐 본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걱정과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고는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새벽 5시 45분.

아직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밖은 이미 밝았다.

“이제 슬슬 여름이구나.”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년 반이나 흘렀다.

수혁은 햇살을 받으며 본관 앞 운동장으로 향했다.

교육은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운동장에 모여 체력 단련과 구보를 한 뒤,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한 달간 이어질 가장 첫 일정이었던 것이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교육 스케줄을 처음 확인했을 때를 떠올린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독일에서 연수했을 때는 이런 식이 아니었다.

숙소도 호텔이었고, 아침 식사를 한 뒤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다 9시까지 소방 학교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었다.

그에 반해 한국에선…….

소방 교육 연수가 아니라 군대 체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교관인 수혁도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해야만 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수혁이 운동장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지양호를 포함한 교관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내심 교육생들이 먼저 도착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교육생들은 아직 단 한 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통역을 도와줄 통역사도 나와 있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불쾌해하는 교관들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지양호조차도.

“아직 피로가 덜 풀렸을 거다. 그리고 애초에 집합 시간이 6시니까, 아직 시간 남았어.”

교육생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독일인.

한국식 군대 문화는 경험해 보지 못했을 테고, 교관들 역시 그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진 않았다.

“대신 1분이라도 늦으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교육생들이 여기 온 것은 교육 훈련을 받기 위해서이지, 편하게 관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교관들이 이렇게 일찍 나온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오늘부터는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배려는 해주겠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어야만 했다.

소방 구조 훈련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방심하면 크게 부상을 당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훈련의 목적 자체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었으니, 단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독일로 돌아가 앞으로 싸워야 할 것은 ‘위험’이었으니까.

“6시다.”

지양호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정확히 6시를 가리켰다.

하지만 아직도 운동장에 나온 교육생은 없었다.

“정렬해.”

책임 교관으로 임명된 지양호가 교관들에게 정렬을 명령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고쳐 쓰고는, 지양호의 옆에 섰다.

일렬로 늘어선 교관들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교육생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5분 후.

교육생들에게 배정된 기숙사 건물에서 한두 명씩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고는 천천히 운동장을 향해 걸어왔다.

그들을 본 교관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빨리 뛰어오라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운동장 쪽으로 걸어오던 교육생들은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슬슬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5분이 더 지나 6시 10분이 되었을 때 모든 교육생이 집합을 완료했다.

그들은 운동장 한복판에 엉거주춤 서서 교관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지만 교관들은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교육생들을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6시 30분까지 그런 상태가 계속되자, 참지 못한 교육생 하나가 손을 들며 물었다.

“체력 훈련은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지양호의 시선이 그 교육생을 향했다.

차갑게 내려앉은 지양호의 시선을 받은 교육생의 흠칫했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하게 생긴 지양호가 노려보자 겁이 덜컥 난 것이다.

그를 잠시 노려본 지양호가 시간을 확인했다.

“6시 30분.”

지양호의 음성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저 덤덤한 목소리로 교육생들에게 물었다.

“집합 시간이 몇 시였지?”

지양호의 질문에 교육생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도 자신들이 집합 시간에 늦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몇 분 차이다.

고작 몇 분을 늦었다고 이런 식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양호는 대답하지 않고 있는 교육생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6시. 그걸 외우는 게 그렇게 어렵던가?”

지양호의 싸늘한 음성에 교육생 중 몇 명이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늦은 건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아직 다 풀리지 않았고, 잠자리도 바뀌어서 잠도 잘 못 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압박하니, 그들도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저희가 늦은 건 인정합니다만, 고작 그 몇 분 때문에 저희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말을 꺼낸 사람은 슈미츠였다.

그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지양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지양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몇 분?”

지양호가 슈미츠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곤 바로 코앞에 멈춰서며 죽일 듯이 쳐다봤다.

“지금 고작 몇 분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슈미츠는 지양호의 살벌한 기세에 조금 위축되긴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집합 시간은 6시. 그리고 너희가 집합을 완료한 시간이 6시 10분이다. 10분이 고작 몇 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짧은 시간인가?”

“이렇게 욕을 먹을 정도로 긴 시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슈미츠의 말에 지양호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소리쳤다.

“김수혁 교관!”

“예.”

“전통시장 화재 때, 자네가 몇 명을 구했지?”

“20여 명쯤 됩니다.”

“그들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을 약간 넘긴 정도였습니다.”

수혁의 대답을 들은 지양호가 다시 슈미츠를 쳐다보았다.

“작년 겨울, 김수혁 교관은 화재 현장에서 한 시간 동안 20여 명을 구했다.”

슈미츠는 지양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마지막 요구조자를 구조하다 죽을 뻔했지.”

수혁이 죽을 뻔했다는 말에 슈미츠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제 본 수혁은 그야말로 괴물,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런 괴물이 죽을 뻔한 현장이라니?

대체 얼마나 심각한 현장이었는지 상상도 되질 않았다.

“만약 그날 김수혁 교관이 10분을 늦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1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현장에서 10분이 지체되었다면?

최소한 한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 분명했다.

슈미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양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슈미츠가 대답하지 못하자, 지양호가 다른 교육생들을 돌아봤다.

“10분이면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시간이다. 너희가 지체한 10분은 그런 시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10분이 고작이라고? 적어도 너희가 소방관이라면, 사람을 구하는 구조대원이라면, 그딴 소리를 입에 올려선 안 되지!”

지양호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너희가 지쳤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방관은 아무리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도,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가야 하는 존재다. 그때도 힘들다고, 지쳤다면서 늦을 건가?”

교육생들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지양호의 말에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슈미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발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슈미츠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하지만 소방관은 실수해선 안 돼. 너희의 실수 하나 때문에 소중한 생명 하나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 하나로 구할 수 있는 요구조자를 잃는 경우도 있다.

아니, 많다.

지양호는 교육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러니 너희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져라.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교육생들의 눈빛이 변했다.

피곤하고 나른해하던 태도가, 한없이 진지해진 것이다.

“운동장 열 바퀴. 선착순 다섯 명.”

소방 학교 운동장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중, 고등학교 운동장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안에서 수많은 소방 훈련을 진행하니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운동장을 열 바퀴나 돌라는 소리에, 교육생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거기다 선착순이라니?

“뭐 하나? 안 달리고!”

지양호가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교육생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첫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수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첫 날이다.

벌써부터 저렇게 혹사시키면, 앞으로 훈련 일정에 지장이 있었다.

“필요한 일이야.”

하지만 지양호는 신경쓰지 않았다.

“저놈들에게 필요한 건 기술이나 이론이 아니거든.”

개념부터 바꿔야 했다.

자신들이 지금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로 죽기 살기로 교육과 훈련에 임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수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섰다.

지양호의 방법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쨌든 저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되면 이후 일정이 조금씩 늦춰지겠군요.”

본래 일정대로라면 아침 체력 훈련은 한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은 달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일정을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승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정표를 꺼내 펜으로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생략은 없다. 취침 시간을 줄여서라도 모든 훈련을 소화시켜.”

“알겠습니다.”

지옥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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