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99화
‘어떻게 할까?’
일단 언제나 그렇듯, 수혁에게 시야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미니 맵’은 길과 구조뿐만 아니라, 작은 사물도 모두 표시해 주기 때문이었다.
마네킹을 찾는 것 역시 같은 이유로 식은 죽 먹기였다.
그래서 수혁은 고민했다.
스킬에 의지하지 않고 본래의 실력만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스킬을 사용해 정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고민은 짧았다.
애초에 이런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이왕 보여줄 거면,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 못하게 만들어줘야지.’
그래야 앞으로의 교육이 편해질 것이다.
수혁은 스킬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미니 맵.’
속으로 작게 속삭이자, 수혁의 눈앞에 훈련장의 구조가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세 개의 마네킹이 있는 장소까지 한눈에 알아본 수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상황실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수혁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슈미츠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육생, 교관 할 것 없이 모두.
“말도 안 돼.”
“구조를 미리 외운 거 아니야?”
“이런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고 미리 외워?”
하지만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마치 눈앞이 훤히 잘 보이는 것처럼, 달리고 있었으니까.
슈미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 나온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 안이 얼마나 어두운지.
그래서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 수혁은 한 방에 도착했다.
마네킹이 있는 방이었다.
수혁은 망설임 없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마네킹을 들어 올렸다.
70㎏에 달하는 무게였지만, 수혁은 마치 종이 박스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쉽게 들었다.
그러곤 그대로 달렸다.
“미친…….”
상황실은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졌다.
구조해야 할 마네킹은 총 세 개다.
개당 70㎏이니, 세 개의 무게를 합치면 210㎏에 달한다.
거기에 장비의 무게까지 합하면…….
그래서 수색을 통해 마네킹 하나를 찾으면 일단 밖으로 먼저 빼내는 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수혁은 마네킹을 든 채, 밖이 아닌 안쪽으로 향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마네킹들을 한 번에 옮기겠다는 것.
‘불가능해.’
슈미츠는 수혁이 절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멍청한 짓이었다.
그만한 무게를 들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기록에 욕심을 내다 오히려 더욱 늦어질 게 뻔했다.
‘역시 허풍이었어.’
슈미츠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수혁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저런 사람에게 교육받고 싶지가 않았다.
‘율리안 선배한테 얘기를 해봐야겠군.’
과연 수혁이 정말로 자신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율리안이 말한 수혁의 모습이 정말인지.
그런데 그때였다.
슈미츠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수혁이 무슨 짓을 했는지 상황실 안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슈미츠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수혁은 어느새 세 개의 마네킹을 모두 찾아낸 상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네킹 세 개를 모두 짊어진 채, 이동하고 있었다.
처음처럼 달리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봐도 힘든 모습은 아니었다.
‘……나보다 빨라?’
슈미츠는 지금 수혁이 보여주는 움직임이, 자신의 움직임보다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고 움직일 때보다 말이다.
수혁은 세 개의 마네킹을 한 번에 든 채, 훈련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7, 7분 39초!”
당황해서 잠시 기록을 재는 것을 잊고 있었던 조승하가, 뒤늦게 수혁의 기록을 알렸다.
슈미츠보다 무려 5분이나 단축한 시간.
아니, 5분 빨랐다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 훈련장에서 10분대도 아니고, 7분이라는 기록이 나왔다는 게 도저히 믿어 지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네킹을 찾는 것만 해도 7분 이상이 걸릴 텐데…….’
수혁은 멍하니 서 있는 조승하에게 다가가며 마스크를 벗었다.
“괜찮았습니까?”
수혁이 웃으며 묻자, 조승하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괜찮았냐고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조승하는 대답하는 대신, 상황실 안쪽을 가리켰다.
“저 정도면 대답이 되겠죠.”
조금 전까지 그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실망과 의심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았다.
대신 수혁을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수혁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항상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수혁은 장비를 모두 벗어 정리하고는, 웃으며 슈미츠에게 다가갔다.
그동안 슈미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수혁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당신들을 교육할 자격이 되겠습니까?”
수혁이 물었다.
대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슈미츠는 수혁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훈련을 볼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 보여준 것만으로도 수혁이 얼마나 뛰어난 구조대원인지 충분히 알고도 남을 정도였으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교관님.”
슈미츠가 순순히 대답하자, 수혁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수혁의 시선을 받은 교육생들 역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사람에게 교육을 받지 않으면 누구에게 교육을 받는단 말인가?
“좋습니다.”
수혁은 만족한 표정으로 뒤에 있는 조승하를 쳐다보았다.
“이제 하던 일정 계속 진행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은 소방 학교 견학 및 시설 안내 시간이었다.
예정에 없던 훈련을 진행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건너뛸 순 없는 일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괜히 이런 일에 불러서 죄송합니다.”
조승하가 수혁에게 사과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수혁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수혁의 입장에서는 잘 쉬고 있다가 갑자기 끌려와, 무시를 당하다 괜한 일에 힘을 쓴 꼴이었으니…….
하지만 수혁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분위기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했어야 될 것 같았으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지금은 아직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되기 전이었으니까.
만약 교육 시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시간 낭비되었을 테고, 분위기도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오늘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더 나았다.
수혁의 말에 조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말이 틀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수혁이 수고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한 조승하가 교육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계속해서 견학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승하는 연수 첫날의 일정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수고하십시오. 저는 그럼 이만…….”
이제 굳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었던 수혁은 조승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곤 아직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교육생들을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혼자가 되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부터 이런 식이었으니, 앞으로의 교육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기를 눌러놓긴 한 것 같은데.”
그나마 압도적인 실력을 한번 보여줬으니, 조금 편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본관 밖으로 나가 휴게실로 향했다.
“왔냐?”
휴게실 안에는 지양호가 소파 위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 있었나?”
혼자 있는 게 심심했던지, 지양호는 수혁이 오자마자 질문을 퍼부었다.
“별일은 없었어요. 그냥 뭐 좀 하고 오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네요.”
“무슨 일이었는데?”
지양호가 궁금했는지 소파에서 일어나며 수혁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수혁은 어떻게 설명을 할까 하다가,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독일 교육생들이 수혁에게 교관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했으며, 그것을 증명하라기에 증명해 주고 왔다고.
수혁의 말을 들은 지양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거 미친놈들 아니냐?”
소방 학교에서 교관은 신이다.
단순히 교육을 담당하고 뭔가를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교육생들이 그런 교관의 자질을 시험했다고?
지양호로선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율리안에게 말을 좀 해야겠군.”
교육을 받으러 온 교육생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러니 책임자인 율리안에게 다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뭐, 잘 해결되기도 했으니까요.”
“어떻게 해결을 했는데?”
수혁의 능력이라면 지양호도 잘 알고 있었다.
독일에서 수혁이 보여줬던 모습 정도만 보여줘도, 교육생들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할 것이다.
“화재 시 실내 구조 훈련이요.”
“아, 그거 했어?”
지양호의 눈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과연 수혁의 기록이 얼마나 나왔을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내 기록이 몇 분이었더라?’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대충 15분 안쪽으로 기록을 세웠던 것 같았지만, 정확하진 않았다.
“슈미츠라는 교육생이 먼저 기록을 쟀는데, 12분대가 나왔더라고요. 역시 서양인이라 그런지 피지컬이 장난 아니었어요.”
독일에서 연수했을 때도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때 한국 연수생들도 나름 뛰어난 인재들이었건만, 수혁을 제외하고는 압도적으로 패배를 했었으니까.
“12분대면 엄청난 거 아니야?”
“그렇죠. 훈련 때 모습만 보면 현장에서도 어느 정도 통할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너는 얼마나 나왔는데? 11분? 10분?”
지양호가 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수혁이라면 10분대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의 능력은 지양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7분 30초대였던 것 같아요. 잘 듣질 않아서 정확한 기록은 모르겠네요.”
수혁의 말에 지양호가 입을 벌렸다.
“몇 분이라고?”
“7분이요.”
지양호는 훈련 방식이 자신의 때와 달라진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7분대라는 기록이 나올 리가 없었으니까.
“옛날이랑은 많이 달라졌나 보지?”
지양호가 당황해하며 말을 하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지양호의 입장이었어도 믿지 못했을 테니, 어떤 기분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예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했는지 저는 잘 모르니까, 조금 이따 다른 교관님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금 전 지양호처럼 소파에 드러누웠다.
“7분? 정말 7분이라고?”
지양호는 아까 따라나서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휴게실에서 혼자 심심하게 있을 바에야, 수혁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백 배는 더 나았을 것이다.
“야, 야, 김수혁. 자지 말고 일어나서 얘기 좀 더 해봐. 대체 어떻게 한 건데?”
수혁은 지양호의 다급한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혼자 쉬고 계신 것에 대한 벌입니다.’
궁금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지양호의 음성을 자장가 삼아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