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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95화 (195/425)

레스큐 시스템 195화

‘음…….’

수혁의 시선이 계속해서 전승철을 따라다녔다.

딱히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그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성실하네.’

전승철은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항상 뭔가를 하고 있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도 않았다.

신일서의 박상태 역시 성실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지만, 전승철은 그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았다.

‘무슨 강박증 같은 게 있는 건가?’

오죽하면 수혁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전승철은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수혁이 관찰을 시작한 한 달 내내!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구만.’

본래부터 저런 성격인지, 아니면 팀장이 된 이후 책임감 때문에 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모습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수혁은 전승철에게 갖고 있던 안 좋은 생각들이 상당 부분 희석되었다.

팀장으로서 책임감도 확실하고, 성실하며, 능력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아, 맞다. 김수혁.”

전승철이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수혁이 흠칫했다.

“협조 공문 내려왔더라. 네가 전에 얘기했던 연수.”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워낙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연수에 참가할 때가 된 것이다.

그 말은 곧…….

“네 지원도 오늘이 마지막이고.”

그랬다.

특수 구조대 지원도 오늘로써 끝이다.

내일부터는 교육 연수에 참가했다가, 그것이 끝나면 신일서로 복귀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라고 좀 한가하네요.”

지난 며칠 동안은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고작 두 번의 출동이 전부였다.

퇴근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오늘은 이렇게 한가하게 일이 마무리될 것 같았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전승철이 수혁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승철에게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아쉽게도 송별회는 없다.”

지난번 숙취 사건 이후로 전승철은 특수 구조대 내에 금주령을 내렸다.

그런 실수를 다시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였다.

물론 따로 한 잔씩 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최소한 술 냄새를 풍기며 출근하는 사태는 사라졌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수혁의 송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수혁 역시 서울에 있는 소방 학교로 가야 했기 때문에 퇴근 후 준비할 것이 많다는 것도 송별회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송별회는 없으니까, 그냥 나가서 자판기 커피나 한잔씩들 하자고.”

전승철이 대원들을 돌아보며 말하자, 모두 픽- 하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이 쏘는 겁니까?”

“내가 커피 정도는 쏠 만한 재력이 충분하지.”

오지환이 묻자, 전승철이 짐짓 호기롭게 대답했다.

수혁 역시 웃으며 대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수고했다.”

“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어.”

대원들은 커피를 한잔씩 받아 들고는 수혁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이희도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내일부터 하는 연수는 대체 뭐야?”

전승철을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단순히 연수에 참가한다고만 들었을 뿐, 정확히 무슨 연수인지 알지 못했다.

“이번에 독일에서 우리나라로 교육을 받으러 오거든요. 거기에 참가하는 거예요.”

수혁의 대답에 이희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독일 애들 교육받는데 네가 왜 참가를 해? 너도 같이 교육받냐?”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들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생이 아니라, 교관으로 참가한다.”

대답한 것은 전승철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교관이요?”

“쟤가?”

“아니, 너 이제 임용된 지 1년밖에 안 되지 않았잖아.”

대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혁에게 속사포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하, 하하…….”

수혁이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딱히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혁 역시 아직도 왜 자신이 교관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혁이 정도면 교관 할 만하지 않나?”

오지환이 중얼거렸다.

그가 본 수혁은 정말로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소방관이었다.

피지컬이나 출동할 때마다 보여주는 능력은 물론이고, 절대 1년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노련함까지 있었다.

연차에 상관없이 능력 그 자체로만 본다면, 수혁은 그 누구보다 교관에 잘 어울리는 소방관이었다.

“그렇긴 한데…….”

그것은 다른 대원들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지난 한 달 동안 수혁이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실력보단 계급과 연차가 더 우선하는 나라 아니던가?

그러니 고작 갓 1년이 넘은 수혁이 교육 교관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독일 측에서 요청했더라고요. 교관을 좀 맡아달라고. 훈장 받는 날 독일 대사랑 나눴던 얘기가 그거예요.”

수혁이 내막을 설명해 줬지만, 대원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독일에서 왜?’

수혁이 독일로 연수 갔다가 우연히 화재 현장을 발견하고 사람을 구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그런 일로 자국 소방관들의 교육을 맡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 독일 갔을 때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딱히 별일은 없었는데…….”

일이 있긴 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독일 소방관들의 콧대를 눌러준 일 말이다.

하지만 수혁은 괜한 자기자랑 같아서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해를 못 하겠네.”

오지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커피를 홀짝이며 대화를 듣고 있던 전승철이 끼어들었다.

“그냥 능력을 인정받은 거구나, 하면 될 일이지. 꼭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야 돼?”

의외로 전승철은 수혁이 교관이 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부터 수혁의 능력을 인정하던 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거 궁금해할 시간에 밀린 일이나 좀 하는 건 어때?”

전승철의 따끔한 한마디에 대원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이 중에 일이 밀리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퇴근 시간 다 됐다.”

잠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퇴근할 때가 되었다.

대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방금 전까지 심각하게 나눴던 대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 까먹어 버린 모습이었다.

“퇴근 준비, 퇴근 준비.”

오지환이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로 들어가자, 다른 대원들 역시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조만간 또 보자.”

“네?”

수혁 역시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전승철이 말을 걸었다.

“조만간이라면……?”

수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전승철은 왠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의 어깨를 두들겼다.

“때가 되면 알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전승철은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뭔 말이야?”

조만간 또 보자니.

회귀한 뒤 이런 식의 말을 꽤 들어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일들이 벌어졌고.

수혁은 이번에도 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특수 구조대에서의 마지막 퇴근을 위해서.

“괜찮겠어요?”

수혁이 최은송을 향해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나 혼자 차 끌고 가도 괜찮은데.”

“어차피 저도 출근해야 되니까 괜찮아요.”

“정반대인데요?”

최은송이 일하는 레스토랑은 강남 쪽이었고, 수혁이 가야 하는 소방 학교는 일산이었다.

거의 극과 극.

일산으로 수혁을 데려다준 뒤 강남까지 가려면, 서울의 특성상 엄청난 체력과 시간이 소모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수혁은 최은송이 괜한 고생 할까 걱정스러웠다.

그럼에도 최은송은 굳이 자신이 데려다주겠다며 고집했다.

“오랜만에 데이트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바빠서 최은송과는 오직 집에서만 같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이번에 가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또 못 보게 될 테니, 최은송은 이렇게라도 수혁과 함께하고 싶었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의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다.

“알겠어요. 그럼 대신 내가 운전할게요.”

결국 수혁이 항복했다.

“그렇게 해요.”

승리한 최은송이 배시시- 웃으며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일산까지 거리는 고작해야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음에도, 정말 데이트하는 느낌을 내기 위해서인지 이것저것 많이도 챙겼다.

“뭘 그렇게 많이 챙겨요?”

“가면서 먹을 것들이요.”

과일과 과자, 그리고 손수 만든 김밥까지.

일산이 아니라 부산을 가는 것만 같았다.

“자, 이제 출발!”

최은송이 들뜬 표정으로 소리치며 집을 나섰다.

수혁은 그런 최은송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연수가 끝나면 앞으로 데이트 좀 자주 하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싶었다.

“그럼 출발할게요.”

짐 머레이가 선물해 준 SUV를 탄 수혁이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부드럽게, 그리고 빠르게 소방 학교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요즘 상태 오빠하고 연락은 자주 해요?”

차 안에서 데이트 분위기를 한참 만끽하고 있던 최은송이 물었다.

“상태 형이요?”

그러고 보니 박상태와 연락한 지도 꽤 오래됐다.

워낙 일이 바빴기에 연락할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수혁 씨가 특수 구조대로 가고 난 다음부터 신일서 분들 소식이 좀 궁금해서요.”

아마 집들이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최은송이 구조 3팀 대원들을 본 때가.

그러니 궁금할 만도 했다.

“연수 끝나면 다 같이 한번 밥이나 먹을까요?”

“집으로 초대해요!”

수혁의 말에 최은송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할게요.”

최은송은 생각만 해도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그럼 그렇게 해요. 나도 못 본 지 오래돼서 보고 싶네.”

훈장 수여식 때 잠깐 본 이후로 일이 너무 바빠 보질 못했다.

연락도 못 하는 상황에 시간을 내서 볼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수혁뿐만 아니라 구조 3팀 역시 바빴을 테니 서로 시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내가 연락할까요?”

“그래 줄래요?”

직접 연락해도 됐지만, 수혁은 최은송에게 양보를 했다.

최은송은 서울로 출퇴근하며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 하는지라, 그동안 개인적인 사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친구를 만나지도 못했고, 항상 집과 레스토랑만 왕복하는 생활만 했으니…….

‘심심할 만도 하지.’

수혁이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것을 본 최은송이 수혁의 허벅지를 찰싹- 하고 때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마요.”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다고…….”

“미안하다는 표정이요.”

최은송은 수혁이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 이렇게 종종 나와서 데이트만 해주면 돼요.”

정말로 그것이면 되었다.

지금 생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이제부턴 최은송에게 더 많이 신경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수혁과 최은송은 그렇게 차 안에서 오랜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산의 소방 학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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