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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89화 (189/425)

레스큐 시스템 189화

“김수혁!”

수혁을 발견한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박상태, 지양호, 율리안.

유일하게 그리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는 사람은 전승철이 유일했다.

바로 어제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같이 일을 했으니 당연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혁은 일단 지양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사실 박상태가 가장 반갑긴 했지만, 못 본 시간이 고작 한 달에 불과했고, 지양호는 거의 1년 만이었으니까.

박상태도 그런 수혁의 행동을 이해하는지 일단은 뒤로 빠져 지켜보기만 했다.

“몸은 좀 괜찮냐?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지양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만큼 수혁에 대한 소문이 심각했던 것이다.

수혁이 이미 죽었다는 말까지 돌았을 정도였으니…….

“보시다시피 전 멀쩡해요.”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양호와의 인연은 그렇게까지 깊지 않았다.

기껏해야 독일에서 한 달 동안 같이 지낸 것뿐이니까.

그런데도 이토록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래 보인다.”

지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에는 수혁의 얼굴이 화상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중에야 사실 그것은 과장된 소문이며, 수혁의 부상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이 돌았다.

과연 어떤 말이 진실일지 궁금했는데, 지금 보니 후자가 더 정확한 소문이었던 듯했다.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지양호가 수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보다 얼마 전에도 또 활약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지양호는 바로 얼마 전 일어났던 병원 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전승철을 향해 시선을 힐끔 던졌다.

혹시나 그날의 일 때문에 전승철의 기분이 나빠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전승철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일부러 태연한 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날의 일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표정에서는 그날의 뒤끝을 볼 수 없었다.

수혁은 안도하며 지양호를 향해 겸양을 떨었다.

“활약은요, 무슨.”

“화재가 그렇게 크게 났는데,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안 나왔다며? 가스폭발도 일어나고, 건물도 붕괴됐는데 말이야.”

말만 들어보면 영화에서나 보던 재난현장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맞나?’

평범한 현장은 아니었다.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원.

화재만 해도 자칫 잘못했으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폭발에다 건물이 무너지기까지 했다.

수혁이 생각해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은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게 저 혼자 한 일인가요? 다들 노력했으니 가능한 일이었죠.”

이번에는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수혁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그 많은 사람들을 혼자 구할 수는 없었으니까.

병원 의료진들의 신속한 대응이 아니었다면, 분명 큰 피해가 일어났을 것이다.

“새끼…….”

지양호는 수혁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지긋이 쳐다봤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

그때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던 율리안이 둘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돼서…….”

밖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니, 다른 참관인들도 도착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럼 밀린 얘기는 끝나고 하자고.”

지양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수혁은 그런 지양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이번에는 박상태를 향해 다가갔다.

“할 만하냐?”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던 지양호와 다르게, 박상태는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담담하게 안부를 물었다.

“할 만해요.”

수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혁에게 있어 특수 구조대나 신일서나 별다를 것은 없었다.

아니, 특수 구조대의 일이 더 편했다.

출동 횟수도 예전의 구조 3팀과 비교하면 훨씬 더 적었고, 대원들이 모두 베테랑이다 보니 수혁이 신경쓸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

물론 특수 구조대에 있는 동안 대형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도 한몫했고.

“별일은 없고?”

박상태가 전승철의 눈치를 살짝 보며 조용히 물었다.

수혁은 그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전승철은 수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미 증명이 되었던 구조 실력은 당연했고, 팀장으로서의 역량 역시 뛰어났다.

병원에서의 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카리스마와 뛰어난 인품으로 대원들을 이끌었다.

그날 병원에 있었던 대원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수혁은 전승철에 대한 평가를 조금 바꿀 정도였다.

물론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 생에서 수혁이 봐왔던 것처럼, 전승철은 독단적인 면이 있었다.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한 번 정한 자신의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든지 하는…….

하지만 전승철의 방법 역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수혁은 굳이 그와 충돌하지 않았다.

기껏 좋은 관계가 됐는데, 그것을 다시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뭐, 네가 괜찮다면 다행이고.”

박상태는 괜히 찝찝한 표정으로 전승철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수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박상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느낌이 별로라는 말은 박상태 자신이 생각해도 그리 좋아 보이는 대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가서 앉자.”

이제 다른 사람들도 식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높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일서의 서장이나 특수 구조대 대장도 참석했다.

하지만 그들은 높은 축에도 들지 못했다.

참석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수혁이 사진으로나 가끔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어이구, 저 양반도 왔네.”

자신에게 마련된 자리로 가서 앉은 수혁은, 옆에 있던 지양호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요?”

“저기, 저 양반.”

지양호가 작은 몸짓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검은 뿔테를 쓰고 있는 작은 체구의 남자.

“우리 경기도 지사야.”

“……도지사요?”

아니, 소방관이 훈장을 수여받는 자리에 도지사가 왜 온단 말인가?

수혁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은 지양호가 픽- 하고 웃었다.

“어떻게든 숟가락 한 번 얹어보고 싶었나 보지.”

지양호가 알기로, 저 도지사는 소방관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되는 사람이었다.

소방관들이 하는 일에 하나하나 딴지를 걸기 일쑤였고, 마치 소방서를 자신의 부하 조직처럼 부려먹었다.

“가장 유명한 건 소방 헬기를 자기 전용기처럼 쓴다는 거지.”

“예?”

수혁은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 줄 알았다.

“소방 헬기를 자기 자가용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소방 헬기 운영 조례를 보면, 소방 헬기는 긴급한 도정업무 수행 등에도 배치할 수 있게 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저 도지사는 그 규정을 악용해, 마치 택시처럼 이용을 했다.

“아니, 무슨 출판기념회를 가는데 소방 헬기를 쓰고 자빠졌어.”

도정업무 수행에 배치할 수 있다고 했지, 아무 때나 쓰라고 만든 헬기가 아니다.

만약 저런 쓸데없는 일에 소방 헬기를 배치시켰다가, 꼭 필요한 상황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애꿎은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수혁은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저 양반이 자기 멋대로 헬기를 써서 나간 돈이 거의 2천만 원가량이다. 물론 그 돈은 다 세금이고.”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전 생에서도 볼꼴, 못 볼꼴 많이 본 수혁이었지만, 저런 사람은 처음 봤다.

“그거 안 걸려요?”

“위에서도 쉬쉬하니, 우리가 뭘 어떻게 하겠냐?”

지양호가 혀를 찼다.

도지사란 자리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소방청이 직접 나선다면 이런 상황을 막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저렇게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것은, 위에서도 묵인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썩었네.”

그 말이 정확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또 새삼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나라가 통째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거다.”

아쉽게도 지양호는 그것을 바꿀 힘이 없었다.

그는 일개 소방관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좋은 일을 앞두고 괜히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런 훈장을 받으면 뭐 하나?’

훈장은 소방관 처우 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예로운 일이긴 했지만, 수혁은 이런 훈장보다 소방관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다.

그때였다.

“아이고, 여기들 계셨군?”

지양호가 말했던 도지사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를 본 수혁은 고민했다.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일어나 인사를 할 것인가?

마음 같아서는 무시는 물론이고, 면상에 대고 욕이나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평범한 자리가 아니었다.

독일에서 직접 주최한 훈장 수여식.

이런 장소에서 얼굴을 붉힌다는 것은, 독일 정부와 율리안의 체면에 먹칠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지양호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 일어났다.

“김수혁입니다.”

“지양호요.”

수혁은 그래도 나름 예의를 갖춰 말했지만, 지양호는 ‘난 네가 싫다’는 느낌을 팍팍 내비쳤다.

하지만 도지사는 지양호의 태도에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지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여러분의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독일에서 사람을 구하고 훈장까지 받다니! 이게 국위선양이지요.”

도지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수혁과 지양호를 칭찬했다.

어찌나 사람이 좋아 보이는지, 수혁이 몰랐다면 정말로 호인이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아, 예. 감사합니다.”

수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런 도지사의 말을 받았다.

“자자, 이렇게 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우리 사진 한 방 찍읍시다.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수혁과 지양호는 내켜 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저, 도지사님.”

그때 그의 비서로 보이는 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응? 왜? 무슨 일 있나?”

“이제 수여식이 시작될 것 같으니, 사진은 후에 찍으시는 게…….”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이미 착석을 완료했고, 독일 측에서도 준비가 끝나 보였다.

이쪽의 인사만 끝나면 곧바로 수여식을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도지사는 개의치 않았다.

“사진 찍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빨리 한 방 찍고 앉으면 되지. 안 그래?”

그는 괜히 분위기를 망친 비서를 노려봤다.

“괜찮겠지?”

그러곤 수혁에게 물었다.

“네, 뭐. 그러시죠.”

수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네.”

도지사는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수혁과 지양호 사이에 서서 기어이 사진을 찍은 뒤에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미친놈.”

지양호가 그런 도지사의 등을 향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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