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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97화 (197/425)

레스큐 시스템 197화

“……시 한 번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하며, 이 교류를 통해 서로 더 좋은 방향으로…….”

역시는 역시나였다.

환영식은 지루하고,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지양호가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대놓고 짓고 있을 정도였다.

독일 소방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비행을 끝내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이런 지루한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으니…….

짜증이 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소방 학교 측은 꿋꿋하게 자신들이 준비한 순서를 모두 끝마친 후에야 환영식을 종료했다.

“미친놈들. 손님들 모셔놓고 이게 뭐 하는 짓거린지 모르겠네.”

지양호가 투덜거렸다.

평소보다 큰 목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예 들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 끝났네요.”

주황색 교관복으로 갈아입은 수혁은 지양호와 함께 강당 밖으로 나섰다.

“이제 남은 게 뭐지?”

환영식은 끝났지만, 연수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독일에서 진행했던 거랑 비슷할 걸요.”

“아, 구경부터 시켜줘야 되는 건가?”

독일에서도 그랬었다.

자신들이 교육받을 이 소방 학교의 구조와 시설들을 미리 둘러보는 것.

“그런데 그건 다른 교관들이 시켜줄 테니까, 우리는 그냥 쉬고 있으면 돼요.”

사실상 수혁과 지양호 역시 이 소방 학교는 초행이었는지라, 독일 소방관들이랑 별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기다리면 되겠군.”

지양호가 듣던 중 반가운 말이라며 수혁과 함께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로 향했다.

수혁은 그곳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했다.

‘오늘은 이제 서로 인사하고 끝일 테고.’

연수 첫날.

장거리 비행으로 인해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 있을 것이다.

거기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환영식까지 참여했으니…….

오늘은 휴식이 급선무였다.

“김수혁 교관님!”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수혁을 누군가 불렀다.

“아, 네. 무슨 일입니까?”

수혁을 부른 것은 다른 교관이었다.

이번 연수에 투입되는 교관은 수혁과 지양호를 포함해 총 일곱 명.

각자 몇 가지 과목을 맡아 교육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수혁을 부른 교관은 그중 실내 화재 진압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독일 애들이 김수혁 교관님을 찾고 있어서…….”

교관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을 꺼냈다.

“저를요?”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소방 학교 내부를 구경하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을 왜 찾는단 말인가?

“이전에 독일 연수에 다녀오셨을 때의 이야기를 꽤나 감명 깊게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꼭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구경 끝나면 인사할 시간이 있는데, 그때 하면 안 돼?”

지양호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저희도 그렇게 얘기하긴 했는데, 하도 부탁을 해서.”

수혁이 픽- 하고 웃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죠.”

얼굴 한번 미리 보자는 게 힘든 부탁도 아니었으니, 수혁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나는? 나는 안 찾디?”

지양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 김수혁 교관님만 찾던데.”

교관의 대답에 지양호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니, 나도 거기서 사람도 구하고, 훈장도 받았는데 왜 얘만 찾아!”

지양호는 짐짓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독일 소방관들이 지양호를 찾을 리가 없었다.

결국 수혁은 지양호를 휴게실에 남겨둔 채 교관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눴네요. 김수혁입니다.”

수혁이 곁에서 걷는 교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알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 인사시니까. 하하!”

교관의 말에 수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조승하라고 합니다. 앞으로 한 달간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조승하라고 소개한 교관 역시 수혁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조승하는 소방 학교에서 교관 생활만 5년 이상 한 소방관이었다.

그때까지 많은 신입 소방관을 교육했고, 꽤나 평가도 좋은 사람이었다.

‘강식 선배랑 비슷한 연배쯤 되나?’

박상태보다는 조금 젊은 듯 보였고, 김강식과 얼추 비슷한 나이 같았다.

그럼에도 조승하는 수혁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했다.

수혁이 유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본래부터 천성이 바른 사람 같았다.

수혁은 그런 조승하가 마음에 들었다.

“김수혁 교관님은 인명구조 쪽 담당하시죠?”

“아,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제가 한참 후배인데…….”

꼬박꼬박 교관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라, 수혁은 조승하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하지만 조승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럴 순 없죠. 아무리 후배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같은 교관이니까요.”

“하, 하하…….”

단호한 조승하의 말에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 거의 다 왔군요.”

조승하가 수혁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본관 건물 내부였다.

“3층에 있다는군요.”

조승하는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연락하더니, 독일 소방관들의 위치를 알아내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3층이면 응급 처치 교육장이었던가요?”

“네, 맞습니다.”

본관 3층은 응급 처치와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수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열심히 시설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교관과 그것을 듣고 있는 독일 소방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음?”

그들 중 누군가가 수혁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왔다!”

그는 ‘마침내!’라는 표정을 지으며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수혁과 조승하에게 집중됐다.

“김수혁?”

“생각보다 작은데?”

수혁의 모습을 확인한 독일 소방관들의 표정이 애매했다.

정말 자신들이 들은 수혁이 맞느냐는 듯한 기색이었다.

‘이것 참…….’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챈 수혁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수혁의 체격은 작은 편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평균을 월등히 넘어서는 키와 덩치를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독일 소방관들은 그런 수혁을 가뿐히 넘어서는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30명 중 수혁보다 작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의심이 들 수밖에.

자신들이 들은 수혁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키가 최소한 2m는 되고, 보디빌더 이상의 덩치여야만 했다.

“오셨군요.”

시설 안내를 해주던 교관이 수혁을 보며 반색했다.

사실 그동안 독일 소방관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지만,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수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혼자 고군분투하며 진땀을 빼고 있었는데, 마침내 수혁이 왔으니 조금 편해질 수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혁은 일단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무시하고, 안내를 진행하고 있던 교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정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죄송은요, 이렇게 갑자기 불러서 제가 더 죄송합니다.”

수혁이 사과하자, 교관은 두 손을 저으며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뒤를 부탁드립니다.”

교관은 일단 진행하고 있던 일정을 멈추고, 수혁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독일 소방관들이 시설 안내보다는 수혁과의 대화를 더 원하고 있었고, 첫날부터 너무 빡빡하게 진행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관이 조승하와 함께 한발 물러서자, 수혁이 독일 소방관들 앞으로 나섰다.

“김수혁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혁이 그들에게 인사하자, 대기하고 있던 통역사가 곧바로 통역해 주었다.

독일 소방관들은 정말로 눈앞의 사람이 수혁이라는 것을 알자,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과장이었던 것 같다.”

“소문이 다 그렇지.”

조금 전까지 수혁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들떴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던데, 무슨 이유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그들의 표정을 본 수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다니엘이었다.

처음부터 수혁에 대한 관심이 컸던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질문을 시작했다.

“이전에 독일에서 교육받을 때, 우리 선배들을 모두 이겼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이겼다고 표현하는 건 조금 그렇고, 제가 더 나은 기록을 세우기는 했습니다.”

수혁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다니엘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수혁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가득했다.

수혁은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스킬, 레벨, 퀘스트.

이런 대답을 해줄 순 없었으니까.

결국 수혁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훈련과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정석적인 대답.

하지만 그것을 들은 다니엘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못 믿겠군요.”

수혁의 대답에 부정적인 말을 꺼낸 사람은 슈미츠였다.

그는 수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독일에서 했던 일들과 그 외에 소문으로 들었던 것들을 모두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일을 해내기엔 당신은 너무…….”

“작습니까?”

슈미츠가 말끝을 흐리자, 수혁이 생략된 말을 대신 해주었다.

독일 소방관들이 움찔했다.

차마 면전 앞에선 하지 못했던 말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슈미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나에 대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릅니다. 게다가 소문은 때때로 와전되기도 하죠. 하지만 일반적인 소문이라면……. 네, 맞습니다. 아마 당신들이 들은 것들은 전부 사실일 겁니다.”

수혁은 자신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나 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분명 과장된 소문도 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리 과장된 소문이라 할지라도, 수혁은 정말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혁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너무도 당당한 수혁의 태도에 독일 소방관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저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면 정말로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슈미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입을 열었다.

“증명할 수 있습니까?”

“……증명?”

수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저희는 허풍쟁이에게 교육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라면. 그것을 증명해 주십시오.”

헛웃음이 나왔다.

수혁은 앞으로 한 달간 이들의 교육을 맡을 교관이었다.

그런데 연수생이 교관보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하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기회에 저들의 기를 좀 눌러놔야, 앞으로의 교육이 편해질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어떻게 증명하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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