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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87화 (187/425)

레스큐 시스템 187화

놀랍게도 수혁을 찾아온 사람은 율리안이었다.

[율리안? 그 사람이 지금 거기 왔어?]

수혁의 음성을 들은 박상태가 물었다.

“아, 네. 상태 형, 제가 조금 이따 다시 연락드려도 돼요?”

[그래, 얘기 끝나면 연락해라.]

박상태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이군.”

율리안이 수혁에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독일어로 한 인사였기에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대충 눈치로 때려 맞춘 수혁은 어벙벙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요.”

수혁이 인사를 건네자 율리안이 빙그레- 웃었다.

“어, 그, 오늘은 통역이 없나 보네요?”

수혁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독일에서는 그나마 지양호나 통역이 있었기에 대화가 가능했는데…….

“여기 있습니다.”

그때 율리안의 뒤에서 동양인 한 명이 들어오며 수혁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

독일에서 봤던 그 통역이었다.

수혁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 숨이 막히는 상황에서 구원해 줄 사람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컸다.

“누구십니까?”

그때, 수혁과 율리안을 가만히 보고 있던 전승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아, 이분은…….”

수혁이 율리안을 소개하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뭐라고 소개를 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분위기를 읽은 율리안이 직접 나서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온 율리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같은 소방관이죠. 이거, 일하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통역을 통해 그의 말을 전해 들은 전승철의 눈이 살짝 커졌다.

수혁이 처음 이름을 불렀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직접 이렇게 소개를 들으니 율리안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율리안은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특수 구조대의 전승철이라고 합니다.”

전승철은 율리안에게 다가가 악수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서로 통성명을 한 뒤, 전승철이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딱 보아하니 수혁에게 용건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용건이 무엇인지는 짐작도 되질 않았다.

아니, 애초에 수혁과 율리안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도 몰랐다.

전승철의 물음에 율리안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오랜만에 수혁 씨에게 인사하려고 들렀습니다. 좋은 소식을 직접 전하고도 싶었고.”

“좋은 소식이요?”

전승철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수혁과 율리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훈장!’

수혁은 박상태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가 있었다.

설마 정말로 훈장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수혁은 당혹스러웠다.

“예, 이번에 수혁 씨가 독일 연방 공화국 공로 훈장 중 공로 십자장을 받게 되었거든요.”

“훈장을 받는단 말입니까?”

전승철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놀랄 수밖에!

비록 지원의 형태이긴 하지만, 자신의 부하로 있는 수혁이 독일에서 훈장을 준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수혁이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율리안이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이미 알고 있었나 보군.”

생각보다 반응이 시원치 않자, 율리안은 수혁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 네. 사실 저도 방금 들었습니다.”

수혁이 살짝 민망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율리안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이 수혁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괜히 미안해지네.’

율리안의 표정을 본 수혁은 왠지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그러자 율리안이 픽- 하고 웃었다.

자신이 가장 먼저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혁이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미안해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났다.

“괜찮다, 어차피 알려질 일이었으니까.”

누가 알려주었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수혁이 훈장을 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였으니까.

“너 독일에서 뭘 했기에 훈장까지 받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전승철이 수혁에게 물었다.

“음, 그게…….”

수혁은 간략하게 독일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훈장받을 만한 일이라면 그날 현장에서 사람을 구조한 것밖에는 없었다.

수혁의 설명을 들은 전승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정도 일로 훈장을 받는 것은 좀 과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독일 정부였으니, 자신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축하한다.”

전승철은 진심으로 수혁을 축하해 주었다.

소방관으로서 사람을 구하고 훈장을, 그것도 외국의 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지극히 명예로운 일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감사합니다.”

예전보다 훨씬 좋은 관계가 된 전승철이었는지라, 수혁은 그의 축하를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그럼 수여식은 어떻게?”

전승철이 물었다.

그의 물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수여식은 언제인지?

그리고 어디서 하는지?

수혁은 특수 구조대에 지원 온 인력이었다.

만약 수혁이 수여식으로 인해 자리를 오랫동안 비우게 되면, 그것도 낭패였다.

율리안은 전승철의 의도와 걱정을 읽고는 걱정 말라는 듯 대답했다.

“수여식은 한국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대사관의 주최로 대사께서 직접 수여할 예정입니다.”

이번엔 수혁이 놀랐다.

수혁은 훈장을 받기 위해 다시 독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몰래 귀찮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독일 측에서 꽤나 배려해 준 듯했다.

“그게 언제입니까?”

“다음 주 월요일. 오전 10시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이라면 앞으로 5일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그날 특수구조대 1팀이 비번이라는 것.

전승철은 수여식 일정이 일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는 것에 안심했고, 수혁은 비번에 또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에 시무룩해졌다.

‘아, 은송 씨랑 좀 쉬려고 했는데.’

집 소파에 누워 최은송과 맥주를 마시며 영화 보려고 했는데,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그렇다고 훈장을 준다는데 그것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수혁은 율리안을 향해 애써 미소 지었다.

“퇴근은 몇 시지?”

율리안이 퇴근 시간을 묻자, 수혁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한 시간 남았네요.”

“그럼 그때까지 좀 기다리지.”

“기다리신다고요?”

전할 말을 전했으니 이제 돌아간다고 말할 줄 알았던 율리안이 기다린다고 하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번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경기 준비를 하느라 즐기지 못했다. 독일에 있을 때는 내가 안내를 했으니, 이번엔 자네 차례 아닌가?”

“아하하…….”

생각해 보니 그랬다.

율리안은 자신의 사비까지 써서 연수 인원들을 대접해 주었다.

그런 사람을 홀대할 수 없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출동이 없다면 한 시간 후에 퇴근이니까. 같이 저녁 식사나 하시죠.”

“그렇게 하지.”

율리안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안쪽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대원들이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율리안이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했고, 왠지 외국인은 껄끄러웠던 것이다.

율리안의 시선은 그들을 지나쳐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별다를 건 없군.”

인테리어나 구조는 달랐지만, 함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소방서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율리안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소파에 앉았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을 해라.”

“아, 네.”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었지만, 수혁은 최대한 노력을 했다.

만약 지금 밥을 먹고 있었다면 체할 것이 분명할 정도로 불편했다.

그것은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승철은 사무실 안의 분위기를 보다 한숨을 내쉬며 수혁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그냥 먼저 퇴근해라.”

“예?”

“위에는 내가 말할 테니까, 오늘은 일찍 퇴근해.”

“그래도 됩니까?”

“저 양반이 여기 계속 있다가는 애들 긴장해서 일 하나도 못 하겠다. 그러니까 그냥 퇴근해.”

전승철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자, 수혁은 주변을 둘러보다 쓰게 웃었다.

대원들의 눈빛에 제발 그렇게 해달라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수혁은 의자에서 일어나 율리안에게 다가갔다.

“저희 팀장님이 배려를 좀 해주셨습니다. 이대로 퇴근해도 좋다고 하시네요.”

“그래도 괜찮나?”

율리안은 수혁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는 듯 전승철을 쳐다보았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업무도 거의 마무리 된 상태고, 더는 출동도 없을 것 같으니까요. 그게 저희도 더 편합니다.”

“고맙습니다.”

율리안은 전승철의 배려에 감사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

둘이 서로 인사하는 사이, 수혁은 재빨리 퇴근 준비를 끝냈다.

그러곤 기다리고 있는 율리안을 불렀다.

“나가시죠.”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뵙겠습니다.”

율리안은 특수 구조대 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럼 저도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맛있는 거 대접해 드려라. 독일에서까지 오신 분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출근해서 봬요.”

수혁이 전승철과 다른 대원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율리안의 뒤를 따라 나갔다.

사무실 안에 적막이 흘렀다.

그러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지환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래? 너도 들었지?”

“훈장이래요, 훈장.”

이희도가 호들갑을 떨며 오지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적막했던 사무실 안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평소였다면 전승철이 조용히 하라며 호통을 쳤겠지만, 사실 그도 대원들과 같은 마음이었는지라 굳이 말리지 않았다.

“하도 김수혁, 김수혁 하는 얘기가 들려오기에 대단한 놈이구나 하고 생각은 했는데. 무슨 독일에서까지 훈장을 받냐?”

“외국 훈장 받는 소방관은 저 처음 봐요.”

“보기만 처음이야? 난 듣는 것도 처음이다.”

오지환과 이희도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연신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내가 생각을 잘했다.’

전승철은 수혁에게 사과하고 좋은 관계를 맺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수혁은 능력도 좋았고, 인맥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운이 좋은 것 같았다.

그런 사람과 척을 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서로 돕고, 돕는 관계가 되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테고.

전승철은 수혁이 사라진 방향을 잠시 쳐다보다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퇴근까진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팀장인 그로선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제 조용히 하고 일들 해.”

정신없이 떠들고 있는 대원들을 진정시킨 전승철은 하던 일을 마저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그런데 훈장 수여식에 나도 가야 하나?’

수혁의 본래 소속은 신일서다.

하지만 지금은 지원의 형태이긴 하지만, 엄연히 특수 구조대 소속이었다.

훈장 수여식을 아무런 참관도 없이 하진 않을 테니 누군간 가야 할 텐데, 과연 신일서에서 갈지, 아니면 자신들이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그날은 비번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승철 역시 비번에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제발 신일서에서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하지만 전승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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