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82화
전승철은 갑자기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깜짝 놀라며 움찔- 했다.
‘무슨 소리지?’
방금 자신이 건넨 도끼를 사용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는 아직 알 수가 없…….
콰앙-!
생각에 빠진 사이 다시 한 번 예의 그 굉음이 들려오고, 길을 막고 있던 잔해들이 흔들렸다.
‘……설마?’
그것을 본 전승철은 수혁이 너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런 멍청한!’
그리고 동시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우리가 그 방법을 몰라서 쓰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아니, 사실은 직접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도끼 한 자루를 가지고는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다.
부상자들과 그들의 상태를 보고 있는 대원 한 명을 빼고, 둘이서 열심히 장애물을 뚫어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도 하지 못한 일을 수혁 혼자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전승철은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더 데려오는 게 좋을 겁니다!”
전승철은 무전기를 사용하면 된다는 것도 잊고 수혁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수혁이 하고 있는 행동을 시간 낭비 그 자체라고 생각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지원도 곧 올 겁니다.]
수혁의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흘러 나왔다.
왠지 잔뜩 흥분한 것 같은 전승철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수혁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전승철은 그것을 듣자 더욱 언성이 높아졌다.
“애당초 왜 당신 혼자 온 겁니까, 김수혁 씨!”
그제야 무전기의 존재를 다시 상기한 전승철이 그것을 손에 들고 으르렁- 거렸다.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
자신을 도우러 온 동료에게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고립된 데다 부하들까지 크게 다친 상황이라 전승철은 잔뜩 당황해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심지어 그전에 구조 3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품기 시작했기에, 수혁에게 더욱 날카로운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요구조자를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보단 지금 여기를 뚫는 것이 더 중요하니 집중 좀 하겠습니다.]
수혁은 전승철의 상태가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듯, 무전을 끊었다.
“이런 건방진 놈!”
전승철은 수혁이 일방적으로 자신과의 무전을 끊자 더욱 흥분했다.
“팀장님…….”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대원 중 한 명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전승철을 불렀다.
자신들이 평소 봐왔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본래부터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식적이고 뛰어난 팀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은…….
이제 갓 배치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신입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뭐야!”
전승철이 인상을 쓰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아닙니다.”
대원은 고개를 저으며 그런 전승철을 외면했다.
전승철이 정말로 신입이었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태도를 바꿔놓았겠지만, 그는 자신의 상관이자 팀장이다.
저렇게 흥분한 상태에서 자신의 말이 먹힐 리도 없었고, 괜히 찍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대원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으으윽……!”
그때였다.
부상을 당한 대원 중 한 명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트리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팀장님!”
그것을 확인한 대원이 전승철을 불렀다.
“아까부터 왜 계속 부르……!”
전승철이 이번에도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다 입을 다물었다.
부상자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전승철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 *
“옛날에는 저러진 않았는데.”
수혁은 무전을 끊으며 혀를 찼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수혁은 전승철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전 생에서는 그렇게 뛰어났던 사람이 저런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라, 수혁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구해주러 온 사람한테 왜 혼자 왔냐니……. 그게 특수 구조대 팀장이 할 말인가?”
패닉 상태가 되었으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요구조자들 중에서도 가끔 저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특수 구조대의 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고작 이런 일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
아직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상태로 계속 고립되어 있다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이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와 같이 고립되어 있는 다른 대원들이 위험해진다.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그렇지 않아도 전승철과 대화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더는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기에, 수혁은 조금 위험하더라도 더 서두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안쪽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왠지 심상찮은 기분에 수혁이 ‘생명 감지Ⅲ’를 사용했다.
안쪽에 있던 특수 구조대 대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곳은 바로 부상을 입은 대원 중 한 명이 쓰러져 있는 곳이었다.
‘설마?’
수혁이 다급히 그곳을 살폈다.
그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스킬로 본 부상자의 생명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본래부터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시간이 지체되어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젠장!”
수혁이 도끼를 휘둘렀다.
잔해들이 마치 폭탄에라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가며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길을 뚫다 자칫 무너져 내리며 다른 피해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더 빨리 여기를 뚫고 구조하지 않으면, 부상 입은 대원이 위험했다.
쾅- 쾅- 쾅-!
수혁이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자, 잠깐! 뭐 하는 겁니까!”
안쪽에서 다급한 전승철의 외침이 들려왔다.
굉음과 함께 쌓여 있던 잔해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기겁할 만도 했다.
하지만 수혁은 멈추는 대신 소리를 질렀다.
“뒤로 물러나요!”
무전기를 꺼낼 시간도 아까웠기에 그렇게 소리를 지른 수혁은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전승철이 계속해서 뭐라고 외치는 것이 들려왔지만, 수혁은 무시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높이 쌓여 있던 잔해들이 무너져 내렸다.
“우와악!”
“피해!”
안쪽에서 특수 구조대 대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후우…….”
시야가 확보됐다.
아직 잔해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사람이 드나들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수혁은 도끼를 내던지듯 내려놓고는 잔해를 넘어 안쪽으로 뛰어들어 갔다.
다행히 무너져 내린 잔해에 깔리거나 다친 대원은 보이지 않았다.
“너 이 새끼!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수혁이 대충 상황을 확인하고 부상 입은 대원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데 전승철이 갑자기 튀어나와 수혁의 멱살을 잡았다.
수혁은 인상을 쓰며 그런 전승철의 손을 붙잡아 억지로 떼어냈다.
전승철은 버텨보려고 했지만, 수혁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손쉽게 멱살을 푼 수혁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쪽이야말로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 말해보시죠.”
전승철이 욱신거리는 팔목을 붙잡으며 수혁을 쏘아붙이려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었다.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고, 수혁이 뒤로 물러나라고 경고까지 해준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수혁이 한 행동은 자신들을 구조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수혁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갑자기 무너져 버린 잔해들에 깜짝 놀라 당황한 탓에, 수혁에게 화풀이한 것에 불과했다.
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전승철을 향해 말했다.
“비키세요.”
“……뭐?”
“비키라고!”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길을 막고 있는 전승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혁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전승철의 몸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우당탕-!
전승철은 방심하고 있다가 수혁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져 버렸다.
“팀장님!
다른 대원들이 깜짝 놀라 전승철을 불렀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놀라긴 했지만, 지금은 그냥 넘어진 것에 불과한 전승철보다 부상 입은 대원들의 상세가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보겠습니다.”
수혁은 그중 가장 심한 부상을 입은 대원에게 다가갔다.
그를 보살피고 있던 다른 대원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음…….’
좋지 않았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잔해에 깔리며 복부가 길게 찢어졌다.
대원들이 응급처치하긴 했지만, 상태가 워낙 좋지 않은 데다 구급 키트만으로 이 상처를 수습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빨리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병원으로 이송했다면 모를까, 한동안 이곳에 고립되어 있었으니 상태가 계속해서 나빠질 수밖에.
“옮겨야겠습니다.”
수혁은 재빨리 ‘미니 맵’을 사용해 주변을 살폈다.
반대쪽 길이 막혀 있었기에, 특수 구조대가 온 길로 되돌아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쪽!’
다행히 4층에는 사다리차를 댈 만한 곳이 있었다.
길도 막혀 있지 않았고, 화재 역시 심하지 않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은 곧장 무전기를 들어 박상태에게 이쪽 상황을 전달했다.
[기다려, 바로 준비할 테니까.]
“서둘러 주세요. 부상이 너무 심해요.”
[알았다, 최대한 서두르마.]
수혁의 연락을 기다리며 특수 구조대의 구조를 준비하던 박상태는 걱정 말라는 듯 대답했다.
“부탁드려요.”
수혁은 박상태와의 무전을 끊고는 다른 부상자들 역시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괜찮아.’
작은 부상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몇 달은 요양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장 죽을 것 같은 부상이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단 한 명.
복부가 길게 찢어진 대원만 제외하면 말이다.
“두 분은 다른 분들을 좀 챙겨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이 중에서 수혁보다 경력이 짧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짧은 경력을 지닌 이도 최소한 5년 이상 구조대원으로 활동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특수 구조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은 수혁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팀장인 전승철은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데다, 묘하게 수혁의 행동이 능숙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들보다도 더.
수혁은 부상자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생각 같아선 업고 달리고 싶었지만, 안는 쪽이 충격이 덜 받을 것 같아 한 선택이었다.
다른 대원들도 부상자들을 챙겼다.
“가시죠.”
수혁이 걸음을 옮기다 옆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를 갈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전승철의 모습이 보였다.
“따라오세요.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새끼가!”
수혁의 도발적인 말에 전승철이 발끈했다.
“팀장님! 제발 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혁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던 전승철을 대원들의 외침이 붙잡았다.
전승철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쳐다보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 존경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던 눈빛이 아니었다.
“……그래, 가지.”
전승철이 조금 진정한 기색이자,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을 시작했다.
전승철은 그런 수혁의 뒤를 터벅터벅 따라나섰다.
덕분에 수혁은 보지 못했다.
조금 전보다 더욱 악독하게 변해 있는 전승철의 눈빛을.