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94화
전승철이 소리치자 오지환이 뛰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꺼내둔 응급 상자로 간 오지환은, 그곳에서 거즈와 붕대를 모조리 꺼내 들고는 되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어찌나 출혈이 심한지, 칼로 낸 그 작은 틈을 통해 피가 벌컥벌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바닥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의 구경꾼들이 비명을 질렀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이만한 양의 피를 본 적이 없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거즈를 받아 든 전승철은 흘러내리는 피를 그것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피를 빼내기 위한 행위였으니, 지혈하진 않고, 그대로 피가 흐르도록 두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음에도, 거즈들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혈압을 다시 한 번 재주세요.]
어느 정도 피가 빠진 것 같자 의사가 요구조자의 혈압을 재보라고 지시했다.
이번엔 수혁이 직접 혈압을 측정했다.
“170에 90입니다.”
아직 높긴 했지만, 조금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떨어져 있었다.
[일단 급한 불은 끈 것 같군요. 조금만 더 피를 흐르도록 두다가 환부를 붕대로 감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구급차가 도착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보내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수혁이 의사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요구조자는 숨을 거뒀을지도 몰랐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말로 떠든 것밖에 없지만, 여러분은 직접 사람을 구하지 않았습니까? 뭐, 아직 단언하긴 이릅니다만…….]
위급한 상황을 넘겼을 뿐이다.
출혈점이 어디인지에 따라, 예후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게다가 피를 이렇게 많이 쏟았으니, 과다 출혈의 위험까지 있었다.
그러니 의사의 말대로 아직은 안심하긴 일렀다.
[아, 그리고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시는 제가 직접 판단하고 내린 것이니까요. 그쪽 팀장님께도 그렇게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수혁은 의사와의 통화를 끝내고는 전승철을 돌아봤다.
그는 이마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요구조자의 상태를 보고 있었다.
‘의외인데…….’
사실 처음 전승철이 왔을 때, 수혁은 그가 막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구조대원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었으니 말이다.
수혁이 알고 있는 전승철이라면, 분명히 제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승철은 수혁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줬다.
그러니 의외일 수밖에.
수혁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전승철을 바라보고 있자, 그것을 눈치챈 그가 뒤를 돌아봤다.
“왜 그러고 서 있어? 할 일 없으면 다른 요구조자들 살펴!”
“아, 네.”
전승철의 명령에 수혁이 급히 움직였다.
요구조자는 청년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승철이 차에서 구조한 일가족도 있었다.
그중 아버지는 머리에 꽤 심한 출혈이 있었고.
수혁은 한쪽에 모여 있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잠시 머리 좀 보겠습니다.”
머리를 눌러 지혈하고 있는 그의 손을 떼고 상처를 살펴봤다.
다행히 조금 찢어진 것에 불과했다.
출혈이 심하긴 했지만, 이대로 병원에 가서 꿰매기만 한다면 별 이상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아이는 좀 어떻습니까?”
이제 울음을 그치고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보며 물었다.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아요.”
아이 엄마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을 했다.
수혁이 아이와 엄마의 상태를 좀 보고 있는데, 그제야 저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교통사고 현장에선 이런 경우가 많았다.
이 사고로 인해 교통이 혼잡해지며, 구급차나 구조차의 도착이 늦어지는 것이다.
정말 심각할 때는 10분이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10분이면 생과 사를 결정지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단 사정이 많이 나아진 것이다.
이전에는 일부러 구급차의 앞길을 막거나 방해하는 운전자들도 심심찮게 나타나곤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영상이 나돌 정도로 시민의식이 상승했다.
덕분에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훨씬 빨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몰지각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늦긴 했지만 그래도 구급차가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구급차 쪽으로 달려갔다.
“이쪽부터!”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하자 수혁은 구급대원들을 데리고 복강내출혈을 일으킨 요구조자에게 먼저 데리고 갔다.
“복강내출혈 환자입니다. 일단 복부의 피를 빼내긴 했지만, 출혈이 너무 심한 상태라 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합니다.”
수혁은 빠르게 요구조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머리를 다쳐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과 팔이 부러진 것까지.
그것을 들은 구급대원들은 다급하게 그를 구급차에 실었다.
“다른 분들도 곧 도착할 겁니다. 차가 너무 밀려 있는 상황이라 경찰의 도움을 받고 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알겠습니다.”
구급대원의 말대로, 다른 구급차들은 그로부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특수 구조대 대원들의 설명을 간략하게 듣고는 요구조자들을 모두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휴우…….”
수혁이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마라톤을 뛰어도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수혁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만큼 정신적인 피로가 쌓였던 것이다.
평범한 교통사고.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출동할 정도로 흔한 사고였다.
그리 심각한 사고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이 한 번의 출동으로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그놈의 술.’
이번 출동이 힘들었던 첫 번째 이유였다.
전날 술을 마신 대원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구조자에 대한 처치가 늦었고, 그것은 큰일로 이어질 뻔했다.
‘그리고 구급대.’
구급대원의 중요성은 본래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간절하게 그들의 필요성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만약 구급대가 빨리 도착했더라면, 이렇게 긴장하고 요구조자를 잃을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칼을 들고 요구조자의 배를 찔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수혁은 새삼스레 구급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리 다 했으면 복귀 준비해.”
전승철 역시 잔뜩 지친 음성으로 대원들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저 사람도 의외고.’
병원에서의 일이 그에게 무슨 변화를 준 것 같았다.
이전 생과 비교해 보면, 전승철은 확실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구조 실력이나 능력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구조대 팀장으로서의 역량.
그리고 사람 그 자체의 성장.
전승철은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지 않았고, 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지니게 된 것 같았다.
‘나쁘지 않아.’
지금처럼 지원의 형태가 아닌, 훗날 정식으로 특수 구조대에 오게 되면 전승철이란 사람 때문에 꽤나 고생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혁은 전승철의 변화가 기꺼웠다.
“김수혁! 뭐 하고 있어? 빨리 안 타?”
수혁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복귀 준비가 끝난 것인지, 오지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갑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수혁이 구조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이거 오늘 첫 출동이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됩니까?”
율리안은 한국 소방청의 실무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번 독일에서의 훈련 교육과는 조금 다른 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다른 식이라면……?”
율리안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군대 훈련소 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누군가의 말에 율리안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국 군대 말입니까?”
대한민국 군대 시스템은 악명이 높았다.
일단 징병제라는 것부터가 악명의 크기를 더하는데 한몫했다.
“잘 알고 계십니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독일은 분데스리가의 나라다.
그리고 분데스리가에는 한국 선수들이 제법 뛰고 있었다.
한국 선수들을 영입할 때 항상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병역 문제였으니, 율리안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교육의 방식이 비슷하다 뿐이니까요.”
독일에서는 연수 인원과 독일 소방관들이 서로 경쟁하며 같이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하는 연수는 교관과 훈련생.
그렇게 확실히 구분을 짓고 교육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대충의 설명을 들은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 방식은 전적으로 귀국 측에 맡기겠습니다.”
얼마 전, 수혁이 제안을 수락하겠다는 연락을 취해왔다.
솔직히 율리안은 교육을 맡는 사람 중 수혁만 있다면 다른 것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구조 기술이나 이론 같은 것은 독일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번 연수를 기획한 것은, 오직 수혁 한 명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배우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독일에서 같이 교육을 받은 소방관들은, 수혁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다들 한 단계 성장한 것만은 확실했다.
율리안은 이번 연수를 오게 될 소방관들이 같은 것을 배우길 원했다.
그러려면 수혁이란 존재가 필수였고.
“아, 그리고 이 기획서에 나와 있는 ‘현장 지원’이라는 항목 말입니다.”
율리안은 기획서 안에 있는 글씨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실무자들을 쳐다봤다.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율리안의 질문에 실무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엔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소방 학교에서 훈련만 받는 것보다 직접 현장 경험을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율리안이 턱을 쓰다듬었다.
까끌까끌한 수염이 그의 손가락을 자극했다.
“나쁘지 않군요. 대신 우리 대원들의 안전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번에 한국으로 오게 될 연수생들은 지난번 독일로 간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때는 실전 경험이 있는 소방관들이었지만, 이번엔 아직 배치도 받지 않은 신입 소방관들이 연수를 받기로 한 것이다.
현장 경험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애송이들.
그런 이들을 지원이라고는 하지만, 현장에 투입시키는 것은 상당한 위험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교육 방식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한국에 맡기기로 했으니,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오히려 더 나은가?’
소방 학교에서 훈련만 받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직접 수혁이 구조하는 모습을 보면 더 크게 느끼는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맡기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대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짜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무자들과 율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인사했다.
앞으로 연수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율리안은 얼굴에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