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92화
수혁은 이동하는 내내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조차 내부가 술 냄새로 가득 차, 숨을 쉴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쐬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대원들 앞에서 헛구역질을 할 뻔했다.
‘제발 빨리 좀…….’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수혁이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빌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가 흐르고.
다행히 현장은 그리 멀지 않아 빠르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내려!”
전승철의 힘없는 외침과 함께 특수 구조대 대원들이 구조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 역시 숙취로 인한 멀미 때문에 죽다 살아난 표정이었다.
구조차 밖으로 나간 수혁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퀘스트는 안 떴고.’
요즘 들어 퀘스트가 뜸했다.
수혁은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왕 사람을 구하는 김에, 그에 따른 보상도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욕이 꺾이는 것은 아니었고.
“장비 준비해!”
수혁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전승철의 명령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이희도와 함께 구조차 뒤쪽으로 돌아가 구조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겼다.
이번 현장은 교통사고 현장이었다.
승용차 세 대가 추돌 사고를 일으키며 가운데 끼어 있던 차량이 심하게 파손이 된 상태.
그 안에는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가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화재나 폭발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지만, 운전자가 머리에 부상을 입어 출혈이 심했다.
거기다 아이가 많이 놀라 패닉에 빠져 있는 상태였기에 최대한 빠르게 구조를 해야만 했다.
수혁은 일단 장비를 몇 가지 챙겨 들고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전승철은 창문에 붙어 요구조자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숙취에 찌들어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믿음직한 구조대원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입에서 풍기는 알싸한 알코올 냄새는 지우지 못했지만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이걸로 상처 부위를 눌러 지혈하시고, 어머니는 아이를 진정시켜 주세요.”
아이는 거의 자지러질 듯 울고 있었다.
이러다 잘못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가져왔습니다.”
수혁이 전승철 옆에 챙겨온 장비들을 내려놓았다.
쇠 지렛대부터 유압 스프레다까지.
교통사고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비들이었다.
전승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쇠 지렛대를 먼저 집어 들었다.
“너는 다른 애들이랑 같이 주변 수색하고 사람들 소개시켜.”
“……괜찮겠습니까?”
평소였다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
전승철이라면 이런 구조 정도는 혼자서 충분히 하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혁이 보는 전승철은 평소의 그가 아니다.
요구조자의 앞이었는지라, 최대한 멀쩡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 중이었지만,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고, 아직도 술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이런 상태로 혼자 구조를 하다간, 무슨 실수를 저지를지 몰랐다.
수혁의 걱정스럽게 묻자, 전승철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다른 대원들이나 도와라.”
전승철의 말에 수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나 전승철의 안 좋은 성격이 다시 발동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한 번 자신이 정한 일은 번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비록 잘못된 선택이라 하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굽히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수혁이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승철의 눈을 본 수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을 피울 때마다 보였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전승철은 정말로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비록 몸이 평소와 같지 않다고 해도, 이 정도쯤은 쉽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것을 본 수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장인 전승철이 이렇게 나오는데 계속해서 같이하겠다고 우길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부르겠다.”
전승철은 이제 그만 가보라는 듯 수혁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쇠 지렛대를 문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수혁이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향했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재빨리 달려오면 되겠지.’
‘위험 감지Ⅲ’ 스킬이 있었으니, 너무 멀리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대비하고도 남을 것이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전승철의 명령대로 일단 주변의 다른 대원들을 돕기 시작했다.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접근하지 말아주세요!”
이희도는 교통사고 현장을 촬영하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대체 무슨 좋은 일이라고 이렇게 몰려들어 구경하고, 동영상 촬영을 한단 말인가?
수혁은 예전에 인터넷으로 봤던 뉴스 기사를 떠올렸다.
지하철 투신 사망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덕분에 현장 정리에 꽤나 애를 먹었다고 했었다.
‘그게 아마 일본이었지?’
수혁은 대체 그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구조에 방해가 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저기는 됐고.’
이희도가 애를 쓰고 있었으니, 수혁은 굳이 저곳으로 가고 싶지가 않았다.
잠시 후면 경찰들도 도착할 테니 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오지환과 다른 대원들이 있는 쪽이었다.
그들은 사고가 난 다른 차량에 붙어 혹시 모를 추가 사고에 대비해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혁은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위험해 보이는 잔해들을 치우다 문득 사고자들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지?’
그들은 차에서 내려 길 한쪽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어떨지 모르는 것이 교통사고 후유증이었다.
“저 사람들은 괜찮대요?”
수혁이 오지환에게 물었다.
“어? 괜찮아 보이던데, 딱히 외상도 없는 것 같고.”
수혁이 오지환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확인 안 해보셨어요?”
현장에서 요구조자의 컨디션 체크는 가장 우선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런데 괜찮아 보인다고 그냥 넘어갔단 말인가?
수혁의 말에 오지환이 흠칫- 했다.
별것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수혁의 반응을 보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이다.
“아니, 아무리 술이 덜 깨도 그렇지, 가장 기본적인 걸 건너뛰면 어떻게 합니까!”
수혁이 오지환을 향해 고함을 쳤다.
“그, 그게…….”
까마득한 후배가 자신에게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오지환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왠지 불안했던 그의 느낌이 정확하게 맞아들었다.
수혁은 그들에게 뭐라고 한마디를 더 하려다 참고는 몸을 돌렸다.
선배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들에게 한소리를 하는 것보다, 요구조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더욱 급했던 것뿐이다.
수혁은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괜찮습니다. 딱히 아픈 곳도 없고…….”
인도에 앉아 멍하니 구급대와 보험사를 기다리던 그들은 갑자기 다가온 수혁을 보며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확인 좀 해보겠습니다.”
수혁은 일단 사십대 중년인의 몸부터 확인했다.
‘외상은… 없고.’
뼈가 상하거나 찰과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고의 충격으로 타박상을 좀 입은 것 정도였다.
“혹시 모르니 좀 이따 구급대원이 오면 제대로 한번 확인해 보세요.”
수혁은 중년인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다음 사람을 살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괘, 괜찮…….”
이십대 청년.
그는 수혁을 향해 자신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을 본 수혁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잠시 보겠습니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수혁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몽롱해 보였다.
게다가 말투까지 어눌했다.
수혁이 다급히 그의 상태를 살폈다.
‘눈이 풀렸어.’
그리 좋지 못한 징조였다.
수혁은 일단 가장 먼저 그의 머리부터 확인했다.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머리를 다쳤다면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이 더욱 위험했다.
내출혈이 일어났다는 뜻일 수도 있었으니까.
일단 머리를 확인한 뒤, 다른 쪽도 살펴보던 수혁이 멈칫했다.
‘이상한데?’
팔이 이상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었지만, 뭔가…….
‘젠장, 부러졌잖아!’
움직임이 조금 부자연스럽다 했더니, 청년의 왼팔은 부러진 상태였다.
수혁의 얼굴이 더없이 심각해졌다.
사실 팔이 부러진 것은 그리 큰 부상이 아니었다.
깁스를 하고 한두 달 정도 지내면 자연치유가 가능하니 말이다.
문제는 팔이 부러졌음에도, 청년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뼈가 부러져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이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움직이는 게 정상일 리가 없었다.
아무리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었다고 해도 이건 비정상적이었다.
‘머리가 다쳤다.’
뇌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심각한 문제가.
“팀장님!”
수혁이 재빨리 전승철을 불렀다.
전승철은 어느새 차 문을 뜯어내고 안에 있는 요구조자들을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그러다 수혁의 외침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이쪽으로 와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전승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요구조자들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수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전승철을 부르지 못했다.
입술을 잘근 깨문 수혁은 이번엔 오지환을 불렀다.
“지환 선배!”
조금 전 수혁의 고함을 듣고 살짝 자책감을 느끼고 있던 오지환은, 수혁이 부르자 재빨리 달려왔다.
“왜? 무슨 일 있어?”
“구급차 언제 온답니까?”
특수 구조대에는 신일서처럼 구급대와 동시에 출동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서에서 구급대를 보내야 하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한번 알아보마.”
오지환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급히 무전기를 들고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 있……?”
수혁의 다급한 모습에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어눌한 음성으로 물었다.
“일단 이쪽에 좀 누워보세요.”
의학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은 수혁이 보기에도, 청년의 상태는 심각했다.
머리와 팔에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게 조심하며 청년을 바닥에 눕혔다.
청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는지 수혁의 손길에 따라 순순히 움직여 주었다.
‘다른 곳은?’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쪽에 어떤 부상이 더 있을지 몰랐다.
그렇게 청년을 더 살펴보던 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