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93화
“차가 밀려서 조금 더 걸린단다!”
뒤에서 오지환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수혁은 그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복부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단순히 살이 찐 것이 아니었다.
‘복수? 아니, 이건 출혈이야.’
장기도 상한 듯했다.
아무래도 사고가 나며 핸들에 부딪힌 듯했다.
‘큰일이다.’
팔이 부러진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청년은 머리와 장기에 큰 손상을 입은 상태.
하지만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혁이 배운 것이라고는 단순한 응급 처치에 불과했다.
이런 중증외상에 쓸 만한 지식도, 기술도 없었다.
‘스킬이라도 있었으면…….’
하지만 그런 스킬은 없었다.
수혁은 마른침을 삼키며 뒤를 돌아봤다.
“얼마나 걸린다고요?”
수혁의 심각한 표정에 오지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가 막혀서 조금 더 걸릴 것 같단다.”
“젠장.”
수혁이 욕설을 내뱉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머리를 다쳤어요. 팔도 부러졌고, 내부 장기도 문제가 있는지 배가 불러오고 있습니다.”
수혁의 말에 오지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 분명 괜찮아 보였는데?”
“머리를 다쳐서 지금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오지환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이건 명백히 자신들의 잘못이었다.
숙취에 절어 만사가 귀찮다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잘못.
만약 더 제대로 확인했더라면, 조금 더 빠른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오지환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병원에 연락 좀 해주세요.”
“병원?”
“빨리요!”
갑작스런 요청에 오지환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수혁은 지금 그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지환이 스마트폰을 꺼내 곧장 가장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연락을 취했다.
“받아라.”
수혁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특수 구조대 1팀 구조대원 김수혁입니다.”
수혁은 빠르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네, 말씀하세요.]
수혁의 음성을 들은 의사는 다급한 음성에 대충의 상황을 눈치채고는 귀를 기울였다.
“교통사고 환자입니다. 사고의 충격으로 복부가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다친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혁은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핵심만 요약해 상황을 설명했다.
[바이탈은 어떻습니까?]
의사가 물었다.
하지만 수혁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 체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병원까지 이송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와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구급차가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쿨룩!”
갑자기 누워 있던 청년이 기침을 시작했다.
그리고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지환 선배!”
그것을 본 수혁이 부르자 오지환은 곧장 청년에게 다가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피로 인해 기도가 막힐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고개를 모로 돌리자, 피가 뺨을 타고 바닥으로 줄줄 흘렀다.
“피를 토하고 있습니다.”
요구조자가 피를 토한다는 소리에 의사의 음성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복강내출혈이 의심됩니다. 아니, 확실한 것 같군요. 환자의 혈압 확인 가능합니까? 지금 당장 말입니다.]
의사가 요구조자의 바이탈을 다시 요구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수혁은 일단 수화기를 든 채로 구조차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순식간에 구조차에 도착한 수혁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혈압기를 챙겨 들고는 다시 되돌아갔다.
어찌나 빨리 움직였는지, 청년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오지환은 수혁이 다녀온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지환 선배.”
수혁이 혈압기를 오지환에게 넘겼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오지환이 청년의 팔에 혈압기를 채우며 혈압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지금 혈압 측정 중입니다.”
수혁이 잠시 지켜보고 있자, 혈압측정을 끝낸 오지환이 눈을 크게 뜨고는 수혁을 돌아봤다.
“190에 110!”
고혈압이었다.
그것도 지나치게 높은!
“190에 110이랍니다.”
수혁이 재빨리 의사에게 요구조자의 혈압 상태를 전달했다.
[출혈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피가 고여 장기와 혈관을 압박하고 있는 것 같군요.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평범한 출혈로는 이 정도로 빠르게 피가 고일 수가 없었다.
의사는 정맥, 혹은 동맥에서 출혈이 발생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질 않았다.
만약 의사의 짐작이 맞다면, 1초라도 빨리 병원으로 와서 긴급 수술을 해야만 했다.
“아직 구급차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구급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냥 일반 차량으로 옮기기에도 여의치가 않았다.
아무런 의료 장비가 없는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조직 괴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 수술한다고 해도, 예후가 좋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수혁은 의사도 아니었고, 간호사도 아니었다.
심지어 구급대원만큼의 의학 지식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손가락만 빨며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복강내출혈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출혈을 잡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출혈점이 몸 내부에 있었으니, 배를 째지 않고선 지혈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청년의 경우는 정맥이나 동맥의 손상이 의심된다.
그러니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구급차가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수혁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물었다.
눈앞에 요구조자가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구조차에 소독이 된 메스 같은 게 있습니까?]
구급차도 아니고, 구조차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없습니다.”
[메스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뭔가 찌를 만한 것은 없습니까?]
수혁은 잠시 생각을 하다 뭔가를 떠올렸는지 다급하게 말을 했다.
“다목적 칼이 있긴 합니다.”
구조대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목적 칼.
일명 맥가이버 칼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그거면 충분할 것 같군요.]
의사의 말에 수혁은 의아해하며 칼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뭘 하면 됩니까?”
수혁이 묻자, 의사가 덤덤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찌르세요.]
“……네?”
수혁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찌르라고요?”
수혁이 되묻자, 옆에 있던 오지환도 깜짝 놀라 돌아볼 정도였다.
[깊게 찔러선 안 됩니다.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만. 천천히 틈을 만들어주세요.]
그러니까, 의사는 지금 수혁보고 사람의 배에 칼을 찔러 넣으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혁은 요구조자를 살리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가 온다면 구급대원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낫겠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괴사가 시작될 겁니다. 그러니 언제 올지 모르는 구급차를 기다리기 보단, 지금 처치를 하는 편이 좋습니다.]
순간 수혁의 머릿속에는 많은 것이 떠올랐다.
‘감염은? 아니, 진짜 내가 이걸 해도 괜찮은가?’
수혁은 의사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의료 행위를 구조대원인 자신이 정말 해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에 손이 굳어버렸다.
법적인 문제는 나중이었다.
그것보단 자신이 실수해서 요구조자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김수혁 씨라고 했던가요?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러니 실행하세요.]
아이러니하게도, 냉정하게까지 느껴지는 의사의 덤덤한 음성에, 수혁은 두려움이 가시기 시작했다.
“진짜 찌릅니다?”
[너무 깊숙하게는 말고,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만.]
수혁은 스마트폰을 오지환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곤 심호흡을 했다.
“야, 너 정말……?”
오지환이 떨리는 눈으로 수혁을 쳐다봤다.
구조대원 생활을 하며 이상한 경험을 수도 없이 많이 해봤지만, 칼로 사람의 배를 찌르는 모습은 듣도 보도 못했다.
수혁 역시 두려웠다.
하지만…….
“안 하면 죽는다잖아요.”
수혁은 떨리는 손으로 칼을 잡고는 요구조자의 배 쪽에 가져다 댔다.
그때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뒤에서 전승철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수혁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뒤로 물렸다.
“팀장님!”
오지환 역시 경기를 일으키며 뒤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전승철은 수혁의 손에 들려있는 칼과 요구조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응급 처치입니다.”
“……응급 처치?”
수혁의 말을 들은 전승철이 눈살을 찌푸리며 오지환을 쳐다봤다.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지금 뱃속에 고인 피를 빼내지 않으면 위험하답니다.”
오지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잠깐 비켜봐.”
전승철이 수혁의 옆을 지나쳐 요구조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피를 한바탕 토해낸 요구조자는, 어느새 의식이 날아간 상태였다.
너무도 긴장한 탓에, 수혁과 오지환 모두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전승철은 요구조자를 확인하다, 부풀어 오른 배를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복강내출혈?”
“네.”
“이 정도면 심각한 건데…….”
교통사고가 발생한 지 겨우 20분.
고작 그 정도 시간에 배가 이렇게 부어오를 정도면 출혈이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전화 줘봐.”
전승철이 오지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직접 의사와 통화를 시작했다.
“특수 구조대 팀장 전승철입니다. 지금 지시하신 조치가 사실입니까?”
전승철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1초라도 빨리 피를 뽑아내야 합니다.]
의사는 계속해서 시간이 지체되자 답답한 듯, 짜증스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것을 들은 전승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승철이 스마트폰을 다시 건네주고는, 이번에는 수혁을 쳐다봤다.
“비켜.”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방금 통화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당장 피를 빼야…….”
“내가 한다.”
전승철의 말에 수혁이 반발하다 입을 다물었다.
“예?”
“내가 한다고. 그러니까 넌 비켜.”
전승철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다목적 칼을 꺼내 들었다.
“제가 해도 됩니다만.”
수혁이 머뭇거리며 말하자, 전승철이 픽- 하고 웃었다.
“이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농후하다. 그러니 내가 하는 게 낫지.”
그것은 책임감 때문이었다.
만약 문제가 된다면, 그 책임은 일개 대원인 수혁이 아닌, 자신이 지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 끌지 말고 비켜. 시간 없다며.”
전승철은 수혁을 한쪽으로 밀어내고는 요구조자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러곤 옆구리 쪽에 칼을 가져다댔다.
덤덤한 표정과는 달리, 그의 손도 수혁처럼 떨리고 있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전승철이 칼을 밀어 넣었다.
푸욱-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칼날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 틈으로 피가 쏟아지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